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진리는 시간의 딸 동서 미스터리 북스 48
조세핀 테이 지음, 문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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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었다.(https://blog.aladin.co.kr/hahayo/247759) 처음 읽을 때처럼 긴박하게 읽지는 못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겠다. 

그래도 다시 읽으면서는 영국과 한국은 얼마나 다른가, 같은 생각을 했다. 조선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서 정말로 그러한가, -역사가라고 해도 증거없이 쓸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같은- 질문하면서 읽었다. 


계유정난,처럼 비유되었지만, 실상은 광해군인 건가 싶었다. 읽으면서 많이 찾아봤는데, 광해군이 꽤나 오래 왕이었어서 놀랐다. 

세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찾아 읽어볼까 싶다. 


다시 읽으면서는, 뒤에 붙은 짧은 단편이 새삼스러웠다. 범죄라는 게 얼마나 정의하기 어려운가, 처벌하기 어려운가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어이가 없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이면서도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는 사람은 백치라고 보아 틀림없습니다."
"플리먼은 백치가 아닐세. 그것은 내가 보증하네." 경감이 끼어들었다. "매우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나이일세. 그것은 확실히 보증할 수 있네."
"내가 말씀드린 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백치란 무책임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백치는 무책임의 대표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열 두 사람은 모두 30대의 남자들이었는데 꼭 한 사람만 아주 무책임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곧 ‘저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 P38

"결국 악인이라는 것도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럼, 이번 주말에 다시 한번 오겠습니다. 이제 통증은 없지요?" - P45

만일 형사가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전해들은 이야기다. 특히 전해들은 증거는 더욱 질색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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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을 위한 저승길 여정 문화와 역사를 담다 29
임승범 지음 / 민속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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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령군 우범곤 총기난사사건편https://www.youtube.com/watch?v=EpAuJq_5n00,을 보는데, 짧게 만가를 읽어주었다. 아직 꽃 상여를 지고, 만가를 부르며 망자를 보내던 시기에,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총기난사사건을 묘사한 다음 가족 중 딱 한 명 말 못하는 아버지만 남기고 할머니와 손자들이 모두 죽은 집 할머니의 만가였다. 만가를 부르는 사람은 장례의 분위기, 죽음의 정황을 듣고, 그 사람을 위한 만가를 부른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죽음 가운데 손자들과 함께 떠나는 할머니의 먼 길에 부르는 그 노래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부르는, 흩어져 사라진 만가는 구할래야 구할 수 없지만, 공통적으로 불려진다는 이 노래는 채록되어 남아 있어서 읽을 수 있었다. 아직도 어딘가에서 아직 불려질 것이다.

문화를 짝짓기 춤으로 생각한다고 했지만, 만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평생에 몇 안 되는 문화공연이 이렇게 죽음 앞에 있었구나, 생각했다. 이 노래들 가운데, 사람들의 믿음이, 삶이 지탱되고 있다. 

까운 사람의 죽음 후에 낭송되는 노래를 통해, 남은 사람들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한다. 그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다시 만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 길의 험난함은 삶의 어떤 면에 빚지고 있는지 듣는다. 공간에 퍼지는 목소리를 통해 어떤 가상의 공간, 죽음 이후의 여정을 듣는다. 가까운 사람이 가고 있고, 내가 언젠가 가게 될 그 길에 대해 들으면서 공동체의 어떤 기준들이 가치들이 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도 같다. 

(https://blog.aladin.co.kr/hahayo/9922625 https://blog.aladin.co.kr/hahayo/10022361)


첫 번째 인용은 커다란 인식의 용광로 안에서 종교들이 다퉜던 하나의 장면인 것 같아 신기해서 적어놓는다. 

1923년 손진태가 함남 함흥에서 채록한 무가 ‘창세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무속의 역사 인식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선신 미륵이 세상을 다스릴 때에는 사람 살기가 좋았는데, 악신 석가가 거짓과 음모로 선신 미륵을 마침내 이긴 후에는 살기가 흉흉해졌다는 것이다. - P133

이런 무속의 현실적 실태를 감안하면, 모든 망자는 성현군자 또는 선인이라기 보다는, 정확한 표현으로는 비악인이다. 어찌보면 모든 망인은 험하고 힘든 세상을 한평생 살아 낸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무속에서는 인간의 선악이 지니는 편차에 대하여 크게 분별심을 내지 않는다. "사람은 거기서 거기이고, 또한 그것이 사람이다."라는 인간관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 P141

