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되는 방법 - 매드사이언티스트가 알려주는 과학자 서바이벌 가이드
남궁석 지음 / 이김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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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과학자들이 이룩한 성과와 발견에 의해 진화하기 마련이지요. 과학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지 알게 해 주는 고마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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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후 천년사, 인간 문명의 방향을 설계하다
마이클 스콧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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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워릭대 교수(서양고전학·고대사)이자 BBC 역사 다큐멘터리 진행자로 널리 알려진 저자는 기원전후 천년(BC 508~AD 415)이 “세계 의식이 출현한 시대”이자 “우리가 처한 상황과 흡사”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①기원전 6세기말, ②기원전 3세기말, 그리고 ③기원후 4세기초라는 세 시기를 고대사의 분기점이라고 말한다. 이 무렵 “지중해에서 중국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각각의 시기가 "고대 세계의 연결이 강화되는 각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말은 로마와 그리스에서 새로운 정치체제가 마련된 시기였다. 기원전 508~510년 로마는 군주제에서 공화정을 시도했고, 그리스는 참주정을 무너뜨렸다. 이후 로마는 아시아에서 유럽, 아프리카까지 방대한 영토와 속주를 거느리며 대제국으로 발돋움했다. 로마가 남긴 방대한 유산은 오늘날 서양의 정치·사회와 문화에 수많은 원형으로 남았다.

기원전 3세기말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제가 활약하던 시기였다. 기원전 327년 대제는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까지 진출하면서 그리스에서부터 이집트, 소아시아와 페르시아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정복했다. 이후 3백여 년간 그리스와 오리엔트의 결합, 헬레니즘의 시대를 열었다.

기원후 4세기초는 종교와 관련된 것이었다. 기원후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와 동방의 지도자 미키니우스는 밀라노에서 만나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이때 서양과 동양이 종교적으로 연결되었고, 인간 대 신의 관계가 새롭게 설정됐다.

흥미로운 점은 세 분기점을 전후로 동서양의 역사가 비슷한 경로로 전개되었다는 저자의 착안이다. 가령 기원전 3세기말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로마 원정에 나섰는가 하면,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 셀레우코스의 안티오코스 3세,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4세와 중국의 진시황 모두 제국을 넓히는 데 골몰했다.

 

한무제 시기 영토 확장과 주변 형세. 한무제는 흉노를 여러 차례 정벌하는 한편, 준마(駿馬)를 구하기 위해 서역 대완까지 수 만의 대군을 보내기도 했다. 한 무제의 서역 정벌은 서양과의 교류를 트는 계기가 됐다.


특히 한무제의 정복 전쟁 덕분에 변방 유목민들이 중국 서쪽으로 밀려나면서 동서양의 역사가 만나게 된다. 중앙아시아를 두고 여러 제국들이 각축전을 벌이면서 민족대이동이 일어났을 뿐 아니라,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실크로드가 출현했다. 실크로드와 민족대이동은 불교가 중국과 중앙아시아에 널리 전파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바야흐로 4차 혁명의 시대는 모든 것이 연결되고 통합되는 시대다. 저자는 천 년의 시간을 아우르는 고대사 영역에서 연결하고 통합되는 지점을 포착한다. 여기에는 끊임없는 정복 전쟁, 다양한 정치·사회 체제 도입, 그리고 종교의 발흥과 전파가 함께 했다. 이처럼 저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국과 인도, 중앙아시아 등을 '지구사'의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우리가 3천 년 전 춘추전국 시대에서 오늘을 사는 지혜를 탐하듯, 서양의 고대사에 대한 이해 역시 큰 의의를 지닌다. 더욱이 "고대 세계의 경계를 유라시아로 확장하는" 지적 여행은 수없는 인사이트를 안겨줄 것으로 믿는다. AI와 기계가 인간을 넘어서는 시대가 올지언정 인간의 존재와 인간성에 관한 성찰은 여전히 중요하겠다.

유발 하라리는 이 책을 두고 "흘러간 과거의 정치와 문화는 물론이고 우리 시대의 제도와 사상, 환상을 형성한 고대사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놓는다"고 추천했다. 뭔가 상호 통할 것 같은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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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후 천년사, 인간 문명의 방향을 설계하다
마이클 스콧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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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후 천년을 둘러싼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 너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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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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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전집을 펴낸 것 같아, 한없이 기쁘다.”

 

옮긴이 성귀수 번역작가가 ‘역자의 말’에서 기쁨을 토로하며 한 말이다. 과연 그이의 기쁨이 얼마나 클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그 기쁨을 실감할 수 있다.

