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찾아서 - 노벨상을 수상한 위대한 천재 과학자 에릭 캔델의 삶을 통해 보는 뇌와 기억의 과학
에릭 R. 캔델 지음, 전대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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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세기는 핵산과 단백질에 몰두했다.
다음 세기는 기억과 욕망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 프랑수아 자코브 ≪파리, 생쥐, 사람에 관하여≫


에릭 R. 캔델은 우리의 기억 과정을 생물학적으로 규명한 뛰어난 과학자다. 그는 바다달팽이를 이용한 세포내 학습과 기억 저장 과정의 발견 등 획기적인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수상을 계기로 그가 자신이 그간 걸어왔던 이야기를 풀어 놓기로 결심하고 써 내려간 자서전이다. 이야기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던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938년 아홉 살. 당시 11월 9일 저녁에 들이닥친 나치는 캔델 가족에게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명령한다.

다행히 캔델 가족은 아버지가 비록 유대인이었지만 1차 대전 때 독일편에 가담해서 싸웠다는 것이 증명되어 풀려난다. 이듬해 위기를 직감한 가족 모두 미국으로 건너갔다.

저자가 아홉 살 때의 경험을 맨 먼저 이야기한 것은 이 경험이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그는 고백한다. "훗날 내가 갖게 된 정신에 대한 관심을 빈에서 보낸 마지막 한 해와 연결하지 않을 수 없다."

캔델은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빈에 거주할 때 체험했던 유대인 말살 정책, 특히 1938년 11월 9일 있었던 크리스탈나흐트*에 대해 회고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격동의 역사 현장 한가운데 서 있는 아찔함을 느꼈다.

*크리스탈나흐트(Kristallnacht) : 1938년 11월 9일 나치 대원들이 독일과 이웃 나라 전역의 수만 개에 이르는 유대인 가게를 약탈하고 250여 개 유대교 사원에 방화했던 날을 말한다. 당시 깨진 유대인 상점의 진열대 유리창 파편들이 반짝거리며 거리를 가득 메웠다고 해서 '水晶의 밤' 사건으로 불린다.

특히 그의 가족이 미국 이민법에 따라 1939년 차례로 무사히 나치 치하를 탈출하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는 듯한 긴장감마저 일었다. 당시 미 이민법은 동유럽과 남유럽에서 미국에 들어오는 이민자의 수를 제한하고 있었다.

또한 미국에 들어오는 가족 구성원들의 순서도 정하고 있었는데, 이에 따르면 조부모, 자녀 그리고 부모 순이었다. 캔델 가족은 1939년 2월, 4월 그리고 8월에 미국으로 옮겼다.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 2차 대전이 발발한 때는 1939년 9월 1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켄델은 부친이 큰 몫을 했다고 회고한다. 가게를 나치에게 빼앗겨 경비를 마련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몸담고 있는 종교 공동체에 배편 티켓을 요청했고, 모두 수락되었다. 당시 거래 대금을 항상 제때에 지불하던 부친의 정직함이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캔델은 한때 정신의학을 전공하고자 했다. 1950년대 당시 정신분석은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인간의 행동과 그 동기의 복잡성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프로이트 역시 1938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었다.

이 때 그는 인간 정신의 내적인 작동에 관심을 기울인 작가들, 아르투르 슈니츨러, 프란츠 카프카, 토마스 만의 작품도 즐겨 읽었다. 이어 드니스 비스트린과의 만남와 결혼.

마침내 캔델은 자신의 전공인 기억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1960년 6월에 미 국립보건원을 떠나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나는 신념의 도약을 감행하여 전진했다. 그 경험으로부터 나는 차가운 사실에만 근거해서는 결단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때 그의 나이 서른한 살이었다.

캔델은 자신의 지적 행로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을 여럿 꼽는다. 우선 해리 그런드페스트 교수. 당시 신호 전달에 관한 생물학 분야의 선두 주자였던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캔델은 자신의 진로를 정신의학에서 신경세포학으로 바꾼다.

