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어느 날 유방암에 걸린다.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녀는 미국인들이 실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지도 않고 가장 부유한 것도 아닌데 그토록 긍정적인 자아상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마치 켈 콜먼의 '원 퀘스천'과도 같다.
이 물음에 관해서 그녀가 찾은 답은 "실은 긍정성이 실제 상태나 기분이 아니라, 세상을 설명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는 이데올로기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란 바로 '긍정적 사고'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지금 이대로 아주 좋다는 긍정적인 생각 그 자체를 뜻한다. 또 하나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긍정적인 방식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 제목 '긍정의 배신'에서 알아챌 수 있듯 긍정적 사고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녀는 긍정적 사고의 핵심에 ‘불안’이 놓여 있다고 진단한다. 우주가 행복과 충만함으로 향하고 있다면 굳이 긍정적 사고 훈련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이는 수많은 모순적인 중거에 직면한 상황에서 믿음을 주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항변한다.

그녀는 미국인들에게 긍정적 사고가 뿌리내리게 된 데 대한 사적 고찰을 통해 '미국의 국가적 자부심을 강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일종의 상징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결론 내린다. 이에 시장경제의 잔인함이 더해졌다. 즉 낙천성이 물질적 상징의 열쇠이고 긍정적 사고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라면, 실패한 사람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범하게도 '긍정적인 사고는 경제의 과잉을 변호해 주고 잘못을 덮어 주는 역할'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긍정적 사고를 장려하는 것이 그 자체로 하나의 산업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녀는 과감히 긍정적 사고라는 대중적 환상에서 깨어나려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제 치료를 시작하던 즈음, 다음과 같은 컬럼을 보게 된다.

"내가 느끼는 행복의 근원은 다름 아닌 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인생의 좋은 부분이 얼마나 좋은지를 암이 알게 해 주었다."

그녀의 반응은? 셰인 J 로페즈식으로 말하자면 '그녀를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했다.'

작가이자 운동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일상적인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뜻밖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암의 왕국’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이 점을 절실하게 경험했다. 몇 년 후 그녀는 끔찍한 화학 치료를 포함해 다양한 항암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마주친 모든 형태의 긍정적인 생각에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녀가 쓴《희망의 병리학(The pathologies of Hope)》이란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희망을 혐오한다. 몇 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나는 이 희망이라고 하는 것을 갖도록 끊임없이 강요당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자랑스럽게 핑크 리본을 달고 다니세요.’ 2~3년 후 내가 암 추적 치료를 받은 시설의 이름이 ‘희망센터’란 사실을 발견했다. 희망이라고? 치료는 어떡하고? 희망은 무슨, 엿이나 드시지. 희망 타령하지 말고 살려나 달라고."

이런 글을 읽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누가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녀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동안 의도는 좋았지만 방향을 잘못 잡은 사람들이 인도한 방식이 그녀의 정신건강을 해치고 말았다(이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만약 병이 낫지 않으면 그건 충분히 ‘긍정적’으로 희망하지 않아서인가?). 이 사람들은 그녀에게 희망을 갖기 보다는 소망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소망과 희망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암 치료 시설에서 환자들을 돌봐주는 사람들의 ‘소망’이 그녀를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했다는 사실이다. 희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압박감을 느끼면 이런 반응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희망과 함께 가라》112~113쪽)


의사와 간호사들도 암 환자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태도는 면역 체계 개선을 통해 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입에 달고 살았다. 그녀는 과연 긍정적 사고가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다양한 문헌을 검토하면서 고찰한다. 그녀의 긍정적 배신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어 스펜서 존슨의《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론다 번의《The Secret 시크릿》과 조엘 오스틴의《긍정의 힘: 믿는 대로 된다》등 에 대해서 신랄하게 메스를 들이댄다.

가령《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경우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면서 해고되어도 불평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불평불만하지 말고 얼른 다른 '치즈'를 찾아 옮겨가라는 식으로 말이다. 헐~

여튼 긍정적 사고는 널리 확산되어 갔다. 긍정적 사고에는 이론적 지도자와 대변인, 전도사, 판매원이 존재한다. 자기계발서 저자와 동기 유발 강사, 코치, 트레이너도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 중에 초대형 교회를 운영하는 긍정신학의 대부 오스틴 부부가 있다. 오스틴 목사는 우리나라에서도 히트를 쳤던《긍정의 힘》저자이다. 그녀는 2008년 여름 직접 오스틴 목사의 교회가 있는 레이크우드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오스틴 목사는 1999년 휴스턴 로켓 농구팀 홈구장을 사들여 1만 6천 석 규모의 초대형 교회로 개조했다. 예배 모습은 생음악이 쾅쾅 울리고 3~5분씩 짧은 설교를 하는 동안 대형 스크린에 얼굴이 확대되어 비쳤다. 설교 사이에 합창단과 리드 싱어가 무대로 나오고 신도들은 가벼운 율동으로 리듬을 맞춰 주었다. 일종의 거대한 쇼였고, 신도들은 청중이었다. 녹화된 장면은 700만이 시청하는 케이블을 통해 전파된다고 한다. 그녀의 기분은 어땠을까? "오스틴의 세계에서는 하느님마저 지자자의 역할을 할 뿐 필수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고 평한다. 또 헐~

