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정을 하고 만든 만화. 이 정도 아이템을 쏟아두는데 미디어믹스가 안되면 이상할 판. 해서, 드라마가 방영중.

그런데 이상하게도 썩 재미없게 봤다. 패턴이 너무 뻔히 보인다고나 할까. 너무 계산에 맞춰 딱딱 짜놓으니 어떤 면에선 인간미가 안 느껴진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헐.

 

좋다는 얘길 간간이 듣고 있어서 한 번 봐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정말 좋다. 아즈망가풍 괴담물이라고나 할까. 핸드폰이 안 나온다는 점에서, 서사에 있어서의 시대적 화두인 핸드폰이 여기서도 외면받는구만 싶었고.

 

초반에 맘에 안 들었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끌리는 만환 정말 간만. 지금 흐름을 봐선 복수극 루트인데 절대위선에 맞서는 영 변변찮은 이의 고투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 스스로 찌질이 생활을 진하게 겪었던 듯한 저자의 제법 냉정한 시선이 어떤 맥풀린 결과를 불러올지, 아니면 진짜배기 마초풍 카타르시스를 불러올지는 모를 일.

 

일단 웃김. 만화책에서 전파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건 처음 봤음. 뭔 똘끼만 있어보이면 무조건 전파계로 정의내림. 정서나 상황이 꽤 맘에 들긴 하는데 간간이 불안해지는 건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센스의 한계가 가끔씩 보이기 때문인 건지도. 그런 부분을 돌파하려면 우스타 쿄스케 정도의 베짱과 빽과 그외 등등이 필요할 듯.

 

하하하하 12권이라니. 으하하하하하.... 우스타 만화 단행본수 신기록.

실사 영화화 축하.

 

미분, 적분도 모르고 삼각함수도 모르지만 암튼 저도 푸리에 전문가가 될 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혜미 열라 귀엽네. 지우는 생긴 건 나가토삘.... 기타까지 들고.

 

송나라 시절 유교 구법파 락학계열의 석학이었던 정이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리 중심의 세계관, 격물치지의 중시, 음양사상 등등 대부분의 요소들이 이후 주자학으로 이어지는지라 확실히 복습이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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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7-06-15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어게임은 처흠부터 철저하게 짜여진 라이어게임이고 ㅋㅋ
만화의 실사화에서 나름대로의 미각을 가지고 있는 일본분들이 피리소년들을 어떻게 표현해낼지..정확힌 배우가 어떻게 연기를할지..고민되네요 ㅋ(그냥 또라이로 나오면 대실망.)
 

요번에 학산판 [에덴]을 14권까지 통째로 구하게 됐습니다. 뭐 시작은 SF였으되 중간엔 밀리터리도 있고 하드보일드한 범죄극 요소도 있었고, 그러다 다시 발라드의 이름을 따 온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답게 [크리스탈월드]의 세계로 직행하고 있는데, 가끔씩 보면 그런 전개에 불만을 가진 분들이 꽤 많은 편이더군요. 소위 '정통SF'가 아니라는 거죠. 작가의 자유로운 창작의 여지는 기호의 영역에선 거부될 수도 있는 것이긴 해도 작품 자체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 좀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가끔씩 듭니다. 그러고보면 발라드의 뉴웨이브도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소위 '정통SF팬'들에게 욕 디지게 먹었었다는 얘기가 생각나는군요.

 

학산의 [에덴]이 세주판과 다른 점이라면 무엇보다도 권두 날개에 쓰여있는 작가의 한담들을 살려놨다는 것이죠. 첫 시작이 1998년이라니, 벌써 9년이나 전 얘기군요. 내가 이걸 고등학교 다닐 때 봤던 건가. 기억도 잘 안 나네. 아무튼 그림과 내용의 퀄리티가 실로 출중했기에 당시에 꽤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뭐 한마디로 뿅 갔던 거죠. 다시 봐도 여전히 재밌군요.

세주판 번역기보다는 번역이 훨씬 매끄러워졌고, 6권에는 사무라 히로아키의 일러스트가 실려있더군요. 일본판의 8권에 실려있던 엘리야의 텍사스촌 생활기는 세주판처럼 삭제되어있습니다. 역시 강도가 좀 쎄죠 그건. 그래도 전반적으론 삭제 정도가 좀 덜해진 느낌. [에덴]은 뒤로 갈수록 그림쪽 퀄리티가 떨어지는 추세라, 섬세함을 보여줬던 초반의 작화력이 아쉬워지는군요.