결국 삶이란 행복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 때문에 즐기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 여건을 수용하고 극복하며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삶을 재미있게 즐기라는 지침이다. 세왕은 바로 그런 사실을 가르치고 싶은 것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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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5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05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1-05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김혼비 지음 / (주)안온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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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을 남편이 열심히 볼 때 옆에서 잠깐 보고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용엄마가 정벌한 종족의 무녀에게 '그럼 내가 고맙다고 할 줄 알았냐'고 조롱당하는 장면이다. 나는 자비를 베풀어 너를 살려줬는데, 왜 너는 나를 저주하느냐는 용엄마의 말에, 무녀는 내 일족을 말살했는데, 나를 살려줬다고 해서, 내가 당신을 고마워해야 하는가, 당신을 축복해야 하는가, 되묻는 장면이다. 생존을 걸고 싸울 때 헛된 동정심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내가 그런 세상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목숨 자체를 빼앗지는 않는 평화의 시대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고녀석 맛있겠다,를 읽고서도(https://blog.aladin.co.kr/hahayo/5025827) 나는, 생존을 위한 선택의 순간, 불가피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나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도 썼다. 

알라딘에서 위선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https://blog.aladin.co.kr/hahayo/12584510내가 말하려던 건 뭐였을까, 생각했다. 나는 면전에서 나의 잘못을 말해 주는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뒷담화를 하는 사람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인터넷 공간처럼 물성이 없는 공간에서 위악만큼 위선도 좋아보이지는 않는다고도 썼다. 친구의 권유로 '예수와 함께 한 저녁식사'를 읽고 마더 테레사나 히틀러나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종이 한 장도 차이가 안 나는 거라는 대목을 읽었다. 그렇겠네, 라고 생각하면서도 반발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인터넷 세상에서 공감의 말들만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라서, 나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몇몇 꼭지에서 공감하지 못했고, 그런 말들만 아마 남기고 싶다. 게다가 요 근래, 이런 자신을 드러내고 쓰는 책들의 어떤 포지션이 계속 거슬렸어서 그 연장선 상에서 보게 된다. 아마도 스스로 무해하거나, 꽤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글들이다. 스스로가 드러나는 글을 쓰면서 지질하고 약해 빠졌고, 사랑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비참한 마음을 내비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까, 글이라는 건, 말이라는 건 위험하다.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서 나름 일관성을 가지고 살아가더라도 타인의 눈에 위선이나 위악으로 보이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나 글이 그 사람의 선택이나 행동과 충돌했기 때문인 거다. 말이나 글,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많은 노력은 바람직한 게 맞지만, 그런 면에서 나는 책 속의 그 에피소드-가식에 대하여-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그 다음, 그 다음 글들에 드러난 작가의 어떤 모습에서 다른 인상을 받는다. 

내 맘에 든 글은 '축구와 집주인', '나만을 믿을 수는 없어서'

내 맘에 안 든 꼭지는 '조상혐오를 멈춰주세요', 'D가 웃으면 나도 좋아' 다. 

착하고 좋아보이려고 쓴 글이겠지만, 제사 지내는 어떤 마음에 대해 이해하지 않고 있다. 

매일 새롭게 혐오표현이라고 낙인찍히는 말들의 오랜 역사성을 무시한다. 

김솔통,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은, 내 말은 가벼우니 반박하지 말라는 말처럼 보여서 또 그러네. 하고 싶은 말은 다 하지만 반론은 사절입니다, 같은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은 책이라는 일방적인 소통에 더해지는 감상이겠지. 

공감의 댓글이 잔뜩 달린 타인의 SNS에 대한 반박글인 여행에 정답이 어딨어,라는 글처럼 나도, 공감이 잔뜩 달린 책에 조금은 다른 의견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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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1-19 10: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식 없는 사람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의문입니다. 사람이란 내 자신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려운 법이니까요 어떤 일을 직접 경험하거나 책으로 간접 경험한 후에야(것도 아주 마음을 오롯이 연 상태에서)비로소 나도 이런면이 남들보기엔 가식적이었겠구나 하고 조금씩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별족 2022-01-19 11:28   좋아요 3 | URL
제 자신이 엉망진창,인 걸 저는 알고 있어서, 너무 강경한 태도에 자꾸 물러서게 되는 거 같아요. 참 이 글은 미미님 보라고 쓴 글인데요. https://blog.aladin.co.kr/hahayo/13265780

청아 2022-01-19 11:40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지난번에 읽었어요. 저를 향한 글 같더라구요ㅋ 그 글 보고 나서 생각이 많았는데 이거 쓰면서 저는 별족님생각했어요 https://blog.aladin.co.kr/759250108/13266814 여러지점에서 저랑 생각이 다르시지만 배울점도 많은것 같아요.