저자는 긍정심리학 분야, 금융위기 등 경제 불황에 대해서도 다룬다. 그녀에 의하면 대공황 시절 자기 기만의 고전인 나폴레온 힐의 《생각하라! 그러면 부자가 되리라》를 낳았던 사례를 들면서, 시장 근본주의는 그 탐욕을 감추기 위해 긍정적 사고를 이용해 왔다.

그렇다면 긍정적 사고의 대안은 무엇일까?  그녀는 결코 '절망'은 아니라고 단언하면서 오늘의 위험을 직시할 수 있는 현실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금융 위기가 오면 그 자체로 불안하고 위험을 초래한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현실을 바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이니 긍정적 사고니 해 봐야 다 긍정 산업에만 이익을 안겨줄 뿐이다! 또또 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 보는 눈 - 손철주의 그림 자랑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손철주의〈사람보는 눈〉은 내게 '그림 보는 눈'이었다. 그는 그림에 얽힌 일화와 주인공의 애환과 인품 그리고 정겨운 삶과 풍경을 눈 안 가득 담았다.

손철주는 신문사에서 미술 담당 기자, 문화부장과 취재본부장 등을 역임하고 지금은 학고재 주간이자 미술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일찍이 그는〈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로 그림보는 실력과 남다른 문필(文筆)을 뜻하지 않게 자랑하더니 이번에는 우리 옛 그림으로 찾아왔다. 어찌나 반가운지!

▲신윤복,〈꽃을 꺾다〉간송미술관


지은이는 그림 70여 점을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나눠 4부에 걸쳐 소개했다.

1부 같아도 삶, 달라도 삶 (16점)
2부 마음을 빼닮은 얼굴 (23점)
3부 든 자리와 난 자리 (14점)
4부 있거나 없거나 풍경 (16점)

각 단락에 '건너는 글'을 덧붙여 깊이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나는 게 중에서도 2부 끝자락에 놓인 매미 그림 이야기가 더없이 좋았다. 겸재, 김인관과 심사정 등이 매미를 그린 이유는 이 놈이 선비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덕(文·淸·廉·儉·信)을 지녔기 때문이란다.

 
▲조속,〈조는 새〉, 개인 소장
런 해설서는 나같이 '그림 보는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혼자 보는 것도 제멋이겠지만, 그러다 자칫 봄날의 잔설마냥 놓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제대로 보려면 이런 책이 딱이다. 하긴 '사람 보는 눈'이 어디 그림에만 해당되겠는가. 관상도 잘 봐야 하고, 정치판도 두루두루 살펴야 할 것이다.

나는 맘에 와 닿은 그림을 보노라면 어느새 양화(養和)의 기운을 얻는다. 곱씹는 맛도 일품인 주옥같은 우리말을 허겁지겁 쓸어 담는 재미는 무엇과 견줄 데 없는 능준한 덤이다.

어디, 내가 홀렸던 그림 몇 점을 여기 소개해 보자.
눈보라가 생애를 쓸고 간 듯 격정의 삶을 보냈던 최북의 그림, 강고한 성격 탓에 불화(不和)를 구태여 조정하려 들지 않았던 송시열의 초상(김창업), 듣는 귀가 컸고 기쁨과 노여움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던, 무엇보다 자물쇠 입을 가졌던 황희의 초상(작자 미상), 영화〈관상〉에 캐스팅되어도 좋았을 개성적인 윤두서의 자화상, 초시에 장원급제하고도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고 유학자적 자존을 끝내 지켰던 황현 초상(채용신)과 유불선(濡佛仙)에 두루 밝은 학자의 면모가 남다른 포즈에 살아 있는 최치원 초상(채용신)은 인물화의 백미다. 지은이는 이들 그림에 얽힌 일화와 주인공의 인품을 조화롭게 서술한다.

나는 과욕으로 마음이 수란할 때면 아산에 있는 맹씨 행단(孟氏杏亶)을 곧잘 찾곤 했다. 조선 초기 청백리의 표상이었던 맹사성 선생이 살았던 고택이 있는 곳이다. 거기에는 선생이 심었다는 600살도 더 된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다 해서 ‘행단’이라 이름 붙였다. 고택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工’자형 집이다. 참 검소하게 살아서 찾을 때면 스산하기조차 하다. 툇나무에 걸터 앉아 색바랜 결을 쓰다듬다보면 어느 새 내 마음도 참 정갈해진다.