8권에선 엘리야 발라드가 아버지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씬이 나옵니다. 1권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면서 세상을 나오게 된 엔노이아 발라드는 자신의 아들에게 구원이란 무엇인지, 그 단초에 대해 말해줍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잔인하다는 걸 잊지 말고, 살기 위해 늘 잔인한 행위를 한다는 걸 잊지 말라고. 중요한 것은 용서를 구하고 무언가로 속죄하는 것이라고. 불교에서의 고, 크리스트교에서의 원죄 개념들을 아우르고 있는 이 말이야말로 지금의 인간이 낼 수 있는 불가항력적이면서도 가장 합리적인 대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인간은 모순을 실천해가는 존재입니다. 손에 남의, 무언가의 피를 묻히면서 살지만 살아가는 걸 포기할 순 없습니다. 그 영역에까지 파고들어가지 않는, 혹은 그 모순을 합리성이란 이름으로 외면하는 철학이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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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7-06-09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탈 월드는 SF전시회 때 '에덴'과 관련해서 우연히 설명을 듣게 되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이미 품절나버려 대략 낭패. 그런데,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도 에덴과 유사한 설정의 단편이 실려있는 건가요?

hallonin 2007-06-09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진 않고. 저 뒤에 실린 김상훈씨가 쓴 SF의 역사 속에서 바라본 젤라즈니의 위치 고찰에서 발라드가 박해 당한 얘기가 실려있습니다. 사실 저 작품집은 썩 맘에 안 들어서 다는 안 읽어봤기에 [크리스탈월드]와 비슷한 게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젤라즈니의 작품 성향으로 봐선 글쎄요.

배가본드 2007-06-16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에덴을 보기전까지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이나 미나가와 료우지의 암스..
정도나 되어야 장대하고 화끈한 내용을 기대했었는데 ㅋ 이젠 그것들과 상관없이
전설이 되어버리는 저것밖에 안남았다죠 ㅎ

hallonin 2007-06-16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시작처럼 잘 마무리하길 바라는 마음이죠.
 

갑자기 친구놈에게서 날아온 메시지. "오늘까지만 사용가능한 영화예매권을 쓸 수 있는 사람은 'the생활이없는자'인 너밖에 없다!" 뭐 졸업논문으로 '포말의 의지'에 대한 논문을 걸레처럼 써서 던져보낸지라 확실히 여유가 있긴 하지만 'the생활이없는자'는 아니라구! 더군다나 난 [기동전함 나데시코]를 한 번 더 다 봐야 한단 말이다!

 

그러나 공짜니까 그냥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고른 영화가 이건데.... 볼 게 없드라구요. 강동CGV란 데가 생겼다는 것도 오늘 알았는데 거기서 스크린을 네개를 잡고 있던가. 뭐 1, 2편은 졸면서 봤었고, 그래서 별 기대도 안하고 있었던데다 3편은 사방팔방에서 악평이 있는대로 쏟아지고 있고 해서 머릿 속에선 살인토마토를 뛰어넘는 인류역사상 최악의 영화를 상상하면서 자전거 체인을 돌렸죠. 사실 3편은 제 예상했던 바를 충족시켜주는 의미에서 그럭저럭 봐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후후후 이 악의 제국 헐리웃 블럭버스터 같으니 내가 보고 나서 처절하게 욕지랄을 써주겠다....

 

 

그런데 재밌네?

 

스토리와 플롯이야 전편들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져 온 것처럼 중구난방에 개판 오분전이고 덕분에 인물의 감정이나 판단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는 게 거의 [천상천하]에서의 인간관계도를 파악하는 일만큼이나 난해하며 그 와중에서 연출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가끔씩 꽤 분명하게 튀어나오는데, 또 이런 류의 실패작들이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이유, 이 영화가 오로지 믿고 밀어주는 캐릭터빨이 이번 3편에선 펑펑 튀어나오는군요. 의외로 잭 스패로우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된 편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중견연기자들이 워낙 얼굴에 철판 깔고 잘해줘서 영화를 버티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이 형편없는 시나리오를 읽고선 대박을 확신한다며 키라 나이틀리를 끌어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던 바르보사 영감역의 제프리 러쉬가 맘에 들더군요. 호탕하게 껄껄거리며 웃을 때마다 진심으로 놀이공원에 와서 신나게 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주윤발과 크라켄이라는 쓸만한 캐릭터들은 정말 어이없이 날아가버리지만, 후반부의 흐름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처리해버릴 수밖에 없었을 듯. 막판의 블랙펄VS플라잉더치맨 매치에서 보여줬던 액션씬들도 괜찮았고. 그와중에서 벌어지는 윌 터너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식은 한발짝 물러서면 완전 개그지만 그 뻔뻔스러운 낭만성에 낄낄댈 수는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뭐 이걸로 이제 다음 해적에선 그 부부는 안 나오게 될 듯.

