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
애덤 호크실드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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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전쟁사학자 앤터니 비버가 쓴 《스페인 내전》은 내전의 발발과 전개 그리고 종식까지 사적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다. 2005년 스페인에서 먼저 출간된 뒤, 내전 70돌을 맞은 이듬해 주요 나라에서 간행됐다.

이에 비해 미국의 저널리스트 애덤 호크실드가 쓴 《스페인 내전》은 주로 내전에 참전한 외국인, 격동의 시대에 고향을 떠나 바다를 건너 삶의 진로를 택한 일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당시 내전에 참가한 미국인은 대략 2,800명이었다. 이 중 750여 명이 전사했다. 75명 정도되는 여자 의용군들은 주로 간호병으로 지원했다.

저자는 그들의 삶을 알기 위해 그들의 후손을 만나고, 도서관과 기록 보관소를 찾아다니며, 벽장이나 서랍 속에 오랫동안 쑤셔 박혀있던 문서들을 끄집어냈다. 마지막으로 내전의 격전지 에브론 강(스페인 최장의 강)으로 달려갔다. 내전 당시 에브론 강은 공화파가 거점 바르셀로나를 사수하기 위해 프랑코 반군과 치열하게 대치하고 있던 전선이었다. 마치 육이오 동란 때 낙동강 대치와 유사한 형국이었다.

그가 스페인 내전을 처음 접한 때는 1960년대 중엽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서 수습기자로 일하던 때였다. 당시 선배 기자에게서 내전에 참전했던 의용병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속한 부대는 에이브러햄 링컨 연대(제15 국제여단)로 불리고 있었다.

 

저자 애덤 호크실드(Adam Hochschild)


스페인 내전은 사회주의 혁명을 사수하려는 공화파와 이를 분쇄하려던 세계 체제가 프랑코를 앞세워 벌인 이념 전쟁이었다. 1936년 2월 치러진 스페인 총선에서 자유주의파, 사회주의당과 공산당이 연합한 인민전선이 승리를 거뒀다. 서유럽에서 가장 봉건적인 국가로 평가받던 나라에서 '선거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5개월 뒤 1936년 7월 17일 스페인령 모로코의 도시 멜리야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카나리아 제도에 있던 프랑코는 비밀리에 모로코로 날아와 쿠테타를 이끌었다.

당시 미국과 유럽은 철저히 외면했고, 혁명의 기운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거대한 파시즘의 검은 날개를 유럽 전역에 펼치고 있는 것"에 제때 대응하지도 못했다. 2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함께 스페인 내전은 곧 잊혀졌다.

 

공화파의 이념을 지지하고 혁명을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뛰어든 의용병들은 출신, 직업과 이념이 다양했다. 하지만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세계를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내걸었던 점에선 일치했다. 당시 세계 각지 26개국에서 모여든 의용병으로 구성된 국제여단은 약 3만 명 규모였다. 이 중 만여 명은 살아남지 못했다.

 

공화파군이 점령한 도시 테루엘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중앙), 제15국제여단(링컨대대)의 작전 사령관 맬컴 던바(왼쪽), 허버트 매슈스(헤밍웨이 뒤 베레모를 쓴 인물), 공화파군 장군 엔리크 리스테르(오른쪽)가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당대 작가나 지식인들도 내전에 기꺼이 뛰어들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생텍쥐베리는 종군기자로 참여했고, 헤밍웨이는 프랑코 반군이 최종 승리를 거둔 이듬해 내전을 주제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발표했다. 당시 무명이었던 조지 오웰도 참전해서 《카탈로니아 찬가》를 남겼고, 공군 대대를 조직해 참전했던 앙드레 말로는 《희망》에서 내전의 모습을 그렸다. 피카소는 1937년 4월 스페인 북부 소도시 게르니카에 벌어진 독일 공군의 무차별 폭격에 항의해 동명의 작품을 남겼다.

