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창녀 - 20세기 지식인들은 무엇을 했나
카트린느 클레망 지음, 채계병 옮김 / 새물결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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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읽어낼 수는 없다.
프랑스 철학 입문서쯤으로 생각하는 건 분명 오해다..

그렇지만, 읽는 내내 즐거워져서 오래 오래 읽어도 좋았다.
철학 입문서 쯤으로 생각하고 한꺼번에 많이 알아버릴 거라고, 다른 누군가의 인용에 주눅들지 않을 거라고 읽게 시작했을 거다.그렇지만, 읽으면서 그런 마음 누그러지고 기뻤다. 철학이란 걸 밑줄치고 외워야 하는 조금은 따분하고 생활과 동떨어진 거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아우슈비츠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지식인이 된 것'이라고 말하는 데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사의 불합리,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 일종의 광기들-을 설명하려는 노력들이란 것 때문에 한없이 가까워진 기분이 되었다. 부모님세대에 아우슈비츠를 겪고, 다음(?) 세대들의 68년을 겪은 철학자가 평생을 알고 지낸 철학과 철학자들의 면면, 그들을 어떤 태도로 알고 사랑했는지 듣는 건 좋았다.

자신이 어떤 강박에 시달리는지, 또 다른 철학자가 어떤 강박에 시달렸는지, 누군가의 죽음이 왜 그렇게밖에 독해되지 않는지 하는 그런 심상들... 어떤 식으로 그들이 자신의 믿음에 고집스러웠는지 하는 것들.. 삶에서 그들은 자신의 철학을 어떻게 실천하려 했는지 하는 것들..

이성이라는 악마의 창녀에 속한 자기 자신에 대한 강박이 미세한 감정결들 때문에 떨리는 걸 보는 것도, 가끔 이성으로 선택할 수 없는 순간 '선택해야 했다'라고 말하는 걸 보는 것도 좋았다. 배움을 청한, 지적으로 열등한 나에게 '욕망이란 사람들이 갚고 싶은 것과 아직 소유하지 못한 것을 쑤셔넣는 말의 바랑이다'라고 말하는 철학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좋았다.

좋았던 구절 찾아서는 보여주고 싶다고 뒤적이다가, 다시 읽을 때는 내 감정결대로 읽어낸 부분들 대신 인용할 만한, 지적 허식을 위해 차려 입을 만한 '철학'이란 것도 발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오래 걸려서 아직도 읽고 있지만, 난 별로 유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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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신화전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
위앤커 지음, 전인초.김선자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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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다. 도올의 노자 강의였는데, 중국신화를 인용하고 있었다. 세상의 처음을 설명하는 중국의 신화가 서양기독교의 천지창조와 어떻게 다른지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인용된 신화는 혼돈이란 신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은 두 명의 신이 혼돈에게 답례로 세상과 소통할 일곱개의 구멍을 일곱낮밤동안 만들어주는 얘기였다. 일곱개의 구멍이 완성되는 날 혼돈은 죽어버리는데, 도올은 이것이 동서양의 차이라고 혼돈은 정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질서를 부여하는 순간 생명력을 잃게 되는 거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이미 이 신화를 알고 있던 나는 그 신화를 다른 느낌으로 기억하는 내 자신을 알아차리고 조금 웃고 조금은 부끄러워했다.

그 신화를 안 건 이 책을 통해서였는데, 나는 이 신화를 읽으면서 의도와 달리 상처를 입히는 두 명의 신에게 감정이입한 다음 슬픈 정조가 되었었다. 중국인 사유의 바탕을 신화를 통해 알아보겠다고 포부도 당당하게 선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나와 관련하여만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난 내 의도와 다르게 상처입혔던 사람들이 떠올랐었다.

의도가 어땠고, 결과가 어땠든 간에 옛날 사람들이 세상을 설명하는 방법을 따라가는 건 즐거웠다. 능력밖의 것들을 설명하려고 이런 저런 것들을 이어붙이고, 종국에는 두 갈래 세갈래되는 이야기들. 신화나 전설이란 것이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갖기가 힘든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빛내며 단숨에 읽었노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때때로 우습거나 슬퍼서 다 읽은 후에는 좋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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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갈릴레오 총서 3
사이먼 싱 지음, 박병철 옮김 / 영림카디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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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유명한 사람을 보게 되면 나 조금 주눅이 들게 돼.
무언가 오래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루어낸 사람을 만나게 되고 또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랜동안 매진했었는지, 그것이 얼마나 오랜 세대에 걸친 노력의 결실이었는지를 깨달아도 그렇고.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내내 즐거웠던 건 나를 주눅들게 한 그사람이 '퀴즈광'처럼 묘사되었다는 거야. 나조차도 느낀 적 있는 그 짧은 기쁨을 위해 열정들에 자신을 휘둘리는 존재란 거 말야. 내가 수학을 한때나마 좋아한 적 있었고, 지금도 문제 푸는 걸 즐길 수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더라.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 어려운 문제를 만나서 제 힘으로 풀어낸 그 저릿한 기쁨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이해할 거야. 그 문제를 손에 쥔 순간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어지고, 그저 풀 수 있다면 뭐든 할 거라고 거짓된 계약을 일삼고 막상 풀어내고는 거만하게 으스대게 되잖아.

내가 풀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게 하는 '수학'의 그 결벽적인 완결성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잊었었어.

수학자가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을 묘사할 때, '수학'을 하는 공통점 때문에 같아져버린 사람들의 성품에 웃음이 났어. 이해할 수 없는 증명을 경멸하는 조금은 촌스러운 것까지 기뻤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천재들을 구경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취미처럼 수학문제를 다시 풀고 싶어지니, 나도 참 악취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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