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와 함께한 여름
하토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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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집에선 늘 개를 길렀다. 당시만 해도 좀도둑이 심심찮게 출몰하던 때여서 집을 지키라고 데려왔다. 견종을 알 수 없는 믹스견이었지만 무척 귀여웠다. 외출하고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개는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펄쩍펄쩍 뛰며 반겼다. 지금도 기억나는 개의 이름은 지지였다. 하얀 털의 까맣고 동그란 눈이 정말 예뻤다. 잘 짓지도 않아서 기르는 동안 딱 한 번 !”했던 게 전부였다. 그런 지지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버렸다. 무더운 여름날 목욕을 시켰는데 하필 대문이 열려있었던 거다. 방과후 집에 가보니 지지가 보이지 않아서 며칠동안 온 동네를 다니며 찾았지만 허사였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쿠로와 함께 한 여름>을 보자마자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지지가 떠올랐다. 만화가 하토에게는 쿠로라는 반려견이 있었다. 쿠로는 먹는 걸 좋아하고 걷는 게 특기였다. 여느 개와 다르지 않았지만 저자에게 쿠로는 특별한 존재였다. 그렇게 저자는 159개월간 함께 했던 쿠로와 작별하고 만다. <쿠로와 함께 한 여름>는 쿠로와의 작별을 담고 있다.


 

모든 생명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바꿀 수 없는 절대진리이지만 오랫동안 함께 하며 감정을 나누었던 이의 죽음은 그것이 동물이라 할지라도 큰 충격이다. 저자 역사 마찬가지였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쿠로를 보며 저자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결국 쿠로와의 기나긴 작별을 준비하게 된다.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자기 앞에 보이던 동그란 뒤통수를 평생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지지를 잃어버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꿈에 지지를 만났다. 꿈속의 지지는 털이 예전보다 더 하얗고 눈도 더 크게 동그랬다. 몰라보게 예쁜 모습으로 나타난 지지는 한참 날 빤히 쳐다봤는데 그게 반가우면서도 왠지 슬펐다. 더이상 자길 찾지 말라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작별 인사 하러 내 꿈에 찾아온 것 같아서.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집에서 기르는 개의 명칭이 달라진 것처럼 반려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다. 예쁘고 귀여워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한 가족처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 모든 생명은 사랑하는 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걸 또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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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익스포저 (포토에세이) 듄 시리즈
그레이그 프레이저.조쉬 브롤린 지음, 채효정 옮김 / 아르누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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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포저(exposure), 특정 기업 또는 국가와 연관된 금액이 어느 정도인가를 나타내는 말’. <: 익스포저>란 제목 앞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익스포저란 경제용어를 합친 건 어떤 의미일까. [][: 파트2]촬영장 뒷이야기를 담은 포토에세이란 소개글 이상의 의미가 내포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죽일 수 없다.


 

몇 년에 걸쳐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던 이들에겐 일명 동지 의식이라고 불리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싹트기 마련이다. 첫 대면의 어색함은 만남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사라지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서로의 눈빛과 사소한 동작만으로도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촬영장은 전쟁터 같다. 도착하기 전부터 최선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훈련을 했지만, 그 모든 건 오로지 머릿속에서만, 상상을 맡은 시냅스 안에서만 펼쳐졌다. 촬영장에 도착하면 현실의 전기가 흐른다.


 

<: 익스포저>에는 [] 촬영 현장과 영화에 담기지 않은 비하인드 장면을 촬영 감독 그레이그 프레이저의 사진과 거니 역을 맡은 배우 조시 브롤린의 글이 어우러져 있다. 그레이그와 조시,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예술가로 통하는 이들이지만 감독의 사인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공통의 숙명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어쩌면 운명 같은 건 아니었을까 싶다.


 

감독이 고함을 치고 있지 않지만 목소리에 엄격함이 깃들어 있고 배우는 그걸 근육으로 느낀다. 배우는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하지만 그렇게 해서 돌아간 내면의 아이는 자신이 예술의 이름으로 여기 있기로 선택했음을 안다.