이어 퍼퓨라, 크레인, 마셜 그리고 스티븐 커플러 등에 고마움을 표한다. 이들은 한결 같이 뉴런의 작동 매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뛰어난 업적을 보였다. 당시 뉴런 시스템을 제창한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Santiago Ramón y Cajal)의 영향에 의해 생물학계는 신경전달물질과 신호 전달체계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마치 자신에 관한 것이나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은 거의 모두 기억하는 모양 세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그 덕분에20세기 중반의 풍경을 짜 맞추듯 그려볼 수 있었다. 가령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스키너의 행동심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등 유행했던 학문의 세계는 물론이요, 당시 풍습과 사람들의 취향 같은 소소한 것까지 엿볼 수 있었다.

옮긴이 전대호 선생의 미려한 번역 글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는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한 말 그대로 통섭인이다. 또한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1993)된 시인이기도 하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전대호 선생을 알게 되었다. 기억해 두고 싶은 역자다.


내가 보기에 히틀러 탓에 유럽의 막강했던 지적 토양이 일시에 미국으로 옮겨져 버렸다. 이는 유럽의 재건을 위한 복구비용 못지않게 크나큰 지적 손실이 아닐 수 없겠다.

역시 한 사람의 일대기는 살아 있는 역사 그 자체다. 에릭 캔델이라는 뛰어난 과학자를 통해 바라본 세상은 파란만장한 한 편 드라마였다. 글 솜씨도 뛰어나니 신경세포학에 관련된 이론적인 공부는 물론이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에세이를 읽는 재미도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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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이은조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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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조, 그녀는 2007우리들의 한글 나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등단했다. 이번 작품 수박은 첫 소설집이다. 당선작을 포함해서 모두 8편이 실려 있다.

작가는 한결 같이 우리네 꼬질꼬질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돌린다
. 몸에 밴 담배 연기처럼 떨쳐내기 어려운, 혀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수박 씨 같은 그런 존재와 삶의 이야기, 시큼한 땀내가 풍겨온다.

책을 펴고
전원주택부터 흐르는 물에 꽃은 떨어지고까지 실린 순서대로 읽었다. 작가가 쓰고 세운 줄이니 무슨 연유가 있지 않을까 해서.

사업에 실패하고 동창 민이네 식구에 기생하듯 살아가는 강의 가족 이야기
(전원주택), 영선이 떠맡게 된 여자아이 미르 이야기(효녀 홀릭). 민이 엄마는 강의 가족이 마치 알뜰히 가꾼 텃밭을 망쳐놓는 들쥐, , 멧돼지 같다고 느낀다. 영선은 재혼한 엄마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미르를 보낼 방법을 궁리한다.

똬리를 틀 듯 온몸으로 감겨드는 여름 한낮의 후덥지근한 열기 마냥 끈적끈적한 관계들
. 이는 어쩌면 우리가 매일 안고 사는 강박의 그림자인지도 모르겠다. 다들 따뜻하게 품고 안아 주기보다 밀쳐 내기 바쁘다. 비정하지만, 이게 우리 현실인 것을 어쩌나.

<
바람은 알고 있지>에서 상우와 혜리는 마냥 철부지다. 둘은 상우가 대학 졸업 후 일 년간 일했던 휴양 섬 빌리지에서의 인연으로 인도양의 섬들을 관리한다는 샘의 제안으로 비행기를 탄다. 샘의 성도 모르고 도착해서 만나 본 적도 없다.

마침내 샘에게서 최종 연락을 받은 상우는 환호를 내지르며 혜리와 신혼여행 같은 분위기를 맛보러 비치로 나간다
. 하지만 설마 하는 악몽은 소리 없이 우리를 집어 삼킨다. 우리는 가끔 상우처럼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의뭉스러운 존재에 의지하기도 한다.

타이틀 작품
수박을 보자. 이 작품에는 공장에서 옷을 빼돌려 인터넷 쇼핑몰에 팔아오다 덜미를 잡힌 오빠, 그런 오빠의 사고 전담 처리반 난주, 예의나 에티켓이 사라진 채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루하루 매달려 사는 그저 그런 여자 올케, 그렇다고 괜찮아한마디 조차 위로를 받을 수 없는 남편, 어김없이 돈타령을 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난주에게는 한결 같이 허허로운 마음을 달랠 수도, 의지할 수도 없는 인물들이다.

