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날, 그리고 忙中閑
계절은 봄이다. 그동안 한 달 정도 아주 바빴는데 이제 좀 여유가 생긴다. 한 3시 쯤에 일을 끝내고 있노라니 마음 한 켠에서 잠자고 있던 思며 愁며 慕, 이런 감정들이 가지를 치고 뻗어 오르며 봄물이 오른다. 이럴 때 예쁜 아가씨가 전화라도 한 통화 한다면 지체없이 달려 나가련만... 나의 옥체(玉體-이해하기 바란다.^^)에는 좀이 쑤신다. 가슴은 답답하다, 바람을 쐬어 다오, 눈은 제발 보여 다오 영화를, 목구멍은 마셔다오 맥주를, 손은 만져다오 보드랍고 싱싱한 것을(오해 없기 바람, 오해해도 그만이고...오해가 아닌지도 모른다.), 하며 성명서를 발표하고 곧 실력 행사로 들어갈 태세이다.
중여동에 들어가 보니 한 바탕 격전이 쓸고 간 자리가 황량하다. 좋은 방향으로 정리되리라 본다. 인사만 하고 가기도 뭐해 시를 한 수 소개해 볼까 한다.
한시에는 영물시(詠物詩)라는 게 있다. 영사시(詠史詩)가 역사 사실을 읊는 것이라면 영물시는 말 그대로 특정한 사물을 읊는 것인데 매미, 대나무 난초 , 벼루 등등 무수히 많다.
오늘은 기러기를 읊은 시 한 수를 소개 할란다.
歸雁
錢起
瀟湘何事等閑回요?
水碧沙明兩岸苔라
二十五絃彈夜月에
不勝淸怨却飛來라
돌아가는 기러기
소상강에서 무슨 일로 그냥 돌아가는가
물 푸르고 모래 맑으며 양 안에 이끼도 많은데
이십오현금 타는 달 밤
애절한 사연 듣다 못하여 돌아간다오
기러기는 고래로 시의 소재로 무수히 쓰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기러기는 계절을 알리기도 하고 소식을 전해 주기도 하는 등, 상징들이 있기 때문이다. 잉어를 삶으려고 보니 고깃뱃속에서 편지가 나왔고 기러기 발에 편지를 묶어 천자에게 알린 일이 있어 어안(魚雁)이라고 하면 서신(書信), 즉 편지의 의미로 쓰이게 됨에 따라 옛날 편지글에 보면 어안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이 기러기가 등장하는 시는 대개 가을을 배경으로 하다보니 나그네의 우수를 담지하는 표현물로 잘 등장하는데 왕발의 등왕각 서나 율곡 선생의 화석정 시에 나오는 것들도 다 그런 시적 장치인 셈이다.
전기의 이 시는 기러기가 가지는 상징성을 아주 풍부히 하여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시로 생각된다. 지난 번에 중국 여행갈 때 사실 이 시의 배경이 된 회안봉(回雁峰)에 가 보려 했었다. 회안봉은 형양에 있는데 기러기가 이 회안봉에서 북으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에 회안봉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다. 나는 처음에 막연히 형산(衡山)의 한 봉우리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기차에서 만난 우체국 공무원들이 나에게 회안봉은 형양에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은 어린 시절 회안봉 아래에서 자랐다고 나에게 말했었다. 말하자면 천우신조하여 손쉽게 회안봉을 가 볼 수 있었는데 동정호에서 카메라를 분실하는 통에 여행 일정에 차질이 생겨 가 보지 못하고 말았다. 형산도 듣던 것과는 달리 현지인들은 퍽 아름답다고 하니 다음에 다시 기회를 내서 꼭 가볼 작정이다.
소상강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아주 길다. 그래서 다 생략한다. 다만 아황(娥皇)과 여영(如英)의 고사는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요 임금의 딸로 순임금에게 시집갔는데 순임금이 남방 시찰을 나갔을 때 뒤 따라 가다가 태풍을 만나 동정호에 있는 군산(君山)에 피신해 있었다. 후에 순임금이 창오산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대나무를 붙들고 울었는데 그 눈물 때문에 대나무에 얼룩이 생겨 반죽(班竹)이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지난 번에 이곳에 갔다가 무한한 감회에 젖었었다. 조만간 여행기에서 소개할 작정을 하고 있다. 이 두 비를 그래서 상비(湘妃)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여신이 되어 비파를 탄다는 고사가 또 있다.
그러니 이 시는 회안봉을 전혀 얘기 하지 않지만 그 이면에는 회안봉이 깔려 있고 기러기가 돌아가는 것은 날씨가 따뜻해져 북쪽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두 비의 슬픈 마음이 담긴 애절한 비파 곡조를 이기지 못한여 돌아간다고 표현한데서 그 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구에서 물이며 모래, 이끼 등 기러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제시하여 더욱 그러한 이유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수법들은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많이 쓰이는 것이지만 문학의 기본적인 사유방식이기도 하다. 다음에 언제 회안봉에 가서 저녁 무렵 술 한 잔 하며 이런 문학 얘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지난 번 동관 집에 갔을 때 이 시를 찾지 못했는데, 요즘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