당시 공화파에 무기를 팔거나 병사를 지원했던 곳은 소련이 유일했다(멕시코는 소총 2만 정을 무상으로 지원). 스탈린은 공화파 지지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소련은 내전 기간에 어린이를 포함한 공화파 난민 수천 명을 자국으로 피신시켰지만, 내전이 끝난 뒤 이들을 석탄 채굴 같은 강제 노동에 처하거나 사상 투쟁의 제물로 삼았다. 스탈린의 배신은 내전에 참여하거나 영향을 받았던 미국인들이 공산당과 소련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는 미국의 자생적 공산주의 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었다.

 

1938년 10월 28일 바르셀로나 디아고날 거리에서 고별 행진을 벌이는 국제여단 병사들. 이날 3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이들을 환송했다.

 

1939년 3월 28일 프랑코 반군이 마드리드에 입성함으로써 내전은 막을 내렸다. 프랑코는 승리한 뒤 2만여 명의 공화파 사람들을 처형했다. 잡힌 사람들은 자백할 때까지 고문, 구타 혹은 굶주림의 고통을 당한 뒤 총살대로 보내졌다. 그는 36년 넘게 통치하는 동안 고문이 일상화된 경찰국가 체제를 유지했다.  말년에 치매기를 보이다 1975년 82세로 세상을 떴다.

 

프랑스로 향하는 난민들. 내전이 끝난 뒤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넘어간 공화파 난민들은 50만 명에 달했다.

한편 고국에 돌아온 의용병들은 냉전 체제의 잠재적 '빨갱이'로 낙인 찍혀 지속적으로 사찰 당하는가 하면,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직장에서 불이익을 감수해야했다. 그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또다른 대의를 위해 함께 싸웠다. 빈민을 위한 의료봉사, 흑인들의 투표권이나 인권을 위한 민권활동과 다양한 정치 투쟁이 그러했다. 유럽에 남은 의용병 역시 파시즘과 맞서 싸웠다. 그들은 2차 대전 동안 레지스탕스로 활약하며 전투에서, 또는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갔다.

 

2016년 2월 타계한 미국인 의용병 마지막 생존자 델머 버그 옹

 

이 책은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치밀한 고증과 능준한 필력 덕분에 치열했던 이념 전쟁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기꺼이 총을 들었던 사람들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아울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가치를 위해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인지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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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나라 -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
토르디스 엘바.톰 스트레인저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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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1996년 11월 16일 남자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시작됐다. 16살이었던 아이슬란드 토르디스는 교환 학생으로 호주에서 온 18살 톰에게 강간당했다. 당시 그녀는 술에 취해 있었고, 톰과는 연인 사이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강간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9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고통 받으며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2005년 그녀는 불현 듯 가해자 톰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로부터 8년간 둘은 300여 통의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만나자는 제안을 읽고 쓰러질 뻔 했다고 고백할 게. 무섭고, 걱정되고, 조심스럽고, 미칠 것 같고, 그런 감정들이 물밀 듯이 밀려...”(48쪽)

그러던 와중 토르디스의 눈에 또 다른 강간 사건이 눈에 들어왔다. 2007년 4월 레이캬비크의 한 호텔에서 일어난 강간 사건이 대서특필되었다. 열아홉 살 소녀가 모르는 남자에게 화장실 가는 길을 물었다가 따라 들어온 그 남자에게 강간당했다. 법원은 소녀가 힘껏 저항하지 않았다고 탓하며,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토르디스는 가해자의 무죄 방면에 분노했다. 평결을 비난하는 공개서한을 작성하다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270페이지짜리 책을 냈다. 그리고 1996년 자신이 당한 이야기를 책에 솔직히 고백했다.

두 사람은 남아공 케이프타운 일주일 동안 직접 대면하기로 했다. 케이프타운은 '강간의 도시'라 불릴 만큼 성범죄율이 높은 곳이자, 넬슨 만델라가 보여준 ‘용서와 화해’를 상징하는 도시다.

