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듀얼의 빈티지 풀레인지 북셸프 스피커를 발견했을 때부터였다. CL-116. 가격은 십만원 안짝. 풀레인지 스피커라는 것이 그 제조상의 간편함 덕에 자작인들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버린 이후 시장에는 저가형 빈티지 풀레인지 북셸프 스피커는 잘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다 CL-116은 디자인도 아주 고리짝적 직사각형 육면체에 벌집 스타일 그릴인 게 꽤나 맘에 들었으니. 조금 고민을 한 다음 그냥 질러버리기로 했다. 그래 지르는 거야 시발.
암튼 지른 다음 택배를 기다리면서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제대로 된 정보나 시청기가 나오지 않는 이놈의 스피커 정보를 긁어모으다가 퍼뜩 역시 풀레인지는 소출력 진공관 앰프로 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소리 듣는 업계에 잠시 있긴 했었지만 그땐 일이 일인지라 소위 하이엔드급들만 질리게 들었었지 저가형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에서 놀았던 탓에 이쪽 정보를 캐려면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해서 소출력 진공관 앰프를 찾아봤는데.... 진공관 앰프 자체가 시장에선 꽤 드물게 된 게 근자의 현실이었다. 새로 나오는 제품들은 대개 하이파이급 이상의 고가 제품들이었고, 소출력 진공관 앰프는 제작상의 상대적 간편함 덕분에 이 또한 풀레인지 스피커와 짝을 이뤄서 자작인들의 세계로 들어간지 오래였던 것이었다. 그래서 자작품이나 기성제조품은 나온다 해도 20~50만원대라는 부담되는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네임드 제품은 더 높은 영역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래서 고민 끝에 자작품들 중에서 평판이 알려진 모델을 찾아내 보기로 했다. 일단 대부분의 오디오업체들의 규모가 공방 수준이란 걸 감안해보자면, 그리고 자작 전통이 상당히 깊고 넓다는 걸 생각해 보면 자작인 중에서 그 성능을 인정받은 자작품이라면 공방스럽게 꾸준하게 만들어지는 인기 모델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또한 그런 자작품이면 가격적인 메리트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소리전자 자작품 장터를 모조리 훑었다.
그렇게 사서 고생하면서 훑다가 결국 목적하던 것을 발견. 작년 초입에 올라왔던 이영건님의 제품으로 리플이 이미 100개를 훌쩍 넘어가고 있는 상태. 초반부에 적힌 글로 봐선 일정 수량을 판매한 후 제작 종료를 한 것 같았으나 수개월이 지난 다음에도 계속 카운터가 올라가는 중이었고 다소 지나치게 감상적인 비평을 제외하더라도 상찬 리플이 더해지고 있는 걸 보면 아직 제작이 계속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메리트였던 건 제시된 가격이 10만원이라는 것. 웬간한 진공관 앰프 자작인이라도 10만원이면 부품 비용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게 현실이고, 쇼핑몰에 올라와 있는 일제 진공관 앰프 제작 키트도 가장 싼 게 16만원이 넘어가는 현실에서 10만원 짜리, 그것도 나름 검증 받은 진공관 앰프라는 건 다소 눈에 안 차는 앰프베이스 디자인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한 구매 가치가 있었다. 부딪혀보기로 했다.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해본 결과 제작기간은 대략 한달 정도로 잡아야 하며 요즘 환율이 올라서 10만원에서 좀 더 추가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씀이 있었다. 만수 이 씨발....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나 인기도가 여전히 매력적인 포지션. 그래서 그대로 가기로 하고 제작을 부탁드렸다.
그즈음 이 모든 난장질의 근원인 듀얼 스피커가 날아왔다. 필립스 풀레인지 유닛(이놈에 대한 정보도 어지간히 없었다)이 장착된 1975년 작. 그런데 이걸 뜯어보니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더 빈티지스러운 게.... 어째 불안불안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자고로 오디오를 잡을 때 빈티지란 매혹적인 단어에 넘어가면 물먹기 십상인 것이, 오디오는 전자기기이고 아다만티움으로 제작하지 않는 한에 세월에 따른 노쇠화를 이길 수 있는 전자기기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문한 앰프는 한달 후에야 올 상황. 그래서 스피커 상태 확인을 할 겸 심심한 귀도 달랠 겸 그를 대체할 앰프를 일단 하나 구해보기로 했다.
우선 풀레인지인데다 오래된 제품인 만큼 혹여나 있을 스피커에의 출력 부담을 줄이기 위해 소출력 앰프를 고르기로 했고, 그럴려면 미니 앰프나 빈티지 앰프가 그짝인데 빈티지는 일단 제쳐두고 미니 앰프 쪽에서 찾기로 했다. 그리고 그리 많이 쓰진 않을테니 후에 되팔 때 가격보상이 가능한 걸로.... 그렇다면 선택은 하나, 아남 AA-40밖에 없었다. 그래서 민트급으로 허겁지겁 구해내는데 성공.
더해서 마지막으로 시디피를 잡아야 했는데, 저가형 시디피는 음질에 별 영향을 못 끼친다는 내 신조.... 가 아니라 단순히 돈이 없어서 최대한 싸구리로 해결하고자 했다. 뭐 그리고 내 막귀는 진공관이라도 달아놓지 않는 한 일반 시디피에선 별로 재미를 못 느끼는 것도 같다. 아무튼 중요한 건, 번거롭게 픽업 교체를 안해도 되는 제품으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 대개 중고 시디피들은 가장 말썽을 일으키는 부분이 노화된 픽업이라 그 교체값이 중고가의 절반 이상을 넘어가는 경우가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조건에 맞을 시디피란, 신용이 있는 중고업자들이 내놓는 제품군 중에서 픽업 교체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 조건에 맞는 1990년에 만들어진 골동품 인켈 CD-3010R을 선택했다. 드디어 허접 시스템이 일단락 완성된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