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 12 - 제3부 떠도는 자들의 노래
이문열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읽은 국내의 소설 중에서는 아무래도 이문열씨의 작품이 가장 많다. 수필류도 주의 깊게 읽고 그와 관련된 평론이나 신문 기사와 칼럼도 더러 읽어 보았다. 고정독자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는 작가라고 하는데 그럴만도 하다.

화가의 그림도 보면 시기에 따라 당시 상황에 따라 작품의 수준이 차이가 나듯이..가수들도 히트 치는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듯이 ...이문열 선생의 작품에도 수준 차이는 여실히 드러남을 느꼈다.

내 개인적으로는 황제를 위하여, 젊은 날의 초상, 시인, 우리가 행복해 지기까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리고 금시조 등을 위시한 일련의 뻬어난 단편들... 등이 그의 文才가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으로 보인다. 이 소설들의 특징은 낭만적 경향이 강하고 문장에 불꽃 같으면서도 안개같은 기운이 스미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사람의 아들이나 영웅시대 등은 관념적이고 이념적인 경향이 강한 주제를 다루어서 그런지 그의 의욕에 비해 솜씨를 제대로 부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만 傳記의 형태를 띤 차원의 소설, 이를테면 선택이나 雅歌 등은 상당 부분 성공하였다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에서 드날리던 그의 전성기 때와는 다른 風格이다. 미로의 날들이라든가 오디세이아 서울 등은 아마도 좀 실패한 소설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변경은 좀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에피소드와 소재들과 소설적 장치들을 구사하였지만 12권이라는 대하 소설의 무게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메리카 제국과 소비에트 제국의 변경에 놓이 우리의 60~70년대 상황과 월북한 아버지를 원죄의식 처럼 둔 어머니와 4남매의 세상살이와 그 의미가 이 소설의 주요 골자인데 늘어진 연속극 처럼 박진감이 떨어졌고 명훈과 인철이 만난 황형과 김선생의 입을 통하여 거듭 강도된 변경이론은 탁월하여 이 소설의 범범한 줄거리를 새 차원으로 승화시키자만 마르크시즘의 계급이론을 완전히 격파해내는 파괴력은 보여 주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다양한 인생 역정을 걸어가는 큰 형님인 이명훈이 광주 대단지 데모에서 앞장을 서는 후반부를 좀 작의적으로 설정해서 그런 것 같지 않나 생각해 본다. 작가의 의도는 아마도 프롤레타리아 의식에 는뜬 명훈과 옥경, 천민 자본주의를 대변하는 영희의 사이에서 작가의 소설적 자화상인 인철을 그 두 기본 계급의 문제에서 제 3의 길을 모색하는 주변 계급으로 설정하기 위해서 그렇게 마무리가 된 것인듯 하다. 차라리 명훈을 주변계급으로 놓고 인철을 끊임없이 사색하지만 답을 구하지 못하는 탐색자로 설정하였더라면 이 소설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상승시키지 않았을까 아까워 한다. 사실 인생과 세상에 대해 작가가 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답을 내리는게 인생이고 세상은 아니라고 본다..

제 3부의 마지막 장인 제 47장의 변경의 한낮에서 죽은 형에게 보낸 兄主前 上書에 이 소설 전체의 주제와 자가의 말이 다 함축 되어 있다고 본다. 소설이 전개되다가 어느 순간 뚝 벼랑으로 떨어지고 느닷없이 작가가 나타나 강의를 하는게 이 대하 소설의 대단원 방식이다. 전체적인 구성을 다시 짜고 좀 더 다이나믹하게 사건을 전개시키고 마지막 부분에서 편지를 그대로 살린다 해도 소설 마무리 방식을 바꾼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 소설의 에필로그도 몹시 궁금한데 좀 배려해 주면 어떨가? 그것도 새로운 감동일텐데...

그렇지만 12권을 재밌게 읽었고 읽는 순간 자주 참지 못할 웃음도 나왔고 인철이 고시 공부를 하러 돌내골에 갔을 때 해소 많은 노인이 한 말 대목에서는 절로 눈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나왔다. 그만큼 작가는 영양 부근의 사투리를 포함하여 그 상황에 맞는 언어와 대화를 실감나게 구사할 수 있고 풍부한 에피소드와 삶에 대한 깊이있는 식견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량있는 작가의 이 작품을 그를 아끼는 독자로서 퍽 아쉬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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