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길 인생의 길 -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실천적지식인 12명의 삶과 학문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남의 인생에 대한 관심은 자기 인생에 대한 간접적인 관심이 아닐런지...그래서인지 나는 책을 보게되면 저자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편이다. 만약 저자에 대한 소개가 제대로 되 있지 않은 책은 좀 불성실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책은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의 표현물이고 그 지식은 그 사람의 인생 역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출신지와 나이 그리고 그 사람의 인생의 고비와 하는 일에 대한 저자의 생각 등을 객관과 주관을 혼합하여 잘 정리한 형태의 저자 소개를 좋아한다. 성의 없이 간판 몇 개만 기술해 놓았다거나 일부러 나이나 출신지 등을 숨겨 버린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분발과 새로운 희망을 창조해 내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유명 인사나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인 경우 그 사람이 털어놓는 사적 경험담이나 이면에 숨겨진 야사 등은 퍽 흥미를 돋우게 마련이다.

이 책은 12명의 진보적이고 실천적인 원로 역사학자들을 소장 학자들이 만나서 대담한 것을 모은 대담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학자의 사명이 시대의 진실에 대해서 적극적인 반응을 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학문은 한 시대가 지나고 난 다음에, 아니면 몇 세기가 지나고 난 다음에야 평가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해도 의미있고 중요한 일은 매우 많다고 본다. 퇴계와 남명을 본다 해도 당대에는 적극 시대에 개입하지 않는 처사의 삶을 살았지만 후학 양성을 통해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을 놓고 보면 오히려 얕은 지식으로 세상에 나가 휩쓸리거나 굴절을 당하기보단 차라리 자신의 학문세계를 온축시켜서 학통을 전하여 발전시키는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학자들의 삶이 주는 메시지에 대해 나는 오히려 거부 반응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 담긴 인사들의 삶이 결코 가볍지는 않다는 것에 유념한다. 어두운 시대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랄까 그런 것에 대해 과감하게 도전한 지식인의 모습에선 절로 존경심이 생기는 그 무엇이 있다. 내가 보기에 학문적인 업적이나 어른으로서의 품위도 지니지 못한 무수한 교수들에 비하면 이들의 업적은 괄목할 만한 뚜렷한 성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송건호나 리영희는 학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언론인에 가까운 면이 있는데 그래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분명한 학적 성과와 실천이 있다고 본다. 이우성이나 임창순, 조동걸은 평소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 그들의 담백한 얘기를 듣는 것이 꽤 즐거웠고 최호진이나 주종환을 통해서는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민석홍이나 강만길,차하순,이상희에 대해서도 관심깊게 읽었다.

아버지 세대이자 우리 학문의 여명기에 해당하는 이들의 삶은 많은 생각을 해 주게 한다.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을 전후로 학문적 성장기를 보낸 이들이 그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자신의 길을 걸어 갔는지, 매우 흥미롭고 많은 교훈을 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구 테마를 찾고 또 그것을 진전 시켜 나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일종의 학자들의 성공시대라고 할 수도 있는데 ..보편적으로 공감하고 교훈을 주는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특히 리영희의 대담은 많은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내가 좀 보수적인지는 몰라도 이효재에 대해서는 많은 거부감과 저항감을 느꼈다. 그 구체적인 것에 대해 정리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중요한 무엇을 빠뜨리고 있는 것만 같은데..언제 한번 차분하게 재독하고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한편 관련 서적을 통해 최근 여성학계의 동향에 대해 파악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성격은 역사 문제 연구소의 성격인 것 같은데..약간 시각을 달리한 단체나 개인의 출판물을 접해 보고 싶다. 그리고 문학의 길 인생의 길이라든가 뭐 이런 책이 한 번 나오면 좋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이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이 팔려 나갔고 특히 우리 나라에선 장기 베스터 셀러가 되고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어떤 이는 이책을 열 번은 읽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하루키 소설에 매료되어 일본어를 공부했다고 하니.. 그런 독자의 반향이 궁금해서 서평들을 보니까 뭔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독자들이 진정으로 감동을 받고 공감을 한 건 사실인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삼각 관계와 그 관계의 변화적 전개, 그리고 관계 맺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마침내 혼자 남아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음..그렇구나' 정도이지 뭐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 본다. 다만 유머스럽고 웃음을 유발하는 문장들이 잦고 더 이상 숨길게 없는 성묘사가 책을 재밌게 만들어 계속 읽어 나가게 한다고 본다. 확실히 性의 나라 출신 다운 면이 있는데 이런 점은 우리 젊은 세대들을 포함하여 세계적인 추세라고 본다.

