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은 토요일에 엄마 친구인 A이모네 미술학원에 간다. 보통은 11시까지 가는 건데, 오늘은 이모 휴가 때문에 9시 까지 가는 거라고 한다.
아침 8시 40분, 깊은 잠에 빠져있는 나를 깨운 전화벨 소리가 있었다. 그냥 받지 말까 하다가 받으러 갔더니 아뿔싸. A이모네 미술학원에서 같이 수강하는 B이모였다. (귀찮으니까 미술 학원 하는 엄마친구는 A로, 오늘 아침에 온 아줌마는 B로 대체한다.) 맞다, 깜빡했다! 싶어서 목소리가 귀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전화를 받았다. 내 머릿속에 박힌 말은 그저 "지금 빨리 깨워서 뭐 좀 먹이고 5분 후에 내려와."
전화를 끊은 나는 동생을 깨우기 시작했다. 야, 미술학원 가야지. B이모가 5분 내에 내려오래. 빨랑 일어나, 학원 안 가냐아아…… 로 시작한 내 외침이, 내가 왜 토요일 아침부터 미술을 해야 되는데. 안 갈 거야, 안 갈 거야! 하는 동생의 외침과 같이 울리기 까지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생은 울기 시작했다. 난감. 많은 사람한테 폐 끼치지 말고 얼른 일어나. 가기 싫으면 니가 다 처리 해라. 이런 말을 지껄이며 동생을 계속 깨웠다. 동생은 몇 사람이나 된다고 많은 사람이냐면서 반박했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폐가 되면 많은 사람인데 너는 지금 A이모, B이모, 심지어 엄마한테까지 폐 끼치고 있으니 어떻게 많은 사람이 아니냐는 내 말에 씹혀버렸다.
결국 끌리듯 일어난 동생은 울릉도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코를 쿨쩍이는 소리 때문에 뭔 말인지도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로 엄마와 통화를 한 동생은 다음 순간, 동생을 데리러 집 앞에 나타난 B이모 딸내미를 "너무 아프다"는 말로 쫓아냈다. B이모에게서 걸려온 전화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일을 끝내고 소파에 앉아 우는 동생에게 가서 등을 두들겨 주었다. 한참 늦긴 했어도 아무튼 자기가 처리한 셈이었다. 지금 동생은 TV를 보고 있다. 때때로 바보상자가 있어서 다행스럽다.
나도 다니기 싫은 학원을 다녀봤고, 그 순간 동생의 마음이 어땠을 지는 깨우기를 시작하기 조차 싫을 만큼 잘 알고 있었다. 깨우는 건 너무 미안하면서도 고민되는 일이었다. 내가 아침에 나를 흔드는 엄마를 얼마나 미워 했던가. 하지만 나는 그 마음만 절절히 아는 게 아니었다. 하기 싫다고 해서 다 피하고 살 수는 없으며, 나중에 피한 걸 후회하게 되는 일도 있다는 것도 경험에서 너무 잘 알았다. 엄마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켜 몸만 학원으로 간 나를 곧 마음도 따라오지 않았던가. 만약에 그 순간 마음이 따라오지 않았더라도, 몇 개월이 지났을 때 '아아, 그 때 그만두지 않길 잘했지!'라고 생각하며 엄마에게 감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엄마가 생각났다. 나는 엄마에게 평안한 아침은 주지 못할망정 아침마다 엄마의 가슴에 멍 하나 하나씩을 늘려간 딸이다. 사람을 깨운다는 게 이런 일인 줄은 몰랐다. 말로 듣기도 하고―엄마도 너 가기 싫은 거 다 알아!―, 생각도 해 봤지만, 직접 느껴보니 미안함이 더 커졌다. 나는 엄마도 다 안다는 말이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알긴 뭘 알아. 알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는 딸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엄마는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엄마도 사람이고, 엄마는 정말로 그 마음을 알고 계셨다. 단지 지금의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하기 싫다고 계속 그만두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던 거다.
어쩌면 엄마도 어릴 때, 할머니를 향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겠지? '딸을 이렇게 힘들게 하는 엄마는 되지 않을 거야.' 내가 같은 상황에 어떻게 행동할 지는 그 순간이 오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다. 특히, 지금까지 계속 한 입장에만 서 있었다면.
동생에게 정말 미안하다. 어젯밤에 "9시에 가야돼!"라길래 9시에 나가는 건 줄 알고 8시 50분쯤에 알람을 맞춘 내가 바보였다. 9시에 수업이 시작하는 거였다니. 진작 내가 일어나서 챙겨줬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