烏江 오강
            이청조(李淸照 1084-1145 宋 濟南人)

生當作人傑 
死亦爲鬼雄
至今思項羽
不肯過江東

살아서는 인걸이 되어야 하고
죽어서도 귀웅이 되어야 하리
지금도 항우를 생각느니
강동으로 건너가려 하지 않았네

이청조는 중국문학사상 걸출한 여류 작가인데, 작년 여름에 제남에 있는 이청조 기념관에 가서 매우 큰 감명을 받았었다. 그의 詩와 詞를 돌판에 새겨 詩林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서 말이다.

 이 시는 정강지변(靖康之變)으로 북송이 망하고 송나라가 남쪽으로 쫒겨간 상황 속에서 집권자들이 잃어버린 강산을 회복할 생각은 안하고 안일하게 사는 것을 보고서, 항우의 기개를 드러내어 찬미하는 것을 통하여 집권자들에게 대조적으로 시사하는 의미를 담고있다.

이청조의 호가 이안거사(易安居士)인데 아마도 만년의 호인듯 하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 (남기대어 의기양양해하니 무릎을 용납할 만한 좁은 이 곳이 편안한 곳임을 알겠네.)이란 구절에서 따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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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軍九日思長安故園
잠삼(岑參 715-770당 南陽人)

强欲登高去
無人送酒來
遙憐故園菊
應傍戰場開

군중에서 중양절을 맞아 고향 장안을 생각하며

등고하러 가고픈 마음이야 많지만
술 한 잔 보내는 이 없구나
아득타 가련한 고향의 국화는
전쟁터를 따라 피어 있겠지

중국인들은 음력 9월 9일을 중양절(重陽節)이라고 해서 큰 명절로 여기고  온 가족이 높은 산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셨다.

시인은 지금 안록산의 난으로 군중에 있으면서 전쟁터가 되어 버린 고향 장안을 생각하는 것이다. 등고, 술, 국화 이런 것은 바로 중양절하면 생각나는 것인데 지금 자신에게 술을 보내는 가족도 없다. 가족과 친구가 있는 고향 장안에 대한 그리움을, - 어쩌면 지난해만 해도 국화주를 담느라고 형제들과 함께 따고 보고 했을 터이지만, 이제는 전란으로 인해 그저 쓸쓸히 피어 있을 - 국화를 상상해 보는 것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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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枝詞
              鄭文寶

亭亭畵舟+可系春潭
只待行人酒半酒+甘 
不管烟波與風雨
載將離恨過江南

이별의 노래

높다랗게 솟은 유람선 봄 못에 매인 채
떠날 이 거나하게 취하길 기다리네
안개와 파도 바람과 비 아랑곳없이
이별의 한을 싣고 강남을 지나가리

유지사(柳枝詞)는 악부(樂府)의 곡조 이름이다.

얼마전부터 한 손에 들어갈 만한 수진본(袖珍本 소매속의 보배라는 뜻으로 손에 휴대하고 다니며 볼 수 있게 만든 책을 말함) 송시삼백수(宋詩三百首)를 들고 다니며 보고 있는데 이 시의 승구(承句) 첫 두 글자가 해석이 안되었다. 그 판본에는 직도(直到)라고 되어 있었던 것, 이제 다른 책을 구입해서 주석을 참고해 보니 '直到' 대신에 '只向'이나 '只待'라고 되어 있었다. 그제서야 그 구절의 '直'자가 '다만 직' 자인 줄 알겠다. '直到' 자체로는 무엇을 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다'라는 뜻이므로 잘 해석이 안되었던 것이다.

버드나무는 이별을 상징하는 도구이고 첫 구의 '系' 자에 떠나는 이를 만류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져 있다. 그래서 당연히 첫 구에 배가 매인 것은 버드나무일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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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수록한 3편의 시도 전에 다른 카페에 올린 것인데 이곳에도 실어 보았다.  

앞으로 이곳에다 한 시 번역을 틈틈히 해서 올릴까 생각 중이다.

공부하다 짬잠이 틈나는대로 한수씩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퇴근길에  화문서적에 들러 송시 관련 주석서를 몇 권 사 가지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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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날, 그리고 忙中閑

계절은 봄이다. 그동안 한 달 정도 아주 바빴는데 이제 좀 여유가 생긴다. 한 3시 쯤에 일을 끝내고 있노라니 마음 한 켠에서 잠자고 있던 思며 愁며 慕, 이런 감정들이 가지를 치고 뻗어 오르며 봄물이 오른다. 이럴 때 예쁜 아가씨가 전화라도 한 통화 한다면 지체없이 달려 나가련만... 나의 옥체(玉體-이해하기 바란다.^^)에는 좀이 쑤신다. 가슴은 답답하다, 바람을 쐬어 다오, 눈은 제발 보여 다오 영화를, 목구멍은 마셔다오 맥주를, 손은 만져다오 보드랍고 싱싱한 것을(오해 없기 바람, 오해해도 그만이고...오해가 아닌지도 모른다.), 하며 성명서를 발표하고 곧 실력 행사로 들어갈 태세이다.