2013년 3월 28일 5시 둘은 케이프타운 리츠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그들은 서로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이제 토르디스는 서른 셋, 톰은 서른 다섯이 되었다. 토드리스는 다정한 남편 비디르를 만나 아이들을 낳았고, 톰은 아직 싱글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재회했을 때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2016년 TED 강연 모습)

 

 

그녀는 ‘용서의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 언급한다. 가령 남아공 국립미술관에서 토지법이 통과된 이후 100년간의 역사를 다룬 사진전이라든가 만델라가 갇혀 있었던 로벤 섬 투어 이야기 그리고 브라이스 코트니의 파워 오브 원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야기 등등.  둘은 무자비한 인종주의를 고발하는 사진과 현장 속에서 사람에게 딱지를 붙인다는 게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인지 몸소 체험하며 치유와 화해의 시간으로 들어선다.

과연 피해자와 가해자 두 사람이 16년 만에 재회했을 때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책에는 두 사람의 솔직한 감정에 대한 고백이 주거니 받거니 이어진다. 대부분의 스토리는 토르디스가 직접 썼고, 톰은 일기 형식으로 답한다.

 

 

 

“나는 누가 적인지도 모르는 채 세상과 전쟁을 벌였다. 누군가를 믿고 비밀을 털어놓지 못했기 문에 나는 내적 불만을 글로 쏟아냈다. 일기가 시가 되고, 다시 희곡이 되었다. 얼마 안 되어 나는 극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내 목구멍에 얹혀 있던 말들을 거침없이 뱉어내는 인물을 창조하는 일이 내게는 해방이나 다름 없었다.”(23쪽)

 

 

토르디스는 용서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생각한다. “용서가 유일한 길이야. 그가 용서를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나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49쪽) 그리고 말한다. “그토록이나 나를 좀먹어온 과거와 똑바로 대면할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75쪽)

그녀의 용서는 무조건적이거나 종교적인 용서나 사건을 잊고 덮으려는 행동이 아니라, 트라우마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기도 했다. 톰 역시 자신의 과오를 제대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세상을 바꿔나가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까지 ‘용서를 받을 자격’을 갖추려 노력했다.
 

 

 

 

한편 두 사람은 2016년 ‘강간과 화해에 관한 우리의 이야기(Our story of rape and reconciliation)’라는 주제로 TED 강연에 나섰다. 그들의 이야기는 조회수 90만을 넘어섰다.

필립 로스는 『휴먼 스테인』에서 자신의 농담이 인종차별적 언행으로 고발되어 고통 받는 노교수 콜먼 실크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낙인이 얼마나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토르디스와 톰의 이야기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나 치유와 화해의 길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토르디스가 먼저 내민 용서의 손길은 무척 감동적이다. 단지 한 여인의 온정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일찍이 만델라가 보여준 용서와 화해의 위대한 여정과도 같은 담대함이 깃들지 않았으면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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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삶의 철학
엠리스 웨스타콧 지음, 노윤기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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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외산면 반포마을에 가면 유홍준 선생의 별장 「휴휴당(休休堂)」이 있다. 이 곳은 선생이 평일(5일간)은 도시에서 보내고 주말(2일간)은 내려와 재충전하겠다는 5도 2촌의 철학을 담고 있다. 별장은 한 칸 짜리 방과 부엌으로 된 소박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아산시 배방읍 중리에는 조선 초기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 고불 맹사성의 생가 「맹씨행단」이 있다. 고불 선생은 평소 말이나 가마가 아닌 검은 소를 타고 다녔다한다. 마을 아이들로부터 소가 괴롭힘을 당하는 게 안쓰러워 구해준 게 인연이 됐다. 2017년 6월 건너 편에 「고불 맹사성 기념관」이 개관했다. 이 곳은 고불 선생의 일대기와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검은 소 모형도 들여놨다 하니 언제 한 번 방문해 볼 일이다.

이렇듯 소박하고 검소한 삶은 오늘날 현대를 사는 뭇 사람들이 꿈꾸는 안식이 될 수 있을까? 이 같은 질문에 철학적인 사색을 곁들여 진지하게 답변을 내놓은 책이 나왔다. 

