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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십여년 전, 퍼스널 컴퓨러의 개념이 시바스 리갈과 동급이었고 피시방이 도래하지 않은 자리에 동네 오락실에서 열심히 아랑전설을 즐기던 아이들이 있었고 혹여 시대의 첨단을 걷던 이들도 하이텔 채팅으로 매달 나오는 전화고지서가 두려웠던 시절, 컴퓨러도 없었고 하다못해 8헤드 비디오도 없었던 나는 요즘 아해들이 노모, 풀버전의 생생한 시청각 자료로 아름다운 지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과 비교하여 한참 떨어지는 지식 습득 요건을 가지고 그 신비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에 아침마다 고통스러운 기운을 느끼며 깨어나야 했다. 그 시절 내 생활반경은 집-학교-도서관의 패턴이었는데 이것은 진리탐구에 매진하는 나의 모범적인 생활 자세를 잘 보여주는 증거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은 도서관에서 배웠다.

당연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식들도 도서관을 통해서 주로 습득하였는데 주로 여성대백과 사전과 제목만 봐도 뭔가 야리꾸리한 것들(아담이 눈뜰 때, 이브의 허스토리, 프랑스 중위의 여자 등등)이 그 취식 대상이었으나 나중에는 시청각 자료에서부터 얻은 지식들을 멀티플레이하게 활용하여 애들 동환줄 알았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부터 원초적 본능의 소설판 등등에까지 이르는 잡스러운 독서 목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뭐라해도 그 야하다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뒤지고 뒤져서 겨우 볼 수 있었던 그 한 구절, '...처녀를 찢어버렸다. 끝.'에 목숨을 걸던 시절이었으니,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소개하면서 실어놓은 마리아 슈나이더의 전신 누드 사진을 찢어간 어떤 개새끼가 한 편으론 공감되고, 그러나 결론적으론 만인의 즐거움이자 공유되어야 할 인민의 자산을 한 개인이 스스로의 독점욕으로 인하여 사유화하여 기쁨의 광역성을 떨어뜨려버린 사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시절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역시 로빈슨 크루소의 사랑이다.

원제가 로빈슨 크루소의 성생활이라는, 척 보기에도 딱인 제목을 달고 있었던 이 책은 기억이 맞다면 앞의 반절은 로빈슨 크루소의 과거 기억 속의 섹스와 '꿈결 같은' 이라고 낭만적으로 표현하기엔 꽤나 기괴한 환상 속의 섹스와 동물들과의 수간으로 채워져 있었고 뒤의 반절은 저 프라이데이와의 땀내나는 동성애로 채워져 있었다. 당시로서야 사드를 알지를 못했고 당연히 사드의 전통에서 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아닌 내용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읽었을 당시로서는 충격이었다. 당최 정상적인,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평온한 정신 상태에서의 이성애적인 거시기가 안 나오는 거다. 로빈슨 크루소의 의식은 내내 뭔가 병적이라고 여겨도 좋을 정도로 거칠고 신경증적으로 묘사되고 있었고 오양의 이야기나 눈이야기, 벌거벗은 점심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직접적인 묘사들과 정신적인 가학-피가학 성향을 보이는 이 소설은 그 거칠고 직접적인 측면에서 아주 제대로였다. 하긴 무인도에서 혼자서 성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하면 저리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은 꽤 시간이 지난 다음에 든 것이고 아무튼 동물과 하는 걸 왜그리 좋아했는지 작가의 묘사는 염소의 울음소리마저도 음탕한 유혹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취하고 있었다.

어떻게보면 바닷가를 전전하며 살았던 선원의 상상력에 로빈슨 크루소라는 전 시대의 아이콘이 붙여져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이 소설은 그 막 나가는 듯한 병적인 환상성이 되려 작품의 리얼리티에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저런 상황이 되면 정말 저렇게 살지도 모른다, 하는 그런 생각. 매일마다 염소와 살쾡이와 붙어먹길 즐기고 고목나무 구멍을 탐스럽게 바라보며 남자의 탄탄하고 매끈한 가슴에 비교하면 여자 가슴은 힘없고 기분나쁘게 물렁거리는 기분 나쁜 덩어리라고 여기게 되는.

 

그러나 주어가 '나'이지는 않을 듯 하다.

가끔씩 이 소설은 나로 하여금 페티쉬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게 만든 트라우마적 제어판 역할을 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난 구멍보다는 여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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