 
▲이인상,〈검선도〉국립중앙박물관
당나라의 문인 여동빈(呂洞賓)은 시 잘 짓는 학자이자 벼슬을 버린 은자, 그리고 칼솜씨 하나로 신선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조선 선비들 사이에서도 많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런 동빈은 자신있게 유혹에 휘둘리지 않았다. "나에게 칼이 세 자루나 있다. 번뇌를 끊는 칼, 분노를 끊는 칼, 색욕을 끊는 칼." 허나 나는 동빈과 같이 처신하지 못한다. 온갖 번뇌와 오욕 칠정에 휘둘리고 색욕에 밤잠을 설칠 때도 많아 민춤하기 그지없다. 아 고매한 인품이여!

어디 이뿐이겠는가? 신윤복이 그림〈꽃을 꺾다〉를 보노라면 지은이의 구수한 해설이 읽는 맛을 더한다. "혜원의 난봉기질은 작품마다 질펀하다." 이 그림에서도 사내의 음심과 닮은 불끈 솟은 바위가 나오고, 석 달 열흘 내내 꽃이 지고 피는 백일홍(배롱나무)도 있다. "열흘로는 성에 안 차니 한 백 일 더불어 놀아 보잔 소리다. (중략) 낯 뜨거운 행태를 재미삼아 건드려보는 짓거리로 묘사한 혜원, 18세기에 태어났기에 몸 성히 지냈다."고 평한다.` 가히 고수(高手)의 눈썰미가 아닐 수 없겠다.

한편 인조반정에 공을 세우고도 텃세를 부리지 않았던 조속이 그린〈조는 새〉는 여리고 조만한 참새를 그렸다. 겸손의 미덕을 배울 수 있는 그림이다.

내가 느낀 감흥을 일일이 열거하자니 숨이 가빠진다. 어릴 적에 할머니가 꿀단지를 신주 모시듯 했었는데, 어느 새 이 책이 내 꿀단지가 되겠지 싶다. 그렇게 매미 마냥 단물을 쏙쏙 빼 먹고 싶어지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 하루의 기적, 카붐! - 놀이터를 통해 지역공동체를 꽃피운 세계 최대의 비영리단체 '카붐'과 한 남자의 이야기
대럴 해먼드 지음, 류가미 옮김 / 에이지21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플로리다 주 올랜드 북서쪽에 있는 팜스(Palms) 아파트 단지의 놀라운 변화를 보자. 최근까지만 해도 폭력 사건의 온상이었던 곳이다. 2006년과 2007년에 거의 3천 번에 달하는 폭력 사건으로 경찰이 그 아파트 단지에 출동했다. 2008년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더 나빠져, 상반기에만 2천 번 넘게 경찰이 출동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이대로 그냥 두어선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올랜드 경찰청은 단지 순찰을 강화했고, 아파트 관리회사도 자체 안전 팀을 꾸리는 한편, 모든 공공장소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아파트 단지 이름도 팜스에서 윈저 코브로 바꾸었다.

2010년 윈저 코드의 엄마들이 카붐에 놀이터를 짓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 왔다. 카붐!은 당연히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작은 성취감은 주민들의 의욕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카붐! 직원들도 신나게 만들었다.

마침내 2010년 7월 29일, 윈저 코브의 엄마들을 행동하게 했던 폭력 사건이 일어난 지 2년 만에 주민이 한데 모여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완성되었다.

두 개의 나선형 미끄럼틀, 장난감 불도저, 아주 많은 그네, 모래 박스와 네 개의 벤치, 두 개의 차양, 다섯 개의 피크닉 테이블 그리고 체스판. 이에 다가 아니었다. 여덟 그루의 나무도 새로 심었고 진입로도 새로 만들었다. 이제 다른 프로젝트를 시도 중이라고 한다. 놀이터 근처에 잔디밭을 만드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이 카붐!의 주도로 많은 사람들의 후원과 자원봉사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된다. 이제 궁금해진다. 카붐은 대체 어떤 곳인가?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카붐!의 설립자 대럴 해먼드이다. 카붐!(Kaboom!)은 '번쩍', '펑'과 같이 무언가 마법처럼 나타나는 모습을 묘사하는 의태어를 딴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짠!'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해먼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대체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그는 어린 시절을 무스하트라는 자선보호회가 운영하는 시설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가 고아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조부모는  16명의 아이를, 그의 부모는 모두 8명을 두었다. 키우기 힘들어서 외삼촌이 후원하고 있던 무스하트 시설에 보내진 것이다. 지금은 자리만 있다면 무스하트 시설에 들어갈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회원이나 회원과 연고가 있는 아동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거기서 지낼 수 있어서 무척 운이 좋았다고 회고한다. 사실 무스하트는 1,200여 명의 아이가 함께 살았던 대학 캠퍼서와 같았던 곳이었다. 49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울창한 수풀의 잔디밭, 드넓은 호수, 가정집과 비슷한 기숙사가 있었고, 자체 우체국, 소방서와 발전소까지 갖추었다. 또 농장과 우유 가공소도 운영했다.