엠리스 웨스타콧 뉴욕 알프레드대 철학과 교수는 2002년부터 '1달러로 만드는 하루의 행복'이라는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소박함을 체계적으로 규명하고자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소박함을 논의하기 위해 단순함이라든지 단순한 삶의 개념을 포괄했다.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개념들은 종종 구분 없이 사용되었고, 대체로 지혜와 덕, 행복 등의 가치가 내포됐다.

 

 저자 엠리스 웨스타콧(Emrys Westacott) 교수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됐다. 1장에서 소박함(frugality)과 단순함(simplicity)의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2장에서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명제, 단순한 삶이 인간의 도덕적인 성향을 강화하는 가에 대한 주요 논쟁들을 검토한다.

3장에서 또 다른 논쟁거리인 단순한 삶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살펴본다. 4장에서 소박함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과 함께 부와 욕망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측면을 짚어본다. 5장에서 사치스러운 삶이 가져오는 순기능에 대해 탐구한다. 6장에서 소박함의 철학이 매우 시대착오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고찰한다. 마지막 7장에서 소박하고 단순한 삶이 미래의 환경적인 재앙을 막아줄 수 있다는 주장 일반론과 그에 대한 반론들을 검토해본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사회경제적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부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유혹한다. 시장을 끝없이 팽창시키기 위해 우리의 욕망과 소비를 부추긴다. 가령 데이비드 흄은 사회적 효용에 근거하여 인간의 욕망을 덕과 악덕으로 구분하면서 소비주의를 옹호했다. "상품의 증가와 소비는 삶에 광채를 더하고 즐거움을 제공해 사회에 이득이 된다."

 

"소박한 삶에 도덕성이 배어 나온다는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단순한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적어도 역사적으로 흔히 나타난 위선의 한 형태, 즉 사치스러운 삶을 살면서 가난을 찬미하는 위선을 보일 가능성을 없애준다. 더욱이 사치하고 낭비하는 일에 관심없는 이들은 부정부패에 연루될 가능성이 적다. 살 것이 별로 없으니 큰돈을 벌겠다는 동기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단순한 삶을 실천하면 후원자에 대한 의존을 덜게 된다. 새뮤얼 존슨은 금전적 후원에 대해 "비굴함을 지불하고 오만함을 지급받는 몹쓸 짓"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때문에 그는 청렴하게 자존감을 지키며 사는 삶이 훨씬 쉽다고 주장했다." - 91~92쪽

 

저자는 우리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필요에 따라 우리의 욕망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도한 욕심이 탐욕을 낳는다, 지나친 과소비를 하는 사람은 신중하지 못한 지출로 피해를 입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비난 마저 받는다. 이에 반해 단순한 삶은 삶의 충만함에 이를 수 있게 해 주며, 이는 곧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이다.

말미에 저자는 정부는 단순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노력할 것을 제언한다. 그 방법론으로 첫째 저렴한 비용으로 음식과 주택, 의료, 보육, 교육, 대중교통 등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둘째 가능하면 재화가 개인적 특권으로써가 아니라 공공재로써 이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주요 철학자들이 가졌던 '단순한 삶'에 대한 사유를 명쾌하게 정리해 놓았다. 단순한 삶에 관한 철학적 성찰과 더불어 현대적 의미까지 되새겨볼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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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반생기
양주동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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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 시절부터 무애 양주동 박사의 희한한(?) 일화에 관해 익히 들어 왔다. 한 번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다행히 몸 상한 데가 없자 "국보는 살았다!"고 외쳤던 일화가 유명하다.

 

원래 《문주방생기(文酒半生記)》는 1960년 간행되었다. 책은 〈신태양〉, 〈자유문학〉 등 문예지에 연재한 산문을 모은 것이다. 책은 '유년기', '술의 장', '청춘백서','여정초', '학창기', '교단 10년' 등 여섯 부로 나눠 무애가 자신의 반생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거의 구갑(舊甲)이 흐르는 동안 당시 쓰이던 말과 글도 많이 바뀌었다. 출판사 측은 이 책을 다시 내면서 초판 《문주반생기》(신태양사)와 《양주동전집》 4권 〈문주반생기·인생잡기〉(1995, 동국대학교출판부)에 실린 영인본을 상호 대조하여 가능한 한 초판의 문맥에 충실하면서 의미가 분명한 쪽으로 교정하였다한다.

