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수금 아침 8시 스탠딩 미팅 시간. 팀장님의 전달 사항과 1분 스피치로 진행된다. 팀장님의 전달 사항이 맨날 지나치게 길어져서 1분 스피치의 시간이 되면 사람들의 집중력과 체력은 한계에 이를 때가 많다. 이런 분위기에서 1분 스피치를 진행해야 하는 발표자는 심적 부담을 더 느낀다. 자칫 준비한 주제가 호응까지 없으면 썰렁하기 이른데 없다.

지난 수요일 내가 발표할 차례가 되었다. 그나마 호응도가 좋은 웰빙, 연예, 재테크로 갈까 하다가 최근에 읽은 책들을 소개하기로 마음 먹었다. 무슨 책을 소개할까? 후보에 오른 책은 세 권. <바람의 화원>, <친절한 복희씨>, <88만원 세대> 였다. 시간의 제약상 3권을 다 얘기하기는 무리라고 판단하고 2권만 선택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친절한 복희씨>를 <바람의 화원>보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최근 정조대왕 열풍으로 인한 대중적인 호응을 생각해 <바람의 화원>을 미리 낙점하고 나머지 2권 중에 고심했다.

우리 팀 20여명 중에 '88만원' 세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를 생각해보았다. 많아야 5명 이내. 평균 연령 30대 초중반. 20대는 달랑 4명. 모두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 한 달 임금 88만원을 상상하기 힘든 사람들. 별로 궁금해하지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나 또한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래서 소설 2권으로 가자고 마음 먹고 출근했다. 그런데 계속 마음 속에서는 <88만원 세대>를 외치고 있었다. 팀장님의 얘기 중간중간에 팀원들의 표정을 살폈다. 어제 다들 일찍 퇴근했는지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그래 까짓거 한 번 얘기나 해보자 마음 먹었건만 팀장님의 얘기는 끝날듯 하면서도 오래 진행되었고,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금새 반쯤 감겨 있었다. 그래서 '88만원 세대' 얘기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준비한 소설 이야기도 반으로 축약해서 서둘러 끝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 소심했나? 그들은 너무 과소 평가한 것일까? 끝나고나서 왜 그렇게 허탈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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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22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회사에서 이런 얘기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참 반가워지죠 ^^

Hani 2007-11-22 22:59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에요. 근데 아직 회사에서는 이런 얘기를 할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어요. 그 생각의 차이까지 인정해야겠지요^^
 

며칠 전에 Y모 인터넷 서점에서 주최하는 김별아 작가와의 만남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신청 마지막날 우연히 알게 되어 겨우 신청하고, 작가님께 하고 싶었던 질문들 몇 가지를 싸이트에 올렸다. 운이 좋았던지 당첨 SMS가 날라왔다. 지난번 도서전에서 박완서 작가님 이후에 내 생애 두 번째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강연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김별아 작가가 무대 앞에 섰다. 행사는 작가의 강연회와 사인회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1시간여의 강연회에서는 독자들이 인터넷에 올린 질문들을 위주로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마지막에 몇 가지 즉석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1시간의 강연 동안 작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동안 소설에 대해, 작가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이 많이 해소되었고, 작가 이전에 김별아라는 한 사람에 대해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작가의 학구적이고, 지적인, 완벽주의자의 이미지. 역시나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은, 그녀의 방대하고 폭넓은 자료 수집과 공부에 있었던 것이었다. 관련된 자료는 무조건 닥치는 대로 읽고, 한 단어를 쓰기 위해 1권의 책을 통째로 읽고, 그 자료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정리한다고 한다. 공부를 끊지 못해 내가 죽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때까지 계속 공부한다는 그녀. 도저히 끊지 못하겠다라고 하는데 그래 너 잘났다고 코웃음 치지 못했다. 그녀 자신도 재수없게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취미가 공부에요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할 줄 아는게 공부랑 글쓰는 거 밖에 없어서 작가가 되었고, 10여년 넘게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도 꾸준히 그 자리에 머물렀고 앞으로 해야할 공부가 너무 많다고 얘기하는 김별아 작가.

출판된 자신의 책을 처음 받았을때 어떤 느낌이 드냐는 질문에는, 보람과 성취보다는 허전하고 우울해진다고 한다. 스스로를 일중독자라고 얘기하면서 한 권의 책을 막 끝내고 일을 하지 않고 잠깐 쉴 때가 더 힘들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소 장황하고 설명적인 문장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과거의 인물을 현재의 인물처럼 독자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은 욕심에 그렇게 쓰게 되었다고 했으며, 순우리말 사용에 대해서는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다 찾아보고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역사와 문학과의 경계를 묻는 질문에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최대한 정사를 훼손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외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투영해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했다고 얘기했다.

김별아 작가의 안티팬들이 밝히는 싫어하는 이유를 보면, 모든 것을 자세하게 장황하게 설명해줘서 답답하고 지루해서 짜증이 난다. 또 이건 역사적 사실을 쓴 것이지 소설이 아니다. <미실>에서의 무너진 성도덕과 지나친 성적 묘사에 대한 불편함, <논개>에서의 역사적 사실의 전달의 과잉으로 논개가 없어졌다. 대충 그 정도로 요약. 하지만 그 안티팬들도 마지막엔 작가의 역사공부와 우리말 공부에 존경을 표한다고 덧붙인다.

내가 그녀를,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모든 것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주고 더듬어주고 들려줘서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좋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자근자근 설명해주어서 좋다. <미실>에서 문화적인 충격 속에 다른 세계를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대담하고 섬세한 그녀의 문장이 지루하지 않다. <논개>에서 러브스토리에 대한 기대에는 만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대를 통해 한 인물을 알고, 더 잘 이해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도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부모님을 닮기도 하지만 시대를 가장 많이 닮는다고. 그래서 한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이 그 시대에 나올 수 없는 인물이기에, 그 시대를 극복했기에 존경한다고 얘기했다.

강연회를 처음 시작하면서 작가가  했던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10년 동안은 뒤돌아보지 말고 꿀어라. 10년 동안은 해보고나서야 내가 가야할 길인지, 포기해야하는 길인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했다. 재능보다는 노력을 믿는다라는 말에 나도 자그마한 용기를 내어보았다.

오늘 작가와의 만남은, 혼자 읽는 책읽기에서 함께읽는 책읽기로서 나의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오늘 보여주었던 작가의 자신감과 당당함과 솔직함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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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7-22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 동안.^^ 긴 시간이네요. 저도 열심히 해야겠죠. 저도 노력을 믿습니다. 김별아 작가의 글은 읽어 본 게 없는데,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Hani 2007-07-22 23:36   좋아요 0 | URL
저도 어떤 일을 시작하고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지레 좌절하고 포기하고 했는데, 작가의 말에 새삼 부끄러워지더라구요. twinpix님도 화이팅하시구요, 김별아 작가의 책도 기회가 되시면 만나보셨으면 좋겠어요^^

비로그인 2007-07-23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별아씨의 말들이 가슴에 와서 박히는 군요. 솔직히 김별아씨의 책을 주문할라고 하면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와서 항상 다음으로 미루곤 했답니다. 확실하게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망설여 졌었는데.. 그런 망설임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Hani 2007-07-23 19:57   좋아요 0 | URL
책을 고를때보면 꼭 그럴 때가 있어요. 그래서 어떨 때는 조금 빨리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좀 늦게 만나기도 해요. 책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만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