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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평점 :
참 오래간만에 읽어보는 소설이다. 20대 대 때는 참 많은 소설을 읽었다. 재미가 있어 읽고, 친구들과 얘기밑천 삼으려고 읽고, 누가 소개해서 읽고, 의무감으로 읽고, 소설을 습작하려고 읽고 …
그런데 요즘은 1년에 한 두어 권 정도 읽는다. 그것도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며 말이다. 전에는 이문열이라는 대형 스타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들 고만고만한 것 같다. 한 7, 8년 전 쯤부터 박상우, 윤대녕, 신경숙, 은희경 이런 차세대 작가들이 등장해서 관심 깊게 몇 편씩을 읽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나마도 크게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우선 이들의 소설은 나름대로 문채의 미학은 있으나 서사가 너무 약하다는 게 결정적인 흠이다. 빛나고 반짝이고 아름다운 문장은, 아주 흥미롭고 의미 심장한 메시지 속에서 더욱 빛나는데 이들 작가들은 너무 문장 비틀기와 개인적 사념에 의존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몇 편 읽고 나면 좀 질린다. 특히 최윤이나 신경숙 같은 작가가 그런 것 같다. 나는 별 의미도 없는 소설에 이런 저런 의미를 부여하려고 기도하는 평론가들에게 적의감마저 느낀다. 그런 평론가들은 좀 각성하길 부탁한다.
성석제의 소설은 전에부터 관심을 가지고 잡지에 발표되는 소설을 더러 읽어보고 그랬다. 그리고 요즘 인기가 있는 것 같아 한 권 사보았는데 솔직히 약간 실망스럽다. 내가 소설을 쓴다든지 어디 가서 누구와 요즘 소설의 경향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읽는거라면 몰라도, 순수하게 소설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 읽는다고 할 때는 기대 이하란 말이다. 그나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와 '쾌할 냇가의 명랑한 곗날'등의 작품은 조금 재미는 있다. 그 재미라는 것은 말을 해나가는 작가의 입담에서 나오는 것인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은 없는 재미이다. 하다못해 만화 책을 읽어도 잘 된 것은 읽고나면 깊은 감동이 온다.
그런데 이 소설은 작가의 입심 때문에 좀 재미가 있어 그럭저럭 책장은 넘어가나, 다 읽고 나면 아무런 느낌이 없다. 오히려 공허하고 그래서 약간 화가 난다. 특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이문열의 소설 황장군전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어, 심하게 말하면 아류작 같은 인상을 지울 길이 없다. '쾌할 냇가의 명랑한 곗날'도 이문열의 소설 어딘가에 나온 것 같은 모자이크가 느껴진다. 뭘까? 그래 이문열의 과장된 낭만성. 그것이다. 그런데 성석제와 이문열이 다른 건 이문열의 소설은 그 낭만성이 신들린 것 같은 탁월한 문장 속에 깊은 주제를 안고 있는데 반해 성석제의 소설은 주제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뒤의 몇 편은 너무도 가볍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고 어떤 작품은, 내가 꼭 윤리성이나 도덕성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에 해악만을 끼치는 잡담에 지나지 않나 하는 혹평을 하고 싶다. 정녕 내가 직접 소설을 써야 한단 말인가. 몇 편 더 읽어보고 우리 소설계가 도저히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나라도 나서서 좋은 소설을 발표해야만 할 것 같다. 편하게 앉아 남의 소설을 읽으려 했는데 그게 정녕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