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칠수), 안성기(만수) 주연의 영화로 더 알려진 <칠수와 만수>. 영화를 본 기억은 없지만 공연 소식을 들었을때 왠지 모르게 끌리는 연극이 있는 법. 그런 연극은 그냥 봐줘야된다. 책이든, 영화든, 사람이든 꽂히는 Feel은 완전 소중한 감정이기에.

연극의 초연 배우는 20여년 전의 문성근(칠수)과 강신일(만수). 지금 중년의 그들을 상상하면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그들에게도 피끓는 청춘이었던 때가, 대학로에서 굶주리며 연극 무대에 섰던 때가 있었을테니까. 그들의 20여년 전 무대는 어땠을까? 그들만의 칠수와 만수. 그 시대의 칠수와 만수가 궁금해진다. 

2007년에 다시 올려진 <칠수와 만수>는 2007년 트랜드에 맞게 재구성되었다. 전체적인 줄거리 구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배우들의  에피소드들은 시대의 변화에 맞게 각색되었다. 중간중간 유머가 지나쳐 개그가 되어버리기도 했지만 무거운 주제의 연극에 한 방씩 터트려주는 웃음은 바로 약방의 감초. 고층빌딩 페인트공인 칠수(전병욱)와 만수(김문성)는, 여동생의 화상 수술을 해주기 위해, 시골에 형님의 합의금 마련을 위해 생활 전선에서 하루벌이를 하는 우울한 인생들이다. 힘겹지만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답답하지만 건물 옥상에서 시원하게 오줌 한 줄기 갈기는 것으로 웃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저 옥상에서 소리 한 번 질렀을 뿐인데 세상은 그들이 생각하기 편한 방식대로 두 사람을 몰아세운다. 자살기도에 협박범으로까지.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맞닥뜨린 현실 앞에 그만 굴복하고 만다. 보고나서 이 먹먹한 느낌. 이 불편한 느낌 때문에 다시 이곳을 또 찾게 되겠지. 보고나서 느끼는 이 불편한 느낌은 사실주의적 연극이 주는 최대 단점이자 장점이다.

너무 무겁지 않을까.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신인배우의 연기가 어설프지는 않을까. 조금 걱정하고 갔었는데, 배우들의 열연 속에 나머지 둘은 어느 정도 묻어간 듯한 느낌이다. 5점 만점에 별점 4점 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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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이나 뮤지컬을 본지도 굉장히 오래된 것 같네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달에 한편정도는 본것 같은데..
그동안 그래도 연극에 대해서 조금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작품은 처음 접해보는 군요. 머릿속으로 무대를 혼자 상상중입니다.^^ 대본이라도 찾아서 읽어봐야 겠네요.ㅎㅎ

Hani 2007-07-25 22:39   좋아요 0 | URL
저도 몇 달동안 못보다가 오랜만에 본 작품입니다. 연극 좋아하시면.. 좋은 작품도 추천 부탁드려요^^

비로그인 2007-07-26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연극이 무진장 보고 싶어지는군요.^^ 저는 아마추어 연극도 종종 보러다니거든요.ㅎㅎ 좋은 연극 찾아내면 꼭~~ 알려드리겠습니다.

Hani 2007-07-26 23:45   좋아요 0 | URL
저도 8월에 볼만한 연극 찾아봐야겠어요. 저도 괜찮은 연극 보게 되면 알려드릴께요^^
 

혼자서 대학로를 자주 찾는 나는, 공연 시간을 기다리며 어딜가서 무얼하나 고민할 때가 있다. 커피 전문점이라도 들어갈라 치면 커피값이 아깝고,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있을려니 조금 시끄럽기도 하고 그랬다. 내가 대학로의 <이음아트>를 알게 된 건 작년 봄에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라는 연극에서였다. 헌책방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 연극에서 무대 소품인 헌 책을 여기에서 협찬했다고 하길래 대학로에 그런 공간이 숨어 있었구나 반가운 마음이 들어 처음 이 곳을 찾았고, 그 이후로 대학로를 찾을때면 으레 한 번씩 들르는 곳이 되었다.