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우리 젊은사회의 문화는 급속도로 가볍고 경쾌하고 즉물적으로 변해 갔으며 개인은 더욱 고독해 갔다. 사회니 이념이니 역사니 하는 담론들은 실효성을 잃고 그 자리에 개인의 사소한 문제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이다. 실제로 사회나 이념의 문제는 철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통해서도 진지하게 논의 될 수 있지만 연애나 고독 등의 소재는 문학이 아니면 그 미세한 것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속도가 빠른 사회에서는 반성의 여유가 없으니 어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 해결하는 것 보다는 그 때 그 때의 순발력이나 상황 논리가 중요해 지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개인은 더욱 고독한 존재로 남고 그에 대한 공감을 찾아 위로 받으려고 하기 마련이다.

이 소설은 나오코, 미도리를 주요 인물로 해서 나가사와,하스미 레이코, 돌격대 등 극 소수의 사람들과만 정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와타나베의 사랑과 섹스 그리고 고독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

사랑과 섹스 고독이야말로 20대의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절실하고 내면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바로 이점 때문에 독자들은 하루키가 채워 놓은 호수에 들어 와서 자기 나름의 물고기를 잡아 가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저녁 노을이 그것을 바라 보는 사람에 따라 무수한 의미를 지니는 이치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만든 하루키의 안목과 능력은 상당하지 않나 평가 된다.

나는 지금 30대 중반이지만 이 소설을 7,8년 전에만 읽었어도 지금과는 매우 다른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이 책은 사춘기 시절에는 섹스는 들어오지만 내면적 세계가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고 30대를 살고 있는 사람은 이미 안정이 되어 젊음의 열망같은 것을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실연을 당했거나 알지못할 무력감이나 허무감에 빠져 있는 빠져있는 20대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된다.그 문제의 해결도 작가가 선물해주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독자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마치 유능한 상담자는 상담하로 온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해 주는 것일 뿐인데도 상담하러 온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그들의 반응을 틈틈이 눈여겨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술단지와 잔을 끌어 당기며 - 이문열 중단편전집 6 (양장본)
이문열 지음 / 아침나라(둥지)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생각하기로 소설은 신문처럼 즉각 시대를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역사나 철학논문처럼 시비나 가치를 따지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소설은 소설 나름의 주된 존재 의의가 있다고 본다. 내 경우에는 대개 마음이 심란하거나 우울하다든가 세속 삶에 상처받고 집에서 자신을 추스리고 있을 때 주로 많이 읽게 된다. 재미 반 수양 반 그런 셈이다.

전에 부터 이 작가에 대한 혹평을 많이 들어왔다. 어떤 이는 '거지발싸개 같은 글 '이라고도 하고 '보수 반동 '이라고도 한다. 또 작년 여름에는 상여 행렬을 짜서 철모르는 어린 것에게 작가의 사진을 들려서 부악문원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하는 장면을 우연히 텔레비에서 봤다. 또 독자 서평들을 보니까 혹자는 '밥맛없는 이문열'이라고도 하고 '레드 컴플렉스'니 어쩌구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들 한 마디씩 거든다.

겉으로 드러난 평만을 보면 부정적 인식이 높은 셈인데... 정말 많은 독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나는 의심한다. 그리고 그런 평은 근거 있는 비판이나 비난이라기 보다는 소설의 본질적 측면과는 좀 거리가 있는 원색적 비난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된다.

이 책은 중 단편 모음집으로 단편 중편을 읽기 편하게 엇갈리게 실어놓았는데 단편 셋에 중편 셋이다. <김씨의 개인전>은 창조적 사유가 없는 노동은 전혀 생산성이 없을수도 있다는 주제를 다룬 것으로 노동만이 생산을 한다는 논리를 일거에 무색케 하는 문제적 테마이나 약간 소품이고 문체가 희화적이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사유의 모티브는 주고 있고 <달아난 악령>은 80년대가 과연 과장과 미화의 대상일 뿐일까 하는 물음이었다는 작가의 변처럼 강렬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작품도 이념을 았던 사람들이 그의 보수성을 논하기 이전에 자신들의 문제를 돌아봐야 할 대목인 것 같은데,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 전에 나온 사로잡힌 악령과 견주어 생각해 보면 더 큰 울림이 있다.나는 많은 공감을 한 작품이다.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술단지와 잔을 끌어 당기며>는 정부와 언론사의 싸움에 끼어 들었다가 시비에 희말려 귀향한 작가의 자전적 소재를 다룬 것인데 우선 문체가 특발하다. 가사체의 흥겨움과 대구로 잘 조직된 문장에서 우러나는 율동감은 빠른 속도감과 함께 감흥을 촉발한다. 전체적인 구도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왔지만 취옹정기나 북산이문,주덕송 등의 문장구절과 분위기, 맛을 잘 살려 쓴 글이고 상량문도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다. 고문진보에 대한 교양을 이렇게 참신하게 작품화시킨것은 매우 반가우면서도 높이 평가한다. 글 내용에 자기 변명을 한 부분과 상대를 공박한 부분들이 논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작품으로 잘 처리 되었다고 본다.