자기 인생이 세상에 걸린 비루한 몸뚱이 마냥 처량한 느낌을 갖는 난주는 수박 한 통 사서 남편과 사랑을 맹세한 곳
C역을 찾는다. 거기에는 그날 자신이 보고 싶었던 사찰이 있었다. 그날 남편은 나주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조금 보챘던 기억을 떠올린다. 막무가내로 청하거나 보챌 수 있는 지원군이 남편이길 바라면서.

나는 이 대목에서 뭔가 잃어버린 고리 하나를 찾은 느낌이다
. 그래, 아내도 내게 바랐던 것이 이런 거였는 지도 몰라.

난주는 사찰 근처 막걸리 집 평상에 앉아 있던 노파와 가져온 수박을 나눠 먹는다
.
수박씨는 꼭 뱉어내야 돼. 가슴에 담고 있으면 안에서 수박이 열린다고. 씨가 있다고 수박을 안 먹으면 미련한 거지. 씨앗은 뱉으면 돼. 그냥 툭, ...”(91)

노파가 무심히 던진 말에서 나는 가슴 아련히 이는 불덩이를 안는다
.
수박이란 넘이 그래. 겉만 보면 이게 무겁기만 하고 무슨 꿍꿍이 속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이렇게 속이 빨갛고 단맛이 있을 거라는 상상이 잘 안 되지.”(91)

인생이 수박 같았으면 한다
. 헤쳐 가기 힘들고 인내하기 어렵더라도 우리 인생도 수박의 속살처럼 단내 나고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다 내 인생은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오물 투성이에서 허우적대는지도 모른다. 누가 내게 손 내밀어, , 뱉고, , 털고, 또 그렇게 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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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법칙 - 수학으로 배우는 법칙 시리즈 2
Transnational College of LEX 지음, 강현정 옮김, 곽영직 감수 / Gbrain(지브레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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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만든 '트랜스내셔널 칼리지 렉스(transnational college of lex)'는 내게 무척 낯설다. 이게 뭔가 싶어 골똘히 들여다본다. 다행히 머리말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도쿄 시부야 소토에 있는 7층 짜리 건물 2층에 히포 패밀리클럽 본부가 있다. 이 클럽은 일본어,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 불어, 중국어, 독어 등 7개 언어와 최근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태국어와 말레이시아어 등을 자연스럽게 배우며 세계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일본 전국에 클럽 지부가 있는 모양이다.

 

또한 클럽에는 연구 부문인 히포 대학, 트랜스내셔널 칼리지 렉스(일명 트래칼리)가 있다. 트래칼리에는 2011년 기준으로 50명 정도의 학생이 있고, 각 분야의 최고 선생님들이 강의한다말 그대로 '평생 학습'에 재미를 붙인 이들이 모인 곳이 아닐까 싶다. 이채롭기도 하고 흥미도 가는 그룹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물리학, 화학, 의학 등 기초학문의 내공이 세계적 수준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봐도 작년말 기준으로 물리학상 7, 화학상 7, 생리의학상 2명 등 16명이다. 세계적 석학들이 대중을 대상으로 알기쉽게 강의했다고 하니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한편 히포 패밀리클럽 회원들은 푸리에의 법칙에 빠져 지적 모험에 나섰고, 그 결과를 정리하여 책으로 냈다. 일명 수학으로 배우는 파동의 법칙(원제 푸리에의 모험). 이 책은 지난 2010년 국내에도 소개되었다. 이번에는 그 후속 작업으로 양자역학을 파고들었으니.

 

'양자(量子)'란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뜻한다. 가령 전자, 광자, 양자(陽子) 등을 일컫는다. ‘양자역학이란 눈으로 볼 수 없는 양자가 자연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수식이라는 언어를 통해 기술하는 것이다.

