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유미리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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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미리의 소설에 별로 감동받지 못한 네가 이 수필집을 산 것은, 먼저 읽은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가 내가 아는 누군가를 연상시켰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를 낳아 창밖으로 던져버리는'상상을 하는, '비어있는 주머니가 속이 편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는지, 아이를 낳고도 그런 태도 여전한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다 읽은 지금은 그녀의 젊은 날 언제쯤과 어머니가 된 지금이 만나서 오래된 친구하나를 모두 기억해낸 기분이 되었다. 사람은 자라고, 변하고, 그러나 변하지 않는 부분 또 여전하고 말이다. 그녀는 여전히 실재보다 과장되게 자기자신을 '무책임하다', '대책없다'고 자책하고- 말미에 '임신과 출산, 간병과 양육의 와중에 소설과 이 책을 내고'라고 쓰여있는 대목에서 난 깜짝 놀랐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내 '큰일이다'그러고 있다.-, 아이에 대해 간절하면서도 후레이크와 군것질거리들로 연명하는 무심한 사람이다. 한 생명의 죽음에 직면하고 생긴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외로 낳기로 결심하는 모습이나, '공원데뷔'를 걱정하는 모습은 너무 그녀다워서 사실 웃음이 났다.

그런 담백한 고백들이 사실 너무 은밀해서는 꼭 내게만 하는 고백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참 씩씩한 그녀가 -미혼모가 임산부 교실에 참석할 생각을 하거나, 관공서에서 화내는 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유사 가족을 구성하는 거나- 토로하는 걱정거리들은 참 살갑고, 내게 용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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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팰리스
폴 오스터 / 열린책들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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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것은, 오래 전 학생일 때 배운 근대소설의 결함- 유정이니 무정이니, 소설형식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지나친 우연의 결합이라는.-이었다. 이 잘 짜여진 소설이 기대고 있는 이 놀라운 우연은 무엇으로 설명할까, 하고 말이다. 내가 도달한 결론이란 건 인생은 어차피 우연의 연속, 소설이 우연에 기대고 있다면 이건 소설이 비추는 인생때문이지 소설의 미숙함이 아니다. 알지 못했으나, 만나게 된 세 명의 사람들을 보면서 한꺼번에 풀린, 게다가 너무 많이, 실타래에 잠깐 말을 잃기도 하고. 인생의 어딘가 내가 만든 인연, 또 다른 어느 지점에서 내게 나타나는 거라고 의미심장한 교훈을 취하려고도 하고. 이들 셋이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습니다'로 끝낼 수 없는 출렁이고 복잡다단한 나머지 인생을 또 여전히 살아갈 거라고 상상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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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3 - 살인과 그후의 삶
그레고리 매과이어 지음, 이종인 옮김 / 동아일보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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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평 일색에 이런 평이라니 망설여집니다만, 전 좋은 느낌으로 읽을 수 없었답니다. 사는 모습의 보잘것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닌데도, '이게 도대체 뭐지?'라는 말만 계속 하게 되었습니다.

1권을 읽고는 다음이 궁금해지기는 했습니다만, 그 때 망설인 것은 익숙한 오즈의 마법사에 비추어 분명한 비극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엘파바에 너무 많이 감정이입한 다음, 너무 많이 슬퍼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었지요. 그래도, '통쾌한' 패러디의 전모가 궁금하여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리고 맙니다. 지나친 과장, 미화가 빠져나간 자리라서 그런가요. 소설을 읽으면서 한 생각이란 것은 이 소설이 좋았던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경험이 내게는 없는 것인가, 하는 거였죠.

1권에 묘사되는 엘파바의 반체제 성향?-적절한 묘사가 떠오르지 않는군요. 그러니까, 역행하는 시대흐름에 저항하려는 모양새-은 그뿐입니다. 그녀 마음에 품은 성향, 이요. 지나친 미화에 치를 떨다가, 극적인 사건조차 그런 식으로 묘사한 건가, 싶어요. 적이었고 살인의 대상인 사람이 심각하게 악인으로 느껴지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은 거죠. 선악의 이분법이 빠져나간 뿌연 판타지가 전 너무 허무해서, 참을 수가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행한 바에 비추어 과장되게 경계되는 마녀의 존재란 것은 사실에 가깝지만 매혹적이지는 않고 말이죠.

엘파바는 고민만 심각하게 하고,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구요. 혼자 움직이는 것도 그렇구요. 동지도 없어 보이는 그녀는 불만이 아주 많은 살인자로밖에 비치지 않는데도, 마법사나 사람들의 평판은 터무니없고 말이죠. 마법의 책은 끝까지 미궁이라구요.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않는 뿌연 판타지라, 제가 써놓고도 썩 적절한 비유인 걸요. 너무 궁금해서 끝까지 읽었는데, 다 읽고도 여전히 아는 게 없는..