 

역시 공짜로,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보는 것이야말로 어떤 영화에게든 사랑의 퍼센티지를 높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 그리고 새벽의 텅 빈 거리를 자전거로 신나게 달리는 일 또한 사람을 엄청나게 너그럽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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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7-06-0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로 드디어 절반 넘는 스크린을 장악했더군요. 이거 '국적'으로 봐야할지. 그냥 독과점으로 봐야할지. 대략…영화에 관심을 끊은지 어언 4년 째지만 어쨌든 뷰리풀한 낮입니다.

hallonin 2007-06-04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크린쿼터 문제라든지 독과점 문제라든지가 나올 때마다 궁금해지는 것은 정작 그 현장엔 극장주나 배급업자들(&제작사-대기업)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나 요즘이나 관련해서 벌어지는 논쟁들은 볼 때마다 진짜 당사자는 안 나오고 생뚱맞은 사람들끼리 치고 박고 있다는 기분이 들더군요.
 

이거 알라딘에는 왜 2권이 완결이라고 떴지.... 완결 나려면 아직 3권은 더 있어야 함. 여전히 무난무난. 신캐릭터로 정석처럼 단발 쿨걸 등장.

 

만화책판은 마치 소설의 안티테제, 아니면 발전을 거부하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듯 하다. 뭐 일단 완결이 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말할 수 있을 듯. 머지 않았으니....

그런데 그림이 갈수록 개판. 이건 뭐 우스타 쿄스케도 아니고.

 

출중했던 1, 2권에 비하면 휴식기라고만 보기엔 영 지루했던 3권. 문제는 후기에 실린 터키 기행기가 더 재밌었다는 건데, 본편보다 작가 후기가 더 재밌는 불행한 전통에 속하게 되지 않길.

 

하드보일드. 여전히 두 번째 읽어야 이해가 가는 복잡다단함. 이 변치 않는 꿋꿋함이 정말 맘에 든다. 그러니까 [지오브리더스] 정발 좀.

 

뭐 왕자가 공주님이었다고 하더라도 안 놀랄 겁니다. 여전히 기본 이상.

 

작년에 재출간된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컨버전의 욕망을 강하게 만들어내는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들.

 

문화비평가 겸 편집자라는 위치, 거기에서도 상당히 시니컬한 타입의 글쓰기를 지향하는 오츠카 에이지가 소설의 질감을 만들어내는데 그런 건조한 면모를 버렸을 리가 없다. 이 양반이 출중한 것은 그걸 자신만의 스타일로 확실하게 잡아놓는데 성공했다는 것. 간혹 라이트노블 다운 불필요한 면들이 보이긴 하지만 번역자의 문제인지 원본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는 것. 작가가 후기에도 밝히고 있듯이 이 소설은 그저 흘러 지나가는 한때, 그 정도 수준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단절하고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오라고 말한다. 그 자신만만함이 맘에 든다. 그리고 그런 자신만만함을 이 재능 있는 양반은 잘 뒷받침하고 있다. 그의 다른 글들이 더 보고 싶어지게 만들 정도로.

번역은 작년에 완료된 것 같은데 해를 넘겨서야 출판된 것은 아무래도 일본판에 있던 임광묵의 일러스트 수록 여부 문제 때문이었던 듯. 오츠카 에이지가 직접 한국에 와서 그려주기를 부탁했었다고 하니, 상당히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한국판 일러스트는 HIRARIN이란 양반이 그렸다.

