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전요, 뭔 일이 있어도 산 입에 거미줄 치고 살진 않겠지만, 입에 간신히 풀칠하고 사는 정도도 싫어요. 읽고 싶은 책은 사 읽고, 영화관에서 영화도 보고, 음악이 듣고싶으면 CD를 사고, 벼르고 별러서 1년에 두어번 뮤지컬이나 오페라도 보러 다니면서 살고 싶다구요. 그러면서 계속 배우는 학생으로, 좋아하는 공부나 하면서 살고 싶어요. 하지만 문화생활하고 공부할 돈이라고 어디 땅파면 나오나요, 일을 해야죠. 그런데, 또 취직이 어렵다고 해서 아무 일이나 막 하나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솔직히 아파트 청소부를 업으로 하고 살고 싶진 않거든요. 제가 관심있어하는 분야의 공부란 언어와 관련이 있는데, 그 길로 나서면 저는 뭘 하고 살까요? 눈앞이 깜깜해요.

  이 모든 생각에서 자립심과 의지의 결여가 느껴지지만 하고 싶다고, 잘 한다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저의 기를 꺾네요.

  그저 부모님과 사회가 터주는 길로만 걸으면 안전했던 시절의 끝자락에 서서, 요즘 너무 많은 불안과 압박을 느껴요. 옷 한 벌도 자기 손으로 못 고르는 제가, 넘어지는 게 무서워서 자전거도 못타는 인간 하명란이, 환불도 받을 수 없는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정이 나를 전혀 다른 길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니.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길에 넘어져서 다쳐야 나의 일생이란 자전거를 배운다고 해도, 저는 상처입기가 두려워요...


실론티님의 페이퍼에 코멘트를 달다가 결국 요즘 나를 괴롭히는 불안이 미약하나마 문자화 되었다.

 으음... 모르겠다. 대책없이 살기 싫은데 대책이 안 선다. 내 안의 숨은 내가, 쓸데없는 완벽주의로 오기를 부리는 걸까? 나는 늘 이렇다. 내가 계획을 잘 못 세우는 이유는, 빈틈없는 완벽한 계획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자세는 항상,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그 단계에서 쩔쩔 매느라 실행도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조금만 여유롭게 생각하면 계획을 금방 세우고, 거기에 맞게 실행해나가면서 잘못된 점을 고쳐나가면서 발전할 수 있을텐데, 이래서는 시작도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못된 점을 고치지 못하는 나. 알고 있기에 푸념하는 것까지는 가지만, 다시 푸념하지 않기 위해 나를 바꾸는 것까지는 가지 않는 나. 지금까지는 그런 내가 미워도, 별 불편없이 살았지만, 지금 이 순간, 아니 요즈음, 이런 내가 참 거슬리고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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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sky 2004-08-19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걱정과 불안이 명란님을 키우고,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 줄 거여요. 그 나이에 이런 걱정, 불안이 없이 사는 사람이야말로 문제인 거죠. 그리고 그런 불안감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니예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또다시 내 앞날이 앞길이 걱정되는 게 사람이니까요. (음, 너무 겁줬나?;;)
지금도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는 명란님이지만 저는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된답니다. 큰 힘 못 되어줄 건 뻔하지만 먼 발치에서나마 계속 지켜보며 파이팅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파이팅!! ^-^

2004-08-19 0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明卵 2004-08-19 0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하하하.. 갑자기 자~알 놀다가 이런 글이 툭.. 역시 밤에는 생각이 많아진다니까요. 울엄마가 자기는 예술가라서 아침형 인간은 절대 안 된다는 걸 보면, 역시, 역시 밤에는 뭔가가 있나봐요. 화가 나고 슬퍼도 웃으면 점점 기분이 좋아진대요. 미친년마냥 실실거리고나 다녀야겠습니다.

