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이연 지음 / 미술문화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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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좋은 책에 서평을 잘 못 쓰는 이유는 이미 그 책으로 충분해서라고 생각했다. 다른 말을 보탤 필요가 없어서라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시샘하고 있는 것도 같다. 


책은 선명하게 파랗고 작다. 그림이라는 매개가 있기 때문에 글들이 꽉 찬 느낌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산 것은 아니다. 나도 이 책의 시작처럼, '허락은 오직 자기자신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리 이런 저런 이유를 대도, 그걸 하거나 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산 책도 아니지만, 삶에 대한 은유로 읽어도 좋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필요한 마음가짐, 도구들, 관찰하는 눈, 꾸준한 태도. 스스로의 이상함을 인정하고, 타인의 이상함을 관찰하면서 긴 인생을 살아갈 단단한 태도가 드러난다.

 

역시 너무 좋아서 내가 더 보탤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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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화장품에 관심을 보이던 아이였을 때, 엄마는 내게 '사람의 몸에는 원래 나는 빛깔도 광택도 있어, 자꾸 가리면 사라져버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되서 아빠랑 온천에 갔거든. 따로 탕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만나기로 했지. 목욕하고 화장하면 화장 잘 받거든. 그래서 곱게 화장하고 나갔더니 아빠가 뭐랬는지 아냐? 도대체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했냐는 거야. 뭐, 그래서 그 다음부터 화장 안 했지, 뭐.'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두 분이 천생연분이네, 좋네, 그랬다. 그런데, 나중에 내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전하자, 그 사람은 '아마 아빠가 화장품 값이 아까워서 그랬을 거'라고 말했다. 에? 엄마가 막 꾸미고 싶어한 사람이 아니어서, 둘 사이의 대화가 해피해서 다행인 건가,라고 생각했다. 

동양과 서양은 다르고(https://blog.aladin.co.kr/hahayo/10530930), 많은 여성억압의 장치들이 근대화와 함께 들어왔다고(https://blog.aladin.co.kr/hahayo/11198936) 생각하고 있어서, 자신의 삶에 비추어 책을 읽지 않는 것이 걱정스럽다. 

너는 어땠어?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나에게 만약 억압이 있었다면 그건 나나 내 또래집단의 것이었다. 여자친구들이 모여서 웅성웅성 하던 이야기. 중학교 체육대회에 열심으로 뛰던 여자선생님이 얇은 브래지어 때문에 젖꼭지가 도드라진다고 흉보던 순간,이나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옷 못 입는다고 사모님 흉을 보던 순간 같은 거다. 자유가 폭발하던 풍요의 마지막 시기였기 때문에(X세대라고들-_-;;) 남들이 뭐라던 신경 안 쓴다는 애들 천지였다. 화장을 하기에는 게으른 인간이었고,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뭐라고 할 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여자들이 많은 공간에서 더 많이 벌어지는 그런 미에 대한 강박을 왜 여기서 지금 말하면서 남 탓을 하는지 의아한 순간들이 많다. 

친구가 한복처럼 성적이지 않은 옷이 없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중국의 악명높은 전족과 화양연화를 다시 보니 고문같은 치파오, 일본의 기모노와 달리 한복은 허리도 가슴도 강조하지 않는다. 이 땅의 여자들은 훨씬 강하고, 허리춤을 바짝 묶고 뛰고 도망가고, 혹은 호랑이를 쫓은 강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는 거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큼 강한 존재이면서, 왜 약하기 짝이 없는 여자들의 한심한 말들을 그대로 받아 듣는가.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고, 그걸 억압할 만큼 구분하는 사회가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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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1-04-30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페미니즘 찬양을 계속하고 있는 분이 쓴 댓글에서 남성 성기의 비속어를 여과없이 사용하고, 젊은 남성에 대한 성적 표현을 당당히 쓰는걸 보고 경악했습니다. 얼마 전 일인데, 수정했더군요...

별족 2021-05-01 05:38   좋아요 1 | URL
그 댓글은 못 봐서 제가. 그렇지만, 지금의 페미니즘이 뭔가 자신의 말들로 자신을 비추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멀어지게 됩니다.
 
