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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를 찾고 너를 만나: 유학자와 함께 일상에서 철학하기
금장태 지음 / 바오로딸 / 2015년 3월
평점 :
나는 유학에 호감이 있고, 기독교에는 편견이 있다.
유학이 꽤나 이성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의심이 들 때는 꼭 물을 것을 생각하고(사자소학의 구사九思 중)-, 이렇게 이성적인 유학자가 어떻게 기독교도가 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산, 자네에게 믿는 일이란 무엇인가'( https://blog.aladin.co.kr/hahayo/11596640 ) 를 구해 읽기도 했었다. 나의 호기심에는 먼저 읽은 책보다는 이 책이 더 맞는 거 같다.
영성에 대한 이야기다.
무언가 설명을 듣다가, 그래서 그게 뭔데?라는 질문이 닥치는 순간 조용히 눈을 들여다보면서 해야 하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글을 쓰는 동안 필자의 생각이 어둡고 이해도 얕아 벙어리가 꿈 이야기를 하려는 듯하여 말하는 사람으로서 답답함이 심했으니, 듣는 사람까지 답답하게 할까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4%(머리말)
따라서 내가 '나'에게 어떤 나를 바라고 있는지, '나'를 어떤 품격의 존재로 알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져 있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구절은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존재로서 숙명적인 한계를 알라는 말도 되고, 사회 안에서 자신의 처지나 분수를 알라는 말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는 결코 고정된 사물이 아니다.
'나'에는 이미 굳으져 형체를 드러내는 부분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부분이 지금 형성되는 도중이고, 언제 어디로 얼마나 큰 힘이 터져 나올지 모르는 활화산같은 존재다. -5%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를 사랑할 수 있고, 자기를 가르쳐 준 스승을 사랑할 수 있으며, 조국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를 사랑하고 스승을 존경하고 조국을 사랑하라고 아무리 도리를 따져 가르쳐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공허한 말일 뿐이다. 그래서 맹자는 "자기를 해치는 자와는 더불어 말할 수 없고, 자기를 저버리는 자와는 더불어 일을 할 수 없다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 맹자 7-10:1 고 했다.-7% (자기를 사랑해야)
사람은 언제나 잘못을 저지르고 난 다음에야 고칠 수 있으며, 마음이 괴롭고 생각이 막힌 다음에 분발하며, 안색에 나타나고 소리로 터져 나온 다음에 깨닫는다. 나라 안에는 법도 있는 집안과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나라 밖으로 적국과 외환이 없으면, 그런 나라는 언제나 멸망하기 마련이다. 그런 다음에야 '우환 속에서 살아갈 수 있고 안락 속에서 죽게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맹자 12-15:1 - 19% (편안할 때 근심을 잊지 말아야)
자신의 기질이 지닌 문제점을 스스로 고칠 수 있다는 말은, 고칠 수 있는 것도 자신이요 고치지 않고 방치하는 것도 자신이라는 말이다. 바로 이 점이 자전거 같은 사물과 인간존재가 다른 점이다. 스스로 노력하고 있는 동안은 비록 고장이 난 상태라 하더라도 그것은 '자포자기'가 아니다. '자포자기'는 스스로 고치려는 생각도 의지도 없는 자기 파괴요 자기 부정인 것이다. ~ 하늘이 인간의 가능성을 끊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하늘이 주신 가능성을 끊은 죄를 지적한 것이다. '자포자기'란 바로 인간이 스스로 하늘을 끊은 '자절自絶'이라 하겠다.-26~27% (자포자기와 자절)
항상하면 긴장을 풀고 안심할 수 있으니, 그 편안함을 누구나 바란다. 변화하면 긴장해야 하고 불안해지니, 그 불편함을 누구나 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 변화는 숙명적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항상함이란 변화가 없는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그 변화를 조종할 수 있는 원리나 법칙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늘이 영원불변의 존재라는 말도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변화를 다 포함하면서 유지해가는 변함없는 근원이 된다는 것이고, 우리 마음에 항상한 성품과 지조가 있다는 것도 순간순간 변하는 마음에서 그 중심을 지속적으로 지켜주는 힘이라 하겠다.-27% (항상[常]과 변화[變])
우리의 몸이 활동하는 것은 그 바탕에 고요함이 중심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니, 항상 활동[動]과 고요함[靜]은 서로 보완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본다. 이처럼 일하고 쉬는 것도 어느 한 쪽이 결핍되면 다른 쪽도 무너진다는 사실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만 하고 쉴 줄을 모른다면 그 일의 바탕이 허약해져서 언제 병들고 주저앉을지 알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쉬기만 하고 일하지 않으면 그 휴식은 쓸모가 없어 저절로 녹슬어버릴 것이다.-30%(휴식에서 얻는 활력)
문제는 어떻게 해야 '덕'을 쌓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상'의 다섯 가지 '덕' 가운데서도 전체를 대표하는 덕이 '인 仁'인데, 정약용은 '인 仁'이라는 글자가 '사람[人]'과 '둘[二]'을 뜻하는 두 글자가 결합된 것임을 주목하여, 두 사람 사이에 행해야 할 도리라 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덕목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전체를 포괄하고 있는 덕인 '인'은 바로 나와 너 두 사람 사이의 도리를 가르키는 말이다. 결국 사람답게 사는 도리는 내 속에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나고 실현될 수 있는 것임을 강조했다. -33% (사람답게 사는 도리)
