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와 함께 선보였던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그 자식 사랑했네>가 다시 앵콜로 올려진다. 일주일 동안 짧게 공연되어서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초연으로 재미있게 보았던 작품의 앵콜 공연 소식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아크로바틱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여 호평을 받은 간다의 전작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인상깊게 보고, 그 믿음으로 지난 여름 무작정 공연장을 찾았다. <거울공주 평강이야기>를 연출한 민준호 연출이 직접 배우로 나선다고 해서 기대했던 연극이기도 했다. (연출 참 잘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배우로서의 그가 궁금해졌다고 해야하나)

보습학원 영어강사 정태와 국어강사 미영의 솔직한 연애 이야기에, 너무 사실적이라서 맞다맞어 이건 정말 내 얘기잖아 백배 공감하기도 했고, 분통이 터져 답답하기도 했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민망하고 피하고 싶기도 했다. 연극은 그들의 만남과 사랑, 이별의 모습들을 꾸밈없이 솔직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그 솔직함이 진부한듯 진부하지 않아서 좋았다.

이 연극은 무엇보다도 무대의 전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수많은 에피소드 속의 다양한 장소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효율적으로 변화시키는 그 힘이 놀랍다.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으로의 연극무대가 좋았다. 이것은 내가 연극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하나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면, 극중의 연인인 정태(민준호)와 미영(김지현)이 실제 연인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보았던 것이 연극의 몰입을 방해해서 집중하는데 조금 힘이 들었다. 그들의 연기가 연기임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보고 있는 동안은 연기가 아니라 사실로 믿고 싶은데 자꾸 연기일 뿐이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몰랐다면 더 좋았을껄 살짝 아쉬움이 든다. 이번 공연에서는 미영역에 김지현씨와 박보경씨가 더블 캐스팅 되었던데 한 번 더 보러 갈까나 말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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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2-0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한예종 출신 연극배우들이랑 감독들이죠? 저도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보면서 참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근데 연출이 잘생겼던 것까지는 기억이 안났는데, ㅋㅋ 잘생겼었단 말이죠- 흐흐흐흐흐

Hani 2007-12-06 00:21   좋아요 0 | URL
모두 한예종 출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민준호씨와 김지현씨는 한예종 출신 맞아요.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에서 환경전환수들의 몸짓과 소리가 신선하고 인상 깊었어요. 민준호 연출은.. 실제로 보니까 좀 느끼하던데요ㅋㅋ

푸하 2007-12-06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보니 문외한인 저도 연극이 보고 싶어져요. 연극이란 장르는 '살아남'의 이미지가 강해요. 찾아서 봐야 할 듯해요.
말씀하신 '살짝 아쉬움'을 피하려면 정보를 최소한으로 알고 봐야 할 거 같아요.

Hani 2007-12-06 16:04   좋아요 0 | URL
연극은 보면 볼수록 중독성이 있는것 같아요. 현장의 생동감이 좋아요. 때론 작은 실수조차도요. 제 아쉬움을 생각없이 적은건데, 나중에 보시는 분들에게 괜한 선입견을 드린건 아닌지.. 간다의 다음 작품도 기다려집니다.
 

온라인에서 블로그를 시작한지 꽤 되었지만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여러 군데를 떠돌았다. 게으른 탓에 블로그를 잘 관리하지 못했고, 온라인으로 친분을 맺었던 분들과도 오래 소통하지 못했다. 온라인 책주문만을 위해 알라딘을 이용했는데, 알라딘 서재를 알게 되고 이 곳에 새둥지를 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가까이 있는 이 공간이 좋았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이 공간을 나의 향기가 숨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든다. 그리고 생각과 느낌이 통하는 많은 분들과 인사를 나누어야지 생각은 드는데, 모르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가 여전히 내겐 어렵다. 첫 술에 배부르랴. 한 걸음씩 천천히^^

한참 전에 다른 블로그에서 썼던 글인데, 오늘 생각난 김에 옮겨본다.

사람이 살다보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야 할 때가 있다. 낯선 동네에서 길을 물어보기 위해 바쁘게 거리를 오가는 사람에게 말을 먼저 걸어야하고, 업무상 얼굴 한 번 마주친 적이 없는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기 위해 전화를 먼저 걸기도 해야한다. 사람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어쩌면 불손할지 모르는 말걸기를 시도한다. 그 말을 받는 상대방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세요.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라는 간판을 달고 다니는 것은 아니니 반가움보다는 귀찮음 때문에 자기 보호적, 방어적이 된다.

사람이 살다보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을 때가 있다. 잘 보이고 싶은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손을 번쩍번쩍 들어 질문을 한다던지,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편지를 써서 내 마음을 전해본다던지,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그 앞에서 우연인듯 흥얼거려 본다던지, 뭐 그런거 말이다. 상대에게 말을 거는 방법은 다르지만 그 목적은 내가 호감을 가진 사람에게 나의 존재감을 심어주고 친해지기 위함이다. 하지만 거절 혹은 외부 방해 세력들로 인해 일이 성사가 안 되는 때 상처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 이 가슴 아픈 사연은 잘 모른단 말이지.