[eBook] 포뮬러 - 성공의 공식
앨버트 라슬로 바라바시 지음, 홍지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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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고 딱히 보탤 말이 없어서 서평은 못 쓴 책에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https://www.aladin.co.kr/shop/common/wseriesitem.aspx?SRID=14905) 가 있다. 책 속에서 멀린이 행하는 마술은 다른 사람보다 일찍 알아차린 과학처럼 묘사된다. 마법사라는 도제관계에서 전해지는 식물과 동물과 광물의 특성을 이용하는 것. 아주 깊은 과학은 마술처럼 보인다, 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책은 데이터과학으로 뽑아낸 성공의 공식, 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가 과학자가 아니라면, 이 책의 내용이 처세술 책과 구별이 될까,라고 생각했다. 그저 처세술 책의 말들이 근거없지는 않다,라는 정도의 인상이 될 수도 있다. 성공부터 정의하는 저자는 성공은 성과가 아니라, 타인이나 업계의 평가라고, 관계 안에서 인정받은 정도를 말한다. 성공의 정의부터 받아들이기 어렵다. 과학,이라는 척도가 기준을 원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정의를 하는 거겠지만, 그러고 나면 킴 카다시안의 성공과 아인슈타인의 성공은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솔직히 자신의 아이가 대학에 원서를 내야 할 때, 자소서? 관리를 안 했다고 할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1공식인 인적 네트워크를 관리하라,의 도입부로 동구의 나라에서 이민한 자신이 공부만 해서 좋은 성적만으로 아이가 성공하리라고 기대했는데 당장 명문대에 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되짚는 거다. 보면서 한 생각은 뭔가 요즘 공정의 논리 가운데, 선진국이라는 나라들도 다를 게 없다,면서 보여주고 싶었다. 시험만 잘 보면 높은 성적이 큰 성취의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들에게 들려주고는 싶다. 학교에서나 그렇지, 그건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해,라고. 과학자인 대학교수가 아이의 입시관리에 멍청했다고 고백하는 대목부터 연상시키는 게 너무 많아서 좋은 인상이 아니었다. 성공과 실패로 예를 든 바스키아와 바스키아의 파트너 이야기는 어떠한가? 바스키아는 나도 알 만큼 성공했지만 일찍 죽었잖아. 그런 성공이 좋아? 싶었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성공은 삶을 파괴한다. 성공을 인정받는 정도,라고 했지만 그 인정에 가치가 배제된 과학적?이랄 척도라서 이 책의 어떤 태도가 서구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거다. 요절한 젊은 천재를 기억하는 태도, 사람들의 기억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 태도- 애니메이션 코코를 볼 때 의문을 가졌던(https://blog.aladin.co.kr/hahayo/10022361)-같은 게 책 전체에 흐른다. 

초반에 좋지 않던 인상을 가진 채로 끝까지 책을 읽어야 했다. 스포츠나 쇼비즈니스로 시작했던 설명이 과학이라는 협소한 분야로 흐르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희망을 가질 때에야 뭔가 다른 태도를 발견한다. 

과학적 분석 결과는 이것을 가르키지만, 마음과 태도는 저것이다,라고 설명하는 인상을 받는다. 

인맥이 성공을 만들 수 있고, 끊임없는 시도가 필요하고, 꾸준하고 성실할 필요가 있다,는 성과에는 한계가 있지만 성공에는 한계가 없고, 최고의 실력인 사람들 사이에서 성공과 실패는 불투명하다는 말들은 이게 과학이 아니라고 해도 너무 많이 들은 말들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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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현대인은 자라지 않기로 결심한 건가.

서울우유 광고를 놀라면서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BZug213xufI

링크를 찾아 유튜브를 검색했더니 댓글은 사용중지되어 있다. 


젊은 부부를 아이가 깨운다. 명랑하게 깬 아이는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하는 부모를 깨운다. '일어나! 나 학교 가야지'라며 부모를 깨운 아이는 명랑하게 웃으며 우유를 내밀고, 셋은 함께 집을 나선다. 짧은 티비광고가 아니라, 30초짜리 풀버전에 부모는 모두 출근을 한다.