성귀수 작가는 2002년  도서출판 까치를 통해 세계 최초로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복원해 총 스무 권짜리 전집(이하 까치본)으로 발간했다. 이후 미발표이거나 발표는 되었어도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던 원고들이 속속 발굴되었다.

그는 16년 만에 중단편 39편, 장편 17편, 희곡 5편, 최근 발굴된 7편의 희귀작 등 아르센 뤼팽의 모든 것을 망라,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전 10권)으로 펴냈다. 모리스 르블랑이 1905년 처음 연재하기 시작한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부터 병마와 싸워가며 완성한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까지 뤼팽의 35년 모험담을 370여 컷의 오리지널 삽화와 함께 빠짐없이 수록했다.

 

  반평생 뤼팽에 미쳤던 성귀수 작가는 이번에 걸작  『결정판』을 내놨다.

 

 성귀수 작가는 2002년 70여 년 전 폐간된 프랑스 잡지사의 직원들까지 수소문한 끝에 『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의 누락된 연재분을 세계 최초로 출간했다. 이어 2012년 르블랑 사후 소문만 무성했던 미발표 유작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을 프랑스와 동시에 세계 최초로 출간하기도 했다.

 

이번 아르테판은 20권 짜리 까치본을 10권으로 압축하는 한편, 새로 발굴된 작품 일곱 편을 추가했다고 보면 된다. 일곱 작품을 집필 순으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아르센 뤼팽, 4막극」(1908) : 1권에 수록
「아르센 뤼팽의 귀환」(단막극, 1920) : 6권에 수록
「부서진 다리」(단편, 1928) : 8권에 수록
「이 여자는 내꺼야」(단막극, 1930) : 8권에 수록
「아르센 뤼팽의 외투」(단편, 1931) : 7권에 수록
「아르센 뤼팽과 함께한 15분」(단막극, 1932) : 9권에 수록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장편, 1937) : 10권에 수록

 

이 중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을 제외하고는, 모두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1권에 실린 「아르센 뤼팽, 4막극」은 아테네 극장 초연이 대성공을 거둔 뒤, 무려 40여 년 이상 연속해서 공연되었던 인기 희곡이다. 1권엔 이외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뤼팽 대 홈스의 대결」 등 세 작품이 실렸다.

1권에는 먼저 아르센 뤼팽의 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인지 앞부분 90여 쪽에 걸쳐 자못 흥미로운 읽을거리들이 소개돼 있다. 먼저 모리스 르블랑의 추리소설론, 뤼팽과 옮긴이의 가상 대화, 파스칼 포르튀니의 모리스 르블랑 인터뷰 기사, 뤼팽 시리즈 목록, 모리스 르블랑의 연보와 함께 아르센 뤼팽의 연보도 실려 있다.

 

 뤼팽이 위장한 베르나르 당드레지가 프로방스 호에서 넬리 양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과 「뤼팽 대 홈스의 대결」은 까치본과 거의 일치한다. 다만 일부 문장을 새로 고치거나 매끄럽게 다듬었다. 가령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의 1편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에서 뤼팽이 위장한 '베르나르 앙드레지'가 '베르나르 당드레지'로 고쳐졌다. 아마도 현지 발음 그대로 표기한 것이리라.

 

뤼팽으로 의심받던 로젠 씨는 회색의 두툼한 보자기로 얼굴을 덮어쓴 채 양손이 단단한 끈으로 묶인 채 나자빠져 있었다. 2002년 까치본(왼쪽)과 2018년 『결정판』. 비교하기 좋도록 삽화 크기 배율과 음영을 고스란히 살렸다. 

 

이번 『결정판』에서 두드러지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당연 삽화다. 전집 10권에 걸쳐 약 370여 컷이 들어갔다. 그림들은 초판이나 초기 판본에 실렸던 것을 복원해 실었다. 1권에만 약 70컷이 들어갔다. 까치본의 경우 1·2권을 합쳐도 모두 8컷에 불과했음을 감안하면, 『결정판』에서 얼마나 삽화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잘 알 수 있다.

 

2014년 복원된 「아르센 뤼팽, 4막극」의 대형포스터 (본문에는 흑백)

 

특히 2014년 발굴 복원된 「아르센 뤼팽, 4막극」의 대형포스터가 눈에 띈다. 이 포스터는 1910년 또는 1911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투르네 아샤르’라는 극단이 당시 북아프리카 오랑 시 순회공연에서 사용한 것이다. 많이 손상된 작품을 무려 1년여 전문적 과정을 거쳐 복원했다. 프랑스 뤼팽협회 르샤 회장이 옮긴이에게 보내줬다고 한다.