 

책은 '양자역학을 둘러싼 모험'에 관한 것이다. 복잡한 이론과 수식을 만화를 곁들여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 이름 수학으로 배우는 양자역학의 법칙을 보면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물리학은 실험이 우선이고 그 결과를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이때 다양한 수식, 가령 하이젠베르크의 수식, 슈뢰딩거의 수식, 플랑크의 공식 같은 것이 사용된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이론은 거꾸로 무엇을 관찰하고, 실험할 지 인도하는 등대 역할을 하게 된다. 실험-이론 사이에 뫼비우스의 띠 같은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산파가 바로 수학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플랑크의 공식(E=nhv)을 보고 '빛은 입자'라는 가설(광양자 가설)을 생각해 낸다. 이는 뉴턴의 고전역학을 뒤집어엎을 정도의 큰 번뜩임이었다. 이때 그는 스위스 소도시 특허청에서 일하던 26세 아마추어 물리학자였다.

 

이 일화를 보면 어떤 현상이나 실험 결과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멋진 공식은 또 다른 착상이나 발견으로 이끌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공식이 만들어진 과정을 따라가거나 그 공식으로 정립된 이론을 파악하는 것은 묘한 설렘을 안겨준다.

 

대학원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면서 기초가 되는 경제 수학을 공부하던 때가 있었다. 특히 미시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함수와 미분 방정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학 공부가 필수였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양자역학 같은 물리학 분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현상이나 실험 결과를 이론으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수학적 기법이 중요하다. 나는 그간 어렵게만 느껴지던 양자역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어찌나 반갑고 좋았던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양자역학의 발전에 기여한 과학자들의 일생에 대해서 좀 더 다루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근 8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를 할 필요도 있었겠다싶다.

 

말미에는 '히포 10주년 특별 대담'이 덧붙여져 있다. 이 자리에는 막스 플랑크,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드브로이, 슈뢰딩거 등 양자역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석학들이 가상으로 참여한다. 각자의 이론을 대담 형식으로 펼치는 향연이어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제 나는 이 책을 아들에게 권하고 싶다. 히포 패밀리클럽이 작업한 다른 책들도 얼른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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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는 신이 없다
데이비드 밀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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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밀스는 무신론자다. 즉 신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는 곧 천국과 지옥, 악마와 천사, 기적과 성령 혹은 부활 같은 것들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전체 미국인 중 약 95퍼센트가 신을 믿고 있다고 하니, 무신론자는 5퍼센트 남짓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다.

 

밀스는 언제나 무신론을 매우 긍정적인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짊어진 매우 부담스러운 의무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무에서 벗어나면 만족스런 삶을 위해 자신만의 목표와 이상을 선택할 최대한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저자는 창조론자의 주장에 대해 재치 있는 답변으로 일관한다. 오랫동안 숙고했음직한, 절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답변이다.

 

가령 기독교는 세상의 모든 것에는 존재의 근거가 되는 원인이 있기에, 인관관계의 연결고리를 통해 우주 자체의 원리에 도달하게 되면 1원인은 하느님 자체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밀스는 그렇다면 모든 것에 존재의 근거가 되는 원인이 있다면 하느님은 누가 혹은 무엇이 창조했는지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질량에너지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으므로 이를 제1원인으로 삼으면 왜 안 되느냐고 반문한다.


우주에는 신이 있다?

 

또한 밀스는 기독교인들은 선택적 관찰, 다시 말해 과녁에 적중한 것만 계산하고 빗나간 것은 무시하는데에는 달인이라고 설파한다. 나아가 지구의 역사가 6천 년에 불과하다는 성서의 주장을 물리법칙과 진화론적 관점에서 조목조목 반박한다. 이는 내가 며칠 전에 읽는, 존 브록만이 엮은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에서 16명의 과학자들이 창조론을 반박한 글들과 맥락을 같이 한다.


가령 성서에서 지구의 역사와 기원을 재구성할 때
, 그들이 참고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지식의 원천은 수메르 문명까지를 다룬 역사 기록 뿐이었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4000년경 최초로 문자(쐐기문자)를 발명했다. 문자가 없었던 그 이전 역사는 정지해 있다. 밀스는 이를 근거로 문명의 역사가 그 시기 이전에 갑자기 중단되었기 때문에 지구와 인류가 그 무렵에 발명되었다고 결론지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한다.

