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pp's Last Tape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Duchess Theatre, London. 2010년 11월 3일.
사무엘 베케트 작품이라는 것만 보고 영문학도의 혼을 불태우며 보러 갔었는데 이제야 페이퍼를 쓴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 끼적여놓은 것을 간단히 이었다. 일인극인데 덤블도어, 마이클 갬본이 크라프로 분했다.
*
늙는다는 것.
*
크라프는 이제 몸을 숙여 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줍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나이가 들었다. 늙었다. 노인 특유의 고집인 양 책상 위에 뭔가 반듯하게 올려놓는 데 집착을 보이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 그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러간다. 크라프가 바나나를 하나 까 먹는 데 몇 분이나 소요되는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쩌면 지금 그가 먹는 바나나는 삼십 년쯤 전에 먹었던 바나나와는 다른 것이 아닐까? 세 개째 바나나를 먹었던 서른 아홉 생일날 그는 바나나 하나에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였을까? 바나나를 가지고 장난을 쳤을까? 노인이 된 그의 시간은 과거를 질투하고 비웃고, 바나나 껍질을 주워서 다시 던져버리거나 테이프 통을 정리하는 데 쓰인다. 하지만 과거의 그에게 시간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바나나를 그토록 조심스레 털어볼 생각인들 할 수 있었을까? 지금 무대 위 크라프의 시간은 바나나와 테이프로 채워져 있다. 반면 테이프 속 크라프의 시간은 구체적인 사건과 회상으로 가득하다. 곱씹을 거리를 만들어내는 시간과 곱씹는 시간이 한 무대 위에 펼쳐진다.
계속해서 돌아가는 테이프. 그는 테이프를 돌려 듣는 그 시간 속에 살아있을 뿐, 테이프에 녹음된 순간은 어떤 의미에서 죽어 있는 것이다. 그가 보낸 시간, 그의 사랑이 담긴 테이프는 이제 케케묵은 먼지에 뒤덮여 있다. 이렇게 종종 꺼내어 틀 때면 늘 똑 같은 말만을 반복한다. 듣고서 다시 돌려 보아도, 언제나 같은 목소리로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다. 내용은 물론이고 모양새도 그러하다. 한 쪽은 오른쪽으로 한 쪽은 왼쪽으로- 몇 번이고 다시 듣더라도 테이프 레코더가 돌아가는 모양새는 이처럼 똑같을 것이다. 크라프는 테이프를, 다시 말해 죽은 시간을 소유하고 있을 뿐 ‘바로 그 시간’을 소유하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가는 매 순간은 그 순간의 마지막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처음 이 극의 제목을 접했을 때 이제 나이를 먹은 크라프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테이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 극 속에 나온 테이프는 크라프가 30년 전에 녹음한 테이프뿐이다.
지금까지 내 삶을 녹음해서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어서 보관하는 것에 집착하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좌절하긴 했어도. 녹음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오로지 청각적인 기록만이 있음을 뜻한다. 이는 시각적인 기록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내 목소리— 크라프가 몸서리치는 자신의 젊을 적 목소리처럼 지금 나의 목소리도 언젠가 내게 아주 생경한 것이 될 것이다. 녹음하여 기록한다는 것은 그때의 말투, 음색, 어떻게 숨을 쉬고 어떤 분위기를 내는지 세세한 부분까지도 가지려고 하는 욕심의 반증이다. 하지만 크라프의 모습은 어떤가? 테이프를 부여잡고 우는 크라프. 에피와의 소중했던 순간, 그 순간의 떨림이 그 속에 다 들어있건만 그에게는 더 이상 그런 불길은 남아있지 않다. 그녀와 보낸 가슴 떨리던 순간, 그에 대한 묘사는 자신이 겪은 일임에도 다른 사람의 일과 같이 들렸을 것이다. 지금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흘러가버린 시간과 그 속의 자신일 것이다.
크라프는 과거에 대해 많이 질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연극은 ‘I wouldn’t want them back’이라는 대사로 끝이 난다. 지금 이 멘트를 녹음한 것의 시점이 언제인가가 모호해서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 모호함 또한 의도적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는 화가 나도록 샘이 나지만, 다시 그곳으로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바나나를 그렇게 꼼꼼히 지켜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그 시절과는 또 다른 ‘그의 삶,’ 박제되지 않은 삶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자신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삶은 지금 뿐인지도 모른다.
덧붙여서...
참 오랜만이다. 이곳에 다시 뭔가 쓰게 된다면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었기에 늘 미루기만 했는데, 뭐라도 쓰지 않으면 ‘좋은 모습’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그리도 미루다가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낙서로 돌아왔다. 하도 간만이라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고향이 그대로 있어 주었다는 사실 만으로 감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