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雨寄北
      李相隱
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何當共剪西窓燭
卻說巴山夜雨時

밤비에 북쪽으로 편지를 보내며

그대 돌아올 날을 묻지만 기약이 없는데
파산에 밤비 내려 가을 연 못 물이 붇는구나
언제쯤일까 함께 서창에서 촛 불 똥을 따면서
파산에 밤비 내리던 날을 이야기 할 때가

오래간 만에 밤을 꼬박 새면서 일을 해 보았다. 그 덕분에 밀린 번역을 대충 마무리 해 간다. 창밖에서 아침 기운이 밀려든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도 밤을 새웠던가 보다. 역시 오래간 만에 시를 한 수 소개해 볼까, 하면서 책을 뒤적이다 보니 이 시가 대뜸 머리에 떠 올랐다. 전에 이 시가 참 좋아서 동료들에게도 소개하고 그랬었다.
 이 시의 배경은 추지(秋池)라는 말로 미루어 가을임을 알겠다. 이 시는 이상은이 사천(四川)에 있으면서 자신의 집이 있는 하내(河內)의 아내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씌어진 시로 알려져 있는데, 그 그리움의 대상자를 친구라고 보는 설도 있다.
연못에 빗방울이 보슬보슬 떨어지는 풍경을 연상하노라면 화자가 느끼는 그리움의 정서도 그렇게 뭉글뭉글 피어 오르고, 젖어 들고 있음을 알 것이다. 이 시의 묘미는 아무래도, 그 그리움을 그리움에서 끝내지 않고 전구(轉句)에서 시상을 획 전환시켜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나면 내가 그 때 파산(巴山)에서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옛 말을 할 날이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 그런 인생관에 있을 것이다. 차분하면서도 은은한, 희망이 있는...

 한 문 해석은 그리 어려운 부분은 없지만 전구의 당(當) 자가 마지막에 해석되어 ~때가 되다, 하는 시간의 지점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는 것과, 각(卻) 자를 도리어로 해석한다는 사실에 주의해서 전결(轉結) 두 구절을 함께 해석해야 한다. 한시(漢詩)가 대개 한 구절씩 해석이 되나 이처럼 두 구절을 동시에 걸어서 해석해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한 번 직역을 해 보면 이 렇게 된다.

  언제나(何) 함께(共) 서창 앞에서(西窓) 촛불 심지를(燭) 자르며(剪) /도리어(卻) 파산에서(巴山) 밤비 내리던(夜雨) 때를(時) 얘기하게(話) 될까(當). ᄒᄒ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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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를 참아내야 진정 대장부인 것을

題烏江亭


杜牧

勝敗兵家事不期


包羞忍恥是南兒


江東子弟多才俊


捲土重來未可知

오강정에 붙이다

승패는 병가의 일이라 예측할 수 없으니
수치를 참아내야 진정 대장부인 것을
강동의 자제들 중에는 재주 있는 인걸이 많으니
땅을 말 기세로 다시 옴을 알 수 없었을 텐데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힘을 지녔던 항우는 용력과 기절은 높았던 반면 우유부단하고 슬기로운 면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한 고조 유방과 천하를 놓고 각축을 벌이다 마침내 해하성에서 패하고 수백기로 포위를 뚫고 달아나다 오강(烏江)에 당도하게 된다. 이 때 오강 정장(亭長)이,
“강동이 비록 작다 하더라도 땅이 사방 천리이고 무리가 수십만이니 역시 왕노릇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하자,
“……내가 강동 자제 8000명과 강을 건너왔는데 이제 한 사람도 없다. 설령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왕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내가 무슨 면목으로 강동의 부형들을 뵙겠느냐.”
라는 말을 남기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하고 만다.
항우는 자신이 유방에게 패한 것을 하늘의 뜻이라고 말하였으나, 한신이 떠나가게 하고 범증을 의심하는 등 자신의 인재들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결과라고 보는 해석이 후세 사가나 문인들의 대체적인 평이다.

이 시는 항우의 자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회고한 작품인데 항우의 자살을 아쉬워하는 작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말은 두목의 이 시에서 유래하여 ‘실패한 뒤에 다시 역량을 회복한다.’는 의미로 후세에 널리 쓰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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蜀道後期    촉도를 지나느라  예전보다 늦게 도착해서                                                                  

                                                                         張說(장열)(667-730. 당 낙양인.)