조용하고 아담한 이 공간에는 헌 책과 새 책이 공존하고 있다. 음반들도 있고, 수공예품도 판매하고 있다.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의자들도 놓여있다. 아기자기 오밀조밀 정감가는 공간이다. 책의 수는 많지 않지만 분야별로 나뉘어져서 두루두루 모양새를 갖추고 있으며, 베스트셀러 위주가 아니라서 좋다.(책의 선정 기준은 주인장 마음대로 하던데, 진짜인지) 대형 서점에 가면 여러 분야의 책을 한 번에 다 둘러보기란 어렵다. 여기는 책의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여러 분야를 다 둘러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주인장께서 희곡 낭독회, 연극공연, 저자와의 만남 등 다양한 행사를 주최하면서 책과의 다양한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이것은 서점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책만 파는 공간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문화를 공유하고 나누는 공간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인문사회과학 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서 이러한 공간의 탄생은 가뭄 속의 단비처럼 반갑다.

오래 있다고 나가라는 사람도 없고, 책사지 않는다고 뭐라는 사람은 없는데, 이 곳을 나올 때면 책 한 권이 손에 들려 있다. 주인 아저씨의 주머니 사정이 좀 넉넉해져서 대학로에 이 공간이 오래오래 머물러 주기를 소망한다.

대학로 이음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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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2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멋진 공간이네요. 요즘에 대학로 나들이가 조금 뜸했는데.. 이음아트를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들러야 겠네요.^^

Hani 2007-07-24 13:04   좋아요 0 | URL
다음에 대학로에 가시면 꼭 한 번 들러보세요. 저도 이음아트에서 하는 행사에는 한 번도 참석 못했는데, 괜찮은 행사도 열리니까 들려보시구요^^

웽스북스 2007-11-17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도 이음아트 좋아해요 ^^

Hani 2007-11-19 01:20   좋아요 0 | URL
대학로 공연 보러 갈때면 꼭꼭 들르는데.. 요즘은 한참 못 간듯해요. 좋은 행사들도 많이 기획하고..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이라서 저도 넘 좋아해요^^
 
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던 책이라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얼마전 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해서 책장에 모셔두고는 <논개>를 막 읽고나서 임진왜란이 내 머릿 속에서 잊혀지기전에 이 책과 눈이 맞았다. 책과 책사이에 짜릿한 만남이 있는데, 내가 읽은 한 권의 책이 다른 책과 만날 수 있게 소개팅시켜 줄때가 아닌가 싶다. 난 소개팅은 개인적으로 별로인데, 책소개팅이야말로 적극 환영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8명의 조선의 왕들은, 국사 교과서나 아니면 TV 사극을 통해서 어설프나마 조금의 지식을 접해보긴 했다. 그러나 국사 교과서에서는 왕의 순서대로 몇 대 임금은 무슨무슨 업적을 남겼다는 단편적인 사실만을, TV사극에서는 한 사람의 왕이나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 자세히 보여주긴 하지만 극의 흥미때문에 덧붙여진 내용이 많을테니 어디까지를 사실로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나같은 역사공부 초보자들에게 추천해줄만한 책이다. '독살'이라는 공통의 의혹에 둘러싸인 왕들을 둘러싼 조선 역사 공부는 흥미진진했다. A4지 한 장에 왕을 순서대로 적고 왕과 왕 사이의 관계와 큰 사건들과 주변 인물들을 메모하면서 그 동안 온사방으로 흩어져있던 지식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이 책을 읽고, 문득 김훈의 <남한산성>이 읽고 싶어졌다. 이 책에서 '병자호란'을 읽으면서 그랬다. <남한산성>은 나를 또 어떤 책으로 이끌게 될까? 책의 세계는 이래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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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선왕 독살사건(부제; 누가 왕을 죽였는가)
    from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2007-11-14 04:14 
    목차 개정판에 부쳐 1. 대윤과 소윤, 그리고 사림파 사이에서(제12대 인종) - 이질 증세와 주다례 폐비 신씨와 두 윤씨 왕후 서른다섯 중년 왕비의 출산 백돌아! 백돌아! 홀로된 첩과 약한 아들을 어찌 보존하겠소 문제의 '주다례' 1년을 넘기지 못한 임금의 장례식 곤장이 다리보다 더 굵으니 문정왕후를 다시 보겠구나 2. 방계 승통의 콤플렉스와 임진왜란 속에서 (제14대 선조) - 중풍과 찹쌀떡 을축년에 하교받은 하성군 누가..
 