 

무애의 한학 실력이 워낙 출중한데다 언어의 유희 또한 남달랐으니 그 교정 작업이 여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후일담을 보니 자전과 사전을 비롯해 참고도서 수백 권과 인터넷 아카이브를 뒤져 가며 한글 세대를 위해 꼼꼼히 해독했다 한다. 책에 실린 편집자의 각주가 1996개나 된다하니 그저 감탄스럽다 못해 경외심마저 든다.

 

《문주방생기》 초판본. 신태양사(1960)

 

무애의 글쓰기는 참으로 독특하다. 그의 문장은 평생 의고투(擬古套) 곧, 한문 번역투를 벗어나지 못했다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에게서 유합을 배워 다섯 살에 졸업하고, 팔구 세 때 당시를 읽고 외웠다하니 가히 신동이었음에 틀림없다. 한편 아버지 역시 대단한 술꾼이었다. 무애는 아버지에게서 술 실력까지 물려받았음일까. 술에 관한 한 무애의 맞수가 여럿 있었느니, 개중 유명한 이가 작가 염상섭이었다. 염상섭은 어찌나 술을 좋아했던지 거의 취한 채 걸음을 갈지자로 걸어 호도 ‘횡보(橫步)’가 됐다.

 

특히 흥미로운 일화는 문학소녀 강경애(1906~1943)와의 연애담이다. 연애기는 1부 '문학소녀와의 연애'에서 잠시 언급되고, 5부 '춘소초'(春宵抄)에서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어느 비오는 봄밤의 이야기다, 무애의 연설을 들은 문학소녀가 비를 철철 맞으며 홀랑 멧새같이 그를 찾았던 것이다.

 

"선생님, 나 영어 좀 가르쳐줘요! 그리고 시도, 문학도. 전 여학교 3년생, 아무것도 아직 몰라요. 그러나 문학적 소질은 담뿍 가졌으니, 좀 길러 주세요."

 

당시의 그녀에 대한 무애의 인상은 이랬다. "그 똑똑하고 야무지고, 앙큼한 품이 몹시 귀엽다. 고 참새 같이 작은 몸, 빛나는 눈, 훤칠한 이마, 낭랑한 목소리." 하지만 문학소녀와의 연애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강경애는 나중에 장하일을 만나 간도로 도망치듯 이주했다. 그녀는 「소금」(1934), 「인간문제」(1949) 등을 발표하여 근대 리얼리즘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무애의 공은 강경애가 지닌 작가로서의 재능을 알아보고 이끌어 내준 것이다.

 

所遇無故物, 焉得不速老 (소우무고물, 언득부속로)
“옛날에 있던 것들을 이제는 만나볼 수가 없으니, 어느새 이다지 늙었단 말인가.”

 

무애가 인용한 고시(古詩)의 한 구절이다. 책을 대하는 내 마음이 바로 이랬다. 현란하고 감칠 맛 나는 국보의 글을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만나매 반갑기 그지없다. 잊혀져 가던 책을 ‘제대로’ 다시 내준 출판사 편집진에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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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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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괜찮다, 힘들지 않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 안의 무언가가 죽어 가고 있다. 시들어 간다. 그 무언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트라우마, 그림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다

‘문학의 프리즘에서 비춰 본 심리학.’ 이번에 정여울 작가가 우리에게 들고 온 화두다. 그이는 어릴 적부터 안아온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문학작품 속에서 자신과 닮은 상처를 지닌 주인공들을 찾아 대화하고, 소롱하며 치유의 길을 발견했다. 책은 그렇게 찾은 서른 편의 작품과 등장인물에 관해 이야기한다.