 

1권에서 편집 방향이나 새로 달라진 점을 잘 부각시켜 전집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뤼팽의 팬이라면 이번 『결정판』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음은 물론이요, 소장 가치도 한결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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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f657 2018-08-03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존판 삽화는 진품 삽화을 복제한것이라고 하네요........이번 결정판은 진품을 그대로 실었다고 합니다.

사랑지기 2018-08-04 09:4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그래서 삽화가 더 정감이 가나 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그리스인 조르바 -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니코스 카잔자키스 지음, 유재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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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삼 이 작품을 새로이 번역하려고 마음먹은 까닭은 (...) 평생 그리스학을 전공한 언어학자로서 이 명작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다 더 정확하게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580~581쪽)

 

한국에 『그리스인 조르바』가 처음 번역된 것은 1981년 고 이윤기 선생(이하 고인)에 의해서였다. 이후 조르바의 삶은 한국 독자를 매료시켰고, 카잔자키스(1883~1957)*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카잔자키스 : 유재원 선생은 기존에 알려진 ‘카잔차키스’는 잘못된 표기라고 주장한다. 그리스어 이름 표기 Καζαντζάκης에서 세 번째 음절의 자음 [τζ]는 유성 파찰음이므로 이에 대한 한글 표기는 [ㅈ]이지 [ㅊ]이 아니라는 것이다(552쪽).

 

유재원 선생은 고인과의 인연을 후기에서 상세히 소개한다. 1999년 두 사람이 함께 크레타의 카잔자키스 무덤에 참배했다고 한다. 고인이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병과 오징어 안주를 정성스레 올려놓고 절을 했다. 길을 안내했던 그리스 사람들도 눈시울을 붉혔다고 전한다. 이역만리 떨어진 사람들이 하나의 명작으로 이어지게 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껴안고 교통하도록 만든 위대한 문학의 힘을 절감한 순간이었다.

 

조르바는 니체가 생각해내고 주장했던 삶을, 그리고 작가 카잔자키스가 늘 꿈꿨지만 결국은 실천하지 못했던 삶을 그냥 살았다. 조르바는 영원한 자유인이다. 니체가 광기에 사로잡힌 듯 단숨에 써내려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온전히 계승한 인물이 바로 조르바였다. 빼어난 인간(위버멘쉬), 조르바. 오늘날 우리가 조르바에게 그렇게 환호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2017년 요르고스 스타시나키스 '친구들' 회장(왼쪽)이 중국 행사 전 한국에 들러 유재원 선생과 자리를 함께 했다.

 

유재원 선생이 고인과 함께 크레타를 찾은 지도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7년은 카잔자키스가 사망한 지 꼭 60주기가 되는 해였다. 1988년 결성된 ‘국제 카잔자키스 친구들’(현재 128개국 지부 8500여 회원)은 작년 12월 베이징에서 컨퍼런스를 열었다. 중국에서 행사가 열린 이유는 뭘까. 전 세계를 유랑했던 카잔자키스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 중국이었다. 1957년 당시 아시아독감이 유행했다. 중국 방문 후 귀국길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독일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카잔자키스가 살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 시대는 크레타의 독립 전쟁과 발칸 전쟁, 1차, 2차 세계대전, 그리스 내전 등으로 암울했던 시기였다. 그 역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투쟁하고 싸웠건만 혹독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개인의 힘은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문학의 힘으로 앞으로 불멸할 인간, 조르바를 그려냈다. 1941년 『그리스인 조르바』를 쓰기 시작해 45일 만에 완성한 뒤 1943년 8월 10일 탈고했다. 하지만 전쟁의 여파로 1946년에야 출판될 수 있었다.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1964)에서 조르바(앤서니 퀸 분)와 보스(엘런 베이츠 분)가 제임베키코 춤을 추고 있다.

 

“자, 조르바, 이리 와서 내게 춤을 가르쳐줘요.” 내가 소리쳤다.
조르바가 펄쩍 뛰어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번개 치듯 빛났다.
“대장, 춤이라고요?” 그가 말했다. “춤이라고요? 좋아요!”
“자, 조르바, 내 삶을 바꿔줘요! 자, 시작합시다!”
“내가 우선 제임베키코 춤부터 가르쳐드리리라. 아주 용감한 전사들의 거친 춤이외다. 게릴라들이 전투를 앞두고 추던 춤이죠.” (502~503쪽)

 

이 작품을 그리스어 원전으로 다시 읽게 된 것은 카잔자키스 팬의 한 사람으로서 감개무량하다. 아무쪼록 이번 번역을 계기로 카잔자키스의 작품과 생애가 새롭게 조명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위대한 문학의 힘은 시공간을 초월하기 마련이다.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가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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