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무] 서평단 알림
눈물나무 카르페디엠 16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 양철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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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사막처럼 보이는 모래언덕, 한 켠에 서있는 거대한 선인장, 그 위로 붉은 얼룩처럼 보이는 물방울이 떨어진다. 뚝 뚝 뚜욱... 그리고 등에 배낭을 진 소년 하나. 그의 시선의 끝을 따라가면 거대한 선인장에 닿는다.




카롤린 필립스. 처음 접하는 이름이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글을 보니 독일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린이와 청소년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갖는 작가라고 되어있다. 해외 입양아나 노숙자, 장애인, 에이즈 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해 유네스코에서 주는 '관용과 평화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알지만 ‘관용과 평화의 상’이라...그런 상도 있었나? 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느껴지는 바가 있겠지 싶다.




루카. 멕시코 소년. 가난함 속에서도 미소를 짓고 배고픔에도 행복했던 소년이었다. 하지만 집안 사정 때문에 루카의 가족은 모두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간다. 할머니와 삼촌을 빼고.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지자 루카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은 마음에 미국 국경을 넘으려한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다는 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전과자가 되거나 본국으로 돌려 보내지는 사람도 무수히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큰형에게서 루카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듣고 그때부터 아버지의 유골을 배낭을 넣어다니기 시작한다. 언젠가 고국인 멕시코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드리기 위해....




“엘 아르볼 데 라그리마스(눈물나무).”

카사에 있는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그렇게 불렀다. 사람들은 밤에 이곳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나무에는 빗물이 필요하지 않아. 우리 이야기와 여기서 흘린 눈물만 먹고도 자라지.”

모든 사람이 국경을 건너던 이야기를 했다. 어떤 사람은 한 번, 어떤 사람은 두 번, 또 다른 사람은 이미 여러 번…….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실패한 시도라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여기 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국경을 건너는 데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으니까. - 9쪽. 프롤로그 중에서.




끼니를 잇기 어려울만큼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 목숨을 걸고 시도한 끝에 무사히 미국 땅을 밟아도 그들을 기다리는 건 미국인에 비해 형편없이 적은 일당과 부당한 대우, 불법체류자란 신분뿐이었다. 기회의 땅 미국에서조차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언제 어떻게 쫓겨날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들의 현실이 무척 가슴아팠다. 루카라는 한 멕시코 소년과 그 가족의 얘기를 읽었지만 내게 와닿는 느낌은 미국과 멕시코가 아닌 바로 우리의 이야기고 오늘의 현실이었다.




지난 주말 시내에 들렀다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옆자리에 까무잡잡한 피부에 자그마한 체구의 동남아계 여자가 앉았다. 그녀는 앉자마자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한국인인 난 전혀 알지 못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그런데도 그녀에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눈은 책을 보면서도 귀를 쫑끗 세우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듯 한껏 크기를 낮춘 음성.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처음엔 조금 울먹이는 정도였는데 결국 울음이 터졌다. 말이 조금 빨라진다 싶더니 급기야 전화를 끊어버리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옆자리에 앉은 난 순간 당황하면서도 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이와의 외출에 대비해 가방마다 항상 들어있는 필수품, 손수건과 물티슈, 몇 개의 사탕. 그것들을 손에 쥐고 건네주려다 멈칫, ‘날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거 아닐까’ ‘괜한 참견 말라고 화를 내면 어쩌지’하고  잠깐 망설이는 사이 지하철은 다음역에 도착했고 그녀는 서둘러 내리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그녀가 생각났다.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내리던 슬픔으로 가득찬, 고개 숙인 그 뒷모습. 자신이 태어난 고향과 가족들을 떠나 돈을 벌기 위해 모든 것이 낯선 먼 나라를 찾아온 그녀. 그녀는 이곳에서 무엇을 찾았을까. 열악한 근무환경, 고된 노동,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지쳐서 후회의 날들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미안해요. 그때 전혀 망설일 이유가 없었는데...지금 후회가 되네요. 부디 용기를 내세요. 희망을 잃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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