별족 2022-01-19 11:46   좋아요 3 | URL
저는 이반 일리치,의 젠더, 를 재미나게 읽었어요.https://blog.aladin.co.kr/hahayo/13206446 저는 남성과 여성은 다르고, 남성이 지배하는 영역(법과 사회)과 여성이 지배하는 영역(이야기와 문화)이 다르다고도 생각해요.

청아 2022-01-19 11:54   좋아요 3 | URL
이반 일리치의 <젠더>궁금하네요. 저도 예전에는 남성과 여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어요.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2의성>을 읽어보니 그건 그렇게 ‘규정‘되어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 ‘구분‘이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했고요. 남성중에도 그 ‘구분‘에 부합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들이 상당 수 있고 여성 중에도 마찬가진데 이 규정은 그런것들을 설명해주지 못해요. 단순 이분법으로 자율성과 독창성은 희생당하고 여러 사회문제를 낳는다고 봐요.그걸 이해하고 바라보니 이전보다 명확하게 사회구조가 보이더라구요.물론 공부해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이 있지만요. 별족님도 별족님이 믿고 계신대로 계속 공부하시고 저도 그러면서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별족 2022-01-19 13:11   좋아요 2 | URL
관심이 있으시다면, pc 기반으로 제 서재에서 서재태그 여성, 여성주의 관련 글들을 보셨으면 합니다.

청아 2022-01-19 13:18   좋아요 3 | URL
네~저 은근 별족님 글 찾아보고 있었어요. 계속 볼테니 별족님도 제 글 한번씩 보셨음해요.

별족 2022-01-19 17:17   좋아요 2 | URL
저도 잘 보고 있습니다.
 

선거판에 여자들의 이슈로 가득하다. 

조동연, 김건희, 신지예, 진명여고. 여가부 폐지, 다시 김건희.

나는 조동연이 깔끔하게 떨어져나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김건희가 윤석렬의 아킬레스 건이 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신지예가 표를 갉아냈던 것도 다 수긍하고, 있다. 

 

진명여고 위문편지는 쉴드 칠 이유가 없고-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 사람을 도대체 왜? 뺨 때린 사람이 잘못이니까 화풀이한 건 용서해주자???? 도대체 왜? 화풀이 당한 사람은?-, 여가부 폐지에도 동의하고 있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 된 데에는 여직원회 회장을 한 게 원인일 수 있다. 16년부터 19년까지 여직원회장을 하면서, 그 부당한 요구들에 대응하지 못하는 순간들 생각이 났다. 논리나 합리, 명분 대신 다수 의견이니까 회장은 가서 전달만 하면 된다고 했었다.

동의와 공감의 언어만을 요구한다. 동의나 공감의 말들이 그룹 내에서 커지는 가운데, 이상한 주장이나 요구를 꽤나 정당하다고 스스로 믿는다. 

친구는 내가 일반화를 하고 있다고 모든 여자조직이 그렇지 않다고 말했지만,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내가 겪은 경험들 가운데, 나는 좋은 여자들의 조직을 여자들의 말들이 흐르는 방향을 알지 못한다. 평등하고 위계가 없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서, 그룹 안 말의 흐름 위에서 판단을 가늠한다. 친분이 많은 사람의 말이 힘을 얻는다. 친구들과 하는 밴드에서 다른 의견이 나올 때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공감의 반응은 거리낌이 없지만, 반대의견 다음에는 침묵만이 있다. 거기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데지,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럼 먼 데 있는 나는 언제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라는 질문이 생기기도 한다.  

