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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 - 이화문고 50
마가렛 미드 지음, 조한혜정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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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가렛 미드의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은 1935년 초판되었다. 한국에는 1987년에 1963년판의 번역본이 소개되었고, 우리는 그 책을 읽고 있다. 번역조차 내가 태어나기 전에 된 이 책은 시대와 상황의 변화를 담을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어서 나를 안타깝게 했지만,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70년 전에 나온 이 책을 읽으면서 수긍하게 되는 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동성애를 조명한 레온 카플란의 <모나리자 신드롬>의 경우 1990년에 나왔음에도 우리나라의 상황이 책에서 묘사된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는데, 이 책은 강산도 7번은 변했을 시기에 나왔기에 더욱 그랬다. 10년, 70년은 고전 축에도 못 끼는데 뭐가 그리 안타까운가 할지 몰라도, 여성·소수 인권 관련 서적의 경우 의식의 변화 혹은 현 사실의 고발의 목적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고, 또 그간에 인권 존중 의식이 많이 높아졌으므로 그것은 굉장히 긴 시간일 수밖에 없다. 아무튼, 놀라운 것은 서양에서는 이 때 벌써 마가렛 미드와 같은 여성 학자가 등장해 성에 따른 기질의 차이를 부정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놀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구에게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은, 옮긴이가 책을 열며 말했듯, 약간의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저자는 무작위로 뽑은 세 부족사회에서 마치 일부러 설정한 것처럼 성 역할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매우 신기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 눈에는 무엇이 그리 크게 다른지 보이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 모두 똑같이 여린 모습을 보이는 사회에서도, 똑같이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회에서도 분명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이 나뉘어져 있는 것을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리 당시 미국 사회에서 '여성적', '남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특색을 양성이 가지고 있더라도, 그 사회 내에서 또 다시 성에 의해 역할이 나뉘어져 있다면 그것을 진정한 '같은 성향'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말하자면, 마가렛 미드는 자신이 연구하는 부족사회의 눈이 아니라, 당시 미국인의 눈으로 봤을 때의 놀라움을 기록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또, 다원화를 강조하는 교육을 받아온 내가 보기에 한 부족사회를 같은 성향으로 묶고, 그에 반하는 이들을 모두 일탈자로 간주하는 서술 방식도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미드는 '어느 사회에건 일탈자가 많이 있다'고 말하며, 각 부족사회마다 '일탈자'라는 챕터를 마련해놓고 있다. 1+1은 2인데, 어떨 때는 3도 되고, 4도 되고, 심지어 10이 되기도 한다면, 1+1=2라는 식이 성립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일탈자의 경우를 늘어놓고, 또 더 많은 일탈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그녀는 스스로의 분류방식에 이견을 제시하는 격이 된 것이다.

  세 번째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같은 말을 반복해서 읽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특히 먼더거머인과 챔불리인의 생활에 대해 연구한 내용보다 아라페쉬인에 대한 내용이 월등히 많다보니, 아라페쉬 부족사회의 이야기에서 중복되는 내용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서문에 강조를 위해 반복을 많이 했다고 적혀있기까지 하다.

  그 외에도 지나치게 사견이 개입되어 있고, 그것을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 듯 서술해 혼란을 부르기도 한다는 점이 아쉽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생각인지를 가려내며 읽는 것이 독자의 능력이긴 하지만, 시대를 감안하기 시작하면 더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어 책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방해가 되었다. 게다가, 아라페쉬사회에서의 '대인'에 관한 내용에서는, 대인은 그저 연기를 할 뿐이라는 말을 시도때도없이 반복해놓고 갑자기 말을 바꾸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애초에 가능성을 짚지 않고 확신의 어조로 말하다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하자 나의 저자에 대한 신뢰도는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었다. 마가렛 미드는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세 부족사회에서의 성과 기질>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남녀 기질상의 차이란 순전히 문화적인 것으로,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저자의 기본 생각과, 그를 보이기 위해 부족사회에서 몸소 체험한 정신은 깊이 존중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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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용, 중국 김하중의 중국 이야기 2
김하중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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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이 떠오른다!"

  세계가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회사를 세우고, 미국의 한 학교에서는 5년 전부터 중국어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혀를 내두를 만큼 발빠른 움직임들이 속속 전해져오고 있다. 나는 불과 1, 2년 전에야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 것 같은데 이런 소식들이 들려오다니, 나는 너무 좁은 세상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런데, 그런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중국이 떠오른다는 말은 국내에서도 오래 전부터 있었어. 그냥 그런가보다,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서 그렇지... 나도 그랬지. 대학 다닐 때, 제2외국어 선택하는데 중국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일본어를 했었거든. 다들 그랬었어. 아무리 '카더라'식 말이 많아도 선입견이 어디 가겠니."

