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덕일 / 김영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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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안동지역 답사 여행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청천에 있는 우암의 묘소에 들렀다. 평소 우암에 대한 평가가 노론과 남인에 따라 아주 다르다는 것을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이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다른 책을 주문하다가 우연히 구입하였는데 몇 줄 읽노라니 다른 바쁜일도 내 몰라라 하고 밤을 세워서 한 이틀 걸려 다 읽었다.

그렇게 재미있게 읽게 된 데에는 내가 당쟁사에 대해 관심이 부쩍 는 탓도 있지만 이덕일 선생이 아주 글을 잘 썼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아는 것을 체화시켜 짜임새 있고 흥미롭게 잘 전달해 준다.

이 책을 보면 송시열은 주자의 성리학을 무기로 하여 왕을 위협하고 반대론자들을 탄압한다. 왕을 위협하였다는 것은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자신의 문인들을 배후 조종하여 정치를 요리한 것이고 반대론자들을 탄압하였다는 것은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고 허적을 죽인 일 등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송시열은 북벌론자가 아니라 북벌을 한사코 반대한 인물이며 덕이 어우러진 선비가 아니라 음험한 한 정략가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평전이라고 이름은 붙였지만 이 책은 송시열의 정략적 면묘에 주로 포인트가 맞추어져 있다. 송시열의 학문에 대해서 좀더 깊은 파악이 있어야 그의 행동에 대한 동기 및 인간성, 그리고 행위의 진위가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결론이 좀 약한 것이 이 책의 흠이다. 결론부분에서 이 책의 내용을 다 아우르는 무언가의 비젼 제시라든가 감동적 서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점이 아쉽다.

이덕일의 다른 책을 더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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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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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도올의 책들은 최근에 나온 것일 수록 내용이 알찬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노자철학 이것이다란 책을 통해서 처음 도올을 알았는데,책의 삼분지 일이 자신을 변명하고 스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어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 후 두어권의 책 들을 필요에 의해 읽기는 했지만 굳이 남들에게 추천하고 싶지도 않았고 두 번 읽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필요한 부분만 그 때그 때 발췌해서 보곤 했다.

그런데 재작년 노자를 강의할때 나는 처음 몇 번을 제외하고는 거의 빼놓지 않고 들었다. 텔레비 앞에 상을 펴 놓고, 노트를 해 가면서. 물론 강의 내용에 틀린 내용도 있었고 번역과 인용이 잘못 된 경우도 있었으며 과도하게 남을 비판해서 비난을 부른 점도 있다.그러나 그의 강의는 무엇보다고 재미가 있었으며 짜임이 있었고 문제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흥미를 유발했다. 어쩌면 내가 노자를 이미 숙독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그의 강의는 훌륭했다고 본다.

이어 공자를 강의하는 내용도 나는 주의깊게 들었다. 그의 좋은 점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 아닌가. 굳이 그를 비난하려면 너무도 많지만. 그가 많은 압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한 것은 퍽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한 편으론 논어는 실천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심오한 지식으로 의미있는 것이 아니니 어쩌면 도올의 인격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텍스트 였기도 했으니 필연적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이번에 한 불교강의도 재미있게 들었다. 사실 금강경은 3년전 출판된 직후에 읽은 책인데, 그 때 상당한 감명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며칠 걸려서 틈틈이 다시 읽어보니 그때의 감동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런 생각을 했다. 몇 번이고 읽히는 감동적인 책이 되려면 글이 담담하고 함축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도올 선생의 글은 아주 예리한 면이 있지만 너무 직설적이고 또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의 분량을 잘 조정하지 못해서 글의 감동을 떨어드리는 면이 있어 아쉽다. 그래도 비교적 이 책이 충실한 번역과 해설서의 면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이만한 노력으로 금강경의 대의를 한 번 파악해 본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이 책은 대승경전의 핵심인 금강경을 번역하고 강의 형식으로 풀이한 책이다. 앞 부분에 나오는 문둥이 예기에 이 책의 내용이 다 함축되어 있는데 매우 인상깊은 에피소드이다. 그리고 아상을 버리라는 말이나 제법무아 같은 말은 평생토록 사색하고 깨달아 나가야 하는 숙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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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고 하찮은 것들에 대한 애착 - 안도현의 내가 사랑하는 시
안도현 지음 / 나무생각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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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을 하고 돌아온 이후 휴유증으로 감기를 앓는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서점에 가서 시집 두 권을 골랐다. 이불덥고 배를 뜨뜻한 방바닥에 붙이고 볼려고.참 좋았다. 그냥 아무개의 시집과는 달리 시 선집을 읽거나 감상이 붙은 시집은 시인의 시를 읽을뿐만 아니라 동시에 선자나 감상자의 시선을 겹쳐서 맛본다는 점에서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뒤에 장황하고 현란한 평론이 붙은 글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시에 대해 누군가에게 한 마디 하기에는 참고할만하나 내 개인적 경험으론 오히려 시 읽는데에 방해가 되었거나 억지 해설이 많았던 때문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시들은 그 평자들의 일관된 논리 구조를 뒷받침하기 위해 뽑힌 시들과는 다른 경우가 많았음)

