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어떤 아저씨가 초인종을 눌렀다.

"요 밑에서 개업선물 받아가세요."

집에는 나와 우리 동생밖에 없다.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벌컥벌컥 문을 열어제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지? 개업선물을 드립니다, 도 아니고 받아가세요, 라니. 어른 안 계시는데요, 라는 말을 하면 어쩐지 어색한 상황.

"어... 무슨..."
"개업선물 받아가시라구요."
"아, 예... 그러니까 무슨 선물이요?"
"요 밑에서 개업선물 받아가시라구요."
"예, 그러니까 무슨 선물이요?"
"밑에서 드린다니까요."
"아, 예... 음..."

묘하게 어긋나는 대화. 의사소통이 안 됐다. 나는 개업선물은 개업선물인데 뭘 주는 거냐고 묻고 있었지만 아저씨는 계속 똑같은 대답이었다. 마땅히 할 말을 못 찾고 계속 어물거리고 있었다.

"어..."

모니터로 보이는 아저씨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까부터 아, 예, 라는 말씀만 하시네요. 참 내..."

아저씨는 기분 나쁘다는 듯 돌아섰고, 나는 달리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나는 그게 찜찜하다. 죄송스럽다.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인터폰의 렌즈를 바라보며 "개업선물 받아가라"는 말을 해야 했던 아저씨.
세상이 흉악해지네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너무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그러면 안 되는 건데...

...하지만 문을 열기에는, 나는 너무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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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卵 2004-10-04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이라도 잘 했어야지, 이런 바보야...

starrysky 2004-10-04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은 찜찜하시겠지만 저도 잘한 일이라 생각되네요.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요..
절대 함부로 문 열어주거나 얘기 오래 하거나 하시면 안돼요!!
별님 친구분은 정말 황당한 일을 당하셨군요. 그래도 친구분께서 무사하시다니 천만다행.. 나뿐놈들!! -_-++

superfrog 2004-10-04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하셨어요..ㅎㅎ 아니, 왜 무슨 선물인지 안 가르쳐준답니까..!!
무조건 뭘 그냥 준다고 하면 다 좋아라 하고 받는 줄 아나봅니다..
새벽별님 말씀 보니 큰일 날 수도 있는 거였네요..

어룸 2004-10-0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새벽별님 얘기 듣다가 한참 넋을 놓고 있었네요...^^;;;;;;;;;(남의 얘기 듣는건 역시 넘 재미나요^^a)
제 생각에도 안열어주신게 잘 하신거 같아요, 뭔지 말도 안해준것도 그렇고 그냥 받아가라는 얘기만 했음됐지 슬쩌기 짜증까지 내는게 의심이...-_-+

ceylontea 2004-10-07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했어요.. 명란님.. 명란님 말씀처럼.. 우린 너무 험한 세상에 살고 있지요...
저는 출산 휴가중에 렌즈후드 청소한다고 왔는데.. 관리실에서 나온 줄 알고 문을 열어줬지요..
그런데.. 그 아줌마(거의 할머니)는 말씀도 참 많으셨고.. 여기 저기 청소한다고 다녀서 애는 어려서 저역시 그 아이가 버거워 감당을 못하고 있는데..아줌마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 아줌마는 세제 파는 아줌마 였지요.. 전 빨리 가줬으면 해서 얼결에 그 세제를 샀는데 거의 20만원에 가까웠어요.. 아줌마 가고 나서 한참 지나 생각해보니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 취소하려고 했는데. 다음 날 아줌마가 와서 통사정을 해서 적당히 손해 보고 취소했답니다.
정말 문열지 않기를 잘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