  

사실 1800년대 초반에야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활약으로 화석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상기하면, 성서 시대는 비문명 시대에 어쩔 수 없이 부여된 비과학적인 한계를 뛰어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당시 추론한 지구의 역사는 6천 년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우주로 눈을 돌려보자. 우주는 초자연적인 설계와 지배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그렇지 않다이다.

밀스는 마술사의 트릭을 들어 반증한다. 가령 마술사가 자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보이도록 관객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듯 창조론자들 역시 기적이 세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줄 과학적 원인 결과의 상호작용을 의식적으로 무시하면서, 우리의 관심을 번쩍이며 눈길을 끄는 환상에 집중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우주에는 신이 없다!

  

밀스는 끝으로 2004년 말 조지 부시의 재선으로 새롭게 활기를 띠기 시작한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 부분에서도 저자의 주장은 꽤나 명쾌하다.

 

가령 지적설계를 주장하는 창조론자들에 의하면 지구상의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발달하고 진화하지 않았다. 우주 전체는 예수의 아버지가 미리 인간의 특징에 맞도록 손질해 놓은 것이다.

 

저자는 앞의 주장을 반복한다. 즉 우주가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특징들을 다 갖추고 나중에 생겼다면, 이처럼 믿을 수 없을 만큼 운 좋은 우연에 대해 경탄하면서 우주에 있을 지적설계자를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대신에 우주가 먼저 있었고 생명체가 나중에 나타났다면, 그 생명체는 분명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만들어낸 환경에 적응해야만 한다는 것. 과학적 증거에 의하면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인 논리인지는 자명하다.

 

창조론자들은 쉽게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커다란 우연 앞에서 더욱 고상한 목적을 찾는다. 우리의 선호와는 무관하게 우주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이해에 생긴 빈틈을 채우기 위해 마음속에 틈새의 신을 창조해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믿음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저술에 공감이 많이 갔다. 상대방의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무시하는 대신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전개하는 방식은 바로 과학하는 자세가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싼 논쟁에 관한 저자의 입장과 논리는 일독해볼 가치가 있다.

 

우리는 우주와 대자연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너무나 무지하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다. "오직 두 가지만이 영원하다. 그것은 우주와 인간의 멍청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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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mirae 2014-05-1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데이비드 밀스는 무신론자다. 즉 신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이는 곧 천국과 지옥, 악마와 천사, 기적과 성령 혹은 부활 같은 것들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다.

전체 미국인 중 약 95퍼센트가 신을 믿고 있다고 하니, 무신론자는 5퍼센트 남짓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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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부분은 틀렸습니다.
미국인의 대부분은 "자기 신"을 믿는 겁니다.
대부분은 "타인의 신"을 믿지는 않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믿는 건 "신"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성령을 믿는 것은 미국인의 절반정도 쯤 되죠.




무신론자란 극히 일부 있는 "나의 신"따위도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사랑지기 2014-05-12 10:22   좋아요 0 | URL
네 의견 감사합니다~ ^^
 
브레인 스토리 - 뇌는 어떻게 감정과 의식을 만들어낼까?
수전 그린필드 지음, 정병선 옮김, 김종성 감수 / 지호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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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영국에서 20007월과 8월에 걸쳐 BBC 2에서 6부작으로 방영된 다큐멘터리브레인 스토리의 컴패니언 북을 완역한 것이다. 동 다큐멘터리는 한국에서 20022월에 EBS에서 방영된 바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다큐의 단순한 후속 편만은 아니다. 저자 수전 그린필드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프로그램에서 허용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실, 임상 사례, 의견들을 포함시켜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저자는 여성 최초로 영국 왕립과학연구소장(1998~2010)을 역임했고, 옥스퍼드 링컨 칼리지 명예교수로 있다. 작년에는 뉴로 바이오(Neuro-bio)라는 BT 기업을 공동 설립했다. 뇌과학 발전에 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녀는 일찍이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에 공통된 화학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학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노령 인구가 증가하면서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와 파킨슨병이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가령 70세 노인의 경우 알츠하이머병 발병 가능성은 12퍼센트, 파킨슨병 발병 가능성은 1퍼센트이다. 앞으로 노령 인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에 이 질환의 발병도 증가하면서 의료비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그린필드는 두 질환으로 야기된 장애에는 특정 신경전달물질, 즉 화학 성분이 공유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외에도 뇌 세포를 죽이는 기전과 그 인자를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뇌의 퇴행성 변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아세틸콜린의 부족으로, 파킨슨병은 도파민의 부족으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향후 연구가 더 진행되어 공통 원인 물질이 규명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효과적인 신약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서로 다른 약으로 치료하고 있다.

