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본능 - 법의곤충학자가 들려주는 살인자 추적기
마크 베네케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3,4년 전이었다. 지인이 며칠 여행하고 돌아오니 집에 도둑이 들었더란다. 인근의 다른 집도 빈집털이범 때문에 소소하게 잃어버린 게 많았던 모양이다. 파출소에 신고하니 경찰 몇 명이 와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지인의 가족에게 질문도 했다는데.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이웃집 아저씨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단다. “근데, 족적은 떴습니까?” 지인을 통해 그런 얘길 듣는 순간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핫, 그 아저씨, 텔레비전 너무 많이 보셨다”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CSI나 본즈 같은 미국 드라마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 과학수사대. 사건현장에 남겨진 작은 단서 하나만으로도 미궁에 빠졌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그들의 활약은 정말 대단했다. 놀랍고 눈부셨다. 텔레비전이 아닌 실제 과학수사대는 어떨까. 궁금했다. 마르크 베네케의 <살인본능>을 통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법의곤충학자가 들려주는 살인자 추적기’란 부제만으로도 길 그리썸의 카리스마와 포스가 느껴진다.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연쇄살인범의 고백>에 이어 저자의 범죄 3부작이자 완결편인 <살인본능>은 그야말로 엽기적이고 참혹한 사건들이 총집합된 책이었다. 토막살인의 전말을 밝히는 과정으로 시작한 책은 요즘의 사건수사에서 필수적으로 행해지는 지문감식이나 유전자 감식이 수사기법으로 도입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간혹 숲이나 인적이 뜸한 장소에서 뼈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하는데 그런 사건의 경우 발견된 뼈나 사체를 통해 사건의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보디 팜’을 설립했다고 한다. ‘보디 팜’은 시체의 부패가 진행되는 과정은 물론 곤충들이 서식하는 양상을 관찰하는 연구소인데 그 장소가 대학교의 축구장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또 부패가 진행되는 사체의 사진 한 장이 수록되어 있는데 본문의 내용을 읽기 전에는 모형일거라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나중에 보니 실제 사진이란 걸 알게 됐다. 그 순간의 오싹함이란....




이후 책은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건들에 대해 얘기한다. 희대의 납치극 찰스 린드버그 사건을 비롯해 수많은 여인들을 잔혹하게 유린했던 연쇄강간범 폴 베르나르도와 칼라 호몰카, 살해 후 인육을 먹은 뎅케, OJ심슨사건 등 그동안 책이나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 접했던 수많은 살인사건들보다 몇 배 더 잔인하고 참혹하게 다가왔다. 그 중에서도 동네의 어린 소년들을 사귄 다음 그들을 집으로 유인해 잔인하게 살인했던 제프리 다머는 정말 소름이 끼쳤다. 17명을 살해한 잔혹하고 엽기적인 범행보다 더 경악했던 건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개미 한 마리 못 죽일’ 정도로 순진하고 선량해 보이는 얼굴의 그가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다니. 그는 법정의 최후진술에서 말했다. “무엇이 저를 그토록 잔혹하고 흉악한 놈으로 만들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 아들을 지켜보던 부모의 사진이 오래도록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과학수사대의 이야기를 만나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손에 들었던 책이다. CSI시리즈의 출연배우들의 원본이자 실제 현실의 모습을 볼 거라 여겼는데,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선 날카로운 경종이 울렸다. 저자는 서두에서 말했다. ‘현실은 그 어떤 판타지 소설보다도 스릴이 넘친다’고. 그 말이 진실이었다. 연이어 계속되는 범죄와 살인,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 사건해결을 위해 개인적인 일상을 포기하는 수사관들. 그건 더 이상 소설도, 드라마도, 영화도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들. 착한 얼굴의 탈을 쓰고 우리 가족을 호시탐탐 노리는 잔인한 사람이 이웃에 없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책제목처럼 우리의 내면엔 정말로 ‘살인본능’이 존재하는 걸까. 결코 열면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마냥 묵직함으로 다가온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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