블로그를 하면서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싶을때가 있다. 내 생각과 같은 생각을 가진 공감하는 글을 만났을 때,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을 만났을 때, 내 생각을 바꿔놓을만큼 논리적이고 설득적인 글을 만났을 때, 알차고 좋은 정보들로 가득찬 글을 만났을 때 나는 그 글의 주인장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글 하나로 한 사람을 판단하는 것 만큼 무서운 것이 없지만 차곡차곡 쌓인 그 글들에서 나는 그 사람의 향기를 맡는다. 내가 말을 걸고 싶은 사람은 바로 내가 찾는 좋은 향기가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말을 걸고 싶은 블로거의 다른 많은 글들을 틈틈이 읽어보고, 그 분들의 포스팅을 한참 기다린다. 오프라인에서는 그것이 남의 집 엿보기가 되겠지만 온라인에서는 서로에게 허용된 약속이기에 괜찮은 것이다. 만약 그것이 허용하고 싶지 않다면 비공개로 포스팅을 하면 되고, 자신의 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듣고 싶지 않다면 덧글과 트랙백 허용을 금지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아닌 공개된 블로그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서로 지켜야 할 예의를 지킨다면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접어두어도 된다.

하지만 블로그에서 말걸기는 내게 어려운 일이다. 서로 얼굴도 모른채 덧글로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고 낯설 뿐더러 덧글 한 줄로 내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는데 서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게 내 생각이 잘못 전달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블로그란 공간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동시에 나를 드러내는 것이다.(물론 자신의 블로그를 오픈하지 않아도 되지만 나는 익명의 블로거에게는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블로그에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포스팅이고, 그 포스팅의 압박은 내가 말을 걸고 싶은 많은 블로그들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쓰고 싶은 글들을 머리 속에서만 끄적이다가 여러가지 이유로 결국 하나의 완성된 글로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불만 때문이다.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조촐한 밥상이라도 차려놓고 손님을 초대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던가. 결국 내가 게으르다는 얘기다. 

며칠 전부터 <내가 이웃 블로거들에게 말걸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다. 어설프게나마 나름대로 결론을 내고나니 블로그에서 타인에게 말걸기가 조금은 쉬워질 것 같다. 포스팅의 압박이 아니라 포스팅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낯선 이에게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먼저 건네는 즐거움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20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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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7-12-05 0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고가는 댓글에 쌓이는 정'이라며 어떤분이 댓글 달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셨어요.
저도 늘 제게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맙게 여겼는데,,,우린 말을 걸어주면 행복해지나봐요.
님께 처음 말겁니다.^^

Hani 2007-12-05 22:40   좋아요 0 | URL
이렇게 먼저 말걸어주셔서 감사해요^^ 소소한 작은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더불어 함께 나눌 수 있는 분들이 있어 저또한 행복하답니다.

웽스북스 2007-12-05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님!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
전 하니님 블로그와 하니님들이 쓰는 글들 좋아하는걸요

Hani 2007-12-05 22:42   좋아요 0 | URL
지금 야식으로 사과 1개와 아이스크림을 마구 먹고 있어요 ㅋㅋ
이 소소한 작은 공간과 그들은 좋아해주셔서 몸둘바를^^

웽스북스 2007-12-05 22:46   좋아요 0 | URL
뭐, 그저 앞으로 하니님의 향기를 더 많이 맡을 수 있길 바랄 뿐이죠- ㅎㅎ
(앗 댓글이 달린지 얼마 안됐군요 ㅋㅋ) 이건 거의 실시간 수준? ㅋㅋ
아이스크림 맛있겠다 흐흐흐흣

Hani 2007-12-05 22:53   좋아요 0 | URL
웬디님의 격려에 왠지 모를 힘이 불끈불끈나요 ㅎㅎ
근데 제자신도 아직 저의 향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데 어쩌죠?
(방이 따뜻해지기 전에 아이스크림 먹었더니 몸이 덜덜 떨려요^^)

프레이야 2007-12-10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실명이에요 (불쑥^^) 반가워요, 하니님..
벌써 낯익은 분들이 많이 다녀가셨네요. 히힛

Hani 2007-12-10 22:24   좋아요 0 | URL
아까 인사드릴때 깜박했는데, 몇 주전 <시사IN>에서 혜경님 서재 알게 되었어요.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혼자 대학로를 찾았다. 극단 골목길의 <백무동에서> 마지막 공연을 보았다. 골목길의 작품을 볼때마다 우울함과 씁쓸함을 동반한 뭔가가 무거운 돌덩이마냥 가슴 한 구석을 무겁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극장을 찾는 것을 보면 마약같은 그 무엇이 있다.

