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듀얼 스피커를 드디어 가동하는 순간이 왔다.
아, 이것이야말로 꿈속에서도 꿈꿨던 천상의 소리..!
라는 건 내 상상 속 플레이였고, 천상 조까라 그러는지 이브라힘 페레르의 앨범을 듣는데 뭔가 한쪽 스피커에서 좀 껄쩍지근한 잡음이 질질 섞여 나오고 있었다. 흐음.... 싶어서 음역에 따른 소음 발생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해골 복잡하지 않도록 최대한 악기수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다양한 파트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거라 판단된 황병기의 [달하노피곰]을 걸어봤다.
스피커 한쪽의 저역출력에서 완벽하게 트러블이 있었다. 가야금과 북의 저음을 제대로 소화 못하고 닥닥다그닥 소리를 내더니 그냥 험으로 진화해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전주인과 통화 상의후 반납 결정. 내 인생의 첫번째 듀얼 스피커는 그렇게 증발되어버렸다.
이렇게 되자 새로 스피커를 구해야 할 판이 됐다. 그러나 문제인 것이 한달 후에 오게될 앰프는 진공관이고 풀레인지를 위해 제작 의뢰를 한 것이었으니, 어찌되었든 풀레인지+소출력 진공관 앰프의 맛을 보겠다고 작정한 이상 다음에 고를 스피커도 풀레인지여야 하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 스피커 노선은 풀레인지 집착으로 계속 이어지게 되는데, 이젠 빈티지에 학을 떼버린 이상 제대로 검증이 되고 정보도 많으며 되도록 최근스러운 제품으로 골라보기로 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풀레인지의 희소성도 그렇고, 어쩌다 나오는 자작이나 공제품들의 가격도 그렇고, 여기까지 온 이상 선택은 한가지밖에 없었다. 보스 101. 특수제작된 인클로저로 비를 맞고 눈을 맞아도 끄떡없이 소리를 낸다는 강철 내구성을 자랑하며 어떤 앰프라도 거리낌 없이 먹어치워준다는 전통의 저가 명기. 인기 모델인데다 많이 팔린 물건답게 시장에도 그럭저럭 자주 나오는 편으로, 그리 어렵지 않게 101MMW 접수에 성공한다. MM 뒤에 W가 따로 붙은 이유는 별 게 아니고 그냥 색깔이 깜장이 아니라 흰색이라서.... 나머지 스펙은 동일한데 단지 흰색이란 이유만으로 일본 기준으로 정가 발매시 3천엔이나 더 비쌌다니. 그런데 중고로 사니 세월이 만든 때도 끼고 해서 흰색이 별로 흰색은 아니란 게 흠이었지만 뭐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진공관 앰프를 기다리면서 설렁설렁 들으려고 하는데,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실내악이나 보컬들을 소화해줄 진공관 앰프를 잡아놓은 건 좋은데, 대편성곡이라면 아무래도 대출력 앰프로 들어야하지 않을까. 마침 보스 101이라면 대출력 앰프도 무난하게 잡아줄테고. 또 대출력 앰프와 물린 보스 101의 위력에 대해서 간간이 본 바가 있었던 탓이기도 했다. 그래 좋아. 무지막지하게 때려주는 놈으로 하나 찾아내보자. 그래서 조건들을 생각해본 끝에 결정한 모델은 바로 인켈 AD-280B.
듣기 좋게 '빈자의 매킨토시'라는 별명이 붙은 이 실용론 측의 개가와도 같은 모델을 선택한 이유는, 우선 많은 이들이 써봤고 그만큼 꾸준히 얘기됐기 때문에 이 모델이 변강쇠마냥 힘이 좋고 무엇보다도 저역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댄다는 성향에 대해서 의심할 바가 없었다. 50Hz까지 내려가는 보스101의 스펙을 볼 때 이놈을 고르면 그 바닥까지 살려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일단 280B는 인기가 있기 때문에 가격 보전이 좋다. 시장에 내놓으면 바로바로 팔릴 정도로 인기 모델이라 소위 말하는 바꿈질을 위한 포지션이 좋다는 것. 마지막 이유는 인기가 있었던 만큼 280B에 대한 상당한 양의 개조 데이타들이 축적되어 있는 상태라는 점이었다. 여차하면 전문가에게 오버홀을 겸한 개조를 의뢰하면 또다른 기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워낙 인기 모델이라 심지어 고장품이 나와도 오버홀 개조를 해버리면 되니 덥썩덥썩 잘도 팔려나갈 정도였다. 결국 긴 잠복 끝에 280B의 블랙 버전인 AI-3000을 접수하는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