궁금하시다면 읽어도 좋겠지만, 권하지는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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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딸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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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쓰기 페이지를 펼쳤다가, 닫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사벨 아옌데가 어떤 이야기꾼인지. 그런데도, 무슨 말이건 하고 싶어서 다시 펼칩니다. 꽉 짜여진 재미있는 소설을 당신에게 들려주는 것은 미안한 일이고-영화의 놀라운 결말을 알려주는 것처럼-, 그러자고 가만히 있자니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는 입이 근질근질해서는 '너 볼거야, 안 볼거야?'묻고는 안 볼 거라는 대답을 들은 다음, 모든 줄거리를 질리도록 들려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딱 그 심정입니다. 엘리사가 말이지. 엘리사가 말이지. 하고 말이죠.

이사벨 아옌데가 엘리사의 스무 해 정도를 제게 들려주는 동안, 저는 아마도 입을 헤 벌리고 귀를 쫑긋 세우고 정신 못차리고 들었나 봅니다. 드라마틱하지 않은 시대를 살면서, 그런 드라마틱한 시대의 이야기를 경이와 존경의 심사를 품고 상상하면서 말이지요. 모험이 가득한 시대, 모험없는 삶을 살던 여성들. 그 속에서도 모험과 자유를 누리는 용감한 여성을 말입니다.

책장을 덮으면서는 이사벨 아옌데가 무척 낙천적인 사람이로군, 생각합니다. 엘리사만큼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낙천적 기질은 남미의 열정과도 같은 건가, 하고 궁금해하기도 하구요.

절망의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 낙천적인 여성들을 만나는 건 힘이 납니다. 모험을 부추기는 이 소설은 정말이지 소심한 여성의 정신건강에 아주 좋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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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우는 아줌마
이숙경 지음 / 동녘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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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양이 얼마 되지도 않는 것이 하드커버로 장정되어 비쌌고, 결혼하지 않은 내게는 너무 당연할 것들이 오래도록 너무나도 진지하였다. 어느 정도 예상했으면서도 덜컥 산 것은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아줌마들의 찬사 때문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페미니스트가 되었죠'라고 말하는 여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애도 낳아본 적 없고, 덜컥 겁이 나서는 우습게도 살림부터 차려 볼 궁리를 하는, 그 다음의 걱정을 미뤄두는 머리로만 익힌 페미니스트인 내가, 아줌마가 아줌마에게 마음으로 한 말들에 논평하려하다니 금방 후회하고 만다.

머리로만 익힌 페미니스트인 나는 실전에 약하고, 그러면서도 실전의 경험들에는 고약하게도 냉소적이 되는 탓에 아줌마가 하는 밥하는 얘기, 담배 피우는 얘기, 결혼으로 얽히는 새로운 가족들의 관계를 그만큼의 무게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직 내게 닥치지 않아, '까짓 거, 그렇게 못할까봐, 뭐 이렇게 걱정이 많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줌마라면 아이를 낳아 그 고됨에 무언가를 집어던지고 싶었고, 아직도 어린애인 남자를 어른 대접하며 먹이고 입히는 데 버럭 짜증난 적 있었고, 밤 늦은 귀가에 어처구니없는-나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많이 늦는 남자에게- 폭언을 들은 적 있었다면 감상은 달라졌을 거다. '자기자신을 불쌍히 여기라'는 말이 고마웠을 거고, '야식 식당' 얘기에 '어, 내가 써먹어야지'할 거고, '팥쥐가 더 좋다'는 아이 얘기에 피식 웃으며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처녀애라서 감상이 그만큼 절절하지 않아도 지난 다음, 이 아줌마에게 감사하게 될 거란 걸 안다. 내일의 나에게 보내는 격려, 위로, 칭찬, 충고라는 걸 안다. 나 같은 애한테는 '뭐 별것도 아닌데'란 말을 들을 각오도 하고, 또 어떤 남자한테는 '못되먹은 병원균'쯤으로 취급될 각오도 하고, 또 어떤 아줌마한테는 '어머, 그래도 그러면 안 되지 않나?'하고 조금은 경계대상이 될 각오도 하고 한 말이란 걸 안다.

졸업하고 오래 못 본 나의 여자친구들을 가끔 우연으로라도 만나게 될까, 근심하는 지금 결혼한 다음이 걱정되어서는 아줌마가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온 일들 들려주고 나누자고 채근하는 게 고맙다. 누군가 다르게 살아가려고 하면서 조금씩 실천하고 있으니, 당신도 하라고 할 수 있다고 손내미는 이 아줌마가 정답다. 한 번 깨지기가 어렵지, 깨고 나면 일사천리인 여자에게만 무수히 많은 금기들 '우습다'고 스무 번쯤 말한 다음 깨어보자는 이 선동가 아줌마, 부럽다. 부러워만 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정의대로 나, 아줌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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