박근형의 전작들을 모두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본 대여섯 작품들 중에서 가장 광기스러웠고 괴기스러웠다. 남녀노소 누구든 임신을 하고 하루만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이상한 마을에는 불법 낙태 시술로 돈을 버는 무면허 산부인과가 있고, 하루만에 태어난 아이들이 마을 뒷산에 버려지는데 그곳에서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20대의 젊은이들의 입은 욕으로 도배를 하고, 마약을 하고, 사람 한 명쯤 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극중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는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다. 뭐 이딴 연극이 있나. 풍자 치고는 너무 과장되지 않았나. 마음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런데 이상한 건 계속 보면 볼수록 그 이상한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깜박 속을 뻔 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동떨어진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들 한 명 한 명은 나일수도 내 주변의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섬뜩함을 느꼈다. 20대들이 내뱉는 거침없는 욕들이 조금 과장되긴 했어도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 사회의 모습이었기에 그들을 그저 또라이로 한심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무면허 간호사가 낙태 시술을 하고, 환자의 죽음 앞에서 수술 기구를 이용해 오징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구워먹는 간호사의 모습에서 공포영화에서의 잔혹함보다 몇 배의 잔혹함과 맞닥뜨려야 했다. 이 연극에서 정상인은 병원에 새로 들어온 무면허 보조 간호사 뿐이다. 하지만 겁을 잔뜩 먹고 환자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는 그녀도 곧 아무렇지도 않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씁쓸함만이 남았다. 이 연극이 주는 가장 큰 공포는 바로 일상에서 오는 잔혹감이 아닐까.

좋아하는 배우 엄효섭씨는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볼때마다 더 물이 오르는 김영필씨와 언제나 믿음을 배신하지 않는 고수희씨, 귀여운 소녀에서 진정한 싸가지로 변신한 주인영씨를 만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PS. 연극을 보고 오는 길에 이음아트에 들렀다. 전부터 사고 싶었는데 잠시 잊고 있었던 편혜영의 <사육장쪽으로>가 눈에 들어왔다. 이 연극과 뭔가 통하는 것이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와 연극과 책의 인연은 또 이렇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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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1박 2일 지방 출장과 연이은 야근으로 정신없이 보냈다. 그래도 일을 무사히 끝내고 난 후의 그 짜릿함과 그 뒤에 맛보는 휴식의 달콤함. 이런 기분 참 오랜만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하루종일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했다. 해야 할 집안 일은 많았건만 All Stop!!! 뭐.. 가끔 이럴 때도 있어야지.

연극 1편을 예매했다. 계속 보고 싶었던 연극인데, 미루다가 마지막 공연을 보게 되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혼자 대학로를 간다. 이음아트도 슬쩍 들러보아야지. 백화점에 들러 수선 맡긴 가방도 찾고, 남자친구의 생일 선물도 골라야지.

어제는 오랜만에 퇴사한 회사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내 전화에 반가워해주셔서 고마웠다. 이런저런 안부도 묻고, 연말 송년회 약속을 하고 조만간 만나기로 했다. 내가 그 동안 지인들에게 참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닌데, 전화 한 통 하려고 하면 괜히 망설여지고 미루게 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지인들에게 안부 전화 한 통씩 해야지.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부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겠지?

오늘 아침 일찍 눈이 떠져서 목욕탕에 가려는데, 동생이 같이 가자고 해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조금만 더 잔다더니 아직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배고프다. 아침먹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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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2-0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해주시는 거, 참 고마운 일이에요, 무심하게 받았던 전화들에 대한 반성도 되고요, 흐흐 지금쯤 때 빡빡 미셨으려나?

Hani 2007-12-02 22:42   좋아요 0 | URL
저도 귀찮다고 무심하게 받기도 하고,답문자도 깜박하고 그랬는데...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12월에는 주변을 돌아보고 챙기는 노력들을 해봐야겠어요. 때는 너무 세게 밀었나.. 온몸이 따가워요 ㅋㅋ
 
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건 <88만원 세대>의 추천사에서였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읽고,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를 읽고, 김영하의 <퀴즈쇼>를 읽었다. 김애란에게 마음을 너무 빼앗겨서였던가... 김영하를 처음 대면하는 <퀴즈쇼>는 잘 읽히면서도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맛있는 재료들이 모두 들어있음에도 그 재료들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27세의 고학력 실업자 민수.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땡전 한 푼 없이 고시원 생활을 시작한다. 생계를 위한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얼마가지 못하고, 무기력한 일상의 탈출구는 없어보인다. 퀴즈쇼의 출연으로 만난 한 남자의 제안으로 그는 퀴즈 대회를 위한 회사(?)에 들어간다. 자기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탈출하려는 의지보다는 조금 쉬운 길을 선택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도피하고 있다. 인터넷 채팅방이라는 설정은 PC통신의 향수라는 느낌이 강했고, 거기에서 만난 지원과의 만남과 사랑도 그리 공감이 되지 않았다. 열악한 편의점 알바, 고시원 옆방녀의 자살, 배경도 능력이라는 면접관을 통해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한 단면들. 그러나 30대 김영하가 바라보는 20대의 모습은, 민수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의지 상실의 무기력함과 그 용기없음이다. 그것 뿐이었다. 그가 보여준 20대에 대한 애정을 이 소설에서 나는 찾지 못했다.

"부디 이 책을 익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청춘의 찬란한 빛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기를." 작가의 마지막 말이 씁쓸하게 느껴짐이 그저 안타깝다.

책은 작가의 얼굴이고 마음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작가와 첫인사를 나누었다. 첫인상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첫인상이 바뀌려면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그의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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