작가도 이 정도의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은 문제작이랄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작품으로 좀 설익었고 지루한 감이 있다. 그리고 과거 현재를 오가는 대목도 어쩐지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들고..<그 여름의 자화상>은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단편이다.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솜씨하며..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하늘길>은 동화로 쓴 것인가 본데..이문열 작품 중에서 가장 특이한 면이 있었다. 결말이 좀 이상하지만 이 정도의 구상을 하고 서사를 짜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문열의 작품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읽을 때는 놀랍고 전율감이 있는 내용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안정간이 오면 예전에 읽었던 내용에 다시 함께 섞여서 새로운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작품들은 단숨에 읽히는 흡입적 매력은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주제가 다층적이고 복잡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 좀 달라진 것 같다. 老當益壯이라고 더욱 묘미가 생긴것 같은 점이 이 작가의 변한 모습이 아닌가 한다.

독자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와 꿈을 되찾아 준다면 그건 작가로서 매우 보람있는 일일게다. 세상에는 재미 하나라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작가여! 좋은 소설 많이 쓰고 힘내기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 지음 / 푸른역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 사회 전반적으로 볼때 돈을 많이 가진 부자들이나 정치인 법조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존경을 받고 있다기 보다는 극심한 경멸과 냉소를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나라 발전을 위해서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욕을 하는 사람의 자질이 문제가 아니라 욕을 듣는 사람의 처신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대로 욕을 할 만큼 도덕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도 많은 것 같지 않으니 바로 이점이 심각한 문제이다. 사회 전반의 가치 혼란과 도덕 붕괴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고 본다.

얘기를 약간 바꾸어서 오늘에 계승되고 있는 민족 문화 내지는 전통 문화라는 것도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탈춤이나 농악 등 서민 층의 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 선비 문화, 내지는 양반문화라 표현할 수 있는 전 시대의 주류적인 문화는 거의 전승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들의 문화가 주로 문자기록 문화로 되어 있어 한문이라고 하는 언어의 장벽에 막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나라를 망하게 한 대상자로 인식되고 좌익 측의 이념적 공세에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서구화라는 이름으로 붕괴되고 78십년대에는 또 민중론이 풍미하여 의도적으로 외면 당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 그들의 문화도 공과 실을 정당히 평가 받을 수 있는 균형감 있고 안정감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본다.

이 책은 부도덕한 졸부의 시대가 가고 제대로 된 상류층이 나와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하는 저자의 말처럼 건전한 상류층 형성에 대한 측면과 민족문화의 유지 전승, 발전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상당한 모티브를 제공해 줄 책이라고 나는 의미를 부여해 본다.

90년대 초반에 김종록이 소설 풍수를 통해서 그리고 최창조 교수가 풍수 이론을 통해서 우리 사회 일각에 상당한 풍수 붐을 일으켰고 지금은 영남대에 풍수학과까지 설치되었으니 이제 제도권 학문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인데, 이 책의 저자 역시 15년간에 걸쳐 한·중·일 삼국의 600여개 사찰과 암자를 현장답사하고 재야에서 활동하는 기인, 달사들과 교류를 하였다고 소개한 것처럼 풍수에 대하여 오랬동안 내공을 쌓아온 사람이어서 그런지 상당한 지면을 풍수에 대한 얘기로 할애 하고 있는데.. 이점이 이책의 또다른 특징이다. 보는 이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있고 흠이 될 수도 있겠는데, 나는 내용은 좋지만 책의 전체 주제와 흐름상 너무 많은 지면을 차지하여 비중이 커지는 바람에 배보다 배곱이 커진게 아닌가 한다. 좀 압축적으로 살짝 곁들이는 형식이면 무난했을 법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고 특권 계층의 솔선수범이 로마를 천년이나 가게 해 주었다고 하는데, 이 책에서 다룬 명문가에는 그 점이 돋보인다. 경주의 최부잣집은 흉년에는 땅을 사지 않고 근처 백리 안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이 전하여 실천되었고 안동의 학봉 김성일 종택에서는 수없이 많은 독립 투사들이 배출되었다. 특히 13대 종손 김용환은 파락호로 행세하면서 독립자금으로 전재산을 바치는 것도 모자라 외동딸의 농을 해 오라고 사돈집에서 준 돈마저 독립 자금으로 쓴 것을 소개한 일화에서는 참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또 5대에 걸쳐 화가를 배출한 소치(小痴) 가문이라든가 2만권의 장서를 갖추어 기증한 대구의 남평문씨 가문, 직언으로 금부도사가 세 번이나 체포 하러 찾아 온 의성 김씨 川前 종택, 지조론의 조지훈을 비롯하여 조동일,조동걸,조동원 등을 배출한 경북 영양의 호은 종택 등 모두 열 다섯 명가들의 이야기엔 깊이 새겨볼 대목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접빈객 등으로 식자층과 주위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아 각종 민란이나 육이오 등을 거치면서도 집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흑백으로 실어 놓은 사진들은 여유를 주고 현장 답사와 인터뷰는사실감을 준다. 아이디어도 좋고 자기에게 맞는 책을 적절리 잘 썼다고 본다. 읽다가 피곤해서 좀 쉬려다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어는새 한 이야기를 다 읽고 마는 그런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변경 12 - 제3부 떠도는 자들의 노래
이문열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읽은 국내의 소설 중에서는 아무래도 이문열씨의 작품이 가장 많다. 수필류도 주의 깊게 읽고 그와 관련된 평론이나 신문 기사와 칼럼도 더러 읽어 보았다. 고정독자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작가라고 하는데 그럴만도 하다.