저자는 무스하트에서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어린 시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듯이 이제 그 보답의 일환으로 다른 아이들을 도우려 했던 것이다.

2002년 저자는 마침내 자신이 자랐던 무스하트에 보은을 하게 된다. 기존 놀이터 시설이 낡아 당국의 기준을 충족시켜 줄 수 없어 폐쇄된 있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 준 것이다. 해먼드가 만든 그 놀이터는 카붐!이 만든 200번째였다. 나는 당시 저자가 맛보았을 의기양양함을 상상해 보았다. 얼마나 뿌듯했을까.
 

 


"대담무쌍한 사고"
큰 꿈을 꾸고 그 대담한 꿈을 이룰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기대를 배반해서는 안 된다.

그는 놀이터를 짓는 과정에서 공동체를 활성화는 데 초점을 두도록 개선하는 방향을 모색했다. 지역주민이 보다 앞선 단계에서 놀이터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를 원한 것이다. 즉 계획을 세우고 기금을 마련하고 자원봉사자를 조직하고 놀이터 공사에 참여하고 최종적으로 유지와 보수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즉 놀이터를 만드는 과정이 바로 공동체를 새로 일으켜 세우고, 함께 하는 공동의식을 기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래서 놀이터 하나하나에 공동체의 땀과 성취가 배일 수 있었고, 마침내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대담무쌍한 사고"는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놀이터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단순히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의 차원을 넘어 그들이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터전이 된다. 19세기 독일의 프뢰벨은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놀이는 아이들에게 있어서 일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놀이는 행동의 결과에 책임지지 않으며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시험해보는 일종의 예행연습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놀이는 현실에 다가가는 시도이며, 그들이 안전망 속에서 세상을 탐험하는 길이다.

또한 놀이는 사회성을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과 동시에 두뇌발달에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더불어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위험한 일을 경험하고, 신체적인 행동의 결과를 배운다. 놀이하는 동안, 아이들은 자신을 신체적 한계까지 몰고 간다. 그네를 탈 때도 가능한 한 높이 올라가 보려고 하고 놀이터의 돌림판을 돌릴 때도 가능한 한 빠르게 돌려보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은 위험과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자각한다.

성인의 삶에는 다양한 위험이 있다. 질병의 위험, 경제적 위험, 감정적 위험, 우리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때로는 심하지 않은 경우라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경험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그러한 상황을 통해서 위험을 다루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에게 발달 단계에 맞는 놀이가 제공된다면, 아이들의 학습 능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렇듯 해먼드는 아이 양육에 있어 놀이의 중요성, 그리고 안전한 놀이터의 필요성을 실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2006년 해먼드의 좁은 아파트에서 카붐!은 출발했고, 지금까지 2억 달러의 기금을 모으고 100만 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일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내가 가장 감동깊게 읽었던 부분은 2005년 카트리나로 큰 피해를 입었던 뉴올리언스에 놀이터를 세운 것이었다. 수해 피해를 입은 지역은 당장 먹을 것과 잘 곳 그리고 발전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카붐!은 바로 거기에 놀이터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크리스마스 연휴를 며칠 앞 둔 12월 17일 지역 자원봉사자 200명을 모집해서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행사 당일 무려 6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몇 주 동안 집을 수리하고 지하실에 있는 쓰레기들을 치울 때 쓰던 자신의 연장을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옛 친구들과 만나 감싸 안고 안부를 물었다. 그렇게 해서 네 개의 그네와 세 명의 아이가 한꺼번에 탈 수 있는 미끄럼틀, 그리고 모형 찻집과 모래 상자, 줄을 타고 내려올 수 있는 지프라인까지 갖춘 아름다운 놀이터가 탄생했다. 절망과 위기 속에서 다시 공동체를 살려낸 것이다!

집단행동 (Mass Action)

카붐!의 혁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먼드는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프로그램을 널리 퍼뜨려 나갔다. 카붐!은 그들이 놀이터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 기밀사항, 오랫동안 놀이터를 만들면서 개발한 갖가지 기술을 웹사이트에 제공했다. 또한 온라인 강좌를 개설하여 연간 9천여 명에게 놀이터 짓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집단행동' 프로그램을 통해서 카붐!이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눔으로써, 보다 빠른 속도로 보다 먼 곳에 놀이터를 지을 기회를 확장시켰다.〈놀이터를 세우는 세부 절차〉는 책 382쪽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시라.

상상력 놀이터 상자 (Imagination Playground in a Box)

내가 깜짝 놀란 부분이었다. 상자 안에는 150개의 스펀지로 만든 다양한 블록과 몇몇의 다른 재료, 천, 공, 요가매트, 부품을 엮기 위한 끈(아이들이 수영장에서 사용하는 얇고 기다란 관)과 같은 기초 용품이 들어 있다. 조립할 수도 있고 해체할 수도 있는 이 모든 것은 튼튼하고 바퀴가 달린 알록달록한 상자에 담겨 있다. 아이들은 요새와 무대와 인형의 집, 차와 고층빌딩, 심지어 흔들리는 계단까지 만들면서 논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아이디어인가! 우와~ 카붐!은 우리에게 새로운 진화를 선사하고 있다.