 

내가 원하던 캐릭터- 여성연쇄살인자의 초상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하드보일드물이라곤 할 수 있으되 추리소설은 아니다. 결국 낚시이자 독법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텐데, 내 경우엔 하드보일드물로서도 썩 탐탁찮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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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 전부터 빛은 전능한 신의 중요한 개념이자 이미지 중 하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의 광휘를 받아 지속되는 세상에 대해 얘기했으며 빛의 신성함은 성당을 장식할 스테인드글라스의 예술적 변용을 가져왔다. 어둠은 그 대척점으로써 두려움이고 미지였다. 그래서 전기가 발명되고 빛이 인간의 손에 들어온 순간은 신학적으로도 의미심장하다. '광휘'를 마음대로 다루게 된 다음, 과연 절망은 사라졌는가.

2.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오는 어느 날, 그녀는 아들과 함께 스스로 밀양으로 내려간다. 그곳을 택한 이유는 자신을 아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이다. 그러나 밀양은 좁은 도시다. 대로를 따라 걸어서 한시간 내외로 동네를 휭하니 둘러볼 수 있으며 그 시간동안 아는 사람을 서넛은 볼 수 있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곳을 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온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알게되며 그래서 그녀의 비밀은 새어나가고 비극이 닥쳐온다.

타자들 안에서 타자가 된 신애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불안해보인다. 그녀는 뻘쭘해하고 서있거나 머뭇거리고 서성거린다. 그리고 자주 비틀거린다. 그녀는 그녀에게 가해지는 노골적인 종교 권유에 당혹해하고 자신을 흉보는 뒷담화를 듣게된다. 그녀는 조금씩, 지친 자신이 선택한 곳이 자신에게 모종의 쉼터가 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곳은 애초에 그녀의 헛된 욕망의 흔적으로 인해 선택된 곳이었기에.

 



3. 중요한 것은 고통이다.  -이창동. "이창동의 <밀양> ② 이창동 감독, 영화평론가 허문영 대담" 씨네21 No.602


4. 그녀는 아들의 장례식 때 울지 않고 그 때문에 시어머니에게 비난받는다. 그녀의 오열은 뒤늦게서야 터져나오며 그 결과로 그녀는 기독교라는 틀에 자신을 맡긴다. 거기까지 이뤄지기까지의 그녀가 보여주는 속도와 적극성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신애의 엇박자적 감정과 태도를 우회해서 보여준다. 그녀는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혹은 더이상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열성적으로 스스로 구원, 해결책을 찾아나선다. 그것은 맹신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것이다. 그리고 맹신이기 때문에 그녀는 처절하게 절망하게 된다. 그녀가 기억하는 모든 고통은 하나님의 의지가 담긴 빛 아래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신의 의지가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어째서 고통을 방관하는가. 하나님의 그 심원한 계획은 언제, 어떻게 나타난다는 것인가. 이 너무도 단순하고 당연하며 그저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질문은 하나님에게 귀의한 신애의 입으로 설명된다. 그것은 마치 연애와 같은 것이라고. 시선에 따라선 일방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그 모호한 감정이 답으로 나온 순간 이 이야기는 이성적인 공동체험의 길을 포기한다. 관객은 관찰자가 되거나 적극적으로 동조할 수 밖에 없다. 그저 여기서 묘사되는 기독교에 대한 입장만이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해서 직관의 힘이 필요하게 되는 순간이다.

5. [밀양]은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는 연기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서 자신을 놀리려고 숨은 아들을 불러내기 위해 우는 연기를 하는 신애의 모습은 후반부의 기독교에 귀의한 그녀의 모습과 부합된다. 그녀는 열성적으로 찬송가를 부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지만 그 모든 것은 우는 연기를 했던 그녀처럼 어설프게 보인다. 그래서 정말로 눈물이 나올 때 그녀는 띄엄띄엄 끊어지는 주기도문으로 자신을 추스리려 애쓴다. 그것은 하나님을 어설프게 끌어다놓는 일종의 집착과도 같다. 그리고 고작 그런 걸로 그녀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이 자신의 앞에서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말할 때 깨닫게된다. 이어서 순식간에 추락한다. 절망은 무지가 아니라 깨달음에서부터 오기 때문이다.

붕괴 이후의 그녀는 반은 고통 속에 반은 연기 속에 자신을 담근 채로 시간을 보낸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속이고 약속을 깨고 거짓으로 유혹하며 자학한다. 돌아갈 곳은 애초에 없다는 걸 알기에 스스로를 소진하는데 주력하는 그녀가 갈 곳은 하나뿐이다. 이 영화가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면 그 결말이 아니라 전도연이란 배우가 보여주는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의 생생함 때문일 것이다.

