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벚꽃 산 쪽빛그림책 4
마쓰나리 마리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이들의 관계는 참 신기하다. 5,60년의 나이 차이를 아무것도 아닌듯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내겐 언제나 조심스럽고 어려운 시부모님도 할아버지, 할머니란 명함을 앞에 붙이면 한없이 푸근하고 너그러워진다. 장난치다가 장독을 깨트리고 이불에 오줌 싸고 화단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오~냐, 니가 그랬더나. 괘안타!” 이러신다. 순도 100% 아이편이다. 정말 수수께끼다. 내가 할머니가 되면 그 비밀을 풀 수 있을까.


연분홍빛 벚꽃이 탐스런 꽃망울을 막 터뜨린 어느날, 한 권의 그림책에 내게로 왔다. <할아버지의 벚꽃 산>. 표지엔 온통 연분홍 벚꽃. 그 속에 얼굴 가득 커다란 웃음을 머금은 할아버지와 한 소년이 있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를 부축이라도 하는지 조막만한 손으로 할아버지 팔을 꼭 붙들고 있다. 보기만해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사랑스러운 모습...


하늘이 파랗고 화창하게 맑은 날이면 할아버지는 나에게 말해요. “우리 강아지, 벚꽃 보러 가지 않으련?”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산에 몰래 벚나무를 심으셨다. 큼직하게 자란 벚나무를 보고 아이가 감탄한다. “할아버지는 참 대단해” 할아버지는 그냥 웃는다. “뭘, 뭘”. 또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쓰다듬으며 말을 건넨다. “어디 아픈데는 없느냐”. 산에서 할아버지와  아이는 언제나 즐겁다. 달리기랑 질경이 시합도 하고 민들레를 뜯어 풀피리도 만들어 분다.


그런데 펑펑 눈이 쏟아지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병이 나서 그만 자리에 누워버린다. 병 때문에 조금씩 작아지는 할아버지에 비해 부쩍 자란 아이는 혼자 벚꽃 산을 오른다. “우리 할아버지를 건강하게 해 주세요.” 두 손 모아 벚나무에 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할아버지의 병이 낫게 해 주세요.

할아버지의 병이 낫게 해 주세요.

 


 



그리고 바람이 따스한 봄날, 할아버지와 아이는 함께 산을 찾는다. 벚꽃 산의 벚나무들은 꽃망울을 활짝 피워 그들을 반긴다. 탐스런 벚꽃을 한참 바라보던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우리 강아지, 고맙구나”하고 말을 건네고 집에 돌아와 스르르 잠이 든다. 보통 때처럼 ‘잘 자거라.’하고.....


벚나무에 얽힌 할아버지와 손자의 추억을 그린 <할아버지의 벚꽃 산>. 이 책은 그림만으론 결코 예쁘다고 할 수 없다. 선이나 색감이 거칠고 투박해서 초등학생이 그린 게 아닐까...의심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그 그림에서 할아버지와 손자의 따스한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특히 할아버지와 아이가 벚꽃 산을 다시 찾은 대목에서 책장을 넘기는 순간 잠깐 숨이 멎는듯했다. 페이지를 가득 채운 흐드러지게 핀 벚꽃! 마치 하늘이 파랗게 화창한 날, 활짝 핀 벚나무 아래 내가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거의 마지막 부분. 돌아가신 할아버지 모자를 쓴 소년의 뒷모습이었다. 벚꽃 잎이 눈송이처럼 하나 둘...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소년은 어떤 표정으로 뭘 생각하고 있을까...할아버지의 모자를 쓰고...

 



 

할아버지가 만든 벚꽃 산에 해마다 벚꽃이 예쁘게 피어요. 그럼 예쁜 등이 매달리고 봄 축제가 시작돼요.

“뭘, 뭘.” 할아버지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파란 하늘이에요.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사라진 게 아니다. 완전한 이별도 역시 아니다. 아이의 가슴 속에, 벚꽃 산을 찾는 이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오롯이 살아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해마다 봄이 되어 벚꽃이 피고 지는 그 날까지 언제까지나....


이 그림책을 보면서 20년 전에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자꾸 생각났다. 아버지가 누워 계신 곳이 바로 벚꽃축제로 유명한 진해인데 3년 전 한식즈음...우리 가족이 아버지 산소를 찾았을때 마침 벚꽃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온 사방이 벚꽃 천지, 벚꽃 터널인 걸 보고 큰아이는 “이야~~!!”를 연발하면서 신나게 뛰어다녔다. 봄소풍 나온 아이처럼.


9살인 큰아이는 지금도 간혹 그때 얘길한다. 옛날처럼 벚꽃이 많이 있는 곳에 또 놀러가자고. “으응? 그때 놀러간 거 아닌데?”  “그럼?”  “엄마가 아버지 만나러 간건데?” “참, 그랬지...”  “엄마, 엄마는 참 안됐다.”  “왜?”  “엄마는 아빠가 없잖아!” “그래...그러네. 엄마의  아빠가 계셨으면 우리큰아들 디게 이뻐해 줬을텐데...우리 똥강아지~,....이러면서.”  “어? 그럼 나도 안됐네!!”


추억에도 유효기간이란 게 있을까. 있다면 언제까지일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살다가 떠나더라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겨진다는 걸 아이가 언제쯤 이해하게 될까.

뱀꼬랑지> 이 책은 속면지도 꼭 눈여겨 봐야한다. 앞뒤의 면지가 본문의 내용과 연결된다. 앞에선 잎이 무성하던 벚나무가 뒤에선 꽃잎 두 장이 날리고 있다. 책을 덮을때 뒤쪽 면지에 꽃잎 두 장이 흩날리는 걸 보고 가슴에선 쿵,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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