"빌드 데이는 놀이터에서 노는 날이 아니에요. 오늘은 정글짐을 하는 날이 아닙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땀 흘려 일하는 날이에요! 함께 어려운 문제를 풀어나가고 잘못된 것을 고치는 날이지요. 여러분은 큰 성취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빌드 데이는 카붐!과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놀이터를 만드는 날이다. 빌드 데이! 단 하루의 기적! 이어 '짠!'하고 새로운 놀이터가 탄생되고, 활력 넘치는 공동체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카붐!에 대한 그런저런 이야기 겠거니 했다. 하지만 카붐!은 상상력 놀이터 상자로 진화하고, 모든 노하우를 인터넷으로 공유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놀이터를 만들고, 그 속에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정(情)을 전파하는 전도사였다! 너무나 멋진 이야기, 끝까지 읽은 보람이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련님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이 책이 백 년도 더 된 때인 1906년에 써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소설적 구성도 완벽하고 한 학교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 군상(群像)들의 묘사도 가히 일품이었다. 한 마디로 평하자면 백가흠 작가의 해설 마냥 '체험적 소재를 통한 사실주의적 기법'이 그야말로 탁월했다.

 

▲소세키가《도련님》을 집필한 집(1903~1906년 거주)


그렇다면 나쓰메 소세키가 이 소설의 직접적 모태가 된 '체험'은 어느 때였을까? 연보를 보면 소세키가 대학을 졸업하고 도쿄고등사범학교 교사를 거쳐 심한 신경쇠약 증세 때문에 잠시 시코쿠에 있는 마쓰야마 중학교로 전근했을 무렵의 일로 보인다. 이 때가 1895년이었으니 작품이 발표되기까지 근 10여 년이 걸린 셈이다.


▲마쓰야마에서 소세키가 살던 집(1895)


일본이나 우리 소설의 태동을 보면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양에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발표된 해가 1813년이니, 이광수의 첫 소설《무정》(1917)보다 무려 백 여 년이나 앞선다.《외제니 그랑데》(1833),《고리오 영감》(1834~35)을 보듯 사실주의 소설의 선구자 발자크가 활약하던 시기도 19세기 초반 무렵이었다.

어쨌든 늦었긴 해도, 소세키의 소설은 한 세기를 넘어 지금 읽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는 인간의 속성이 세월을 초월하여 공감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일본 시대상과 풍물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많아 사료적 가치가 높아 읽는 재미도 솔솔하다.

가령 밀가루 반죽을 얇게 펴서 팥소를 넣고 둥글거나 네모난 모양으로 납작하게 구운 과자 '긴쓰바', 1900년대 초 일본에서 판매되던 고급 담배 '시키시마', 일본의 설날 음식 중 떡을 주요 재료로 하는 국물 요리 '오조니', 따로 굽을 달지 않고 통나무를 깎아 만든 나막신 '고마게다', 무릎께를 끈으로 묶어 아랫도리를 가든하게 한 하카마 '닷쓰게바카마', 이마리(伊万里)시에서 만들어지는 도자기의 총칭 '이마리', 으깬 생선살을 대꼬챙이에 말아 굽거나 찐 다음 대꼬챙이를 뺀 관(管)모양의 어묵 '지쿠와(竹輪)', 술자리 등에서 바둑돌이나 조약돌 등을 쥐고 내밀어 서로 그 숫자를 맞추는 놀이 '난코', 에도 시대에 추던 사자춤·접시돌리기 등 곡예 '다이가쿠라(太神樂)' 등등 나는 오호~하고 내내 감탄하며 읽기에 바빴다.

게다가 제일 좋은 요릿집 가신테이(花晨停)에서 치른 고가 선생의 송별회, 러일 전쟁 승전기념식도 재미있었다. 특히 송별회에서 게이샤가 샤미센을 탈 때 '갓포레, 갓포레'하며 익살스럽게 춤을 추는 장면은 마치 그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듯 생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백미 중 하나는 부록으로 덧붙여진 당시 기록 사진이다. 나는 이 것을 눈여겨보면서-혹자는 소설적 상상력이 반감된다고 불평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정경을 쉽게 그려 볼 수 있어 소설의 느낌을 따라가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다.