 
파란토마토 2007-11-14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책 정말 재밌죠~~~~~~!!!!!!!!!!!!!!
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더랬어요.ㅠㅠ
이덕일씨의 사관 삐닥하지만 재밌는 건 사실이에요.^^

Hani 2007-11-16 14:11   좋아요 0 | URL
역사에 만약에~ 라는 가정은 성립되지 않지만 만약에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는 지금과 다른 모습일까? 라는 의문의 꼬리를 자꾸 달게 되네요. 모 케이블 방송에서 <정조암살 미스테리8일> 을 방송한다고 하네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파란토마토 2007-11-14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트랙백 걸고 갑니다.^^

Hani 2007-11-16 14: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며칠 전에 Y모 인터넷 서점에서 주최하는 김별아 작가와의 만남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신청 마지막날 우연히 알게 되어 겨우 신청하고, 작가님께 하고 싶었던 질문들 몇 가지를 싸이트에 올렸다. 운이 좋았던지 당첨 SMS가 날라왔다. 지난번 도서전에서 박완서 작가님 이후에 내 생애 두 번째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조금 늦게 도착한 강연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김별아 작가가 무대 앞에 섰다. 행사는 작가의 강연회와 사인회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1시간여의 강연회에서는 독자들이 인터넷에 올린 질문들을 위주로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마지막에 몇 가지 즉석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1시간의 강연 동안 작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동안 소설에 대해, 작가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이 많이 해소되었고, 작가 이전에 김별아라는 한 사람에 대해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작가의 학구적이고, 지적인, 완벽주의자의 이미지. 역시나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실은, 그녀의 방대하고 폭넓은 자료 수집과 공부에 있었던 것이었다. 관련된 자료는 무조건 닥치는 대로 읽고, 한 단어를 쓰기 위해 1권의 책을 통째로 읽고, 그 자료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정리한다고 한다. 공부를 끊지 못해 내가 죽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때까지 계속 공부한다는 그녀. 도저히 끊지 못하겠다라고 하는데 그래 너 잘났다고 코웃음 치지 못했다. 그녀 자신도 재수없게 생각하시겠지만 저는 취미가 공부에요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 할 줄 아는게 공부랑 글쓰는 거 밖에 없어서 작가가 되었고, 10여년 넘게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도 꾸준히 그 자리에 머물렀고 앞으로 해야할 공부가 너무 많다고 얘기하는 김별아 작가.

출판된 자신의 책을 처음 받았을때 어떤 느낌이 드냐는 질문에는, 보람과 성취보다는 허전하고 우울해진다고 한다. 스스로를 일중독자라고 얘기하면서 한 권의 책을 막 끝내고 일을 하지 않고 잠깐 쉴 때가 더 힘들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다소 장황하고 설명적인 문장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과거의 인물을 현재의 인물처럼 독자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은 욕심에 그렇게 쓰게 되었다고 했으며, 순우리말 사용에 대해서는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다 찾아보고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역사와 문학과의 경계를 묻는 질문에는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최대한 정사를 훼손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외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투영해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했다고 얘기했다.

김별아 작가의 안티팬들이 밝히는 싫어하는 이유를 보면, 모든 것을 자세하게 장황하게 설명해줘서 답답하고 지루해서 짜증이 난다. 또 이건 역사적 사실을 쓴 것이지 소설이 아니다. <미실>에서의 무너진 성도덕과 지나친 성적 묘사에 대한 불편함, <논개>에서의 역사적 사실의 전달의 과잉으로 논개가 없어졌다. 대충 그 정도로 요약. 하지만 그 안티팬들도 마지막엔 작가의 역사공부와 우리말 공부에 존경을 표한다고 덧붙인다.

내가 그녀를, 그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 모든 것을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주고 더듬어주고 들려줘서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좋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자근자근 설명해주어서 좋다. <미실>에서 문화적인 충격 속에 다른 세계를 알 수 있어서 좋았고, 대담하고 섬세한 그녀의 문장이 지루하지 않다. <논개>에서 러브스토리에 대한 기대에는 만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시대를 통해 한 인물을 알고, 더 잘 이해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도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부모님을 닮기도 하지만 시대를 가장 많이 닮는다고. 그래서 한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그가 살았던 시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이 그 시대에 나올 수 없는 인물이기에, 그 시대를 극복했기에 존경한다고 얘기했다.

