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단편소설 다시 읽기 - 어제의 소설로 오늘을 치열하게 읽어내고 싶은 당신에게
김형준 지음 / 도서출판 해오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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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소설을 읽었다. 재미로 읽고,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라 읽고, 지인이 강추해서 읽고, 때론 어쩐지 꼭 봐야 할 것 같은느낌에 읽었다. 동기야 어떻든 소설을 읽고 나면 한결같이 드는 생각은 역시 의미가 있다는 거다. 내가 알지 못한 세계,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이야기는 읽는 중에도 읽고 나서도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다. 학창 시절 겉멋에 이해하지도 못하고 읽었던 소설을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다. 십 대의 설익은 감성에 재미없다고 치부했던 이야기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중년에게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게 이런 이야기였어?’하는 충격에 이어 이래서 고전!’이란 하는 수긍과 인정이 뒤따랐다.


 

청소년 책읽기 수업을 하면서 늘 고민이 되었던 건 이 작품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전달할까’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였다. 해당 작품에 대한 지식이나 해설이 아니라 작품 속 세계, 그 속에서의 인물들 이야기를 통해 21세기의 아이들이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마치 자신이 작품 속 인물이 되어 그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기를,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접근해도 될까?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뒤늦게 시작한 SNS를 통해 <한국단편소설 다시 읽기>란 책을 알게 됐다. 처음엔 소설을 해설하는 또 한 권의 책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의 소설로 오늘을 치열하게 읽어내고 싶은 당신에게]란 부제에, ‘친숙한 우리 문학, 낯설게 다시 읽는다란 띠지 문구에 시선이 멈췄다. 나의 의문을, 우려를 어쩌면 이 책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책을 고를 때 실패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목차를 꼼꼼히 살펴보기라고 하는데 이 책이 좋은 예시가 된다. 21개의 한국단편소설을 [소설, 또 하나의 눈] [‘와 다른 ’] [소설이란 거울에 비친 우리 시대] [지켜야 할 무엇] 이렇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한 책은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저자가 <한국단편소설 다시 읽기>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목차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소개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통해 우리가 소설을 왜 읽는지, 반드시 읽어야하는지 이야기한다. 한국 근대소설로 여러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고 나쁜 운수에 좌우되는 인력거꾼 김첨지의 하루를 떠올린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천편일률적인 접근이 아니라 그의 삶이 왜 운수에 좌우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병든 사회는 병든 개인을 만듭니다병든 사회란 공동선이 붕괴되고개개인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없는 곳입니다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생존과 욕망을 위해 서로를 도구화하고진실을 추구하기 보다는 허상에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 17. 


장영희 교수님은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내가 남이 되는 연습’, ‘일종의 대리경험을 하게 한다고 했는데 바로 그 점을 부각한 대목이 [2와 다른 ’]이다. 서로 다른우리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김유정의 <동백꽃>을 통해 저마다 넌지시 알려준다. 갈등 없는 소설은 앙코 없는 찐빵이라 할 정도로 갈등은 소설의 중요한 요소이다. 소설엔 창작될 당시의 시대적 상황, 사회의 다양한 모습이 인물 간 갈등의 형태로 녹아있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 오늘 우리가 마주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걸 [3장 소설이란 거울에 비친 우리 시대]에서 짚어준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동물의 마음뿐만은 아닙니다다른 사람 마음도 우리는 근본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나는 나이고, ‘가 아니기 때문입니다그럼에도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다른 존재를 이해해야만 합니다기본적으로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공동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97



매일 숨가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지내다 보면 우린 정작 중요한 가치를 잊고 지낼 때가 있다부와 권력명예의 뒤에 가려진 곳에 있는 사람들가난하다고 어리석다고 주목받지 못하고 외면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4장 지켜야 할 무엇]에서 주목한다이 부분에 소개된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청소년 책읽기 수업 때 활용했는데 아이들에게 의문과 고민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한 사회의 모습은 대체로 그 구성원들이 누구를 존경하고, 또 누구를 배척하는지를 통해 드러납니다. 한 사회가 존경하는 인물의 구체적인 삶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가치관보다도 훨씬 더 직접적으로 그 사회의 지향과 이상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중략) 그런데 요즘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질문을 제일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중략) 이것은 곧 많은 학생들이 존경하는 인물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고, 이것은 곧 많은 학생들이 평소에 누구를 존경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 210

 

소설은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이다. 사실이거나 허구이거나 상관없이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벗어나 언제 읽어도 감동적으로, 읽는 이에게 저마다 다른 느낌과 의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고.



제가 본 풍경이 옳고 그름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이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된다는 점도 있지만, 소설이 지닌 재미와 감동이 근본적으로 우리의 윤리적 판단과 분리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좋은 여행은 여행지가 아니라 여행자의 마음에서 완성됩니다. 우리의 대화가 우리 소설을 탐색하는 더 많은 여정을 아름다운 여행으로 완성할 수 있는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 [여는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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