 

배우에게 카메라는 공기 같은 것일까. 언제 어느 때든 자신의 곁을 맴돌면서 촬영하는 카메라를 그들은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다는 거란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말을 삶의 지침처럼 여긴 그레이그에게 배우들은 배역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장면과 장면 사이, 익살스런 표정을 짓기도 한다. 바로 그런 장면에 조시는 털어놓는다. 티모시를 향해 너의 얼굴엔 사춘기가 아로새겨져 있다고 하고 스틸가 역의 하비에르에게 내 소중한 친구 하비에르는 (...) 13년 전 스페인 검투사 모습 그대로인 내 소중한 친구라고.


 

사진작가의 일이란 순간 포착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을 자신의 관점과 자신이 선택한 구성 요소 그리고 결국 그 찰나에 존재하는 빛의 세상을 자신의 취향으로 채우는 것이다. (...) 최고의 사진작가들은 다 안다. 다른 모든 요소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눈을 깨우고, 대화의 포문을 열어야 최종결과물인 이미지가 죽은 채로 목소리도 없이 나오지 않게 하는 열쇠임을.


 

두 개 이상의 파동이 한 곳에서 만날 때 진폭이 상쇄되기도 하지만 둘의 파동이 합해져 더욱 커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희망한다. 나의 파동을 더욱 크게 키워줄 누군가, 혹은 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일, 순간을 만나기를. 책 후반부에 그레이그와 조시가 서로에 대해 털어놓은 대목을 보니 그들의 만남은 후자였던 것 같다. 그들의 위대한 작업이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조시와 나(그레이그 프레이저)<>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우리는 점차 글과 사진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글과 사진을 한데 모으니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듯 보였다. (...) 사진과 글이 결합하면 각각의 부분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위대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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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더 포토그래피 (포토북) 듄 시리즈
치아벨라 제임스 지음, 안예나 옮김 / 아르누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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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파트2] 개봉 첫날 지인과 영화를 봤다. 3시간에 가까운 영화를 숨죽이고 보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파트1]2021, [:파트2]2024, 그럼 [:파트3]2027년인가? 3, 어떻게 기다리지? [:파트2]를 보기 위해 이전의 내용을 다시 되짚으면서 듄 우니버스’ ‘듀니버스라 불리는 <>의 세계관에 감탄했다. 먼 미래의 우주, 고도로 발달한 과학으로 우주 항로 개척에 필요한 스타이스를 채취하기 위해 사막 행성 아라키스로 이주하게 된 폴 아트레이드와 그의 가족이 겪는 이야기. 중세 봉건시대처럼 왕조에 충성을 바치는 귀족 가문들간의 팽팽한 세력다툼이 펼쳐지는 가운데 새로운 행성과 그곳의 원주민들, 비밀스런 단체가 얽히면서 소설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 모든 걸 원작자인 프랭크 허버트는 오래전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창조해낼 수 있었을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소설로 <>을 손꼽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영화 <>에 깃든 마법 같은 힘은 영화 제작 과정의 다양한 요소 뿐만 아니라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 140


 

<: 더 포토그래피>[]의 공식 포토북이다. <>의 공식 사진작가인 치아벨라 제임스가 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찍은 사진 중에서 일부를 선별해서 수록해놓았다. 거대한 바위와 붉은 모래로 가득한 표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마치 다시 상영관에 앉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 극장에서 봤던 장면이지만 어쩐지 다른 느낌을 주는 사진들이었다. 요르단의 와디 럼 사막을 시작으로 부다페스트, 아부다비 사막, 헝가리의 스튜디오, 식물의 초록빛이 반갑게 느껴졌던 노르웨이 해변까지 영화 촬영이 이뤄지는 모든 순간이 담겨 있었다. 일반 판형보다 큰 포토북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영화에서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장면이 어떻게 촬영되었는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스태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를테면 등장할 때마다 경악하게 했던 하코넨 남작의 촬영 장면은 스태프가 아니면 모를 이야기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사진작가인 치아벨라가 간간이 남긴 짧은 글이었다. 사진에 무지한 내겐 그냥 찰나의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일지라도 그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어떻게 하나의 프레임에 담을 것인가. 거기에 예술가로서의 그의 철학과 고민과 철학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이 포착하는 순간들은 덧없이 지나가 버리지만 사진은 남는다시간은 프레임 안에 머무르고 사진 속의 이야기와 여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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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들에게
박상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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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무심히 지나칠 뻔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들에게> 제목만 보고 흔한 수필집이려니 했다. 하지만 박상률이란 저자 이름에 못이 박힌 듯 시선이 멈췄다. 박상률, <봄바람> <개님전>의 그 박상률? 책 표지를 훑어봤다. [외로움을 으로 바꿔 내는 특별한 거인들의 이야기]란 부제의 특별한 거인은 누구일까. 창틀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있는 이를 그린 표지 그림도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무심히 콕 점찍은 것처럼 표현된 두 눈이 내 눈엔 어쩐지 골똘히 생각에 잠긴 것 같다고나 할까?