  나에게도 그런 선입견이 있었다. 3년 동안 중국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는데도 모두 날려버린 것은 중국어가 내 흥미를 끌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 자체가 중국에 대한 선입견의 탓이 컸다. 비위생적인 사회주의 국가, 그런 주제에 국사책만 폈다 하면 중화사상을 떠들어대는 얄미운 나라. 나에게 중국이 주는 느낌은 이랬던 것이다.

  그런 나였기에, 책을 읽으면서 깜짝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떠오르는 용, 중국'은 마치 내 마음을 읽고 만든 것처럼 나의 생각들을 하나하나 꾸짖었다. 특히 중국 사람들에 대해 느릿느릿하다(만만디), 비위생적이다, 대국근성이 있어 오만하다는 선입견이 있다는 말이 나를 가장 많이 놀래켰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내 멋대로 해버린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느낀 것은, 나는 중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해서라면 신문을 읽을 때도 그냥 넘겨버렸고, 수업시간에 배워도 시험만 치고 나면 다 잊어버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관심이 없어서 아는 것이 없고, 그래서 더욱 피해온 나라, 그것이 중국이었다. 그토록 영화를 많이 보고, 좋아하면서도 중국 영화는 지금껏 단 두 편밖에 보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 이 정도였구나. 심각성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덩샤오핑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알게된 것도 좋은 수확이었다. 내가 중국에 대해 그나마 관심이 가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덩샤오핑과 경극이었는데, 덩샤오핑에 대해 아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평전을 읽으려고 해도 아는 것이 전혀 없으니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책 덕분에 중국에 대해 얄팍하나마 지식을 쌓게 되었으니, 이제는 책을 읽을 때도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고 하면 별로 좋은 책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꼭 맞는 입문서였다고 본다. 이 책만 읽고 중국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중국이 그렇게 멀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떠오르는 용, 중국. 언제나 잠만 잘 것 같았던 그 용이 이제 내 안에서 눈을 뜨려하고 있다. 분주한 마음으로 맞아주련다, 그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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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卵 2005-07-0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야말로 날려씀의 극치...
 
차이의 정치 : 이제 소수를 위하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44
이남석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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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판에 붙어있는 16권의 권장도서 목록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이 책, '차이의 정치―이제 소수를 위하여'였다. 그리고 나는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지난 2년 간 내가 느낀 지식에의 욕구는 대부분 성적 소수자라는 동성애자에 쏠려있었으므로, '소수'라는 단어가 너무도 친숙했던 것이다. 이렇게,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지극히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친숙함.

  그런데 나는 '차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단지 친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책을 집어든 것 치고, 나는 이 책을 그다지 쉽게 읽지 못했다. 단어나 문장 구조가 어려워서 이해가 힘든 점도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넘겼던 일상의 작은 부분들부터 조금씩, 조금씩 건드려오는 기분이 묘하게 거슬렸던 것이다. 내가 그냥 지나친 일들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하고, 고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꽤나 충격이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충격이 내가 모르는 세계가 넓다는 데 대한 안도감과 희열로 다가왔다는 것일 것이다.

  과연, 차이의 정치는 실현 가능할까? '차이'와 '정치'가 온전히 양립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책을 읽은 후에도 변함이 없다. 게다가, 이 점에 있어서는 저자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그래서 그는, "다양성을 진리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차이의 본질적 가치, 즉 타자성의 내재적 가치를 승인할 수 있는 정의의 원리에 근거해야 한다"고 말하며 새로운 정의론을 모색할 때라는 주장을 편다. '그러니까 그런 정의의 원리가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있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묻는다면 할말이 없어질 정도로 낭만적인 말이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이론이 있을 때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하는 것이 어느새 습관처럼 되었을 정도로, 이상은 인간을 너무 선하게만 보거나, 세상을 너무 도덕적으로 보는 우를 쉽게 범한다. 나는 늘 그 차이와, 그로 인한 비판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 차이가 두려워서 꿈같은 이상일지언정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면, 우습게도, 세상은 어떻게도 발전하지 못하고, 고인 물이 썩어가듯 쇠퇴하기만 했을 것이다. 힘든 상황을 피할 수는 있지만, 피하면 어떤 것도 이루어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금 상황에서 차이의 정치와 새로운 정의론의 이상이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더욱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만 더 차이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런 사회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만 있다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고, 또 그것이 나아지고, 나아져서, 궁극적으로 차이의 정치에 보다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니 말이다.