진명여고 위문편지의 트위터 발 여론을 딸에게 전해 들으면서, 트위터는 반대의견을 리트윗하면서 반대의견을 달면서 자신이 리트윗한 글의 작성자가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와, 놀랍도록 편향적인 시스템이 아닌가. 대화가 아닌 말들의 잔치, 나와 같은 의견들만 모이는 편향의 축제. 놀랍도록 공격적이고, 놀랍도록 친절하고, 또 놀랍도록 폐쇄적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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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22-03-10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어느 유명 유튜버의 여성 집단 내에서의 관계 형성에 관한 영상을 접했습니다. 여성 집단 내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편을 만들고자 하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고 자기자신을 잃어갈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이 등장하더군요. 저는 그 장면들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아마 낯설지않았던 것은 익히 많이 봐왔던 장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 일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여성 분이 자신의 집단(여성들)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지 못 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러한 문제가 그 곳에 한정되지 않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타인이 자신과 같아져야 한다며 서로가 서로를 얽매이는 환경에서 과연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까요?

별족 2022-03-11 05:50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영상을 보고 싶은데 알려주세요!

커피소년 2022-03-11 06:02   좋아요 1 | URL
제가 폰으로만 북플을 해서 링크를 걸어드릴 수가 없어서 글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유튜브에 진용진의 없는 영화라고 검색하시면 바로 제일 위에 뜨는 영상이 있을겁니다. 제목이 여자들 99%가 무조건 겪어봤다는 이야기라는 영상입니다. 영상 댓글 보면 여자로 왕따를 단 한 번이라도 당해본 적이 없다면 타인을 처참히 짓밟고 관계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라는 댓글이 있었거든요. 그걸 보고 여성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문제점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별족 2022-03-11 06:24   좋아요 1 | URL
찾아서 잘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학교 다닐 때는 혼자 다니는 타입이었어서 그런 상황을 겪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 늦게 겪고 놀란 걸 수도 있습니다. 권인숙선생님의 양성평등이야기를 읽었을 때(https://blog.aladin.co.kr/hahayo/9078175) 제가 겪었던 상황을 아주 조금 묘사합니다.

커피소년 2022-03-11 06:48   좋아요 1 | URL
허허 또 링크를 주셨군요. 바로 접속하기가 가능하면 수월할텐데 북플에서는 글을 복사할 수가 없네요. 알라딘을 다시 설치해야 하는 것인가요.

그렇군요.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오히려 정서적으로 좋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하던 것에 익숙해지면 혼자가 되면 너무 힘들어지더군요. 무엇이던 내성을 길러야겠지요.

아침부터 부지런한 별족님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 것 같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정치인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항상 대답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다. 국가 대 국가의 협상의 순간,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손해를 요구하는 순간에 정치인인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답하기 힘들었다. 지금의 세계는 국가 내 벌어지는 양극화 만큼 심각하게, 국가간의 양극화도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내가 누리는 삶 자체가 대한민국의 부유에 빚지고 있고, 이 대한민국의 부유는 가난한 나라들의 선망과 정치적 불안정들에 빚지고 있지 않은가. 우주로 나아가고, 영생을 꿈꾸는 미래전망 반대편에는 식량을 포기하고 니켈 따위를 채굴하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있는 것은 아닌가. 국내 정치에서 가지는 나의 어떤 정치인의 태도를 국외정치에서 일관되게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헛되이 상상으로 계속 하면서 나는 정치를 못 하겠는걸,이라고 생각했다.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아편전쟁을 다루었다. 도입에 영국인과 중국인에게 어떻게 배우는지 물었다. 영국인은 거의 배우지 않고, 중국인은 굉장히 중요하게 배운다고 말했다. 식민지배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일본과 영국은 다를 게 뭔가, 빈정거리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고는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그 결과를 알고, 그 무도함을 할고, 의회에서 9표 차로 전쟁을 승인한 무뢰배들이 결국 이긴다는 걸 알고 있어서, 세계관의 충돌이라는 것이 꽤나 그럴 듯하게 포장한 서구의 세계관이 과연 그러한가 의심하는 거다. 동등한 국가로 보고 자유무역을 청하였다? 그럴 리가. 자신의 우월을 의심치 않았기에 자유무역을 청한 거겠지. 시장이 없이 유지되지 못하는 자신의 부를 위해서, 식민지를 개척하고 약탈하는 제국의 무도함을 본다. 아, 지난 번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한 미국의 서사에서도 나는 무언가 끔찍해져서 싫었던 거지. 힘의 우위로 스스로의 옳음을 증명했다고 생각하는가, 싶어서 끔찍했었다. 그 무도함때문에 아편전쟁은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회자될 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가지는 것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교훈은 남는다. 평화에 익숙한 거대한 제국이 속절없이 힘을 잃은 뒤에 전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파멸을 모른 체 하는 무도한 파멸의 길로 뛰어든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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