한 곳에 좋은 시들을 모아 놓으니 다들 시를 참 잘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기 당천의 용장들만 뽑아 놓아 그 기세가 천군만마를 대적할 성 싶다. 예전에 남의 시를 보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있었는데 한 편 한 편 좋은 시들만 대해서 그런지 지금 보니 내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적군에게 포로가 된 기분이다. 그러나 행복한 포로 아니가. 한 편의 시 끝에 달린 안도현의 한마디가 좋다. 기왕에 읽어본 시에 대해서는 생각을 견주어 보고 또 읽지 못한 시에 대해서는 주목을 하여 흥미있게 읽게 해 주어 기쁨이 배가 되었다. 우리 유명 시인들이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또 습작기에 즐겨 읽은 작품들이 무엇인지 퍽 궁금해졌다. 어떤 여자가 사랑스러우면 그녀의 모든 것이 궁금해지듯이 . 그런 책을 적절히 출판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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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답사기
위치우위 지음, 유소영 외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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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 천진에 간다. 일주일 가량 북경을 중심으로 곡부와 청도를 둘러볼 예정이다. 외국여행 한 번 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상당한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되고 있다.

이 책은 최근 나의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인데, 뜻밖에 이 책을 읽느라 충만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며 부끄러움이 담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받아든 나는 '답사기'라는 제목에서 우선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나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떠올렸고 이어 허세욱 교수가 쓴 중국문학기행이나 삼국지 역사 기행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과 지난 여름에 본 진순신의 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기행을 상기하고는 마음 한 켠에 군침이 돌아 입맛을 다시며 이 책을 기대속에서 펴들었다.

그런데 나의 그런 기대는 서문을 읽고 동황 막고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당혹감으로 변했다. 나에게 최근 익숙한 기행문이 아니라 감성 짙은 수필이나 소설에 가까웠다. 작잖이 실망을 한 나는 듬성듬성보다가 2부의 강남의 작은 마을들에서부터인가 차츰 책에 몰입하다가 한 장서가의 꿈이 깃든 천일각을 볼때쯤엔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삼일에 걸쳐 책을 읽는 동안 이 책이 눈에 보이는 사실과 역사적 객관적 진실을 다루기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이고 정감적인 면과 개인적인 사유와 감성에 치중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요컨대 이 책은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중국의 문화 개별적 사안에 대해서 쓴 밀도 높은 소설적 구성과 짜임을 가진 수준높은 수필이라고 할 수가 있다.

드디어 이 책의 진면모를 발견하고는 나의 천박한 독서력에 대해 탄식을 하고 다시 1부부터 읽어 나가니 그제서야 얼마나 훌륭한 글인가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둔황 석굴에 배어 있는 슬픔과 비애는 큰 감동을 준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해도 책을 두번 이상은 읽어야 그 책의 맛을 조금은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중국에 가면 진순신이나 유홍준의 시각은 물론 저자 余秋雨의 시각으로 중국문물을 감상할 작정이다. 물론 다녀와서 다시 위치우위의 글을 읽어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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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전 시학의 이해
이병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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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접하고는 한 눈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한 시를 감상하면서 비평에 대한 안목을 높이기 위해 적당한 책들을 찾던 중에 이 책은 다음에 읽어야 할 책과 내가 어떤 것에 대해 사색해 나가야 할지 그 사유의 단서를 제공해 주었다.

이 책은 詩品人品, 情景, 自然, 自得, 風格 등 24부문으로 비평의 큰 갈래를 정한 다음 역대의 詩話 (요즘말로 시에 대한 비평이나 시인들에 대한 자유스런 견해등) 중에서 관련 글들을 뽑아서 번역하고 각 장의 머리부문에 개요를 붙여 놓은 책인데..저자가 직접 번역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대학원 생들이 한 것으로 보인다.(나의 추측임) 군데 군데 오역이 있기는 하나 그런대로 내용을 파악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이런 책을 통해서 방대한 중국의 시화 중에 나름대로 좋은 글(자료는 이병한 선생이 직접 뽑지 않았을까 생각한다.)을 손 쉽게 맛본다는 것은 여간 기쁜일이 아니다. 며칠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아주 즐거웠다.

특히 시를 쓰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쉽고 한시 연구자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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