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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길 인생의 길 - 학문의 외길을 걸어온 실천적지식인 12명의 삶과 학문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2월
평점 :
절판
남의 인생에 대한 관심은 자기 인생에 대한 간접적인 관심이 아닐런지...그래서인지 나는 책을 보게되면 저자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편이다. 만약 저자에 대한 소개가 제대로 되 있지 않은 책은 좀 불성실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책은 그 사람이 가진 지식의 표현물이고 그 지식은 그 사람의 인생 역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출신지와 나이 그리고 그 사람의 인생의 고비와 하는 일에 대한 저자의 생각 등을 객관과 주관을 혼합하여 잘 정리한 형태의 저자 소개를 좋아한다. 성의 없이 간판 몇 개만 기술해 놓았다거나 일부러 나이나 출신지 등을 숨겨 버린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분발과 새로운 희망을 창조해 내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유명 인사나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인 경우 그 사람이 털어놓는 사적 경험담이나 이면에 숨겨진 야사 등은 퍽 흥미를 돋우게 마련이다.
이 책은 12명의 진보적이고 실천적인 원로 역사학자들을 소장 학자들이 만나서 대담한 것을 모은 대담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학자의 사명이 시대의 진실에 대해서 적극적인 반응을 해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학문은 한 시대가 지나고 난 다음에, 아니면 몇 세기가 지나고 난 다음에야 평가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해도 의미있고 중요한 일은 매우 많다고 본다. 퇴계와 남명을 본다 해도 당대에는 적극 시대에 개입하지 않는 처사의 삶을 살았지만 후학 양성을 통해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을 놓고 보면 오히려 얕은 지식으로 세상에 나가 휩쓸리거나 굴절을 당하기보단 차라리 자신의 학문세계를 온축시켜서 학통을 전하여 발전시키는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학자들의 삶이 주는 메시지에 대해 나는 오히려 거부 반응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 담긴 인사들의 삶이 결코 가볍지는 않다는 것에 유념한다. 어두운 시대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랄까 그런 것에 대해 과감하게 도전한 지식인의 모습에선 절로 존경심이 생기는 그 무엇이 있다. 내가 보기에 학문적인 업적이나 어른으로서의 품위도 지니지 못한 무수한 교수들에 비하면 이들의 업적은 괄목할 만한 뚜렷한 성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송건호나 리영희는 학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언론인에 가까운 면이 있는데 그래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분명한 학적 성과와 실천이 있다고 본다. 이우성이나 임창순, 조동걸은 평소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 그들의 담백한 얘기를 듣는 것이 꽤 즐거웠고 최호진이나 주종환을 통해서는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민석홍이나 강만길,차하순,이상희에 대해서도 관심깊게 읽었다.
아버지 세대이자 우리 학문의 여명기에 해당하는 이들의 삶은 많은 생각을 해 주게 한다.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을 전후로 학문적 성장기를 보낸 이들이 그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자신의 길을 걸어 갔는지, 매우 흥미롭고 많은 교훈을 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연구 테마를 찾고 또 그것을 진전 시켜 나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일종의 학자들의 성공시대라고 할 수도 있는데 ..보편적으로 공감하고 교훈을 주는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특히 리영희의 대담은 많은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내가 좀 보수적인지는 몰라도 이효재에 대해서는 많은 거부감과 저항감을 느꼈다. 그 구체적인 것에 대해 정리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중요한 무엇을 빠뜨리고 있는 것만 같은데..언제 한번 차분하게 재독하고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한편 관련 서적을 통해 최근 여성학계의 동향에 대해 파악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성격은 역사 문제 연구소의 성격인 것 같은데..약간 시각을 달리한 단체나 개인의 출판물을 접해 보고 싶다. 그리고 문학의 길 인생의 길이라든가 뭐 이런 책이 한 번 나오면 좋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