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을 공부하면서 한송 성백효 선생과 송담 이백순 선생의 번역을 참고하고 중국에서 나온 주석 책 몇과 일본의 한문대계를 참고하여 공부한다. 조선 후기 호산 박문호 선생의 주석은 특히 많은 도움이 된다. 채전방통도 가끔 찾아보는 편이다. 중국책 중에는 13경 주소 중 상서정의와 청나라 때 손성연의 상서고금문주소가 볼만하다. 그러나 최근 나오는 몇 종의 중국책은 내용이 좀 부실한 면이 있다. 시경에 비해 상서는 주석책이 훨씬 적은 듯 하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이 책은 전문가를 위한 책이 아니라 대중 교양을 위한 책이다. 나는 서경의 어느 한 편을 새로 시작하거나 하면 이 책을 꺼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또 워낙 내용이 복잡하여 줄거리가 안 설 때 이 책을 보는데 그 때마다 이 책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의 저자에 대해서 소개가 없어 잘 모르나 아마도 채침의 주석을 잘 반영하여 서경 원문을 충실히 번역했다고 본다. 주석도 없이 이 정도로 내용 파악이 되도록 정리한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서경을 원문을 놓고 공부하는 사람도 한번 통독하면 좋을 것이고 도대체 서경이란 책이 무슨 책인가 하는 궁금증이 이는 일반인도 한 번 읽어보면 별 부담이 없이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주석과 해설이 부족한 것은 아쉬운 일이나 그것은 또 다른 사람의 몫이자 짐일 것이다.
어떤 거대한 산이나 바다를 앞에 두면 막막하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스승인데 스승운이 그다지 없는 사람은 큰 학문의 바다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고 더욱이 효과적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 있어도 인간적인 매개가 있어야 관심이 촉발되어 그 책이 내 책이 되기 때문이다.그러나 한 편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저명한 스승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돌아가신 석학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사승 관계를 통하여 학통을 전수받으면 좋겠지만...그게 그리 쉬운가. 쉬운 길이 있다. 책을 통하는길. 책을 통해 고금의 대 석학들을 만나는 것이다. 다만 거대한 학문을 앞에 대하여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이 책은 문·사·철 및 공구서와 어문류 그리고 자연과학류까지 곁들여 한학을 하면서 읽어나가야 할 책의 정선 목록집이다. 이회 출판사에서 나온 굴만리의 <한학연구의 길잡이>가 경·사·자·집에 대한 소개인데 비해 이 책은 양계초, 호적, 왕벽강, 채상사, 굴만리 이 다섯 석학이 뽑은 중국 고전 필독서 리스트인 셈이다. 책 내용은 바로 그 리스트에 선정된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현재 어떤 판본이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책 맨 앞장엔 그 목록을 뽑은 근거 자료가 있고 맨뒤엔 필독 목록서가 붙어 있다. 나는 가끔 이 책을 꺼내어 내가 얼마나 많은 한문 전적을 알고 있는가 시험하기도 하고 또 모르는 책이 나온면 여기서 길을 찾기도 하고 그런다. 굴만리 선생의 古籍導讀 즉, <한학연구의 길잡이>와 이 책을 자매편처럼 보완해서 함께 보면 좋을 것이다.
나는 한시를 이해하려고 나름대로 여러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을 만나는 순간 내가 정말 한시에 대해 무슨 책을 읽었는지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그 사람이 그런 책을 만날 수 있는 운이 있어야 하는가보다. 사실 이 책은 3 년전 평측에 대해 연구하다가 소개 받은 책인데 부록에 달린 평측부분만 보고 그냥 책꽃이에 꽃아 두었다. 그것은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이 책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다행한 것은 얼마 전 같이 공부하던 한 분이 내 서재에 놀러왔다가 동일 저자의 책 <이두시 신평>을 소개해 주며 이 책을 강력히 권하였다. 나는 그래도 이 책과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읽지 않다가 그 <이두시 신평>을 읽어나가다가 이 저자가 한시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 사람인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눈이 번쩍 뜨여 이 책의 중간 부분을 펼쳐 마음이 내키는 사람의 시를 읽어나가는데… 정말이지 시 번역도 번역이지만 평설이 너무도 탁월했다. 한시를 자유자재로 짓고 또 많은 한시를 외우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말에 대한 감각과 식견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순수 우리국어라든가 또 잘 쓰지는 않지만 그 상황에서 가장 적확한 말을 구사한 솜씨에 경탄을 한다. 저자의 연세를 생각하면 그런 사실이 참 믿기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국문학에 대해 풍부한 이해를 가지고 평설을 해 놓았는데 내가 지금까지 본 한시 관련 책 중에 단연 최고봉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같이 공부하는 후배 몇이 나에게 한시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서 나는 이 책을 소개해 주었다. 정말이지 한시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자신 있게 추천한다.내가 평점으로 별 다섯 개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이 책도 책의 장정이 좀 마음에 안들지만, 그런 사소한 것은 워낙 빛나는 책 내용에 다 묻혀버린다. 나의 불만이란 이런 좋은 책을 왜 하드카바로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기에… 이런 훌륭한 책에 대해 독서 서평하나 없다는 것이 정말 기가 막혀 내가 한 편의 글을 써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오랫동안 책을 초야에 묻어둔 죄’를 씻고자 한다. 손종섭 선생님 곧 바쁜 일이 일이 정리 되는대로 기회를 봐서 가르침을 청하러 문하에 나아갈까 합니다. 부디 옥체를 보중하소서.
