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야 누리야>는 인물에 몰입해서 읽기에는 너무 '허구', '만들어진 이야기'의 느낌이 강했다. 특히나 몇몇 대화문에서는 굉장히 현실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고왔기 때문이었다. 누리의 삶에는 분명 희망이 있었을 테지만(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혼자 힘으로 대학까지 들어갔겠는가), 희망으로 감싸기에는 그 삶의 내용이 너무 처절한데, 이 이야기는 시종일관 나긋하게 이어지는 것이 불만이었다. 처절함을 처절함으로 써내지 못한 작가를 향해 마음속으로 눈을 흘기며 읽어나갔다.

그래서일까. (작가가 서문에서 말했듯) 이 이야기는 진짜야, 진짜야, 하고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을 하면서 읽었고, 또 눈앞에 아른한 향수가 느껴지는 찔레 마을과, 무시무시한 서울 풍경이 그려져있는 것 같은데도, 동화의 마지막장이 될 때까지 내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렀다. 누리가 고생을 하고, 그 주변 사람들이 아파해도 다 가짜처럼 느껴졌다. 진짜라고, 왜 안 믿느냐고 내 자신을 타이르면 타이를 수록 '손에 쥐고 있는 책'이 너무 '책'처럼 다가왔다. 상황과 어조가 너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나빠졌다. 누리는 인간이었을 테고, 천사가 아닌 누리는 좀 더 못난 마음도 가졌을 텐데, 좀 더 깊이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텐데, 하고 툴툴거렸다.

하지만 동화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누리의 눈으로 쓰여져 있는 만큼, 힘든 일을 당하면서도 희망적인 어조를 유지하는 누리에게서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는, 몸부림치지 않고 희망을 보려 한다는 것에서 가벼운 체념의 기운마저 느껴진다는 생각. 어차피 나는 크게 절망해본 적도 없는 주제에 무슨 누리를 그리 잘 안다고 속으로 트집을 잡고 있었는가, 하는 회의. 그러는 중에 누리의 이야기는 끝났다. 시원섭섭하게.

'시원섭섭'이야말로 현실인가, 하고 약간 서운함을 느끼며 한 장 더 넘겼더니, 작가가 약속을 지키려고 마련한 페이지가 있었다. (서문에서 작가가 한 약속이 있었다.) 옳지,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다지 상상의 범위를 뛰어넘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런데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동화와 현실을 잇는 너무나 '진짜'같은 '진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읽은 이야기는 현실이었어. 이런 건 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아니라구. 거짓말이 아니었다니까, 진짜였어. 라고 말하고 있는 그 뒷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한 권 가득 채워진 누리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래, 진짜다. 내가 너무 안전한 곳에 있어서 마치 거짓같았지만, 다큐멘터리나 뉴스 속에서 몇번이고 들어온,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현실에 눈을 뜨는 순간. 그제서야 눈물이 흘렀다. 허어엉, 하고 울어버렸다.

'하지만 편지를 읽기 전에 여러분에게 부탁할 것이 한 가지 있답니다. 어려운 부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부탁이니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 부탁은 다른 게 아니라, 우리의 친구 '나누리'가 지내 온 삶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슬픈 이야기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얼핏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괴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아주 많이 섞여 있답니다. 그것이 현실이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행복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행복 뒤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도 함께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불행한 사람들한테는 조금만, 아주 조금만 사랑을 나누어 주어도 굉장히 큰 힘이 된다는 사실도 생각해 주기를 원합니다.' (208, 209쪽. 작가 양귀자의 말.)

추가) 세상에서, 발등을 찍기 위해 '믿는 도끼'가 되는 놈이 제일 나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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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0-1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발등은 항상 믿는 도끼에게 찍히죠.^^ 그래도 전 명란님이 제 발등 찍어주는 일이 좋은걸요^^ 행복 뒤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도 함께 생각해주는 명란님의 도끼는 아프지 않을것 같은데요.

明卵 2004-10-17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등은 뭘로 찍혀도 아파요. 단지 아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데, 제가 파란여우님 발등을 찍은 적이 있던가요?^^
 

민사고가 dream school인 나에게 미국 명문대가 dream school인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니. 놀라움, 부러움, 끝에는 나에 대한 회의까지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지난번 <나나 너나 할 수 있다>를 읽고 기록장에 올렸을 때 이 책이 혹평을 듣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글쎄, 나는 이 책에 대고 욕하고 싶지 않다. 아니지, 박원희를 욕하고 싶지 않다는 게 좀 더 정확하겠다. 나는, 책을 통해 드러나는 그녀의 집념을 존경하게 되었으므로.