중여동에 들어가 보니 한 바탕 격전이 쓸고 간 자리가 황량하다. 좋은 방향으로 정리되리라 본다. 인사만 하고 가기도 뭐해 시를 한 수 소개해 볼까 한다.
한시에는 영물시(詠物詩)라는 게 있다. 영사시(詠史詩)가 역사 사실을 읊는 것이라면 영물시는 말 그대로 특정한 사물을 읊는 것인데 매미, 대나무 난초 , 벼루 등등 무수히 많다.
오늘은 기러기를 읊은 시 한 수를 소개 할란다.

歸雁


錢起


瀟湘何事等閑回요?


水碧沙明兩岸苔라


二十五絃彈夜月에

 
不勝淸怨却飛來라

돌아가는 기러기

소상강에서 무슨 일로 그냥 돌아가는가
물 푸르고 모래 맑으며 양 안에 이끼도 많은데
이십오현금 타는 달 밤
애절한 사연 듣다 못하여 돌아간다오


기러기는 고래로 시의 소재로 무수히 쓰였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기러기는 계절을 알리기도 하고 소식을 전해 주기도 하는 등, 상징들이 있기 때문이다. 잉어를 삶으려고 보니 고깃뱃속에서 편지가 나왔고 기러기 발에 편지를 묶어 천자에게 알린 일이 있어 어안(魚雁)이라고 하면 서신(書信), 즉 편지의 의미로 쓰이게 됨에 따라 옛날 편지글에 보면 어안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이 기러기가 등장하는 시는 대개 가을을 배경으로 하다보니 나그네의 우수를 담지하는 표현물로 잘 등장하는데 왕발의 등왕각 서나 율곡 선생의 화석정 시에 나오는 것들도 다 그런 시적 장치인 셈이다.

전기의 이 시는 기러기가 가지는 상징성을 아주 풍부히 하여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시로 생각된다. 지난 번에 중국 여행갈 때 사실 이 시의 배경이 된 회안봉(回雁峰)에 가 보려 했었다. 회안봉은 형양에 있는데 기러기가 이 회안봉에서 북으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에 회안봉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이다. 나는 처음에 막연히 형산(衡山)의 한 봉우리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기차에서 만난 우체국 공무원들이 나에게 회안봉은 형양에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은 어린 시절 회안봉 아래에서 자랐다고 나에게 말했었다. 말하자면 천우신조하여 손쉽게 회안봉을 가 볼 수 있었는데 동정호에서 카메라를 분실하는 통에 여행 일정에 차질이 생겨 가 보지 못하고 말았다. 형산도 듣던 것과는 달리 현지인들은 퍽 아름답다고 하니 다음에 다시 기회를 내서 꼭 가볼 작정이다.

소상강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아주 길다. 그래서 다 생략한다. 다만 아황(娥皇)과 여영(如英)의 고사는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요 임금의 딸로 순임금에게 시집갔는데 순임금이 남방 시찰을 나갔을 때 뒤 따라 가다가 태풍을 만나 동정호에 있는 군산(君山)에 피신해 있었다. 후에 순임금이 창오산에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는 대나무를 붙들고 울었는데 그 눈물 때문에 대나무에 얼룩이 생겨 반죽(班竹)이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지난 번에 이곳에 갔다가 무한한 감회에 젖었었다. 조만간 여행기에서 소개할 작정을 하고 있다. 이 두 비를 그래서 상비(湘妃)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여신이 되어 비파를 탄다는 고사가 또 있다.

그러니 이 시는 회안봉을 전혀 얘기 하지 않지만 그 이면에는 회안봉이 깔려 있고 기러기가 돌아가는 것은 날씨가 따뜻해져 북쪽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두 비의 슬픈 마음이 담긴 애절한 비파 곡조를 이기지 못한여 돌아간다고 표현한데서 그 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구에서 물이며 모래, 이끼 등 기러기가 살기 좋은 환경을 제시하여 더욱 그러한 이유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수법들은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많이 쓰이는 것이지만 문학의 기본적인 사유방식이기도 하다. 다음에 언제 회안봉에 가서 저녁 무렵 술 한 잔 하며 이런 문학 얘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지난 번 동관 집에 갔을 때 이 시를 찾지 못했는데, 요즘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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