가령 11쪽에 있는 사진〈도련님에 등장하는 열차(1930)〉을 보면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된 묘사를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도련님》에 등장하는 열차(1930)

출발하는 날, 기요는 아침부터 와서 여러 가지로 애를 써주었다. 오는 길에 잡화상에서 사온 칫솔과 이쑤시개와 수건을 천가방에 넣어주었다. 그런 건 필요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나란히 인력거로 역에 도착하여 플랫폼으로 나갔을 때 기요는 기차에 오른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하마터면 울 뻔했다. 기차가 어느 정도 움직이고 나서, 이젠 괜찮겠지, 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기요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쩐지 무척 작아 보였다.(27쪽)

▲《도련님》에 등장하는 도고 온천의 풍경(1984)

나는 이곳에 온 뒤로 매일 스미타의 온천에 다니고 있다. 다른 곳은 뭘 보나 도쿄의 발뒤꿈치에도 따라가지 못하지만, 스미타의 온천만은 근사하다. 모처럼 온 것이니 매일 다녀야겠다는 생각으로 저녁식사 전에 운동 삼아 다녀오곤 한다. 그런데 갈 때는 반드시 큼직한 서양 수건을 들고 간다. 빨간 줄무늬가 있는 수건이라 물에 젖으면 언뜻 선홍색으로 보인다. 나는 이 수건을 오가는 길에, 기차를 탈 때도 걸어갈 때도 늘 들고 다닌다. 그래서 학생들이 나를 '빨간 수건, 빨간 수건'하고 부른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좁은 곳에 살다 보니 조용한 날이 없다(48쪽)

또 하나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화자인 '나'(이하 도련님)의 주위에 대한 인물평이었다. 이는 어쩌면 소세키식의 평가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의 체험과 무관하지 않기에 소세키의 성격과 됨됨이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평가는 의외로 신랄하다. 특히 동료인 선생들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다. 다음을 보자.

세상에는 '알랑쇠'처럼 나서지 말아야 할 자리에 꼬박꼬박 얼굴을 내미는 건방진 자도 있고, '산미치광이'처럼 자기가 없으면 일본이 곤란할 거라는 듯한 상판을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는자도 있다. 그런가 하면 '빨간 셔츠'처럼 포마드와 호색한의 도매상을 자처하는 자도 있고, 교육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포록코트를 입으면 바로 자신이 된다고 말하는 듯한 '너구리'도 있다. 다들 그 나름대로 뽐내고 있지만 ‘끝물호박’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마치 볼모로 잡혀온 인형처럼 얌전히 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107쪽, 작은 따옴표는 인용자)

도련님에게 알랑쇠는 "단무지 누름돌에 매달아 바다 밑에 가라앉혀버리는 것이 일본을 위하는 길"인 것처럼 보이고, 교감 빨간 셔츠는 "기분 나쁠 정도로 목소리가 나긋나긋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한편 끝물호박 고가 선생에게는 약혼녀 마돈나가 있다. 빨간 셔츠는 마돈나에게 눈독을 들이며 작업 중이다. 그는 도야마라는 여자와 친하게 지내고, 고스즈라는 게이샤와도 몰래 만난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도덕적 훈계를 일삼는 이중적인 성격의 소유자.

결국 말미에 이르면 도련님과 산미치광이는 빨간 셔츠와 알랑쇠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다. 이는 소세키 식으로 세상의 모든 속물들을 향한 작은 응징이리라.

▲《도련님》수제본 책(1919)


▲《도련님》자필 원고


하지만 도련님에게는 정감이 가는 인물도 없잖아 있다. 가령 "일본 전역을 찾아다녀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마음씨 좋은" 여자 '기요', "구두쇠에다 욕심쟁이인 것은 틀림없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 하숙집 '하기노' 할머니. 이 두 사람은 소설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기요는《도련님》의 도입과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데 이는 도련님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의 표본이다. 한편 하기노 할머니는 도련님에게 사건의 내막이나 진실에 대해 중요한 단서 등을 제공하는 해설자 역할을 한다. 이 두 사람을 관통하는 열쇠말은 '정직'이다.

도련님은 그 만큼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세상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조롱하거나 저항하기도 하지만, 그 분출은 주로 산미치광이 홋타 선생을 통해서다. 이런 면에서 '도련님'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위상의 한계가 결정된다. 즉 한때 부자였으나 지금은 몰락한 집안 출신이지만, '도쿄 토박이'의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샌님 이미지 딱 그대로다! 그래서 그는 돈보다는 도덕이나 체면을 더 중요시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가차 없이 난도질하듯 평가한다. 싹뚝!

나는 도련님에게서 소세키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가 신경쇠약과 이로 위한 위장염에 평생 고생했듯이. 소설에서도 도련님은 바늘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이 냉정하다. 하지만 바로 이런 도련님을 통해 나는 여전히 우리 주위에 판치는 위선과 아부에 대해 응징하는 대리만족을 얻는다. 차마 용기가 없어 직접 나서지 못하지만 누군가 일어서면 박수칠 준비가 되어 있는 바로 그런….