  나는 '소수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막연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하고 산다. 얼마만큼 목소리를 내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어떤 행동을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하는가 조차 잘 모르는 상태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차이에 대해, 소수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 사이에서 '차이'를 바라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곳에서, 이상도 아니고 현실도 아닌 곳에서 차이를 바라보니, 이것은 어떻게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얽혀있는 실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고, 벌써부터 지치는 감도 든다. 그러나 나는 내가 예전보다 한 발짝 더 나갔으며, 내가, 세상도 그렇게 되도록 만들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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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卵 2005-07-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제용인데다가 후딱 썼더니, 다시 읽으니 민망하였지요ㅎㅎ;
그러셨군요, 따우님^ㅂ^ 아, 오랜만이어요!

明卵 2005-07-0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꺅~!!

어룸 2005-07-0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와락와락와락!!!(느낌표 두개 더 썼음~쿠쿠쿠~ 제가 이겼죠, 새벽별님? 우히히힛~ 네? 타이밍에서 패배라굽쇼?? 흐윽...ㅠ.ㅠ 넘 늦게 온게야...흑...)

明卵 2005-07-10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투풀님~~!!>ㅂ<
 
연어 어른을 위한 동화 2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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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연어'. 연어라는 짧은 제목이 전해주는 의미가 얼마나 큰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연어가 모천 회귀성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알을 낳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 같이 열심히 삶을 사는 이야기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짐작은 아주 틀린 것이었다. 주인공은, '연어'였다. 그것도 별종, 고운 은빛을 띄는 은빛연어.

연어, 라는 말 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
가가 언젠가 썼던 글에서 한번 등장했었던 이 말은 소설의 첫머리를 멋지게 장식한다. 이 글귀를 읽는 순간,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멋진가. 얼마나 멋지게, 연어를 표현했는가. 바다에서 사는 시간이 아무리 많은 들, 그들의 생은 강에서 시작해서 강에서 끝나는 것을.

연어를 읽으면서, 나는 이 책과 '오체불만족', '어린왕자'와 작은 공통점을 느꼈다. 무려 두권! 크. 더 친근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은빛연어는 외톨박이였다. 다른 연어들과는 달리 은빛을 띄는 그의 몸은 시도때도 없이 목숨을 위협하는 물수리나 불곰의 표적이 되기에 딱 좋았다. 무리를 습격의 위협속으로 몰아넣는 그를, 친구들은 따돌렸다. 어느 날. 친구들이 '이 은빛 별종아!'하고 놀리면서 지나갔다. 그가 웃으면서 무엇이라고 대꾸했는지 아는가? '그래, 나는 은빛연어야.'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남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극복한 은빛연어의 당찬 모습에 박수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고,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오토다케 히로타다. 팔다리가 없는 그에게 언젠가 친구가 '이 팔다리 없는 놈아!'라고 말했을 때, 그는 '뭐야, 이 팔다리 있는 놈아!'하고 되받아치지 않았는가. 이만하면 연상이 될 만도 하지?

어린왕자를 떠올린 곳은, 회의의 세 번째 발언자인 지느러미긴연어의 말을 듣고 은빛연어가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등굽은연어는 비틀어진 등으로 어떻게든 헤엄을 치려고 한다. 그 고통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 그 상처가 왜 아름다운 것인지 선생님은 모른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지느러미긴연어는 어쩌면 이렇게 인간 어른과 닮았을까. 마치 어린왕자가 은빛연어가 되어 지느러미긴연어라는 어른을 보고 생각하는 부분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어째서 지느러미긴연어는 그런 생각을 했을까. 등굽은연어를 보면서, 생각할 것이 정말로 교훈 뿐 이었더란 말인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가슴에 와닿는 말들 중 두가지만 적어보겠다.

'세상에는 언제나 동무들의 숫자보다 적들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정말로, 정말로 세상에는 친구보다도 적이 많다.… 아- 사실 이렇게 쓰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내가 이 글귀를 읽으면서 받은 느낌을 그대로 글로 표현해 내고 싶지만, 잘 되질 않아서 정말 아쉽다. '아, 정말 그래!'라는 탄성과 함께 느껴지는 그 희한한 느낌의 전율이란. 정말 코끝이 찡해지면서, 그 넓은 세상의 심오한 깊이가 책 속에서는 단 한 줄로 표현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존경심마저 들었다.