客心爭日月             여행자의 마음은 늘 시간을 다투지

往來豫期程             오가는 데 미리 여정을 기약하건만

秋風不相待             아아 촉도는 험난해라  

                            가을 바람이 기다리지 않고서

先至洛陽城             나보다 먼저 낙양성에 도착하다니!

이 시는 시 내용으로만 보면 가을 바람이 나보다 먼저 낙양성에 도착했다, 즉 가을이 되어서야 내가 낙양에 도착했다는 어찌 보면 평법한 사실을 진술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목을 예의 주시하고 시를 다시 보면 3구에 많은 생략과 함축이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그곳에 이 시의 깊은 매력이 숨어 있다.

즉 이백(李白)이 촉도난(蜀道難)에서 '촉도는 너무도 험난하여 푸른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도 어렵다'(蜀道之難 難於上靑天)라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섬서(陝西)에서 사천(四川)으로 들어가는 촉도는 아주 험난하다.  사실 이 시인은 아마도 사천에서 촉도를 지나 장안을 거쳐 낙양으로 들어가는 여정을 짤 때는 가을이 오기 전에는 충분히 낙양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상 촉도를 지나자니 너무도 험난하였고 이제 그 길을 지나 낙양에 들어서고 보니 벌써 가을이다. 

험난한 길을 무사히 지나 목적지까지 도착하였을 때 느끼는 가슴 저린 안도와 피곤하지만 야릇한 희열, 그리고 자꾸만 떠오르는 지나온 촉도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 이런 것들이 아마도 이 시를 쓰게 하였을 것이고 당연히 이 시에는 그런 심상이 3구의 앞에 함축적으로 깊게 깔려 있다. 즐거운 혼자만의 상상일지도 모르지만 그 점을 읽어 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3구의 번역도 보충을 가하여 해 보았다.

張說의 字가 說之 인 것으로 보아 說의 발음은 기쁘다인 '열'인 것으로 생각된다. 논어에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라고 하였으니. 이 때 說은 발음이 '열'이고  뜻은 '悅'이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의 자가 열경(悅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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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진중하지 못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본능적으로 유머를 즐기고 웃음을 좋아해서 농담을 하고 말 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한 편으론 늘 차분하고 조용히 지내고 싶다. 웃음과 농담은 글로 표현하고 아주 조금씩 일상 생활에 드러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생활은 진중하고 그윽하게 보내고 싶다. 우선 나 자신에 대한 말을 상대방에게 특별히 상대가 묻거니 하지 않으면 하지 말자.

내가 하는 일에 최대한 충실하자. 나의 실력을 쌓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남이 나에게 함부로 대한다거나 서운하게 한다거나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쓰지 말고 무엇보다도 내 할일을 똑바로 해야 할 것이다. 내 할일을 충분히 하여 나의 실력이 넘치고 매사 진중하며 가끔 유머를 구사한다면 나는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자 오늘 하루도 긴장을 가지고 마음을 다 잡되 너긋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자.  쓸 데 없는 일 하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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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은행잎도 절정을 지나 급히 겨울 채비를 하려고 한다.

서리가 오기 전에 모든 걸 정리하려는 듯이. 일을 마치고 밤 9시 무렵 퇴근을 하면서 보면 가로등과 전조등 불빛에 비친 은행잎이 너무 고와 과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입을 다물고 있기 어려울 거이며 매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냥 미련없이  발길을 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은행잎도 무성함에서 점차 성글어 간다. 그래도 일년 중 햇빛이 가장 좋은 계절은 지금이 아닐까. 햇볓이 무르녹는 봄에는 또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이런 날은 어디 차를 몰고 답사나 갔으면 좋으련만 아직 내겐 차가 없고 이런 날은 그냥 호젓한 숲을 잔잔히 벗과 대화를 나무며 걷고 싶지만 아직 내겐 시간이 자유롭지 않으며 이런 날은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에 만나 덕수궁 돌담이나 한 번 걷고 싶지만 애인도 없네.

이런 날은 연구실에서 일에 몰두하며 자신의 실력을 다지고 가끔 숨을 돌리며 자신에게 침잠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거기서 밀려오는 뿌듯함과 성취감도 예사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며 즐거움도 적은 것은 아니기에. 그러다가 점심이나 먹으려고 길을 나선다면 잠시 달콤한 휴식이 되지 않으랴.  점심을 들고 잠시 낙엽길을 걷는 것도 인생의 즐거움이 아니랴. 가을날의 망중한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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