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봄핀아이들 글, 최숙자 엮음 / 사분쉼표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좋아서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임인 ‘봄핀아이들’의 글 모음집인 <우리 엄마 어디 계세요?>. 표지엔 활짝 펼쳐진 커다란 책과 그 책장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들. 생김도 옷차림도 제각각이다. 숨을 죽이고 귀 기울이면 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무슨 얘길하는 걸까.




재잘재잘 속닥속닥...중고등학생들의 재미난 수다가 가득하지 않을까...이 책을 읽기 전엔 이런 생각을 했었다. 청소년 대상의 영화를 보면 언제나 깔깔깔 웃다가도 짠하게 전해지는 감동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책장을 넘기자 그 속 내용은 내 예상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사춘기 아이들의 톡톡 튀는 감수성이 빚어낸 에피소드가 아닌 입시로 인한 아이들의 고뇌가 가득했다.




지금의 입시제도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리운다. 내신, 논술, 수능 이 세가지를 다 잘해야만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도 또다시 학원으로 직행,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에야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 그들에겐 방학이 1.5학기란 또다른 족쇄가 되버렸지만 거부조차 할 수 없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자신에게 쏟아진 모든 가족들의 기대를 알기에 차마 저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전쟁 속에 뛰어들어 한바탕 피를 튀기고 있는 동안 어느새 우리 엄마는 형편없이 짧은 단편영화 같은 나의 휴식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기사로 전락해 있었다.




충격이었다. 요즘 아이들의 입시가 예전과는 달리 그야말로 3차 전쟁을 방불케한다고 얘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여드름의 흔적은 내 성숙의 증거이자 어린 날의 통증의 대가란 대목이 그나마 가볍고 가장 애교스러웠다고 할까. 책장을 넘기는 손이 떨려왔다. 이 책에 몰입하면 할수록 마음이 자꾸 부대꼈다. 불편했다.




큰아이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입시란 말을 꺼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아니었다. 지금의 입시제도가 완전히 탈바꿈을 하지 않는한 내 아이들도 언젠간 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 것이다. 좌절하고 상처입을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사회는 청소년의 눈과 귀를 안대와 귀마개로 덮어버린다. 어릴적 나의 꿈은 크지만 현실은 나의 꿈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꿈은 점점 작아져만 갔다.




구르는 낙엽만 봐도 배꼽잡고 웃어야 한다. 이 또래의 아이들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만이 인생의 승리는 아니라고 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얘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 공부나 해야할 일보다 꿈을 크게 키워야한다고 용기를 북돋아줄수 있어야 한다. 우리 어른들은. 그런데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패배하고 있는 선택을 하는 건 아닌가,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만들다니..지금의 현실이 가슴 아프고 슬플 뿐이다.




하지만 다소 안심이 되기도 했다. 매끄럽지 않고 서툰 표현이지만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겐 한가닥 희망으로 다가왔다. 이 책이 부모와 아이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데 큰 힘을 보태리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내 또래의 학생들에게, 척박하게 되어버린 우리의 청소년기를 채울 취미를 하나씩 마련할 것을 권한다.....이 땅에서 고등학생으로 산다는 것, 어렵지만 우리만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애증의 시간’이 아닐까. -프롤로그 중에서




얼마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에게 놀라운 얘길 들었다. 요즘은 대여섯살 되는 어린 아이들 적성검사도 한단다. 어떻게? 하고 물어보니 아이의 손금을 보고 성격이나 어느 분야에 소질이 있는지 알아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같이 검사받아보지 않겠냐고. 순간 망설이다가 “아니, 이제 입학했는데, 뭘 그런 걸~”하고 대답했다. “왜? 자긴 안 궁금해?”하며 그 아주머니는 못내 섭섭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아이의 미래를 편법을 동원해서 미리 알아내고 싶진 않았다. 지름길보다 좀 둘러가는 길의 경치가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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