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
마이클 모퍼고 지음, 마이클 포맨 그림, 김은영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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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 제목만 보고 처음엔 쿡쿡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희집 아이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친구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작은 것도 자꾸 부풀리는 경향이 있잖아요. 우리집엔 @@도 있다? ##도 있다? 이러다가 작은 서민아파트가 거의 궁전수준으로 탈바꿈해 버리는. 그래서 이 책도 그런 깜찍하고 엉뚱한 아이들의 일상을 담은 생활동화이거나 판타지 동화일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표지를 보니 아니더군요. 몹시 추운 겨울밤, 눈 덮인 길을 코끼리와 걸어가는 이가 있습니다. 그 뒤로 밤하늘을 비추는 몇 개의 불빛.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이들은 추운 겨울밤 거리로 나선 걸까? 그것도 코끼리를 데리고...? 의문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요. 표지 아래의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 폭격’ ‘독일의 드레스텐 사건’이라는 글귀를 보고 그제야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책의 화자는 노인요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그녀에게는 아홉 살 난 아들 칼이 있는데요. 가족이라고 해봐야 단 둘뿐이기에 그녀는 주말에 일을 해야 될 때면 아들을 요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것 외엔 달리 방법이 어쩔 수 없었으니까요. 이런 엄마의 염려와는 달리 칼은 너무나 잘 지냈습니다. 아니, 조용하지만 생기 없는 요양원에 칼과 그 친구들이 드나들면서 활기를 불어넣자 노인들이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였는데요. 그런 어느 날 그녀는 아들 칼이 리지 할머니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게 됩니다. 그녀는 칼에게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줍니다. 그 할머니는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우리집 정원에 코끼리가 있었다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고. 하지만 칼은 리지 할머니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원에서 코끼리를 키웠다는 것도 사실일 거라고. 그리고 다음날 그녀는 칼과 함께 리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리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마들렌이라 불리는 코끼리와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과 리지 할머니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몹시 추운 2월 13일에 벌어진 이야기들을...


이후 책은 리지 할머니의 이야기로 이어지는데요.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이 독일 드레스덴에 폭격을 가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던 드레스덴 사건에 대해서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수십만의 민간인이 죽음을 당한, 참혹한 학살이 벌어진 드레스덴 사건이 제2의 히로시마라고 부른다는 것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러다 작년초에 지인들과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이라는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드레스덴 사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우리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와 <제5도살장>은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느낌과 분위기는 조금 다르더군요. SF소설의 형식을 띤 <제5도살장>이 융단폭격이 가해진 이후의 참혹함을 “그렇게 가는 거지”란 말로 다소 황당하고 유머러스하게 전했다면 이 책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전쟁의 혼란 속에 피난을 가면서 코끼리를 데려간다는 것에서부터 그런 와중에 벌어지는 일들이 아픔과 슬픔, 안타까움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결코 살벌하지 않다는 겁니다. 이야기의 진행이 현재 시점이 아니라 과거의 있었던 일을 초로의 노인이 아이에게 들려주는 형식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특히 후반부, 추위와 굶주림 속에 힘겹게 길을 가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면서도 순간 눈물이 맺혔습니다.


마이클 모퍼고. 그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책장을 덮어도 자꾸만 생각나고 왠지 마음이 끌립니다. 이제 그의 다른 작품들을 하나씩하나씩 만나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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