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단 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시인이 되어버린 알렉산드르 푸시킨. 그는 러시아의 대문호로 시 뿐아니라 희곡,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썼습니다.
   『대위의 딸』은 푸시킨이 쓴 유일한 장편소설로, '푸가초프의 반란(1773-1775)'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쓴 것입니다. 석영중이 쓴 「뿌쉬낀의 삶과 작품 세계」에 줄거리가 잘 요약되어 있으니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대위의 딸』은 뾰뜨르 그리뇨프라는 귀족의 자제가 체험하는 뿌가쵸프의 반란을 가벼운 필치로 묘사한 소설이다. 그리뇨프는 벨로고르스끄 요새로 가는 도중 눈보라를 만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데 그때 어느 농부가 나타나 길을 안내해 준다. 그리뇨프는 하인 사벨리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길 안내자 농부에게 토끼털 외투를 선사한다. 요새에 도착한 그리뇨프는 사령관인 미로노프 대위의 가족과 친해지고 대위의 딸 마리야와 사랑하게 된다. 선임 장교 쉬바브린은 두 사람의 관계를 질투하여 여러 가지 방해를 한다. 그러던 중 뿌가쵸프의 반란군이 요새에 쳐들어와 사령관 부부는 처형되고 쉬바브린은 뿌가쵸프 편으로 넘어간다. 그리뇨프는 자기에게 길을 안내해 준 농부가 바로 뿌가쵸프였음을 알게 되고, 뿌가쵸프 역시 그리뇨프를 알아보고는 토끼털 외투에 대한 사례로 그의 목숨을 살려 준다. 뿌가쵸프의 도움으로 마리야와 그리뇨프는 위험에서 벗어나지만 반란이 진압된 뒤 쉬바브린의 무고로 그리뇨프에게는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마리야는 뻬쩨르부르그로 가서 예까쩨리나 여제에게 그리뇨프의 사면을 탄원하고 그리뇨프는 여제의 특사로 풀려난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 221쪽

   줄거리 자체는 지극히 평범해 보입니다. 우연히 도움을 베푼 사람 덕분에 목숨도 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인데, 『안나 까레니나』나 『죄와 벌』에서 보았던 문학적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푸쉬킨의 소설에는 그만의 유머와 해학이 있습니다. 가난 때문에 곤란에 빠지거나 목숨이 위태로워져도 절대 심각해지지 않고, 유머를 날려버립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의 유머입니다.

  저런! 세상에 그런 부자도 다 있구먼! 우리는 말이요, 젊은이, (…) 다행히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하지만 문제는 우리 미샤라우. 혼기는 찼는데 주어 보낼 게 있어야지? 참빗 한 개에, 빗자루 한 개, 목욕탕에 갈 3꼬뻬이까짜리 동전 한 닢뿐이라우. 착한 신랑감이 나타나면 좋으련만, 안 그러면 평생 노처녀로 늙게 생겼수. 42쪽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그의 시구를 소설로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요? 비록 현실은 암울하고 복잡하지만 그래도 웃어보자는 푸슈킨 식의 따뜻하고 신랄한 유머 덕분에 러시아 문학은 지루하고 딱딱하다는 편견까지 깨버릴 수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도 『청춘의 독서』에서 "이렇게 '웃기는' 러시아 소설은 처음 보았다. 상황과 등장인물 모두가 희극적"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 푸슈킨의 삶 또한 희극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위의 딸』을 쓰고 3년 뒤인 1837년에 3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바람둥이 프랑스 남자 단테스와 자신의 아내 나탈리아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와 결투를 합니다. 그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어 숨을 거두게 되는데, 도스토예프스키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러나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 '소문'은 민중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푸슈킨을 견제하던 차르 니콜라이 1세가 일부러 퍼뜨린 음모라는 설도 있습니다.

   푸슈킨은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비롯한 수많은 러시아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1세대 작가이면서도 종종 그들과 비교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실 문제에 덜 예민했다는 것인데, 만약 그가 38세에 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힘든 날들을 참고 견뎌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 되리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