강연회를 처음 시작하면서 작가가  했던 이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10년 동안은 뒤돌아보지 말고 꿀어라. 10년 동안은 해보고나서야 내가 가야할 길인지, 포기해야하는 길인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얘기를 했다. 재능보다는 노력을 믿는다라는 말에 나도 자그마한 용기를 내어보았다.

오늘 작가와의 만남은, 혼자 읽는 책읽기에서 함께읽는 책읽기로서 나의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오늘 보여주었던 작가의 자신감과 당당함과 솔직함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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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7-22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 동안.^^ 긴 시간이네요. 저도 열심히 해야겠죠. 저도 노력을 믿습니다. 김별아 작가의 글은 읽어 본 게 없는데,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드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Hani 2007-07-22 23:36   좋아요 0 | URL
저도 어떤 일을 시작하고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지레 좌절하고 포기하고 했는데, 작가의 말에 새삼 부끄러워지더라구요. twinpix님도 화이팅하시구요, 김별아 작가의 책도 기회가 되시면 만나보셨으면 좋겠어요^^

비로그인 2007-07-23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별아씨의 말들이 가슴에 와서 박히는 군요. 솔직히 김별아씨의 책을 주문할라고 하면 다른 책들이 눈에 들어와서 항상 다음으로 미루곤 했답니다. 확실하게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망설여 졌었는데.. 그런 망설임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Hani 2007-07-23 19:57   좋아요 0 | URL
책을 고를때보면 꼭 그럴 때가 있어요. 그래서 어떨 때는 조금 빨리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좀 늦게 만나기도 해요. 책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인연이 있다면 언젠가는 만나지 않을까요...? ^^
 
추천하고 싶은 일본소설 베스트는?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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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선물로 받은 책인데, 책꽂이에 한참 묵혀두다가(선물 준 남자친구에게는 미안해요) 비오는 날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지(밤하늘의 달과 별그림)인데, 비오는 날 문득 꺼내보고 싶었다. 에쿠니 가오리가 쓴 책은 이제까지 딱  한 권,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간결한 문체는 읽기에 편안했고, 적당한 분량은 읽기에 지루하지 않았지만 책을 읽는내내 마음이 불편했다고 해야하나. <반짝반짝 빛나는> 또한 간결해서 술술 읽어 나갈 수 있었지만 역시나 뚝뚝 끊어지는 듯한 그녀의 문체와 무미건조한 묘사는 왠지 정이 잘 가지 않는다. (나는 간결하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에 끊어지지 않고 호흡을 참으면서까지 읽고 싶은 그런 문체를 좋아하는 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마치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그들을 지켜보면서 작은 소리와 움직임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조마조마해 하고 있었다. 호모남편 무츠키와 알코올 중독 아내 쇼코와 남편의 남자친구 곤. 이 세 명은, 자기의 주어진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서로의 관계를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내인 쇼코는 매일밤 남편의 침대를 다림질하고, 남편인 무츠키는 쇼코의 우울증세를 짜증없이 다 받아주며 자상한 남편이며, 곤은 그런 그들의 결혼 생활을 축복해주고 있다. 쇼코는 무츠키를 위해 가끔씩 그를 남자친구 곤의 집으로 보내주기도 하고, 무츠키는 쇼코를 위해 쇼코에게 그녀의 옛남자친구 하네기를 만나게도 해준다. 그리고 곤은 쇼코와 친구가 되어 무츠키가 없는 동안에 쇼코를 만나기위해 집으로 오곤 한다. 그들이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방식이, 보통의 평범한 우리의 그것과 다르기에 그래서 마음으로 머리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읽는 내내 힘들어졌나보다. 마주보고 있어도, 옆에 나란히 서있어도 타인으로 느껴지는 쇼코와 무츠키가 나만 안타까운걸까. 괜찮다고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하는 쇼코와 무츠키의 결혼 생활이 나만 불안한 것일까. 그 옆에 서있는 곤을 나만 이해할 수 없는 걸까.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나서도 쇼코와 무츠키, 곤은 여전히 서로의 관계를 인정하고, 보듬어주면서 의지하며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한 명도 상처받고, 울며 떠나가지 않기에 소설의 결말은 분명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난 그 잔잔해진 호수에 작은 바람이라도 불어 그 평화가 깨어지지 않을지 끝까지 조심스럽기만 하다. 나는 그들의 사랑의 방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억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잔잔해진 호수에 바람이 불지 않기를 바라기보다는 그 바람을 잘 이기고 지금처럼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다시 잔잔한 호수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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