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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ㅣ 열화당 미술책방 23
오주석 지음 / 열화당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오주석 선생을 내가 알게 된 것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통해서였다. 간송 미술관에 가끔 전시를 보러 가곤 했던 내가 2000년 여름에 이쪽 방면 전공자의 소개를 받은 책인데, 그 때 메모를 해 두었다가 얼마전에서야 여유가 생겨 읽은 책이다. 왜 그 책을 그 때 읽고 그 사람과 토론하지 못했을까, 깊은 후회가 생긴다.
그 책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오주석 선생이 인상 깊이 남았다. 그래서 즉시 시골로 내려가는 길에 <한국의 미 특강>과 이 책을 사 들고 갔다. <한국의 미 특강>은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다음에 씌어진 책이어서 그런지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침 내가 읽은 책의 순서대로 김홍도에 대해 점점 비중있게 다루고 있었으므로 나는 이 책에 많은 기대를 안고 책을 펴들며 ' 김홍도 흐흐 ' 하는 기분으로 눈을 빛내며 충분히 책에 몰입할 자세를 가졌다. 그러나 나의 흥미는 차츰 떨어지고 인내가 요구되었다. 책을 읽을 때는 인내가 필요한 줄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책의 삼분의 이 정도가 지나면서 나의 인내는 바닥을 드러내고 저자의 서술 태도에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뒷부분은 건성으로 보고 '마무리'를 읽고 나서 이 책에 대한 몇 가지 비판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우선 나는 우리나라의 많은 논문들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다.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우선 글의 전개가 아주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뭐 논문이란 게 재미있는 것이냐?'라고 반문을 제기하겠지만 나는 ' 잘 된 논문은 아주 흥미롭고도 재미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전에 이우성이나 임형택 선생의 논문을 본적이 있는데 글이 아주 논리적이고 정교해서 내용도 그렇지만 우선 문장이 읽을 맛이 났는데, 논문에도 이런 깊은 문장의 묘미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 적이 있다. 우선 글이 군더더기 없이 논리적이고 정확하면서도 간결하고 정교해 지려면 자신이 쓰고자 하는 내용을 몸 깊이 체화해야 가능하다. 그럴 때, 비로소 주석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많은 참고 문헌을 이용하였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지금 쓰고 있는 내용을 완전히 체화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참고문헌이 그만큼 많은 것이야말로 그 글에 대해 생소하다는 반증이 될 지도.
또 하나는 글의 구성상 문제가 있다. '김홍도라는 사람' 항목을 굳이 설정할 필요가 없이 '편년으로 본 김홍도의 생애'와 함께 합쳐 서술해야 보다 단순하고 명확하며 중복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나누는 바람에 책 내용이 산만해졌다. 김홍도의 연보가 비교적 상세하므로 당연히 편년으로 구성하고 불분명한 것은 주석으로 처리하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주석에 대해서 한 마디 하자면 이런 글은 미주로 처리할 것이 아니라 각주로 달아 궁금한 사항을 그 때 그 때 확인하고 넘어가게 배려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상정하는 일반 독자라는 것도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춘 사람이므로 이 글을 읽어내자면 오히려 주석이 있어야 편할 것이기에. 머리 한번 끄덕이면 될 것을 뒷 페이지를 다시 확인해야하는 것은 아주 번거로운 일이어서 독서 속도를 떨어뜨리고 글 흐름을 단절하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인용 시와 문장에 있어 어떤 것은 원문을 제시하고 어떤 것은 생략하고 그랬는데 이정도의 무게 있는 책에서는 원문을 다 제시하는 것이 옳다고 사려된다. 요즘 저자들이 '대중' '대중' 하며 독자의 수준을 아주 낮게 보는 경향이 있으나 그것은 자신들이 글을 시원 찮게 써서 그렇지 글만 잘 쓰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그리고 책 값이 너무 높게 책정되었다. 이 정도 책이면 만 오천원 정도면 충분할 것을 2만 2천원이라니 지나치게 높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나의 기대에 못미쳤지만 나는 이 저자가 앞으로 몇 배는 더 훌륭한 글을 우리에게 선보일 것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나에게 남긴 인상은 깊은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