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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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겪고, 미국인 남성과 결혼해서, 동네의 유일한 동양인 아내가 되어 홀로 키우던 아들과 남편사이에서 태어난 딸을 키운 자신의 엄마에 대해, 그녀의 딸이 쓴 이야기다.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회학자가 된 딸이, 조현병을 앓는 자신의 엄마를 돌보며, 어쩌면 음식을 통해 화해하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다. 

피의 책,이라는 공포소설을 읽을 때, 인간의 몸을 피의 책,이라고 묘사하는 게 기억에 남았다. 피의 책, 한 권의 피의 책,이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미국에서 전쟁이 아니라면 멀어지지 않았을 어떤 상황들과 엄마가 겪는 괴로움과 고통에 대해 쓰는 이야기가 나는 썩 좋지만은 않았다. 

사회학자라고는 하나, 너무 자아가 깊게 개입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의 이야기인데다가, 서양인의 태도는 언제나 지나치다는 인상을 받는다. 박완서의 '나목, 도둑맞은 가난'을 거의 동시에 읽어서 그런 인상이 커지기도 한다. 

전쟁을 직접 겪고도 자기연민에서 멀찌감치 물러난 글을 읽다가, 전쟁을 직접 겪지도 않았으면서도 자기연민에 쓰러져 버릴 것 같은 글을 읽고 있자니 서양인의 지나친 자아감각에 거부감이 드는 거다. 

소수자로서 겪는 괴로움의 무게를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물러나게 되는 거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무언가 의도가 있어야 할 텐데, 소수자가 겪는 괴로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모르겠어서,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에 회의하는 거다. 소수자성은 이야기될수록 문제가 있다,라는 생각만 든다. 개개인의 개별성, 각각의 괴로움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고,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괴로움에 잠길 뿐이다. 어떤 이야기가 의미있을까. 

스스로의 마음을 탐색하지 못하고, 어머니와 지나치게 결속된 작가의 삶도 걱정스럽다. 나는 작가보다 작가의 엄마에게 공감한다. 한번주면 정없어, 이건 정,이라며 한 주걱을 더 더하고, 음식 버리면 죄받는다는 전쟁의 고초를 겪은 엄마. 내가 겪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나는 그런 문화에 둘러싸여 있어서다. 아니면, 그런 문화가 얼마나 건전한지 계속 자각하는 엄마,가 되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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