문학은 내게 진정한 내면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다. 어느 날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리 잠자에게서 자본주의 삶의 무게에 짓눌린 한 남자의 비애를 느낄 수 있고,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권씨에게서 빈궁할지언정 저버릴 수 없는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을 읽어낸다.

G. 미쇼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운명이 인간의 ‘힘의 의지’를 좌절시킬 때 어떤 특수한 감정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바로 ‘비극의 감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트라우마와 상처로 인해 불우한 삶을 보내야했던 문학 속의 주인공을 대하며 비극의 감정과 마주한다.

그 속에서 나는 공감하고, 공명하며 동시에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래, 내 삶도 그럭저럭 살만 하네 싶다. 작가 위화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어떤 목적을 위해 살기보다, 때로 삶 그 자체를 위해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난 문득 떠올려본다. 그래, ‘아픔’은 ‘앞으로’의 명사형인지도 몰라.

 

“그 모든 트라우마는 내게 말한다. 트라우마를 없앨 수는 없지만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상처를 완전히 낫게 할 수는 없지만 상처와 함께, 상처를 안고, 상처를 보듬고, 때로는 상처로부터 배우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상처는 엄청난 예외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필수적 성립 조건이다.” (250쪽)

 

저자는 아들러, 프로이트, 융 등 심리학의 거장 중에서 융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어느 매체에 따르면 작가는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을 자주 들춰본다고 했다. 융은 에고, 개인적 무의식, 집단 무의식이 우리의 자기(Self)를 구성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년의 위기’에 관심을 기울인 최초의 심리학자였다. 어쩌면 융의 심리학은 작가에게 푸코가 말한 '에피스테메'인지도 모른다.

집단 무의식을 잘 그려낸 작품에 뭐가 있을까? 작가는 『책 읽어주는 남자』를 꼽는다.  소설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독일 전체의 집단적 무의식을 건드리고 있다.

그이는 은연 중 융의 사위일체설을 드러낸다. 우리의 본성 내부에 ‘악’의 가능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은 융이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융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파괴성을 지켜보면서 기독교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에 하나-악 또는 아니마(남성에 깃듯 여성성)/아니무스(여성에 깃든 남성성)-를 더했다.

기독교는 악을 밖으로 몰아내면서(가령 하늘에서 쫓겨난 루시퍼) 악을 타도하기 이한 폭력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융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적·심리적 갈등, 즉 분열된 자아는 선과 악의 이분법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주변의 자극을 향해 리액션만 하기 바쁜 것이 ‘마음놓침’의 상태라면 ‘자아’라는 연기자의 페르소나를 뚫고 ‘자기’라는 존재의 핵심을 향해 날아가는 또 하나의 나는 ‘마음챙김’의 주제다. 또한 내 안의 모든 트라우마와 언제든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내면의 검투사다." (238~239쪽)

 

지킬 박사의 이중 인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지킬은 무의식과의 접촉에는 성공했지만 무의식과의 화해, 통합, 그로 인한 치유의 성찰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평한다. 우리 내면에 깃든 선과 악은 의식과 무의식과의 대화를 통해 통합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더 깊고 너른 자아의 우주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비평가 샤를 단치에 따르면 고전의 영원한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위대한 독자다. 현재 읽히지 않는 걸작은 미래에는 소멸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평론가 로저 애버트는 한 줄의 영화 평을 쓰기 위해 때로 영화 수십 편을 한꺼번에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저자 역시 한 줄, 한 단락의 명구를 건져 올리기 위해 수많은 책들을 살폈을 것이다. 그렇게 내 삶의 울림과 공명하는 문구를 만났을 때 난 치유의 힘을 얻고 다시 살아갈 기운을 얻는다.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나는 저자가 건넨 고전을 꼽씹어 읽어보련다. 모르지 않는가, 그 속에서 진정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 그것은 “자기 치유의 노력이고 더 나은 삶을 살려는 끈질긴 자유의지” 덕분이다. 이는 곧 자기 완성을 위한 산책이요, 여정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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