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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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이 팔려 나갔고 특히 우리 나라에선 장기 베스터 셀러가 되고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어떤 이는 이책을 열 번은 읽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하루키 소설에 매료되어 일본어를 공부했다고 하니.. 그런 독자의 반향이 궁금해서 서평들을 보니까 뭔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독자들이 진정으로 감동을 받고 공감을 한 건 사실인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삼각 관계와 그 관계의 변화적 전개, 그리고 관계 맺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마침내 혼자 남아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음..그렇구나' 정도이지 뭐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 본다. 다만 유머스럽고 웃음을 유발하는 문장들이 잦고 더 이상 숨길게 없는 성묘사가 책을 재밌게 만들어 계속 읽어 나가게 한다고 본다. 확실히 性의 나라 출신 다운 면이 있는데 이런 점은 우리 젊은 세대들을 포함하여 세계적인 추세라고 본다.

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우리 젊은사회의 문화는 급속도로 가볍고 경쾌하고 즉물적으로 변해 갔으며 개인은 더욱 고독해 갔다. 사회니 이념이니 역사니 하는 담론들은 실효성을 잃고 그 자리에 개인의 사소한 문제에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이다. 실제로 사회나 이념의 문제는 철학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통해서도 진지하게 논의 될 수 있지만 연애나 고독 등의 소재는 문학이 아니면 그 미세한 것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속도가 빠른 사회에서는 반성의 여유가 없으니 어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 해결하는 것 보다는 그 때 그 때의 순발력이나 상황 논리가 중요해 지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개인은 더욱 고독한 존재로 남고 그에 대한 공감을 찾아 위로 받으려고 하기 마련이다.

이 소설은 나오코, 미도리를 주요 인물로 해서 나가사와,하스미 레이코, 돌격대 등 극 소수의 사람들과만 정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와타나베의 사랑과 섹스 그리고 고독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

사랑과 섹스 고독이야말로 20대의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절실하고 내면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바로 이점 때문에 독자들은 하루키가 채워 놓은 호수에 들어 와서 자기 나름의 물고기를 잡아 가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저녁 노을이 그것을 바라 보는 사람에 따라 무수한 의미를 지니는 이치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만든 하루키의 안목과 능력은 상당하지 않나 평가 된다.

나는 지금 30대 중반이지만 이 소설을 7,8년 전에만 읽었어도 지금과는 매우 다른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이 책은 사춘기 시절에는 섹스는 들어오지만 내면적 세계가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고 30대를 살고 있는 사람은 이미 안정이 되어 젊음의 열망같은 것을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므로 이 책은 실연을 당했거나 알지못할 무력감이나 허무감에 빠져 있는 빠져있는 20대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된다.그 문제의 해결도 작가가 선물해주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독자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마치 유능한 상담자는 상담하로 온 사람의 말을 잘 경청해 주는 것일 뿐인데도 상담하러 온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그들의 반응을 틈틈이 눈여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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