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iXAvkmaut5g&t=16s

미혼의 여성이 이 유튜브를 들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글을 보았다. 이 유튜브의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겁니다'와 초반 앞에 따 놓은 어그로 그대로 '그런 사람은 아이큐가 두 자리'라고. 아이가 셋인 나는 우선은 화가 많이 나서, 퇴근하는 차에서 남편에게 투덜거렸다. 남편이 그렇게 건너 들은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되고 확인해야 한다고 해서 확인했다.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 


나는, 아빠가 '나는 되는 사람만 찍어'라고 말했을 때 믿었다. 

선거 다음날 누구를 찍었냐고 물으면 아빠는 언제나 저렇게 대답했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나는 한참 후에나 알았다. 

무서운 시대였고, 정치적 입장은 숨겨야 했다는 걸, 아주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나는, 주토피아,를 보고도 역시 왜 어른들은 이렇게 말할까, 의구심을 가졌었다. 

(쥬디의 부모가 자신의 직업(농업)을 묘사하는 방식에 뜨악해하고, -요새는 내가 너무 곧이 곧대로 듣는 성정이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더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그게 시니컬한 농담인 건가, 싶기도 하지만- https://blog.aladin.co.kr/hahayo/8604003 )

사람들은 순정하게 말하는 방식을 잊은 걸까. 


이런 나조차도, 아이를 막 키우기 시작했을 때,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나 어렸을 때 상처받았어요'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 때 내가 쓴 반어법은 음, 기억나지 않는다. 잘못을 한 아이에게 잘했다,고 했던가. 


나는 이야기,라는 것이 가지는 미묘한 왜곡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오즈의 마법사'는 '돌아갈 집에 대한 예찬'이지만, 뇌리에 남는 노래는 '오버 더 레인보우'고, '겨울왕국'은 사랑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지만, 또 뇌리에 남는 노래는 '렛잇고'같은 거다. 집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는 영화에서 '저기 무지개 너머에는 아름다운 것이 있을 거야,라는 노래가 남고, 사랑이 가장 힘이 세다고 말하는 영화에서 '가족을 내팽개치고 떠나는 노래'가 남는 거다. 

교수님은 하고 싶은 말을 마지막에 했고, 그게 전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건 결국 전해지지 않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역시, 나의 곧이 곧대로 듣는 성정이 문제인 건가. 


순정한 말들은 연약해서, 부끄럽고 깨지기 쉬워서 그런 걸까. 나의 부모가 나에게 했던 대답 같은 거였을까. 

상대가 더 잘 받아들일 만한 말들로 문을 열어야 상대가 듣기 시작하게 할 수 있어서 그런 걸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으니 그런 거였을까. 듣기 좋게 말하는 걸로 무얼 할 수 있을까. 


아이에게 담백하고 정직하게 말하려고 노력하지만, 내 말은 내 뜻은 전해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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