그래서 대중을 좀 더 쉽게 이끌어 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이 제시되었다. 깊은 산골에서 시냇물이 흘러내리다가 바위에 막히면 잠시 기다렸다가 가득 차면 바위를 넘어 다시 흘러간다는 점진적 방법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수 없을 때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하여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넓혀간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그 사랑이 이웃으로 넘쳐흐르게 한다. 사랑을 넓혀가고 채워과는 확충擴充의 방법이다. 사랑이 자신을 채우고 바깥으로 흘러 넓어질 때 인간다움의 덕도 커지고, 사랑이 자신 속으로 움츠러들 때 인간다움의 가치도 잃게 된다.-34% (사람답게 사는 도리)
예절이 질서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법률은 질서의 방어선을 제시한 것이다. 그래도 법률의 한계선조차 어기는 사람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으니, 이들은 형벌로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사람들이 사회의 아름다운 풍속과 질서를 자율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36%(예절과 준법정신)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사방에서 많은 은혜를 입는 것인데 감사하고 보답하기는 쉽지 않다. 반면 원망은 너무 쉽게 분출된다. 조금만 섭섭하거나 불편과 손해를 입으면 격분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것이 반복되거나 심화되면 원한을 품고 쉽사리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니 받은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더라도 남에 대한 원한이 맺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또 은혜를 베풀지는 못하더라도 원한을 사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 41% (은혜와 원한)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에서 가장 대조되는 양상은 서양의 그리스도교와 동양의 유교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육신이야 부모에게서 받지만 생명의 핵심인 영혼은 하느님이 각자에게 부여한다. 그렇다면 영혼은 하느님 앞에 홀로 서는 존재이고, 육신은 영혼의 밑받침 역할을 하는 부차적인 것으로 본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그리스도교적 인간관, 곧 하느님 앞에 홀로 서는 존재로서의 인간관이 확산되어, 조상에 대한 관심이 희미해지고,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서 나의 위치는 더욱 뚜렷해졌다. 그만큼 개인주의가 팽배하게 된 것이다. 법률은 가족이 연좌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조상의 명성 때문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비해 유교문화는 대대로 이어져 온 연속선 속에서 개인의 존재를 인정할 뿐이다.개인은 결코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온 사슬 가운데 하나의 고리라 할 수 있다. 하나의 고리로서는 완성된 개체이지만 전체의 사슬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본다. - 47%(조상과 자손)
율곡은 어두움의 병과 어지러움의 병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이치를 궁구하여 선을 밝힐 것 窮理以明善'과 '의지를 독실히 하여 기질을 통솔할 것 篤志以帥氣'을 제시하고, 나아가 '심성을 배양하여 참됨을 보존할 것 涵養以存誠'과 '성찰하여 거짓됨을 제거할 것 省察以去僞'의 네 조목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좀 더 쉽게 설명하여, "게으른 것이 병이 됨을 알면 부지런하고 독실함으로써 치료하며, 욕심이 병이 됨을 알면 이치를 따름으로써 치료하며, 자신을 엄격하게 단속하지 못함이 병이 됨을 알면 엄숙하고 장중함으로써 치료하며, 생각이 어지럽게 흩어짐이 병이 됨을 알면 한결같이 집중함으로써 치료하는 것이다. 병이 비록 나에게 있지만 약을 밖에서 구하지 않는다" [贈洪㽒(錫胤)說]고 했다. 마음의 병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하면 스스로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95%(마음의 병과 치유법)
그러나 동시에 하늘은 인간을 감시하며 인간의 악에 재앙과 질병을 내리는 한없이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공자는 "하늘의 명령을 두려워한다 畏天命"[논어]16-8라 하여, 군자가 천명을 두려워하도록 강조했고, "하늘이 나를 버리시는구나 天喪予"[논어]11-9라 하며 통곡하기도 했다. 하늘이 나에게 덕을 내려주셨고 나를 알아주신다고 믿고만 있을 수는 없다. 하늘은 언제 나를 버리고 죄 줄지 알 수 없는 두려운 존재다. 그만큼 하늘이란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대로 나를 뒤흔들고 뒤바꾸어 놓는 존재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는 믿고 의지하면서 동시에 두려워하고 조심하지 않을 수 없지만, 더욱 절박한 것은 믿고 의지하는 것보다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것이다. - 99%(하늘을 우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