그나저나 민사고학생으로 3년을 보내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일 것 같다. (나 같은 의지박약아가 견딜만한 곳은 아닌 것 같지만.)

<The Old Man and the Sea>
<We are all brothers>
<Siddhartha>
<The Advantures of Huckleberry Finn>
<The Great Gatsby>
<The Hobbit>
<A Tales of Two Cities>
<Great Expectations>
<Tales of D'Urberville>
<Catch-22>
<Oliver Twist>
<Modern European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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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10-11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가 질리네.
나는 공부하고도 오기하고도 먼먼 사람이라...^^;;
그나저나 책은 아직 안 갔수?

明卵 2004-10-1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질리죠?
앗 참! 왔어요! 감사인사 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진우맘님의 메세지와, '명란양^^'이라고 귀엽게 적힌 수신자이름이 참 따스하고 기쁜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잘 읽을게요!

가을산 2004-10-1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보았는데, 무엇보다도 '공부는 자기가 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이 확실하더군요.
그리고, 의지가 있는 학생들에게 지속적으로 높은 목표 제시를 해주는 여건이 중요한 것도 알겠구요.
그런데, 민사고에서 학생 개인 방의 책상에 (감시)카메라를 두었다는 것은 좀 섬짓 했어요.

明卵 2004-10-12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만약 박원희가 일반고등학교를 갔다면 지금 이런 책이 나와 있지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드네요.
하긴, 감시 카메라가 좋은 용도로 사용된다고는 적혀 있지만 제가 정말 그 카메라에 찍히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예요.
 

우연히, 정말 아무 생각없이 검색사이트에서 '홍석천'을 검색했다. 왜 갑자기 그 이름이 튀어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스크롤바를 내리던 나는 깜짝 놀랐다. 저서? 홍석천이 책을 썼단 말인가! 그게 바로 <나는 아직도 금지된 사랑에 가슴 설렌다>였다. 판매처 0곳, 이미 절판이었다. 못 읽는 걸까, 하고 아쉬워했는데 의외로 중고서적 판매사이트를 통해 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뭔가 큰 깨달음을 얻는다거나, 깜짝 놀랄 사실을 알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읽은 게 후회되지는 않는다. 애초에 내가 원한 게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홍석천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커밍 아웃'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 그렇기 때문에 그 무게를 짊어져야만 했던 남자. 그냥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목적을 대충 달성했다. 걸러지고 잘려나갔겠지만, 어쨌든 그의 사랑에 물들었던 2년에 대해 읽었으므로. 그래서 만족한다.

홍석천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올까? 그리고 둘은 행복할 수 있을까?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지만, 두가지 다 'YES'라는 대답이길 바란다. 내가 바라는 건 이것 뿐이다.

  예상대로 난 오디션에 합격했다. 이젠 배역 오디션이 남아 있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배역을 써서 내기만 하면 되었다. 사람들은 겹치거나 떨어질 때를 대비해서 1지망 2지망 3지망까지 배역을 써 냈지만 난 '폴'이란 글자만 세 번 써 냈다. 작품에 유일한 게이 역할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예상대로 게이 '폴'의 역할을 따 냈다. 폴의 대사 중에는 자신이 게이임을 극중 연출자에게 고백하는 독백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 속에 담겨 있었다.
  처음으로 대본 연습을 하는 날이었다. 내 차례가 와서 대사를 읽으려 하는데, 왈칵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얼굴을 찡그려 가며 눈 속에 고여 있는 눈물을 빼냈다. 하지만 눈물은 계속 차고 올라왔다. 하는 수 없이 울면서 대사를 읽었다. 사람들이 모두 숨죽여 듣고 있었다. 눈물 때문에 목이 메어 더 이상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눈물을 닦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엄숙했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힘겹게 말을 이었다.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여자 배우들이 따라 울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가슴속의 응어리를 풀어헤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나의 대사를 끝으로 연습은 중단되었다.
  "지금 네가 느끼는 감정이 무대 위에서 네가 가져야 하는 그 느낌이다. 그걸 잊지 말아라."
  감독님도 한마디 하셨다. 하지만 나는 눈물이 멈추게 하는 방법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 폴처럼 누구에게도 말 못하는 응어리를 지고 사는 게이다. 이제 그 짐을 풀어놓고 싶은데, 그 짐을 풀어놓을 자리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것이다. 너무 힘들고, 너무 서러워. 그래서 이렇게 그 짐을 진 채, 말 못하는 눈물만 흘리는 것이다. (244~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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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10-1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란님.. 시험은 잘 끝났어요??
모처럼 여유있게 쉬는 중인가요?
그래도... 또 다시 월요일이니.. 너무 늦게까지 알라딘에 계시지 마세요.. ^^

明卵 2004-10-11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은 정말... '거지같이' 끝났지만^^;; (으하하..)
모처럼 여유있게 쉬는 중인 건 맞아요~ 저, 이틀 연속으로 책 한 권씩 읽은 거 너무 오랜만인 거 같아요^^ 무지 행복하답니다.
넵, 내일을 생각하면서, 잠시만 더 있겠심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잎싹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당의 생활을 바랐던 철장 속의 닭, 잎싹의 이야기.

