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안재성 지음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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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밥이 너무 하기 싫었다. 간만에 집에 가서 엄마에게, 생기면 먹고 안 생기면 안 먹는, 먹는 것도 재료를 불에 익히는 정도로 먹는 숲 속의 원주민이 부럽다고 한 적이 있었다. 가만히 듣던 엄마는, 얼마나 안 되었냐, 얼마나 배가 고플 거야, 라고 이야기하셨다. 아닌 체 해도 나 역시, 풍요 속에 자란 어린 아이라는 자각이 닥쳤다. 없어서 먹지 못하는 배고픔을 하나도 모르는 거다.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을 읽을 때였나, 작가가 아버지에게 낮게 나는 전투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듣는 장면이 있었다. 전쟁을 피상적으로 떠올리는 작가도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각했다던가. 


전쟁은, 오락이 아니다. 인간의 악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혼란이다. 


책 속에서 김일성대학을 마치고 교편을 잡은 스물 넘은 젊은이는 전쟁의 와중에 남조선 교육위원으로 파병된다. 미 제국주의로부터 남조선 인민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이지만, 전쟁 한 가운데 던져진 남자의 눈에 전쟁은 한심하다. 잘 작동하는 위원회들로부터 교육위원의 역할을 지원받는 짧은 묘사 다음에는, 폭격을 피해 전조등을 끄고 밤길을 달리는 차를 타고, 북으로 가기 위해 계속 걷고, 결국 북쪽으로 가는 길이 막혀 포로가 된다. 남에도 북에도 회의하는 전쟁포로가 되어, 고향에 남기로 하고 수용소에서 온갖 혼돈을 겪은 다음, 출소하여 고향 언덕에 서는 것으로 책은 마친다. 


작가에게 전해진 오래된 수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글은 생생하다.


이 땅에 다시 전쟁은 안 된다. 애써 귀기울여 전쟁의 괴로움을 들어야 한다. 오락 따위가 아니고, 피와 살이 튀고, 전쟁의 가운데도 배는 고프고, 똥은 마렵고, 살아야 한다는 걸, 그래서, 구차하고 더럽고 또 한심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삶이 이렇게 겨우 이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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