 

 

뉴런, 신경전달물질, 유전자 등 뇌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특히 뉴런의 정보처리 과정을 면밀히 연구하여 이를 모방한 인공 신경망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공 뉴런은 전기 체계의 구성 부분이고 그 결합(수상돌기, 시냅스, 축삭)은 전선인 셈이다.

 

또한 기억과 감정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찰스 다윈은 진화론 연구를 위해 세계 일주 여행을 다니면서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감정을 같은 얼굴 표정으로 전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폴 애크먼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21개 이상의 문화권에 속하는 사람들이 각각의 얼굴 표정에 동일한 감정 상태를 느꼈다고 답변했다. 놀람, 불안, 분노, 기쁨, 혐오, 슬픔 등 여섯 가지 기본 감정에서 다 같았다. 한국인이 분노할 때 짓는 표정은 지구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캡그래스 증후군을 보자. 이 증후군에 걸린 환자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사악한 협잡꾼에 의해 뒤바뀐 가짜라고 믿게 된다. 주위 사람들의 얼굴 표정에 나타난 감정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게 된다.

 

 

또 뇌과학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부분은 '픽병'이다. 픽병의 증상들은 일종의 사실 기억의 장애에 가깝다. 가령 오리를 더이상 기억해낼 수가 없다. 픽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오리를 그려 보라고 하면, 보통은 다리가 네 개 달린 오리를 그린다. 이들은 대부분의 동물이 다리가 네 개라는 사실에 기초해서 오리도 네 개 달렸을 것라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픽병 환자들의 사례를 연구하여 뇌에서 사실 기억을 담당하는 곳이 측두엽피질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나아가 장기 기억을 담당하는 곳은 측두엽피질 아래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해마다.

 

해마가 손상되면 우리는 자신의 인생사에 관한 느낌을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가령 성인이 되어 어릴 때 찍은 사진을 보게 되더라도 별다른 감흥이 일지 않는다. 물론 사진 속의 인물이 자신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가족들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일러 주었을 테고, 이러한 사실 기억은 전혀 손상없이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건을 기억하는 능력을 발달시킬수록 해마가 커진다. 뇌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신경 결합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정하게 필요에 부합하는 물리적 구조를 생성, 발전시킨다.

 

가령 먹이를 숨겨두었다가 나중에 꺼내 먹는 습성이 있는 습지 박새를 보자. 이 박새를 가지고 재미로운 실험을 했다. 한 집단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먹이를 숨겨두었다가 회수할 수 있도록 했고, 다른 집단은 이를 막아 버렸다. 그 결과, 겨우 며칠 동안만 저장과 회수를 했는데도 해마가 상당히 커졌다.

 

쥐를 대상으로 한 미로찾기 실험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해마를 제거한 쥐의 경우는 길을 전혀 찾지 못했다.

 

이처럼 책에는 뇌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것도 쉬운 말로 되어 있고 다양한 실험이 소개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이 책이 나온 지도 어느덧 14년이 되었다. 그간 새로운 뇌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브레인 스토리 최신 버전이 나온다면 더없이 좋겠다!

  

한편 '브레인 스토리(Brain Story)' 6부작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5시간에 걸친 풀 버전을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1. All in the Mind
2. In the Heart of the Moment
3. The Mind's Eye
4. First Among Equals
5. Growing the Mind
6. The Final Mystery

 

*바로가기 : BBC2 Brain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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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4-05-10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몇 년째 '읽는 중'입니다.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서요. 무시하고 읽다보면.. 또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대단하십니다.^^

사랑지기 2014-05-10 21:33   좋아요 0 | URL
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