소세키는 도련님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세상은 온통 사기꾼들뿐으로 서로 속고 속이며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뿔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일주의 역사 - 마젤란에서 우주여행까지, 인류의 역사를 바꾼 모험들
조이스 E. 채플린 지음, 이경남 옮김 / 레디셋고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세계를 처음 일주한 사람들이 남긴 가장 불운한 유산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준 것이다."

세계 일주의 역사는 대양과 신대륙을 두고 패권을 다툰 강대국들의 각축장의 역사였다. 저자 조이스 채플린(Joyce E. Chaplin)은 서두에서 위와 같이 토로한다. 그녀의 단언은 19세기에 들어 더욱 뚜렷해졌다.

그간 약
3백년 동안 일주 항해를 통해 얻은 경험과 기술은 "지구와 관련된 물질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의 보편적 성취에 고무"되었고, 이러한 특권은 소수 국가들만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세계 일주 탐험은 해외에 제국의 영토를 갖고 있거나, 갖기를 원하는 나라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초기 미국사(Early American History)를 강의하고 있다.

 

Joyce E. Chaplin (출처: http://scholar.harvard.edu/joycechaplin)


이 책은 16세기부터 현재까지 무려 5백 여 년의 세계 일주에 대한 역사를 다룬다. 이제 책을 펼쳐 들면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첫 항해에 나섰던 위대한 영웅들을 만나게 된다.

그녀가 총
776쪽에 걸쳐 펼쳐 보이는 방대한 지오드라마는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막은 지구의 크기 앞에서 갖게 되는 '두려움', 이어 2막은 인간이 그 거대한 지구를 길들일 수 있다는 '자신감'. 마지막 3막은 그렇게 길들이는 행위가 정말 유익한 것인지 헷갈리게 되는 '의구심'이다.

내가 보기에 이는 저자가 '
찰리 채플린'과 성이 같은데 착안, 영화나 드라마처럼 구도를 잡아보려 한 듯싶다. 이또한 나름 독창적이지 않을까.

마젤란이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세계 최초로 일주에 나선 때는 15198월이었다. 이어 드레이크, 댐피어 등 뛰어난 모험가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한편으로 약탈꾼의 면모도 지녔다. 식수, 식량과 무기 등 보급품을 실어 갔지만 쓸 만한 지도와 해도가 거의 없던 시절 헤매기 일쑤였고, 그러다보니 원주민들과 교역하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을 때에는 약탈 등 폭력적 방법으로 연명해야 했다. 사실 마젤란이 여행 도중 사망(15214)한 것도 막탄 섬에서 벌린 원주민과의 전투 때문이었다.

이 책에는 이와 관련하여 흥미진진한 내용이 깨알같이 흩어져 있다
. 가령 현지에서 수로 안내인을 납치하는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또한 탐험에 필요한 로프와 작은 모자가 은화 수백 개보다 더 가치가 있었고, 모험담은 대나무 마디를 잘라 양쪽을 밀랍으로 막고 거기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사실 저자가 방대한 세계 일주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는 것도 다 그들이 남긴 기록 덕분일 것이다.

처음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각축전이었고
, 나중에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가세한다. 그들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교역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약탈과 해적질로 향신료, 금과 은 그리고 보물들을 끌어 모았다. 이렇듯 신대륙에서 끌어 모은 수많은 재화와 부는 유럽의 중상주의를 부흥시켰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10살 때 댐피어의 탐험 이야기를 읽은 후 바다를 유달리 동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니얼 디포는 댐피어의 모험담을 흉내 내어 '로빈슨 크루소'를 창조해 냈다.

 


하지만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손실도 컸다
. 신선한 물과 과일을 구하기 위해 경쟁국이 건설한 기지나 원주민들과 전쟁도 벌여야 했고, 대양에서 강풍과 폭풍을 만나 악전고투해야 했다. 또한 괴혈병과 말라리아 등 질병 그리고 향수병으로 인한 죽음도 부지기수였다.

가령 앤슨 일행은 괴혈병을 치료하기 위해 잠시 육지에 상륙하곤 했는데
, 그는 땅이 인간에게 맞는 성분이며, 야채와 과일이 인간의 유일한 약이라고 주장했다. 스위스 출신 의사였던 요하네스 호퍼는 고향을 유별나게 그리워하는 증세를 가리켜 '노스탤지어'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다.

시인 바이런의 할아버지 존 바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 그는 선원들의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한 인간미 넘치는 지휘관이어서 선원들의 환호를 받았다. 한편 돈 후안 뺨치는 준수한 용모와 매력으로 애정 행각을 벌였다고 전한다. 사실 바이런 이후 선원들의 사망률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이끌던 항해 때 괴혈병으로 죽은 선원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어 토마스 쿡은 바이런의 항해를 벤치마킹하여 새로운 배 관리 시스템을 도입한다.

