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단지와 잔을 끌어 당기며 - 이문열 중단편전집 6 (양장본)
이문열 지음 / 아침나라(둥지)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생각하기로 소설은 신문처럼 즉각 시대를 반영하는 것도 아니고 역사나 철학논문처럼 시비나 가치를 따지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소설은 소설 나름의 주된 존재 의의가 있다고 본다. 내 경우에는 대개 마음이 심란하거나 우울하다든가 세속 삶에 상처받고 집에서 자신을 추스리고 있을 때 주로 많이 읽게 된다. 재미 반 수양 반 그런 셈이다.

전에 부터 이 작가에 대한 혹평을 많이 들어왔다. 어떤 이는 '거지발싸개 같은 글 '이라고도 하고 '보수 반동 '이라고도 한다. 또 작년 여름에는 상여 행렬을 짜서 철모르는 어린 것에게 작가의 사진을 들려서 부악문원 앞에서 시위를 하기도 하는 장면을 우연히 텔레비에서 봤다. 또 독자 서평들을 보니까 혹자는 '밥맛없는 이문열'이라고도 하고 '레드 컴플렉스'니 어쩌구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들 한 마디씩 거든다.

겉으로 드러난 평만을 보면 부정적 인식이 높은 셈인데... 정말 많은 독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나는 의심한다. 그리고 그런 평은 근거 있는 비판이나 비난이라기 보다는 소설의 본질적 측면과는 좀 거리가 있는 원색적 비난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된다.

이 책은 중 단편 모음집으로 단편 중편을 읽기 편하게 엇갈리게 실어놓았는데 단편 셋에 중편 셋이다. <김씨의 개인전>은 창조적 사유가 없는 노동은 전혀 생산성이 없을수도 있다는 주제를 다룬 것으로 노동만이 생산을 한다는 논리를 일거에 무색케 하는 문제적 테마이나 약간 소품이고 문체가 희화적이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사유의 모티브는 주고 있고 <달아난 악령>은 80년대가 과연 과장과 미화의 대상일 뿐일까 하는 물음이었다는 작가의 변처럼 강렬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 작품도 이념을 았던 사람들이 그의 보수성을 논하기 이전에 자신들의 문제를 돌아봐야 할 대목인 것 같은데,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 전에 나온 사로잡힌 악령과 견주어 생각해 보면 더 큰 울림이 있다.나는 많은 공감을 한 작품이다.

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술단지와 잔을 끌어 당기며>는 정부와 언론사의 싸움에 끼어 들었다가 시비에 희말려 귀향한 작가의 자전적 소재를 다룬 것인데 우선 문체가 특발하다. 가사체의 흥겨움과 대구로 잘 조직된 문장에서 우러나는 율동감은 빠른 속도감과 함께 감흥을 촉발한다. 전체적인 구도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왔지만 취옹정기나 북산이문,주덕송 등의 문장구절과 분위기, 맛을 잘 살려 쓴 글이고 상량문도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다. 고문진보에 대한 교양을 이렇게 참신하게 작품화시킨것은 매우 반가우면서도 높이 평가한다. 글 내용에 자기 변명을 한 부분과 상대를 공박한 부분들이 논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작품으로 잘 처리 되었다고 본다.

작가도 이 정도의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은 문제작이랄수도 있겠으나 내가 보기엔 작품으로 좀 설익었고 지루한 감이 있다. 그리고 과거 현재를 오가는 대목도 어쩐지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들고..<그 여름의 자화상>은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단편이다.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솜씨하며..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하늘길>은 동화로 쓴 것인가 본데..이문열 작품 중에서 가장 특이한 면이 있었다. 결말이 좀 이상하지만 이 정도의 구상을 하고 서사를 짜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문열의 작품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읽을 때는 놀랍고 전율감이 있는 내용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안정간이 오면 예전에 읽었던 내용에 다시 함께 섞여서 새로운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작품들은 단숨에 읽히는 흡입적 매력은 그대로 지니고 있으면서도 주제가 다층적이고 복잡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 좀 달라진 것 같다. 老當益壯이라고 더욱 묘미가 생긴것 같은 점이 이 작가의 변한 모습이 아닌가 한다.

독자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와 꿈을 되찾아 준다면 그건 작가로서 매우 보람있는 일일게다. 세상에는 재미 하나라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작가여! 좋은 소설 많이 쓰고 힘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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