잎싹은 철장 속에서 알을 낳으며, 밖을 내다 보느라 목의 깃털이 다 빠질 때까지 마당으로 나가길 바랐다. 그리고 그 소망 때문에 병들다, 결국 폐계가 되어 소망대로 밖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바깥 세상은 상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아 족제비의 먹이가 될 뻔도 했고, 외톨이 나그네, 청둥오리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운명적인 생존 이후로 잎싹은 많은 일을 겪게 된다. 마당에서의 따돌림, 나그네의 죽음, 난생 처음 품어본 알에서 나온 오리 아가, 시시때때로 목을 죄어오는 족제비의 위협…….

이런 일들을 통해, <마당을 나온 암탉>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름답다. 그저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사랑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는 두 종류의 닭이 나온다. 마당을 나온 닭과, 마당 속의 닭. 이 두 닭에는 차이점이 있다. 마당을 나온 닭은 처음에 철장을 나오고자 한 닭이었지만, 결국 '마당을 나온 암탉'이 되었고, 그에 반해 마당 속의 닭은 처음에는 자유로워 보이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결국 아무 것도 바뀌지 못하고 '마당 속의 닭'으로만 남았다는 것.

우물 속에서는 동그란 하늘만이 아름다우나, 밖에 나오면 그 하늘은 그저 하늘 조각 중 하나가 될 뿐이다.

읽는 동안 주욱, 족제비가 신경쓰였다. 마치 나쁜 놈인 것처럼 묘사되는 족제비도 살아야 하는데, 잎싹이 벌레를 먹고 살듯, 족제비도 살아있는 동물을 먹어야 사는데, 그런 족제비를 어떻게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주인공을 위협하는 존재라고 해서? 속으로 족제비를 측은하게 느끼고 있던 나는 곧 마음이 풀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작가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족제비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을. 결국 족제비는 마지막에 고달픈 어미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어떤 동물에게도 모순이란 없다. 그들은 먹고 살만한데 남을 짓밟는 짓은 하지 않기 때문에.


오랜만에 진지하게 쓰려고 했는데... 이틀째 끙끙대다가 도저히 감이 안 잡혀서 대충 읽으면서 메모해놓은 것들만 죽- 적어봤음. 아, 영영 진지한 글을 못 쓰게 된 건 아니겠지... 정말 좋은 책이었다는 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아!" (44쪽, 마당의 수탉이 잎싹에게)

"우리는 다르게 생겨서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어. 나는 너를 존경해." (81쪽, 나그네가 잎싹에게)

"마당으로 가자고?"
"어차피 나는 오리인 걸. 괙괙거릴 수밖에 없어."
"그게 뭐 어떠니. 서로 다르게 생겼어도 사랑할 수 있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잎싹은 오래전에 청둥오리가 했던 말을 들려주었다. 잎싹은 그 말을 이해했기 때문에 초록머리도 알아듣기를 바랬다. (136쪽, 잎싹이 알을 품어서 나온 초록머리에게 잎싹이)

"어리다는 건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 아가, 너도 이제 한 가지를 배웠구나. 같은 족속이라고 모두 사랑하는 건 아니란다. 중요한 건 서로를 이해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야." (152쪽, 마당에서 호되게 당하고 날아오르는 초록머리를 보며 잎싹이)

"엄마는 나랑 다르게 생겼지만, 그렇지만, 엄마 사랑해요." (173쪽, 초록머리가 잎싹에게)

어두워지는 들판, 그 속을 뚫고 어미가 달려가고 있다. 눈도 못 뜬 새끼들 때문에 곧 돌아와야 하는, 바람처럼 재빠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어미. 고달픈 애꾸는 사냥꾼. (184쪽, 족제비 묘사)

"한 가지 소망이 있었지. 알을 품어서 병아리의 탄생을 보는 것! 그걸 이루었어. 고달프게 살았지만 참 행복하기도 했어. 소망 때문에 오늘까지 살았던 거야. 이제는 날아가고 싶어. 나도 초록머리처럼 훨훨,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189쪽, 초록머리가 청동오리 떼들과 떠나고 난 뒤 잎싹)