두어 달 전 중국 여행을 다녀와서 기력이 소진되어서인지 생활이 좀 힘들었다. 다행히 최근에 몸과 마음을 추스려 공부를 해나가고 있는데 그것은 한시 번역을 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어서이다. 한시번역이 생활의 활력소, 비타민이 되어준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그저께 시집 한 권이 내게 배달되었다. 국민카드 책사랑 이벤트에 당첨되었다면서… 이 시집을 읽노라니 많은 생각이 난다. 예전에 밤늦게 시를 쓰던 일, 외로움을 즐기며 시집을 읽고 외우던 일, 그리고 문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한 없이 얘기하던 그 시절이… 그 시절이 그리워 진다. 그 후에도 가끔 아주 가끔 시집을 사고 그랬는데 요즘은 아주 뜸해진 것 같다. 어쩌면 고만고만한 시인들에 식상해서 당송시를 음미하는 것으로 내 시심이 돌아간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내가 아주 좋아했던 시도 몇 편 있는데 아는 시는 한 삼분의 2 가량 되고 모르는 시도 시인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데 아주 생소한 사람도 두 셋 있다. 박용래의 겨울밤이나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 고은의 눈물 이런 시들은 예전에 아주 좋아했던 시들이다. 이런 시를 여기서 보니 아주 반갑다. 다만 하나 특이한 것은 천상병의 강물이라는 시인데 예전에 천상병 시를 거의 다 읽어 보았는데 오래되어서인지 이 시는 좀 생소했다. 한 번 읽고 무심코 넘어가는데 뭐가 좀 잘못된 것 같아 여러번 읽고 머리도 쥐어짜고 하다가 아하, 천상병의 어투와 표정 그리고 그의 마음이 시의 언어를 타고 강하게 전달되어 왔다. 아, 생각느니, 인생만 깊은 것이 아니라 시도 참 얼마나 깊은 것인가. 한 시인을 통해 시를 소개받아 읽는다는 것은 퍽 재미있는 일이란 걸 느낀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용택 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비슷한 책의 안도현의 코멘트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시의 선정에 대해서만큼은 참 수긍이 간다. 어떻게 보면 중요한 것은 코멘트가 아니라 좋은 시를 가려내는 시를 보는 안목이니까…
최근 정조에 대해서 대략적인 지식이나마 얻어 가려던 생각이 있던 자에 며칠전 이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일반 교양서로 쓰여졌긴 했지만 약간의 의무감이나 목적의식이 없이는 참고 읽어 내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많이 다듬어지긴 했지만 논문투의 문장이 글을 건조하고 지루하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내용에 대해 그 사실을 뒷받침할 근거를 자세히 제시하거나 또 특별히 주석도 달지 않은 책이므로 본격 학술 서적이라기 보다는 일반 교양으로 씌어진 책인데 , 이런 책일수록 끝까지 재미있게 읽도록 자신의 감정과 느낌도 적절히 드러내고 에피소드 등을 이용해서 글에 생동감을 불러일으켰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제 3장의 3. 문화예술의 전개 양상과 성격에서 풍속화를 통해 시대상의 변화를 더듬어 본 글은 퍽 인상에 남는다. 그리고 부록으로 실은 천릉지문이 가장 유익했다. 정조실록에 실린 부록보다 많이 다듬어져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왕의 행장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 글이 계기가 되어 정조실록을 보고 정순왕후와 혜경궁이 내린 행장과 기타 시책문과 애책문도 보고 또 이만수가 쓴 행장도 지금 읽고 있으니 큰 도움을 얻은 셈이다. 한 책을 읽어보면 그 다음 읽어야 할 책을 자연스럽게 알게 해준다는 사실도 새로 환기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