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이은조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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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조, 그녀는 2007우리들의 한글 나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등단했다. 이번 작품 수박은 첫 소설집이다. 당선작을 포함해서 모두 8편이 실려 있다.

작가는 한결 같이 우리네 꼬질꼬질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돌린다
. 몸에 밴 담배 연기처럼 떨쳐내기 어려운, 혀에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수박 씨 같은 그런 존재와 삶의 이야기, 시큼한 땀내가 풍겨온다.

책을 펴고
전원주택부터 흐르는 물에 꽃은 떨어지고까지 실린 순서대로 읽었다. 작가가 쓰고 세운 줄이니 무슨 연유가 있지 않을까 해서.

사업에 실패하고 동창 민이네 식구에 기생하듯 살아가는 강의 가족 이야기
(전원주택), 영선이 떠맡게 된 여자아이 미르 이야기(효녀 홀릭). 민이 엄마는 강의 가족이 마치 알뜰히 가꾼 텃밭을 망쳐놓는 들쥐, , 멧돼지 같다고 느낀다. 영선은 재혼한 엄마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미르를 보낼 방법을 궁리한다.

똬리를 틀 듯 온몸으로 감겨드는 여름 한낮의 후덥지근한 열기 마냥 끈적끈적한 관계들
. 이는 어쩌면 우리가 매일 안고 사는 강박의 그림자인지도 모르겠다. 다들 따뜻하게 품고 안아 주기보다 밀쳐 내기 바쁘다. 비정하지만, 이게 우리 현실인 것을 어쩌나.

<
바람은 알고 있지>에서 상우와 혜리는 마냥 철부지다. 둘은 상우가 대학 졸업 후 일 년간 일했던 휴양 섬 빌리지에서의 인연으로 인도양의 섬들을 관리한다는 샘의 제안으로 비행기를 탄다. 샘의 성도 모르고 도착해서 만나 본 적도 없다.

마침내 샘에게서 최종 연락을 받은 상우는 환호를 내지르며 혜리와 신혼여행 같은 분위기를 맛보러 비치로 나간다
. 하지만 설마 하는 악몽은 소리 없이 우리를 집어 삼킨다. 우리는 가끔 상우처럼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의뭉스러운 존재에 의지하기도 한다.

타이틀 작품
수박을 보자. 이 작품에는 공장에서 옷을 빼돌려 인터넷 쇼핑몰에 팔아오다 덜미를 잡힌 오빠, 그런 오빠의 사고 전담 처리반 난주, 예의나 에티켓이 사라진 채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루하루 매달려 사는 그저 그런 여자 올케, 그렇다고 괜찮아한마디 조차 위로를 받을 수 없는 남편, 어김없이 돈타령을 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난주에게는 한결 같이 허허로운 마음을 달랠 수도, 의지할 수도 없는 인물들이다.

자기 인생이 세상에 걸린 비루한 몸뚱이 마냥 처량한 느낌을 갖는 난주는 수박 한 통 사서 남편과 사랑을 맹세한 곳
C역을 찾는다. 거기에는 그날 자신이 보고 싶었던 사찰이 있었다. 그날 남편은 나주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조금 보챘던 기억을 떠올린다. 막무가내로 청하거나 보챌 수 있는 지원군이 남편이길 바라면서.

나는 이 대목에서 뭔가 잃어버린 고리 하나를 찾은 느낌이다
. 그래, 아내도 내게 바랐던 것이 이런 거였는 지도 몰라.

난주는 사찰 근처 막걸리 집 평상에 앉아 있던 노파와 가져온 수박을 나눠 먹는다
.
수박씨는 꼭 뱉어내야 돼. 가슴에 담고 있으면 안에서 수박이 열린다고. 씨가 있다고 수박을 안 먹으면 미련한 거지. 씨앗은 뱉으면 돼. 그냥 툭, ...”(91)

노파가 무심히 던진 말에서 나는 가슴 아련히 이는 불덩이를 안는다
.
수박이란 넘이 그래. 겉만 보면 이게 무겁기만 하고 무슨 꿍꿍이 속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이렇게 속이 빨갛고 단맛이 있을 거라는 상상이 잘 안 되지.”(91)

인생이 수박 같았으면 한다
. 헤쳐 가기 힘들고 인내하기 어렵더라도 우리 인생도 수박의 속살처럼 단내 나고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다 내 인생은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오물 투성이에서 허우적대는지도 모른다. 누가 내게 손 내밀어, , 뱉고, , 털고, 또 그렇게 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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