귓속말님, 네, 제가 그걸 진작에 깨달았드랬죠ㅠㅠ;; 바보;;

ceylontea 2004-08-19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하고 싶은 그 말들을 스타리님이 먼저 하셨네요.. ^^
그런 불안감은 나이가 들어도 안없어져요.. 에 동감합니다..그리고... 앞으로 살면서 선택하고 결정하고 힘든 일은 더 많이 있답니다...
제가 학교다닐때... 학생 때가 제일 좋다는 말.. 지금 그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도... 힘들어도..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지면서 사는 것.. 그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명란님.. 지금처럼.. 많이 고민하고, 계획도 세우시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미술관도 가고... 또.. 열심히 공부하세요.
무엇인가 결정을 하는 순간이 오면.. 그것이 타의였다 생각하지만 말자구요... 지금은 아직은 많은 부분 부모님께서 결정을 하실지 모르지만... 그 결정은 내가 한 것이 아니었어...라고 말하지 말자구요. 내 삶의 주체는 나이고.. 그외 다른 사람들은 조언자이고 결국 그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이니까.... 좀 더 그 상황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명란님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잔소리 같은 코멘트가 되어버렸네요... ^^

2004-08-19 0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明卵 2004-08-19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겠죠..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완벽주의에 얽매이게 되는 것도 같아요. '이렇게 불안감에 휩싸여서 사는데 뭐라도 안 하고 그냥 나이차서 픽 죽으면 나란 존재가 세상에 태어날 이유가 뭐가 있지?'하는 생각 때문에요. 며칠 전에 역시 애는 낳아야 겠다는 내용의 페이퍼를 올렸었는데, 위의 생각은 그 페이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위인전에 이름 새기려면 너무 힘들게 살아야 하니까 싫고,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살아가면서 내 핏줄이라도 남겨야겠다는 거 아닐까요, 저의 본심은?

스타리님, 실론티님 감사해요... 이제 좀 진정이 된 것 같아요. 저 위의 코멘트는 갑작스런 포기모드로 정신나간 상태에서 쓴 거라서 생각이 없었던 거고;; 겁주는 것도 잔소리도 전혀 아니예요. 이거 다 뽑아놔야 겠습니다.

明卵 2004-08-19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러고보니 비공개 페이퍼에 이거랑 관련된 짧은 주절거림이 있었는데, 이것도 조금이나마 생각이 정리된 느낌이다. 칙칙해서 찡박아놨지만 살려줘야겠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페이퍼로 가기.


가을산 2004-08-19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에는 잠을 자야 피부가 고와지죠! 피부 트러블이 생기면 고민이 하나 늘어요!   안돼요! 쯧! 쯧!

음.... 명란님처럼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다만 한가지, 선택을 앞에 두었을 때, '가장 중요한 것, 내가 가장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중심에 두고 선택을 하세요.
( 저도 중3때 부차적인 것을 이유로 진로를 결정하는 바람에 고등학교 3년간 무척 후회했었어요.
  --- 고등학교를 선택한 기준이 "인문계 학교는 교복 색깔이 촌스러워서 절대 안돼" 였으니.... ㅡㅡ;;  지금 생각해도 참 철딱서니 없는 이유였네....  )

참,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마지막에 늘 나오잖아요. 


"미래는 언제나 예측불허, 그래서 삶은 가치가 있다"

 

였던가?   ^^a


가을산 2004-08-19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명, 중학교때 우리 동네 고등학교 교복 색깔은 이 글씨 색깔이었음.  
흑흑,  바보라고 하지 마세요... 


ceylontea 2004-08-1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제가 다닌 고등학교도 이런 색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제일 예쁜 교복이란 칭송을 들었었는데요... ^^

진/우맘 2004-08-1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멋진 말들은 모두 다른 분들이.....^^
여하간, 명란 화이링~~~~~

明卵 2004-08-1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맞습니다.. 피부는 너무 중요해요ㅜㅜ 앞으로 빨리 잘게요! 저 미리 계획, 준비가 안 되고 있어서 고민인걸요^^a 아르미안의 네 딸들, 읽은지가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요. 언제 날 잡아서 다시 읽어봐야지.. 그나저나 그 이유 너무 웃겨요~ ^ㅁ^ (바보라곤 안 할게요ㅎㅎ)

실론티님, 저런 색깔 교복이 많았나요? 전 딱 한 번 본 것 같은데...

진우맘님, 화이링~~~ ^ㅂ^

털짱 2004-08-20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공주님, 님이 기운없으시니 알라딘 전체가 가라앉는 것 같아요. 기운내세요.^^

明卵 2004-08-20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털짱님, 네! 기운 울끈불끈!! 처음에 이 코멘트 봤을 때는 명란공주래서 그냥 날 위로해주려고 하신 말씀인가, 했는데... 아니었군요. 모족외전 읽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