화가의 그림도 보면 시기에 따라 당시 상황에 따라 작품의 수준이 차이가 나듯이..가수들도 히트 치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듯이 ...이문열 선생의 작품에도 수준 차이는 여실히 드러남을 느꼈다.

내 개인적으로는 황제를 위하여, 젊은 날의 초상, 시인, 우리가 행복해 지기까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리고 금시조 등을 위시한 일련의 뻬어난 단편들... 등이 그의 文才가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으로 보인다. 이 소설들의 특징은 낭만적 경향이 강하고 문장에 불꽃 같으면서도 안개같은 기운이 스미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사람의 아들이나 영웅시대 등은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경향이 강한 주제를 다루어서 그런지 그의 의욕에 비해 솜씨를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만 傳記의 형태를 띤 차원의 소설, 이를테면 선택이나 雅歌 등은 상당 부분 성공하였다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에서 드날리던 그의 전성기 때와는 다른 風格이다. 미로의 날들이라든가 오디세이아 서울 등은 아마도 좀 실패한 소설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변경은 좀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에피소드와 소재들과 소설적 장치들을 구사하였지만 12권이라는 대하 소설의 무게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메리카 제국과 소비에트 제국의 변경에 놓이 우리의 60~70년대 상황과 월북한 아버지를 원죄의식 처럼 둔 어머니와 4남매의 세상살이와 그 의미가 이 소설의 주요 골자인데 늘어진 연속극 처럼 박진감이 떨어졌고 명훈과 인철이 만난 황형과 김선생의 입을 통하여 거듭 강도된 변경이론은 탁월하여 이 소설의 범범한 줄거리를 새 차원으로 승화시키자만 마르크시즘의 계급이론을 완전히 격파해내는 파괴력은 보여 주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다양한 인생 역정을 걸어가는 큰 형님인 이명훈이 광주 대단지 데모에서 앞장을 서는 후반부를 좀 작의적으로 설정해서 그런 것 같지 않나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의도는 아마도 프롤레타리아 의식에 는뜬 명훈과 옥경, 천민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영희의 사이에서 작가의 소설적 자화상인 인철을 그 두 기본 계급의 문제에서 제 3의 길을 모색하는 주변 계급으로 설정하기 위해서 그렇게 마무리가 된 것인듯 하다. 차라리 명훈을 주변계급으로 놓고 인철을 끊임없이 사색하지만 답을 구하지 못하는 탐색자로 설정하였더라면 이 소설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상승시키지 않았을까 아까워 한다. 사실 인생과 세상에 대해 작가가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답을 내리는게 인생이고 세상은 아니라고 본다..

제 3부의 마지막 장인 제 47장의 변경의 한낮에서 죽은 형에게 보낸 兄主前 上書에 이 소설 전체의 주제와 자가의 말이 다 함축 되어 있다고 본다. 소설이 전개되다가 어느 순간 뚝 벼랑으로 떨어지고 느닷없이 작가가 나타나 강의를 하는게 이 대하 소설의 대단원 방식이다. 전체적인 구성을 다시 짜고 좀 더 다이나믹하게 사건을 전개시키고 마지막 부분에서 편지를 그대로 살린다 해도 소설 마무리 방식을 바꾼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 소설의 에필로그도 몹시 궁금한데 좀 배려해 주면 어떨가? 그것도 새로운 감동일텐데...

그렇지만 12권을 재밌게 읽었고 읽는 순간 자주 참지 못할 웃음도 나왔고 인철이 고시 공부를 하러 돌내골에 갔을 때 해소 많은 노인이 한 말 대목에서는 절로 눈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나왔다. 그만큼 작가는 영양 부근의 사투리를 포함하여 그 상황에 맞는 언어와 대화를 실감나게 구사할 수 있고 풍부한 에피소드와 삶에 대한 깊이있는 식견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량있는 작가의 이 작품을 그를 아끼는 독자로서 퍽 아쉬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