'땅은 물을 떠받쳐주고, 물은 땅을 적셔주면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은빛연어가 깨달음을 얻으며 좀 더 자란 것이 바로 이 부분이지 싶다. 연어는 땅으로 나가서는 살 수 없지만 땅을 미워해서는 안 되며 물은 땅과 함께 있어야 비로소 존재 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사실이지만 이를 인정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그 복잡하게 얽힌 상부상조하는 세상을 본 게 아닌가.

인간은 생각하는 생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연어보다도 못한 것은 아닐까. 물론 나도 책은 현실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연어는 정말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알을 낳기 위해, 거친 파도와 무서운 폭포를 거슬러 강으로, 강으로 올라가는 연어. 삶을 살아가는 의미를 확실하게 알고 그 의미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연어들은 아주 훌륭한 삶의 본보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내가 한번이라도 연어보다 나았던 적이 있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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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 가발공장에서 하버드까지
서진규 지음 / 북하우스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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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라는 당차면서도 큰 포부의 그녀를 쏙 빼 닮은 제목을 한 책. 그 책은 국어시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책이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당당한 여성의 이야기. 언젠가 한번 읽어보겠다고 수첩에 메모를 해 두었는데, 방학을 빌어 읽게 되었다.

도대체 이 여자에게 잠재되어 있던 힘이란, 얼마나 크고 강대한 것이었기에 그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그토록 빛날 수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그녀에게 꿈이, 그리고 희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부터 그 꿈들에 대해서 조금 적어 보고 싶다.

힘찬 여성 서진규가 자라온 이야기는 나에게 있어 너무나 친숙한 이야기들 이었던 것이다. 엄마며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속에서, 혹은 소설책 속에서 만나 온. 냇가에 빨래감을 잔뜩 이고지고 가서 차디찬 냇물로 빠는 이야기, 늘 참는 어머니의 이야기, 고생한 이야기들은 너무 친숙했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때로는 너무 잘 이해가 되는 바람에 가슴이 미어져서 숨쉬기가 괴로울 정도가 되기도 했다. 힘든 생활을 했지만 그녀에게는 늘 꿈이 있었고, 결국에는 한국을 벗어나 미국으로 당찬 첫발을 내딛었다.

100달러를 달랑 들고 식모살이를 하러 간 미국에서, 그녀는 사랑도 하고, 모험도 하고, 수많은 작고 큰 문제들과 직면하게 된다. 그 이야기들이 어찌나 어렵고, 때로는 서럽게 느껴지던지.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라든지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거야 라든지, 나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나를 대입시켜가며 글을 읽었다. 때때로 그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했다.

여기 큰 감명을 받은 그녀의 말들의 작은 노트가 있다.

'자기가 가진 돈이 아무리 많아도 스스로 만족하지 않으면 부자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그 돈으로 삶을 즐기지 못한다. 돈에 눈이 먼, 돈의 노예 일 뿐이다.' 이 말은 그녀가 자주 끄집어내는 반쯤 물이 담긴 컵에 대한 이야기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에 따라 변하는 상황에 대한 말 말이다.

'한가지 일에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라. 그 실패는 더 큰 성공으로 가는 우회 도로일 수도 있다. 높이, 그리고 멀리 보라.' 이 말은 나에게 굉장히 큰 용기와 힘을 주었다.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기말고사의 나쁜 성적에 기운을 잃고 있던 찰나였던 것이다. 희망을 얻었다. '그래, 이건 앞으로의 나를 위한 경험일 뿐이야. 다음번에는 반드시 잘 할수 있어. 이 절망을 다시는 맛보지 않겠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그때그때 주어지는 숱한 문제를 풀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문제이든, 해답은 언제나 하나 이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문제는 무척이나 많다. 그 문제들을 다 나열하고 싶지는 않지만, 분명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지만, 이제는 조금씩 눈이 뜨이는 것 같다. 해답은, 언제나 하나 이상일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이 태교의 마지막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순간이야.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는 생명에게 인내하는 법을 가르쳐주자.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인내심이 필요하잖아.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인 나부터 모범을 보여야 해.' 아이를 낳는 고통을 겪어본 적은 없지만, 굉장히 아프다고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고통을 참은 것이다. 그 아이(성욱)는 분명 인내심이 많은 아이가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서진규, 책 제목에서도 밝혔듯이, 그녀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굳이 그런 것을 바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미 훌륭한 희망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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