"자, 나를 잡아먹어라. 그래서 네 아기들 배를 채워라." (190쪽, 잎싹이 족제비에게) -이 얼마나 깔끔한가. 살아있을 이유가 없어지면, 새로운 목숨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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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卵 2004-10-1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은 무지 못 봤는데요.. 흑흑ㅠㅠ
그래도 친구랑 부대..그러니까, 부산대학교 앞에 영화관에서 영화 봤어요. 영화 보고 나와서는 음반매장에 가서 아빠 생신 선물로 드릴 테이프를 좀 보다가, 서점에 가서 책 샀구요.^^ (둘이 만화책의 홍수속에 황홀해하다 나왔지요ㅎㅎ) 근데 이런 것도 '놀았다'고 할 수 있나?;;;

ceylontea 2004-10-1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즐거웠다면.. 논 것 아닐까요?? ^^

明卵 2004-10-11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렇겠죠? 근데 영화선정을 잘못했어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봤는데요, 좋은 영화였지만 시험 끝나고 친구랑 볼만한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차라리 <우리형>을 봤으면 좋았을까.. 부산 국제영화제 때문에 메가박스가 일반 영화 상영을 안 해서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았어요. 흑;
 

방금 어떤 아저씨가 초인종을 눌렀다.

"요 밑에서 개업선물 받아가세요."

집에는 나와 우리 동생밖에 없다.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벌컥벌컥 문을 열어제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지? 개업선물을 드립니다, 도 아니고 받아가세요, 라니. 어른 안 계시는데요, 라는 말을 하면 어쩐지 어색한 상황.

"어... 무슨..."
"개업선물 받아가시라구요."
"아, 예... 그러니까 무슨 선물이요?"
"요 밑에서 개업선물 받아가시라구요."
"예, 그러니까 무슨 선물이요?"
"밑에서 드린다니까요."
"아, 예... 음..."

묘하게 어긋나는 대화. 의사소통이 안 됐다. 나는 개업선물은 개업선물인데 뭘 주는 거냐고 묻고 있었지만 아저씨는 계속 똑같은 대답이었다. 마땅히 할 말을 못 찾고 계속 어물거리고 있었다.

"어..."

모니터로 보이는 아저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까부터 아, 예, 라는 말씀만 하시네요. 참 내..."

아저씨는 기분 나쁘다는 듯 돌아섰고, 나는 달리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나는 그게 찜찜하다. 죄송스럽다.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인터폰의 렌즈를 바라보며 "개업선물 받아가라"는 말을 해야 했던 아저씨.
세상이 흉악해지네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너무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러면 안 되는 건데...

...하지만 문을 열기에는, 나는 너무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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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卵 2004-10-0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이라도 잘 했어야지, 이런 바보야...

starrysky 2004-10-04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은 찜찜하시겠지만 저도 잘한 일이라 생각되네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요..
절대 함부로 문 열어주거나 얘기 오래 하거나 하시면 안돼요!!
별님 친구분은 정말 황당한 일을 당하셨군요. 그래도 친구분께서 무사하시다니 천만다행.. 나뿐놈들!! -_-++

superfrog 2004-10-04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하셨어요..ㅎㅎ 아니, 왜 무슨 선물인지 안 가르쳐준답니까..!!
무조건 뭘 그냥 준다고 하면 다 좋아라 하고 받는 줄 아나봅니다..
새벽별님 말씀 보니 큰일 날 수도 있는 거였네요..

어룸 2004-10-0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새벽별님 얘기 듣다가 한참 넋을 놓고 있었네요...^^;;;;;;;;;(남의 얘기 듣는건 역시 넘 재미나요^^a)
제 생각에도 안열어주신게 잘 하신거 같아요, 뭔지 말도 안해준것도 그렇고 그냥 받아가라는 얘기만 했음됐지 슬쩌기 짜증까지 내는게 의심이...-_-+

ceylontea 2004-10-07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했어요.. 명란님.. 명란님 말씀처럼.. 우린 너무 험한 세상에 살고 있지요...
저는 출산 휴가중에 렌즈후드 청소한다고 왔는데.. 관리실에서 나온 줄 알고 문을 열어줬지요..
그런데.. 그 아줌마(거의 할머니)는 말씀도 참 많으셨고.. 여기 저기 청소한다고 다녀서 애는 어려서 저역시 그 아이가 버거워 감당을 못하고 있는데..아줌마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아줌마는 세제 파는 아줌마 였지요.. 전 빨리 가줬으면 해서 얼결에 그 세제를 샀는데 거의 20만원에 가까웠어요.. 아줌마 가고 나서 한참 지나 생각해보니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 취소하려고 했는데. 다음 날 아줌마가 와서 통사정을 해서 적당히 손해 보고 취소했답니다.
정말 문열지 않기를 잘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