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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건 중학교 2학년 쯤 이었던 것 같다. 학급 문서에서 발견한 이 책은 나의 독후감 숙제 사냥감이 되었다. 긴 소설책도, 어려운 역사, 교양책도 아닌 읽기 쉬운 수필책이니 식은 죽 먹기 아닌가. 게다가 제목으로 대표되는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라는 짤막한 글은 그 내용 또한 교훈적이니 독후감 숙제 사냥감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1등 제일주의가 판치는 우리 사회를 살짝 비판하고, 꼴찌에게도 큰 환호와 격려를 보내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뭐 그쯤으로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이 책을 통해 박완서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되었다. 진심으로 이 책을 인상깊게 읽어서였던,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어서였던 박완서라는 분은 내게 선명한 기억을 남겼다. 그 뒤에 나는 그 당시 유행하던 책대여점에서 그 이름 석자를 또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때 빌려 읽었던 책이 몇 년전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어 유명해졌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였다. 시골에서 보낸 작가의 유년기는 역시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낸 나에게 큰 동감과 재미로 다가왔다. 그 후에도 책대여점에서 선생님의 여러 책들을 빌려 읽었다. 그게 중학교까지의 이야기이고, 고등학교 3년 동안은 책과 거의 담쌓고 지냈기에 책은 잊고 지냈다. 대학생이 된 후에 선생님의 신간이 나오면 뭐에 이끌린양 자연스럽게 사게 되었고, 그 분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분에 대한 마음을 키워갔다. 그렇다고 그 분의 책을 모두 소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요, 그 분의 책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 분은 나의 마음 속의 작가이고, 참 닮고 싶은 분이다. 불혹의 나이에 등단하셔서 일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시는 그 꾸준함과 성실함이 늘 선망의 대상이다.

이런 내게 그 분을 알게 된 이 책이 얼마나 고마운지. 얼마 전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그 분을 뵙고 이 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몇 주전 도서전에서 그 분이 <저자와의 사진 한 장>이라는 이벤트 행사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선생님의 건강상의 이유로 100명 한정이었는데 다행히 나는 70번호대를 받았다. 기다리는 1시간 반 동안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 나는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양볼이 발그레,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연신 시계를 보았다. 드디어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자그마한 체구에 연약한 모습이었다. 저 가얄프고 작은 분에게서 어찌 그 많은 것들이 쏟아져나왔는지.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영광스런 기회인데, 꼭 한 말씀 드려야지. 콩닥콩닥 드뎌 우리조 다섯 명이 찍을 차례다. 선생님 옆에 자리를 잡았건만 긴장했는지 뻘쭘한 자세로 그만 찍고 말았다. 자세를 낮추고 손이라도 잡을껄, 팔짱이라고 낄껄. 후회해도 이미 소용없는 일.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다.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나오던 길을 멈추고 다시 돌아가 악수를 청하고 웃으면서 "선생님, 건강하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상의 말은 없는 것 같았다. 행사가 끝나고도 나는 선생님의 행사장을 완전히 빠져나가실 때까지 뒤를 쫄쫄 따라다녔다. 이 때의 그 벅참과 환희는 내게 큰 감동이 되었고, 큰 힘이 되어주었다.

10여년 만에 다시 읽은 이 책은,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나는 글도 있고 전혀 처음 읽는 듯한 글도 있었다. 고향이야기나 어린시절 이야기는 시대와 세월을 초월해서 여전히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여기 수필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글들인데,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고, 요즘 세대에 지금 시대에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는 그 시대의 향수쯤으로 여겨두자. 너무 편애가 드러나는 건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실은 좀 지루한 면도 있었다) 또 젊은 세대를 꾸짖거나 여자는 이래야 한다고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역시 그 분도 어쩔 수 없는 고지식한 어른이시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독후감 때문에 감명깊게 읽어야 했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는 지금은 나에게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중학생인 독후감 숙제를 앞두고 있었던 내가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통한 따뜻한 사회 만들기에 의미를 찾았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잠재된 환호에의 갈망"이 크게 다가왔다. 누군가에게 무언가에 진심어린 환호를 보낸적이 언제였던가. 과연 있기나 했었나. 그렇게 생각하니 답답한 마음을 더 커진다. 조만간 이 잠재된 욕망을 폭발시켜줄테다. 정 안되면 야구장이라도 가서 소리질러 볼 참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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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7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완서님 너무 좋아하는 작가분입니다.^^ 정말 반갑네요. 제가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시대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박완서님의 수필을 놓칠 수가 없지요.ㅎㅎ 저의 리스트에 쏙~ 집어넣습니다.
박완서님을 직접 뵈었다니 너무 부럽습니다. 저도 한번 만나뵙고 싶어요~~!

Hani 2007-07-17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짱돌님// 반갑습니다. 저도 박완서님을 언제 한 번 뵐 수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좋은 기회가 있어서 뵙게 되었어요. 짱돌님도 꼭 뵐 기회가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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