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유미리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유미리의 소설에 별로 감동받지 못한 네가 이 수필집을 산 것은, 먼저 읽은 '훔치다, 도망치다, 타다'가 내가 아는 누군가를 연상시켰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를 낳아 창밖으로 던져버리는'상상을 하는, '비어있는 주머니가 속이 편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는지, 아이를 낳고도 그런 태도 여전한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다 읽은 지금은 그녀의 젊은 날 언제쯤과 어머니가 된 지금이 만나서 오래된 친구하나를 모두 기억해낸 기분이 되었다. 사람은 자라고, 변하고, 그러나 변하지 않는 부분 또 여전하고 말이다. 그녀는 여전히 실재보다 과장되게 자기자신을 '무책임하다', '대책없다'고 자책하고- 말미에 '임신과 출산, 간병과 양육의 와중에 소설과 이 책을 내고'라고 쓰여있는 대목에서 난 깜짝 놀랐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내 '큰일이다'그러고 있다.-, 아이에 대해 간절하면서도 후레이크와 군것질거리들로 연명하는 무심한 사람이다. 한 생명의 죽음에 직면하고 생긴 새로운 생명에 대한 경외로 낳기로 결심하는 모습이나, '공원데뷔'를 걱정하는 모습은 너무 그녀다워서 사실 웃음이 났다.

그런 담백한 고백들이 사실 너무 은밀해서는 꼭 내게만 하는 고백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참 씩씩한 그녀가 -미혼모가 임산부 교실에 참석할 생각을 하거나, 관공서에서 화내는 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유사 가족을 구성하는 거나- 토로하는 걱정거리들은 참 살갑고, 내게 용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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