 


박상률은 어떤 작가인가. 저자는 <봄바람>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봄바람이다.’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단박에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짝사랑하는 소녀와의 미래를 꿈꾸는 사춘기 소년의 아픔과 고민, 성장통을 읽으며 줄곧 작가의 자전소설은 아닐까 의심할 정도로 생동감이 넘쳤다. <개님전>은 또 어떤가. 진돗개 황구와 그 자식들의 이야기를 마치 판소리처럼 맛깔나고 질펀하게 풀어놓았다. 순수하면서도 해학적인 글쓰기의 박상률을 나의 애정작가 반열에 올리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그런 저자에게 존재하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특별한 거인이 있다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마크 트웨인은 (중략) “거의 적합한 단어와 적합한 단어의 차이는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이다.”라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 14

 


목차를 보니 제일 먼저 마크 트웨인과 현진건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생몰 연대가 불과 10년 겹치는 이 두 작가를 묶어놓은 건 어떤 연유일까 궁금했는데 바로 해학과 풍자였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사실적인 표현과 문장으로 작품을 썼다. 그런 그들을 저자는 특별한 거인이며 그들의 여깨 위애 올라서서 세상을 두루 살핀다고 털어놓았다. 글쓰기, 좋은 문장을 고민하는 이에게 필독서로 꼽히는 책이 있으니 바로 이태준의 <문장강화>. 저자는 이태준을 단편소설의 완성자라고 언급하며 그의 소설을 읽을 때는 그저 술술 읽히는 문장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또한 이태준의 소설을 읽은 느낌이 수필 같았다며 어찌 보면 소설도 수필처럼 썼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문장력 덕분이라고 짚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일간지의 칼럼에서 저자는 소설과 에세이의 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털어놓았다. 수필이나 에세이가 당당히 문학의 한 장르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런 저자의 고뇌를 본문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것이 수필의 묘미이다. 실수한 상황을 세밀히 묘사하고, 너스레를 떨며, 알면서도 속고, 지금도 긴가민가하는 모습을 굳이 그린 것, 이는 고백 문학으로서의 수필을 잘 보여 준다. - 181

 


작가를 이야기하거나 책을 이야기하는 책을 만나면 처음엔 내가 읽었던 책, 아는 작가를 꼽는다. 나와 저자의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혹 공통분모는 없을까 궁금한 마음에 먼저 뽑아 읽는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건 아직 만나지 못한 작가였다. 나의 책읽기가 협소했음을 깨닫게 되는데, 반가운 숙제를 받아든 느낌이라 이 역시도 나쁘지 않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거인의 어깨에 저자가 올랐던 것처럼 나 역시 그 어깨에 올라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진다. 높아진 시야만큼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을 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감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첫 목적이자 마지막 목적이리라. 박병률의 글쓰기 작업의 밑바탕은 바로 공감 능력이다. -118

 