6. 폭발은 어둠 속에서 찾아온다. 신 혹은 그 무언가의 손길이 사라진 밤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대체할 빛, 형광등, 전등을 필사적으로 켜놓는다. 그러나 그것은 빛을 흉내낸 것일 뿐이다. 그것엔 햇빛의 온화함, 따스한 열기, 그리고 세상을 전부 비추는 풍성함이 없기에 절망을 씻어내주지 못한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서 절망은 언제나 벌건 대낮에 찾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위안에 대한 형식적인 애착만 가지고 있는 그녀가 어둠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실질적이고도 지독한 부재, 그 자체다. 결국 그녀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울부짖는다. 빛이 무엇이든 간에, 그녀가 감내해야 하는 밤은 그 무언가의 부재만이 도드라지는 시간이기에 그녀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리라. 자신의 것이라 여기던 것들을 하나씩 잃고난 뒤, 그녀를 지켜보는 무언가마저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그녀는 새롭게 절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적으로 오열할 수밖에 없게 된다.

7. 영화는 끝까지 관객에게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순간 따위를 제공할 생각 같은 건 없다. 도식적 구원의 기회에 가장 근접하는 말미의 씬에서조차 신애는 (영화적으로) 뻔한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 거기엔 분명 운명이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상황이 보여주는 전능한 신이라는 가능성에 진저리가 난 그녀는 종찬에게 짜증을 내며 따진다. 신에게 지지않을 거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그녀에게 있어서 신의 개념은 마니교적인 의문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과연 신은 선한가 악한가. 어느 쪽이든 그녀는 쉽게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그녀는 앞으로도 한동안 방황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곁을 종찬은 항상 따라다닐 것이다. 그녀가 손을 내밀 때마다 기쁘게 받아들이며.

 



8. 송강호가 연기한 종찬이라는 인물은 결론적으로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에 관한 개인사적인 부분은 오직 두 번의 어머니와의 통화, 그것도 무척 퉁명스러운 통화로만 우회해서 보여질 뿐이다. 그의 세련되지 못해서 우스꽝스러운 맹목적 호의는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밀양]에 비치는 진짜 숨겨진 빛이다. 극장에 가면 다른 관객들과 함께 그의 등장과 행동에서 그나마 웃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모호함으로 보장되는 전형적인 바탕을 통해 영화속 무기력한 구원을 보조해준다. 혹은 아무리 엉망이 된다 하더라도 끝까지 향하는 어떤 따스함과 같다.

9. 그러나 [밀양]은 신애의 영화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맺는 것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다. 그래서 그녀의 마지막 행동이 보여주는 의지는 저항으로써의 주체를 보여준다. 어찌되었든 간에 관찰자로 다시 돌아온다면, 신은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신은 방관자일 수도 있다. 그저 우연찮게 우주를 만든 다음 어디선가 다른 우주를 꾸미느라 정신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광휘 같은 것에 신의 죄, 혹은 의지 같은 건 처음부터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믿고 증오하고 울고 저항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음지의 진흙탕에 닿는 빛은 진정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그녀의 신학이다.

10. 처음, 신애의 질문에 답하여 밀양에 대해 구구절절이 얘기하던 종찬은 말미에 이르러 단 한마디로 밀양을 말한다. "사람 사는데 어디든 다 똑같죠 뭐." 그렇다. 신애는 어딘가 별난 여자가 아니다. 종찬 또한 성자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들과 같은 보통 사람들이며 이것은 어디서든, 누구나가 겪게될 수 있는 절망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다. 마치 인간인 이상 빛을 피할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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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오늘 이거 봤는데, 어렵습니다... 감정이.

다락방 2007-05-2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제겐 충분한 글이로군요. 추천.
앞으로 더 많은 영화감상 페이퍼를 올려주세요.

배가본드 2007-05-25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 볼꺼니까 내일 다시 올께요 ㅋㅋ

hallonin 2007-05-2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되도록이면 스포 안 쓰고 말하는 방법을 고심해왔건만, 이번 경우는 지키지 못했군요.

배가본드 2007-05-2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퍼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애매모호한 상황속의 감정들은 정말 실제적인 우리들의 삶을 표현해줬다고.. ㅎ 전도연의 입장에서 한국적인 기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요 ㅋㅋ

hallonin 2007-05-2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지화란 미묘한 것이죠. 종교에 있어선 특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