쿡은 배는 청결하게
, 선실은 건조하게 유지하고, 신선한 식수를 비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월리스가 시범적으로 채택했던 3교대 당번(세 집단으로 나눈 다음, 4시간씩 근무한 후 8시간을 쉬는)을 전면 실시했다. 이렇게 해서 선원들은 사망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쿡과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 바로 쿡과 함께 지구를 두 번 일주한 염소 이야기. 염소는 선원들이 이질에 걸렸을 때 쿡에게 좋은 젖을 선사했다고 한다. 이 염소가 은퇴 당시 은으로 만든 목걸이를 선사받고 쿡의 집에 있는 풀밭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호사를 누렸다고 하니 과히 나쁘지 않은 팔자 아닌가! 한편 해군본부는 왕립 해군 병원에 입원할 수 있는 특혜를 허락했고, 쿡은 이 염소의 사망일을 기록(1772. 3. 28)하기도 했다.

이제 열강들은 항해술의 발달과 더불어 선원들의 건강 유지도 가능하게 되었으니 그간 가졌던 두려움에서 자신감으로 충만하게 된다
. 이렇게 하여 19세기는 가히 세계 일주의 시대가 된다!

이 시기를 문학적으로 묘사한 대표적인 작품 중에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1872)가 있다. 저자는 베른의 작품에 대해 근 50여 쪽을 할애한다. 이는 베른의 이야기가 당시 풍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기 때문이고, 세밀하게 묘사된 내용을 통해 당시 일주하려면 어떤 교통수단에 몇 일이 걸렸는지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저자 채플린은 이 작품에서 대륙 철도와 기선 여행 가이드, 증기선과 전보 시스템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묘사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2005년 봄에 실습선을 타고 버뮤다를 출발하여 우즈홀까지 항해할 무렵80일간의 세계 일주에 흠뻑 빠져들었노라고 에필로그에서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접근은 자신의 책이 사적
(史的) 서술 중심으로 전개되어 약간 지루했던 앞부분을 단숨에 만회해 준다. 어쨌든 수에즈 운하의 개통(1869)과 더불어80일간의 세계 일주는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한편 베른이 영감을 얻는 원천은 당시 '토마스 쿡 앤드 선'(Thomas Cook & Son)이 광고한 세계 일주 여행 상품이었다고 하니, 쿡은 항해술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 모양이다.

"당신이
79일 만에 세계 일주를 한다면, 이 두 손으로 박수를 쳐 드리죠."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넬리 블라이(사진)의 세계 일주 여행이었다. 1889년 당시 신문기자였던 그녀는 '자신은 75일 만에 세계 일주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을 들은 베른은 그녀가 성공한다면 박수를 쳐 주겠다고 공언했다. 마침내 그해 11월 뉴욕 항을 출발한 블라이는 726시간 11분의 기록으로 다시 뉴욕에 돌아왔다! 베른은 약속대로 그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그녀의 여행기,72일간의 세계일주는 국내에 번역,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하시라.

 

한편 마크 트웨인 역시 당시 증기선을 타고 적도를 따라 전 세계를 탐험했다. 그의 여행기,마크 트웨인의 19세기 세계일주(1897) 역시 국내에도 번역되었는데, 당시 증기선을 타고 태평양과 건넜던 뭇 사람들의 호기심과 무료함을 달랠 필독서였다고 전한다.

또한 당시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하는 모험도 드물지 않았다
. 토마스 스티븐스는 1884년 페니파딩(자전거 초기모델)에 올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 세계 최초 자전거 일주에 성공했다. 10년 뒤 스물 네살의 애니 런던데리는 여자 최초로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했다. 그녀의 이야기는1894, 애니 런던데리, 발칙한 자전거 세계일주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무척 반갑게도 1896년 세계 일주 클럽에 합류한 민영환의 일화도 소개되어 있다. 그는 189641일 특명전권대사로 임명되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물포항을 떠났다. 이후 아시아와 태평양을 넘고 북아메리카, 대서양을 건너 영국, 도버해협을 거친 유럽 횡단, 러시아 전 지역 일주 등 총 11개국을 총 204일간 여행했다. 당시 민영환의 여행기,해천추범(海天秋帆)은 조재곤의 각고의 노력 덕분에 우리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이어 항공 시대
, 우주 시대를 맞아 비행기와 우주 탐사선을 통한 세계 일주를 다룬다. 하지만 아무래도 육지와 대양을 훑는 세계 일주 만큼 썩 흥미롭지는 않았다. 이는 아마도 일찍이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섰던 모험가들의 애환이 서린 휴먼 스토리가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항공과 우주가 강대국들의 무기 각축전이 되고 있다. 비행기가 폭탄을 떨어뜨리기 시작한 이래로 항공 시대의 낭만이 사라졌다는 그녀의 지적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녀가 이 책을 통해 고찰한 주제는 다음과 같이 대장정의 끝을 맺고 있듯이 결국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휴먼 드라마가 아닐까
?

"
우리는 지구에서 마지막 커튼을 내리는 대신 지구를 잘 돌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를 몹시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