나는 출근을 해야 하는 부모가 아이가 깨울 때까지 자고, 아이가 건네는 우유를 마시는 데 놀란다. 아이가 건네는 우유를 마시면서 아이에게 고맙다고 가볍게 아이를 토닥이는 부모를 신기하게 본다. 그런데, 4초짜리 버전https://www.youtube.com/watch?v=wDp161f2h283 )에 달린 댓글에 또 한 번 놀란다. 아이가 '나 학교가야지'라고 짜증내면서 깨우는 목소리가 싫다면서 그렇게 깨우면서 달랑 우유를 내민다고 광고에 대해 말한다. 에????그럼 아이가 부모를 깨우고 한 상 차려 먹여야 하는 건가? 사람들은 도대체 아이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저 내가 아니기만 하면, 되는 건가. 부모에게 돌봄을 받으며 자랐을 저 젊은 부부는 이제 아이를 낳아 아이의 돌봄을 받기를 기대하는 건가. 저 광고가 공감을 받는다는 건 무엇에 대한 것인가.


나는 어렸을 때 불교는 '삶이 고통의 바다'라고 해서 싫다고 했었지만, 이제 삶이 고통의 바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 몫의 짐들이 무거워져서, 아 그래서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한 거구나, 하루 하루 깨닫고 있다. 그 와중에 내 젊은 날의 많은 말들이 어른의 짐을 오해한 말들, 불가능한 말들,이었던 것 같아 후회되기도 한다. 나의 취향을 드러내어 요구하는 것이, 더 많은 낭비를 불러온다는 자각도 들고(https://blog.aladin.co.kr/hahayo/11946079) 정말 그게 옳았던가, 생각도 많다. 그래도 살아간다는 것에 책임이 따르고, 내가 그 책임을 어떻게든 감당해보겠다는 태도도 있다. 그런데, 저 광고 속의 부모들은 어떠한가. 뭔가 부모라면 늘 하는 상상이거나 바램, 헛되지만 혼자서 킬킬댈 수는 있는 그런 부끄러운 상상을 이렇게 만천하에 드러낼 만큼 자신이 받은 돌봄에 대해 '아이도 할 수 있는데 내가 하기는 싫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부모인 자신은 매일 매일 지쳐서 깨지 못할 만큼 힘들지만, 자신의 아이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자라면서 감당할 수 있는 괴로움의 크기가 또 커지는 거라면, 아이에게는 아이 몫의 괴로움이 있을 텐데,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아이를 그리는 걸까. 부모가 깨우고, 부모가 주는 밥을 먹고, 부모가 챙겨서 옷을 입고 학교에 가도, 아이는 아이 몫의 괴로움을 감당하면서 살아가는 건데, 광고 속의 아이가 너무 예쁘게 웃어서 어른이 보고 싶은 아이가 저런가 싶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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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1-04-28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에 아마도 소설에 묘사되었을 것이다. 

아름답고, 아마도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여자들, 뭐든 용서받을 수 있다고 자신만만한, 거짓 속을 살아가는 여자들. 


1. 레베카,의 레베카 

환상 속의 여인, 아름답고 유능하고, 자신의 미모와 성을 이용하는 사람. 

남자는 도구나 수단일 뿐이라서, 실상은 살해당한 전처,지만, 소설 속 

묘사는 죽음을 앞두고 남편이 자신을 죽이도록 사주했다는 식. 

늙음도 죽음도 감당하지 않기로 하는, 예쁘고 도덕심은 없는 환상 속의 여자. 

https://blog.aladin.co.kr/hahayo/11995210



2. 다정검객무정검,의 임선아

절세미녀, 남자는 손쉬운 도구일 뿐인 여자. 

남자를 이용하고 버리고,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자. 

늙고 초라하고 쓸쓸한 죽음은 합당하다고 볼 수 있는 동양적 해석일까. 

https://blog.aladin.co.kr/hahayo/11876101


3. 나를 찾아줘,의 에이미

똑똑하고 아름답다. 

남자들은 수단이나 도구, 자기 뜻대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물론 속일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이라고 해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결국 속인다. 

https://blog.aladin.co.kr/hahayo/6377932



여자들은 피해자이기만 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일은 책 속에도 현실 속에도 없다. 통계상으로 95%라고 해도, 5%는 존재하고, 통계상으로 95%라고 해서 사안의 반대쪽을 발언하지 못하게 할 수도 없다. 가스라이팅은 연애하는 남자가 여자에게 하고, 연인간의 폭력은 남자가 여자에게 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여자도 남자에게 할 수 있다. 이상한 범주를 그대로 일반화시켜서, 사안마다 여성 곁에 서는 태도는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자신만만한 나쁜 여자들이 더 자신만만하게 만들 뿐이지. 여자가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해도, 행동의 댓가는 여자가 치르는 것이고, 남자가 가스라이팅을 당했다고 해도, 그 댓가는 본인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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