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컨택트 : 일반판
드니 빌뇌브 감독, 제레미 레너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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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blog.aladin.co.kr/hahayo/791600

당신 인생의 이야기,라는 원작을 굉장히 재미나게 읽었다. 그러고는, 영화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게 가능한가 생각했다. 이론물리학과 언어학에 대한 설명이 한 가득인데, 영화라는 그림으로 보여줄 만한 게 거의 없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보고 싶은 마음이 별로 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주말 아침 무료영화를 검색하다 궁금한데 봐 볼까, 싶어 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심심했다. 스펙터클,을 만들기 위한 상황은 허세를 떠는 젊은이 같았고, 나에겐 그저 병치이던 삶의 순간들은 영화 속에서는 나란히 미래를 보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 내가 책을 이상하게 읽었나, 싶어서 영화를 보고는 원작을 다시 읽었다.  

원작을 읽을 때 미래를 안다,나 결과를 안다,는 것이 나는 사후적이라고 생각했고, 소설 속의 병치는 그저 병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화에서 묘사된 미래를 보는 방식은 생경했다. 

질문 자체가 책 속에 있고, 영화처럼 해석할 여지가 분명히 있기는 하다. 그런데, 역시 나는, 다시 그럴 리가, 라고 생각하는 거다. 여전히 미래는 믿음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나의 이런 믿음이 강경해서 소설에서 그렇게 설명하던, 외계인의 사고를 내가 결국 이해하지 못한 걸 수도 있겠다. 

글자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언제나 오독의 여지가 있다. 미래를 안다는 것이, 이유를 안다는 것이, 그 다음 삶들을 어떻게 살게 할까,라는 질문도, 책은 나처럼 회한이 얽힌 사후적 이야기로 읽는 사람이 있을 테니 영화는 거대한 사건을 연결시킨 거다. 영화적이게 하려고, 사건은 커지고 악당은 만들어진다. 

영화를 보고 다시 읽은 책은 처음 읽었을 때만큼 훅 들어오지 않았다. 글 가운데 상상하던 아름다운 사람을 이미 영화로 봐 버렸기 때문에, 글자를 글자 가운데 여백으로 읽었는데 액면 그대로 읽은 사람이 구현한 걸 이미 봐 버렸기 때문에 시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하던 이야기가 변해 있었다. 아, 영화처럼 읽을 소지가 있긴 있었어. 나는 공연히 영화를 봐서, 나의 그 쓸쓸한 이야기를 잃었구나. 원작은 동양화처럼 여백이 많았는데, 영화는 그 여백에 무언가를 채워넣어 서양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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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의 비밀 문과 물결이 내일을여는어린이 2
강다민 지음, 강다민.조덕환 그림 / 내일을여는책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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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이들은 주먹왕 랄프를 보러 들어가고, 나는 영화관 이층 북카페에서 기다린다. 음료도 시키고 책장에서 책도 하나 골랐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는지 궁금했다. 

반핵을 주장하는 전단지보다 더 낫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데, 나와는 태도가 충돌한다. 


무엇에도 의도는 없다. 사람이 하는 일에 의도가 있다면 악의보다, 선의일 것이다.


책 속에서,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가 피폭당해 꿈 속에서 플루토늄과 세슘과 스트론튬을 환상으로 만나는 물결이는 미지의 별을 파괴하고 지구를 파괴하려는 플루토늄과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의도는 없다고 어떤 것이든 명과 암이 있고, 좋은 것과 싫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 묘사가 싫었다. 나는 누가 나에게 해를 입힌다고 해서, 나를 싫어해서나 나쁜 의도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악의조차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건, 주말에 두번이나 본 '서유기, 모험의 시작'에서 법사님이 삼장에게 설명했듯이 '악이라고 해도 그 악을 없애 함께 살도록 해야 한다던'그런 태도 같은 거다. 돌이나 물과 다를 바 없는 플루토늄과 세슘과 스트론튬에 인격을 주고, 이제 지구를 파괴하러 왔다고 말하게 하는 이야기,라니 아이에게 읽게 하고 싶지 않았다. 콘센트 뒤로 이어진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은 진실이지만, 그것들에 그런 의도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세상 많은 것들이 그렇다. 전등을 끄고 다니라는 말을 '할머니같은 잔소리'라고 생각하면서, 미래에는 집에 지니가 기다리고 자율주행전기차를 타고 다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낡은 냄비를 버리고 새로 좀 사라고 하면서, 새 옷을 입고 새 신을 신고 더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공격하기 쉬운 상대를 공격하는 것으로, 상대를 악당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미래가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거다. 한 가지만 없앴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그런 게 있다며 얼마나 좋을까마는 세상은 복잡하고, 자연은 의도가 없고, 쓰레기를 만드는 문명의 삶 가운데 문제는 풍선처럼 눌린 다음 다른 곳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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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3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5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사IN 제587호 : 2018.12.18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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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할 준비를 읽으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94년에 대학을 입학한 내가, 96년의 연대사태를 거치고, 99년의 군가산점 논쟁, 05년 호주제 위헌판결까지, 나는 나의 여자친구들과 이전에 없는 새로운 세대라고 자부했다. 나의 새로운 생각,이라는 것이 6~70년대 미국의 여성들이 써놓은 책을 읽고 하는 거였으면서, 나를 보고 혀를 끌끌 차는 여성운동가들을 한심하다고도 생각했던 거 같다. 마돈나가 주는 해방감을 이해하지 못하는 늙은 여자들,이라고도 생각했다. 

