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친구놈에게서 날아온 메시지. "오늘까지만 사용가능한 영화예매권을 쓸 수 있는 사람은 'the생활이없는자'인 너밖에 없다!" 뭐 졸업논문으로 '포말의 의지'에 대한 논문을 걸레처럼 써서 던져보낸지라 확실히 여유가 있긴 하지만 'the생활이없는자'는 아니라구! 더군다나 난 [기동전함 나데시코]를 한 번 더 다 봐야 한단 말이다!

 

그러나 공짜니까 그냥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고른 영화가 이건데.... 볼 게 없드라구요. 강동CGV란 데가 생겼다는 것도 오늘 알았는데 거기서 스크린을 네개를 잡고 있던가. 뭐 1, 2편은 졸면서 봤었고, 그래서 별 기대도 안하고 있었던데다 3편은 사방팔방에서 악평이 있는대로 쏟아지고 있고 해서 머릿 속에선 살인토마토를 뛰어넘는 인류역사상 최악의 영화를 상상하면서 자전거 체인을 돌렸죠. 사실 3편은 제 예상했던 바를 충족시켜주는 의미에서 그럭저럭 봐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후후후 이 악의 제국 헐리웃 블럭버스터 같으니 내가 보고 나서 처절하게 욕지랄을 써주겠다....

 

 

그런데 재밌네?

 

스토리와 플롯이야 전편들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져 온 것처럼 중구난방에 개판 오분전이고 덕분에 인물의 감정이나 판단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는 게 거의 [천상천하]에서의 인간관계도를 파악하는 일만큼이나 난해하며 그 와중에서 연출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가끔씩 꽤 분명하게 튀어나오는데, 또 이런 류의 실패작들이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이유, 이 영화가 오로지 믿고 밀어주는 캐릭터빨이 이번 3편에선 펑펑 튀어나오는군요. 의외로 잭 스패로우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된 편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중견연기자들이 워낙 얼굴에 철판 깔고 잘해줘서 영화를 버티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이 형편없는 시나리오를 읽고선 대박을 확신한다며 키라 나이틀리를 끌어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던 바르보사 영감역의 제프리 러쉬가 맘에 들더군요. 호탕하게 껄껄거리며 웃을 때마다 진심으로 놀이공원에 와서 신나게 놀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주윤발과 크라켄이라는 쓸만한 캐릭터들은 정말 어이없이 날아가버리지만, 후반부의 흐름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처리해버릴 수밖에 없었을 듯. 막판의 블랙펄VS플라잉더치맨 매치에서 보여줬던 액션씬들도 괜찮았고. 그와중에서 벌어지는 윌 터너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식은 한발짝 물러서면 완전 개그지만 그 뻔뻔스러운 낭만성에 낄낄댈 수는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뭐 이걸로 이제 다음 해적에선 그 부부는 안 나오게 될 듯.

 

역시 공짜로,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보는 것이야말로 어떤 영화에게든 사랑의 퍼센티지를 높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 그리고 새벽의 텅 빈 거리를 자전거로 신나게 달리는 일 또한 사람을 엄청나게 너그럽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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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7-06-0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로 드디어 절반 넘는 스크린을 장악했더군요. 이거 '국적'으로 봐야할지. 그냥 독과점으로 봐야할지. 대략…영화에 관심을 끊은지 어언 4년 째지만 어쨌든 뷰리풀한 낮입니다.

hallonin 2007-06-04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크린쿼터 문제라든지 독과점 문제라든지가 나올 때마다 궁금해지는 것은 정작 그 현장엔 극장주나 배급업자들(&제작사-대기업)은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나 요즘이나 관련해서 벌어지는 논쟁들은 볼 때마다 진짜 당사자는 안 나오고 생뚱맞은 사람들끼리 치고 박고 있다는 기분이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