문학을 한다는 것은 억압받는 약자들 편에서 그들의 내면과 외면을 그려 내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큰돈을 벌거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강자보다 약자의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세상의 하찮은 존재들을 하찮게 여기지 않도록 하는 힘을 지닌 것이 문학 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문학이야말로 쓸모가 많은, 진정으로 유용한 도구이다.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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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방 둘이서 2
서윤후.최다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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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이 갖고 싶었다. 내 물건이 다른 이의 것과 뒤섞여 논쟁을 벌이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내 것으로만 된 방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태어난 순간 이미 형제가 다섯 손가락을 넘었기에 내 방을 요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다 여고 때 처음 생긴 내 방이 생겼는데 주방 위 다락방이었다. 허리를 곧추세울 수 없는 공간, 그마저 반은 짐으로 채워져 있어 앉은뱅이 책상과 내 몸 하나 간신히 눕힐 수 있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기뻤다. 어슴푸레한 전등 아래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책을 읽다 잠들 수 있어 행복했다. 창이 있어 더 좋았다. 작은 창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 맞은편 집 지붕 너머로 하늘이 보였다. 특별하지 않은 밤하늘을 보며 매일 꿈꿨다. 저 너머 넓은 곳으로 향하는 걸.


 

그가 읽은 책, 그가 머무는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의 기질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이후 살아가면서 어떤 책을 읽고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타고난 기질이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주변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데. ‘혼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쌓은 감정, 읽고 쓴 책, 지어 먹은 밥들이 모여 지금과 같은 모양의 나에게로 도착했다.’ <우리 같은 방> 프롤로그 첫 문장을 읽으며 지금의 난 어떤가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같은 방>은 시인 서윤후와 한문학자 최다정이 이란 주제로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공간에 대해 함께 쓴 에세이다. 서윤후와 최다정. 이미 몇 편의 작품을 발표한 작가이지만 내겐 첫 만남이다. 낯선 작가의 공동작품임에도 이 책을 선택한 건 우리 같은 방이라는 제목 아래 조그마하게 적힌 둘이서란 부제였다.


 

살아온 시절의 우리를 닮은 방에서 우리는 제일 안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방에 대한 이야기를 소환해 쓰면서 이 확실한 마음 하나를 건져 올리게 되어 다행이다. - 11


 

같은 공간에 사는 두 사람이 서로의 생각을 적은 것일까? 생각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방은 누구에게나 가장 내밀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방에서 어떤 일상을 보낼지 기질과 성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두 명의 동갑내기 작가가 각자 자신의 방을 이야기하는데 어쩐지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방]에서 다정윤후가 번갈아가며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방을 이야기하다가 [다정의 방], [윤후의 방] , [다시 다정의 방], [다시 윤후의 방]으로 이어진다. 이사가 잦았던 다정이 거쳐간 자취방 일화를 읽으며 문득 30여년 전 나의 자취방이 떠올랐고 가로로 누워있는 책이나 잡동사니를 좋아하는윤후의 글에선 현재 내 모습이 설핏 떠올랐다.

 


나는 방에서 고요를 수비하며 붙잡는 일을 한다. 쓰는 일로, 놓친 것을 심판하고 남겨진 것을 눌러 적는다. 그런 의미에서 방은 헤어짐을 판가름하는 가정 법원의 풍경일 수도 있고, 혼자서 짝사랑하는 누군가의 빼곡한 서랍일지도 모르겠다. -119


 

같은 듯 다르고 다르지만 닮은 그들의 글을 보며 다시 나의 방을 꿈꾼다. 중년을 넘어 노년에 가까워졌지 내 방을 갖고 싶은 마음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언제가 됐든 내 방이 생기는 날까지 종종 이 책을 뒤적이게 될 것 같다. 볕이 잘 드는 창문 쪽에 책상을 놓고 천장까지 닿는 책장을 짜서 세로로 책을 꽂고 연필 선인장 하나, 고양이 한 마리 키우면서 책 읽고 글을 쓰는 그런 날...


 

지나온 방의 역사는 곧 창문들의 역사와도 같다. 무해한 아름다움을 담아 주는 가지각색의 창문을 수집해 왔다. 창문은 놓인 위치와 방향에 따라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테두리 모양과 크기, 색감과 선명도까지 정해 주었다. 동그랗고 네모지고 금이 가고 먼지가 낀 각종 창문들. 창문 앞에 선 나는 창문의 형태와 상태에 따라 창문이 보여 주는 만큼만 세상을 구경하게 되는 것이다. -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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