이제 내가 그 여성운동가들만큼 나이들어서, 다시 예전 내 나이 또래의 여성이 '이제 우리는 아예 새롭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있다. 어쩌면, 이 단절과 자기 확신이 여전히 '새롭다'고 등장하는 어린 여성들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내가 스스로를 '새롭다'면서 선배나 조직을 찾지 않고, 또래들과 꾸렸던 모임은 어떤 형태가 되었는가, 생각한다. 각자의 길에 각자의 삶을 살면서, 우정을 나누지만 힘이나 권력?이 있는가 되묻게 된다. 새로운 또래집단 여성들이, 스스로를 새롭다고 재정의하고 새롭게 등장하며 야망을 드러낼 때, 무언가 말을 보태는 나는 내가 젊은 날 이해하지 못했던 나이든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여성에게, 권력이 없었다,라는 명제를 나는 동의할 수 없지만, 만약 그러하다면, 그건 이런 식으로밖에 조직하지 못하는 여성의 문제라고도 생각한다. 쌓이지도 않고 처음부터, 끊임없이 다시 시작하며, 새로 길을 내며 성큼 성큼 걷는다. 그 길은 넓어지지도 편리해지지도 않는다. 여전히 그렇게 좁고 수풀로 가로막힌다. 또래집단 가운데, 겨우, 그렇게 좁게 난 길이 세대를 건너 가끔 조금씩 발굴된다. 그리고 여전히 다시 새로 시작한다. 

위계가 없는 수평적 조직은 과연 밖으로의 투쟁에서 권력을 가져올 수 있나? 조직 간 경쟁에서 살아남거나 커질 수는 있나? 조직이란 어떤 걸까? 서울 시내 총여학생회들이 사라진다는 뉴스를 보면서,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과, 그 와중에 사라지는 것들, 쌓이는 시간 없이, 무얼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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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마음의 연구 - 자아와 세계의 근원으로서의 아뢰야식
한자경 지음 / 서광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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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책,이라고만 적어놓으니, 무안해서 뭐라도 써야지 싶은데, 무얼 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몇 번이나 책 속에서 밑줄긋기를 하려고 했는데,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서 하지도 못했다. 따로 빼서, 너무 좋아서 한 마디도 못 쓰고 있는 책, 리스트를 만들까도 하다가, 리스트에도 뭐라고 써야될까, 싶어서 결국 '정말 좋은 책'이 되고 만 거다. 

결국 나는 서양의 학문들로 교육받았기 때문에-과학자를 꿈꾸면서 공대생이 되었다가, 기술직으로 20년을 일하고 있다, 지금 기술적인 일을 하느냐는 차치하고- 동양의 인식이나 철학에 대한 설명에도 어쩔 수 없이 논리를 요구한다. 논리의 한계가 너무나도 분명함을 알고, 때로 그것 때문에 더 이상 책이 나아가지 않는 순간들이 있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인 글에는 또 그만큼 다가서지 못하고, 또 지나치게 논리적인 글에는 답답한 마음이 된다. 

책 속에서,내가 합리적이라는 사람들의 말에 답답하기만 하고 설명하지 못한 순간들을 만난다. 아빠가 나에게 설명하지 못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달아가는 지금, 믿음에 대한 말들이 나에게 온 것이다. 

여전히, 서양이 동양을 '이겼고', '정복했기' 때문에 서양을 쫓고 있는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가고 나이들고 있는 지금의 나는, 질 수 밖에 없었던 어른의 태도를 그 하나의 마음을 인류가 배웠으면 좋겠다. 

믿음은 일단 앎의 반대개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관해서는 나는 그저 알고 있을 뿐, 그것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앎의 반대는 정확히 말해 모름이고, 모르면 의심가능성이 있으며, 이때 우리는 의심하거나 믿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우리의 행동이 미래로 향해 있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앎은 엄밀히 앎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삶 자체가 사실은 믿음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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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읽었다고 하기에는
    from 뒤죽박죽 뒹굴뒹굴 2020-11-12 06:11 
    서양인은 오랫동안 인간이 몸이라는 그릇에 담긴 정신이며, 정신이 바로 인간의 정수라고 생각해왔다. 그리스철학들과 서양의 의학들과 서양의 종교가 그러하다. 몸이라는 그릇에 담긴 영혼에 대해 논하는 서양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몸을 재생산하는 여성을 두려워하면서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끊임없이 위치지웠다. 그런 방식으로 제3세계의 사람들을 또 위치지웠다. 서양의 방식으로 남성의 방식으로 위계지워지는 가운데, 여성은, 자연은, 제3세계는, 대상이 되고 식민지가 되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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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1-04 0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족님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